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가격 - 예술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지적 미스터리 소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현정수 옮김 / 창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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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한 편 한 편이 재미있다. 천재 역을 맡은 가미나가와 화자이자 미술대학 강사인 사사키 두 콤비의 활약은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만약 살인사건이나 음모를 다루면서 긴박한 전개를 펼쳤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었겠지만 이 소설에선 하나의 예술품이 미스터리의 소재다. 하나의 물품을 두고 진품이냐, 가짜냐를 다루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멋진 반전을 보여준다. 풍부한 지식과 자료 조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재들의 가격>은 두 콤비의 첫 만남을 다룬다. 보티첼리의 작품인 듯한 그림을 감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놀랍게도 천재인 가미나가는 진품인 경우 단맛을 느낀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전시회 그림의 위작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면서부터다. 물론 이 놀라운 사건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 놀라운 이력의 소유자를 만난 화자 사사키가 보티첼리의 작품처럼 보이는 그림의 진짜 여부를 밝혀내는 과정과 그 뒤에 숨겨진 반전은 이 재미난 단편집의 첫 부분 일뿐이다.  

 

 <지도 위의 섬>은 한 장의 지도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앞 작품에서 괴팍한 미술학도로 나온 이본느의 쌍둥이 언니가 등장하여 포르투칼 인 벤세슬라우 드 모라에스가 조부에게 준 지도의 가치를 새롭게 분석한다. 단순히 지도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모라에스의 삶을 되짚어가면서 그 지도를 해석한다. 이 과정에 언니 가에데의 개인사도 함께 엮여 있는데 이 둘을 모라에스의 삶과 함께 풀어내면서 반전을 그려낸다. 최근 낯익은 메르카토르 도법을 다루어 반갑다. 

 

석가모니의 열반도를 다룬 <이른 아침의 열반>도 역시 놀랍고 새로운 지식이 가득하다. 나의 무지 때문에 몰랐던 석가모니의 식중독 사망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림의 진위가 밝혀지는 순간은 놀라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콤비의 활약은 이번에도 대단한데 이 둘의 앞날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잘 보여준다. 사사키의 사랑이 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다음 권이 만들어진다면 그 결과가 나오려나?  

 

 <논점은 베르메르>의 미스터리는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편은 미스터리보다 두 콤비가 놓인 상황이 주는 재미가 더 크다. 정치인 아버지는 아들이 못 미덥고, 아들은 충분히 자신이 있다. 하나의 그림을 두고, 베르메르의 그림보다 수준이 위다 아래다를 두고 논쟁을 펼친다. 아들의 정치인생이 걸린 논쟁이다. 이 중간에 이 콤비가 놓인 것이다. 논쟁을 준비하고, 두 부자가 논쟁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리고 “가짜는 밝힐 수 있지만, 진짜를 증명할 수는 없다.”면서 과학적 감정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둘의 궁합이 점점 짝짝 맞아간다.  

 

 <유언의 빛깔>은 사사키의 할머니 유산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할머니는 자신의 유산을 자신이 낸 미스터리의 정답을 푼 사람이 모두 가져가길 원한다. 사사키와 이모의 대결은 지저분한 스파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예술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보여준다. 이 단편에서 사사키는 격한 감정을 여러 번 드러내는데 약간 앞의 작품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가 좀 떨어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혹시 이 두 콤비의 다음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각 단편들이 재미있다. 속도감도 대단하다. 오랜만에 만난 콤비의 활약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읽는 중간에 만화 <갤러리 페이크>가 연상되기도 했다. 치밀한 묘사와 풍부한 정보는 반전을 위한 도구가 되어 멋지게 마무리된다. 읽으면서 부럽게 느낀 것이 있다. 바로 가미나가의 단맛이다. 결코 나에게 생길 수 없는 능력이라 사사키의 활약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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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뿔
권정현 지음 / 노블마인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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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와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방식과 액자소설의 구성이다. 거기에 더해 역사까지 곁들이고 있다. 나를 매혹할 만한 소재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 재료의 재미를 완전히 살려내지는 못했다. 추리도 역사도 현실인식도 모두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에서 마무리된 것이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기대에 약간 미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달팽이의 뿔이라는 제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몰랐다. 저자 후기에 <장자> [칙양편]의 우화에서 시간이란 페이지에 역사를 새겨온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달팽이 뿔 위의 몸놀림에 불과한 것을 빗대어 나타내었다고 한다. 갑자기 중세 유럽에서 천사들이 바늘 끝에서 몇 명이나 올라서서 춤을 출 수 있는지 논쟁하였다는 것이 생각난다. 뭐 분명히 둘 다 다른 의미지만 그 좁은 공간이 나를 그런 상상으로 끌고 간 모양이다.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이 소설엔 있다.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는데 과거는 ‘동한연의’라는 소설을 통해, 현실은 그 소설 속 시대 상황과 빗대어 일어나고 주인공 은영은 단서들을 쫓는다. 두 곳 모두 시선을 조금씩 끌어당기지만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은 조금 부족하다. ‘동한연의’가 의도된 것이라고 하여도 마무리가 어설프고, 현실의 다섯 병정상을 쫓는 은영 등의 움직임도 긴박감이나 긴장감 등이 없다. 한국에 유난히 많다는 고인돌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몇 가지 이론이 나오지만 그것만으로 재미를 주기는 약간 무리가 있다. 다섯 병정상과 책속의 대선을 연결하기도 쉽지 않고, 이미 읽는 중에 범인에 대해 감을 잡게 한다. 전체적으로 짜임새와 긴장감이 부족하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완전히 엉망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생각보다는 재미있다. 초반 ‘동한연의’가 약간 엉성한 기분도 있고, 칠지도 사건이 다른 것과 연관 있고 사건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 무너졌지만 중반으로 가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찾았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도 약간은 생소한 다섯 병정상과 전한의 마지막을 다룬 ‘동한연의’는 흥미로웠다. 대선주자에 대한 처리 문제에서 평론가도 지적했듯이 엉성한 처리가 있지만 작가가 가진 정치관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안정된 문장과 무난한 전개는 보기에 편했다. 그 이상은 아니다.  

