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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상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작가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아마도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수상하지 못했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을 모두 읽은 지금 만약 그랬다면 굉장히 아쉬워했을 것 같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는 경찰 3대의 이야기가 빠른 진행과 시대상을 함께 다루면서 보여준다. 전후부터 오늘에 이르는 그 과정은 일본의 역사이자 한 집안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대 안도 세이지, 2대 다미오, 3대 가즈야로 이어지는데 각각이 한 편의 경찰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가 발생하는 것은 1대 안도 세이지 시대다. 그가 해결하고자 했던 두 살인사건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제외하면 일상의 경찰소설로 다가온다. 물론 그들이 경험한 경찰생활이 무난하고 수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2대 다미오의 경우는 공안 업무 때문에 정신병까지 생길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퍼즐을 푸는 것 같은 미스터리가 아니란 의미다. 사실 조금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1대에서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다. 하지만 다른 숨겨진 트릭이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이런 기대감과 각 세대별 경찰 이야기가 속도감 있고 재미있게 풀려나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전후 풍경에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현재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의 이전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세이지가 경찰에 들어간 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다. 지원만으로도 경찰이 될 수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 그가 순사로 일하면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과 경찰로서의 자세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남창이지만 살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와 친했고 한 사람의 희생자란 이유만으로 비번인 날에도 수사를 계속한 그의 모습이나 주재소에 근무하면서 지역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한 소년을 바로 잡으려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어린 다미오가 경찰이 되고자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도 모른다.
국보급 유물이 불에 타고 있는 동안 한 수상한 사람을 뒤쫓아 간 후 죽은 아버지에 대한 평에 신경을 쓰면서 다미오는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아버지의 영향과 생활고 때문에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성적을 눈여겨 본 공안이 그를 홋카이도 대학에 입학시킨다. 그는 공안의 스파이가 된다. 그 당시 활약하던 적군파 속으로 들어가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신경증을 얻는다. 이로 인해 망상에 시달리고, 술을 먹으면 아내를 때린다. 자각과 실천의 괴리는 그를 괴롭힌다. 이때 얻은 마음의 상처는 이후 그의 삶에 많은 변화를 준다. 훌륭한 공안의 실적과 아버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근무했던 주재소로 와서 그는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이 안정은 조금씩 무너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삼촌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삼촌이 바라지 않던 경찰학교에 입학한 것은 왜일까? 가즈야의 이런 행동은 솔직히 조금 의문스럽다.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모자가정으로 가족을 벌써 부양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부터 이전 세대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된다. 경관 3대의 피는 이어지지만 시대와 개인의 삶으로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하지만 그 피는 결코 묽어지지 않는다. 가즈야의 첫 임무가 경무과 일로 자신의 윗사람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경찰임을 자각하고, 한 사람의 경찰로 성장하는 그를 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마지막 엔딩에서 그가 후배 경찰에게 경찰에 대해 말을 하고, 호루라기를 부는 그 순간 묽은 듯 보였던 그 피는 다시 붉게 물든다. 동시에 가슴속으로 진한 감동이 파고든다.
60년에 이르는 긴 세월과 삼대를 다루면서 지루하지 않은 것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다. 개인적인 불만이 있다면 각 세대를 한 권으로 늘여서 3권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다. 각 시대를 좀더 세밀하게 그리고, 3대의 내면을 좀더 깊숙이 파고들어 시대와 연결시켰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기 때문이다. 각각 너무나도 매력적인 삼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