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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
멕 로소프 지음, 김희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한 소녀가 영국에 도착한다. 사촌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녀가 태어나던 그날 어머니가 죽는다. 이 소녀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새엄마를 증오한다. 먹는 것을 거부하고, 아빠의 돈을 낭비하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이런 소녀가 영국에 도착하여 한 소년을 만나고, 그 가족들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면서 바뀐다. 이 변화는 곧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바뀌게 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소설의 분위기도 청춘소설에서 반전소설로, 다시 성장소설로 조금씩 변한다.
엘리자베스는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깡말랐다. 이런 그녀에게 사랑이 다가온다. 그가 에드먼드다. 첫 만남부터 특이하다. 열다섯 살 소년이 차를 몰고,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를 마중 나온 것이다. 약간의 선입견이 생길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 가족들을 만나고, 영국 전원생활을 만끽하면서 자신 속에서 담을 쌓고, 응어리 진 것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사라진다. 콘크리트 빌딩 사이에서 삭막한 감정으로 미움과 증오만 품고 있던 그녀가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결에 나쁜 감정들을 날려버린다. 이 과정에 그녀와 에드먼드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이 사랑은 그들을 강하게 이어준다.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데이지가 영국에 와서 사랑에 빠지고, 영국 시골 삶을 즐기는 장면들과 전쟁으로 그 가족들이 나누어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과 전후 다시 그들이 만나기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밝음과 아름다움과 열정과 치기가 가득하다가 전쟁의 실체로 점점 다가가고, 그 전쟁의 상흔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열다섯 소녀가 사랑에 빠지고, 멋진 가족들과 즐겁게 살아가면서 직접적인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 못한 장면까지는 조금 밋밋한 느낌도 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식량 배급으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에도 그들은 전쟁의 의미를 모른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헤어지지만 이때도 그것이 잠시일 것이고, 영화 속 전쟁과 다른 재미난 놀이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적군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총 맞아 죽고, 전쟁이 국지전으로 변하면서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 과정을 급격하게 보여주기보다 그들을 현실로 발을 조금씩 내딛게 만들면서 그 참상에 다가가게 한다.
먹기를 거부해 마른 데이지가 배고픈 여행과 삶으로 버터 바른 토스트를 원하는 장면에선 삶이란 원초적인 것임을 다시 알게 된다.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삶속에서 털어 내거나 묻어 버리나에 따라 바뀌는 것도 볼 수 있다. 순수할수록 그 상처는 깊고 아프다. 그 상처를 역시 씻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영국을 점령한 적군이 누군지도 말하지 않는다. 왜 일어났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원유, 돈, 땅, 봉쇄령, 민주주의 등을 말할 뿐이다. 이런 단어들로 유추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작가만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가 배경이 아니다 보니 조금은 느슨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느긋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벌어진 참상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에드먼드의 형제들은 각각 강한 개성과 특별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은 참혹한 현실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을 때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더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