 

 약간은 큰 기대를 하였지만 팩션 형태나 역사와 결합한 추리 형식에서 성공한 작품을 한국소설에서 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몇몇 작품에서 성공하였지만 아직 그 깊이나 저변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가끔 문단 출신들이 이런 시도를 하는 경우 아쉽게도 완성도가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장르문학에는 그 나름의 구성과 전개가 있는 법인데 그들은 이 부분이 약한 것이다. 이 소설 ‘달팽이의 뿔’도 액자소설에 추리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도는 절반만 성공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 이야기꾼으로의 재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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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소텔 이야기 1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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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6.25전쟁 중 부산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상당히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깔고 문을 여는데 곧바로 분위기가 바뀐다. 과거의 소텔 가에서 현재의 소텔 가 이야기로 넘어오는데 이 과정이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에드거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 농장을 샀으며 개 사육장을 키워왔는지와 그 후손들이 어떻게 가업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에드거의 삶의 뿌리와 삶 그 자체가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글을 먼저 읽었다. 많은 분량이지만 큰 활자를 생각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책은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조금 약했다. 일차적인 것은 나의 몸 상태(요즘 계속 이 핑계다)고, 다른 이유는 뛰어난 심리 묘사와 풍경에 대한 놀라운 묘사 때문이다. 이야기 중심이었다면 이런 묘사들이 부수적인 힘을 발휘하겠지만 이 소설은 거의 대등하거나 우세한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또 하나. 에드거가 벙어리라 대사처리가 되지 않아 순간 그냥 읽다 보면 에드거의 말인지, 서술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이유들이 나로 하여금 속도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한 시간보다 길었다는 것뿐이다.  

 

 에드거는 벙어리다. 하지만 귀머거리는 아니다. 귀로 듣고,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었다. 이것이 그가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된 것은 아니다. 아니 한 번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 119에 전화를 하는데 소리를 내지 못해 빨리 구급차를 부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것이다. 그 외 그의 삶은 벙어리란 것 때문에 힘들지 않다. 그리고 그의 곁엔 언제나 영혼의 동반자인 앨먼딘이 있다.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의 곁을 지켜주고, 함께 살아온 개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앨먼딘이 책 중반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사실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다.  

 

 기본적인 구성에서 <햄릿>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역자의 글을 보면 <햄릿> 뿐만 아니라 <정글북>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겠다. <햄릿>의 현대적 재해석과 한 소년의 성장과 복수를 다루고 있는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작가는 이 과정을 빠르게 처리하기보다 에드거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하면서 조심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여기에도 개는 항상 곁에 있다. 이때는 앨먼딘이 아닌 새롭게 태어나고, 에드거의 교육을 받은 어린 개들이다. 이 개들이 성장과 성숙이 애드거와 함께 이루어지는데 이 또한 재미있다.  

 

 내 항상 주변에 개가 있었지만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 수많은 매력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개를 사육하고, 새로운 종을 만들고, 교육시키는 내용일 것이다. 한 번도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보니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새롭게 태어난 강아지들이 에드거에겐 모두 달라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에겐 비슷해 보인다는 글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개들이 에드거와 교감을 나누거나 본능에 휩싸이는 경우 보여주는 행동들은 예측된 길에서 벗어난 이벤트 같은 순간이다.  

 

 900쪽이 넘는 소설이지만 읽고 난 지금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나의 흐름을 잡고 전체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 가닥을 정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순간의 느낌이나 감상은 흘러넘치지만 에드거의 행보를 따라 다니면서 보고 느낀 감정들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으로 오면서 잠시 집중력이 흩어진 것도 있다. 에드거가 만난 두 유령이 실제 만난 것인지 아니면 머릿속에 만들어진 환상인지 살짝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놀라운 표현력이 곳곳에 나오면서 순간 멈칫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이 점은 굉장히 강점이다. 좀더 문장을 음미하면서 읽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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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 타임패트롤 시리즈 3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6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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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앤더슨의 타임패트롤 시리즈 마지막 권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장편을 제외하고 중단편집으로 마지막이다. 과연 미 출간된 장편과 앤솔로지 각 한 편이 언제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중단편 모두 출간되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SF소설의 팬으로써 거장의 유명한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다는 사실은 언제나 즐겁고 기대되고 흥분되는 일이다.  

 

 시리즈 3권 중 이번이 가장 분량도 적고, 쉽게 읽힌다. 또한 가장 적은 2편만 실려 있다. 표제작인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와 <몸값의 해> 두 편이다. 이 두 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적이 있다. 바로 메라우 바라간이다. 작품이 출간된 순서를 생각하면 조금 순서가 뒤틀린 듯한데 이 소설에서 시간은 큰 의미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악당이 두 편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작가가 살아있고, 이 시리즈가 계속 되었다면 악당의 비중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는 솔로몬 시대의 티레를 배경으로 한다. 낯선 지명인데 책의 내용을 따라 가면 그 시대에 대단히 번성한 국가이다. 솔로몬의 성전이 티레의 궁전을 약간 축소한 형태라거나 그 성전을 지은 사람들이 티레 인이란 사실에서 평소 잘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 수 있다. 책 속에서도 나오지만 단지 기독교의 영향력에 의해 이 지역의 의미가 예루살렘에 비해 축소되고, 왜곡되었지만 ‘고양주의자’로 불리는 악당들이 역사 변환의 시점으로 삼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또 다른 중단편에서 북유럽의 어렵고 난해한 인명, 지명으로 읽는 속도를 더디게 하였다면 이번엔 그런 난해함이 많이 가셨다. 그리고 매력적인 하인이자 소년 탐정 같은 품마이람의 등장은 에버라드의 모험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몸값의 해>는 몇 쪽을 읽는 동안은 조금 혼란스럽다. 시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등장인물들이 바뀌고, 악당의 위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차분하게 읽다보면 복잡한 것처럼 보였던 구성이 하나의 실타래로 풀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바라간의 마수에서 벗어나 타임머신을 타고 달아난 16세기 스페인 전사 카스텔라르의 욕망과 시대 한계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인간의 인식이나 행동이 그 시대를 뛰어넘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타임머신을 생각하면 과거도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지만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는 재미도 상당하다. 하지만 작가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력으로 구성하기보다 과거의 역사를 발굴하고, 그 변수를 만들고, 그 변수로 인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약에 그랬다면”이란 역사의 가정을 현실화시킨다. 물론 이 가정들은 물리학적인 시간의 배경을 조부 패러독스에 두고 있기에 가능하다. 즉 과거를 변화시키면 현재가 바뀐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최근에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다차원으로 나누어진 우주를 가정하면 힘들다. 이런 과학적 가설은 하나의 배경이고 학설이니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타임 패트롤을 만든 이유가 궁금했다. 역사가 바뀌니까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각 시대마다 타임 패트롤를 두고, 조사하고, 감시하고, 변수를 제거하는 노력의 목적을 유심히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작가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로 데이넬리아 인들의 미래를 보호한다는 목적이다. 과거가 변하면서 미래의 자신들이 위협 받고 있기에 데이넬리아 초인들이 타임 패트롤을 만들고, 운영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역사는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 과거의 한 순간이나 여러 지역이 자신들의 목적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더 파고들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우니 여기서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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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환상문학전집 30
아서 C. 클라크 지음, 고호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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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단편집을 읽기는 처음이다. 이 책 이전엔 대부분 장편이었다. 장편들은 거의 20대에 읽었다.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장르문학의 하나로 SF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아서 클라크의 소설은 조금 색달랐다. 전쟁이나 모험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아닌 탄탄한 과학 지식을 배경으로 새로운 우주와 인간을 보여준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2001:우주 오디세이> 시리즈를 비롯하여 <유년기의 끝> 등은 다른 분위기에 놀라운 통찰과 인식으로 어리둥절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과학 지식이 부족한 나 자신이 어렵게 느꼈던 과학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선택하였다. 물론 그 후 한 동안 그 책을 읽지는 않았다. 과학 이론을 충분히 이해할 시간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잡으면 그냥 빠져들었다. 모르는 과학지식은 뒤로 하고, 그가 풀어내는 놀라운 미래 이야기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번 단편 전집은 이제 고인이 된 작가의 1937년부터 1999년까지 단편을 실고 있다. 나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이번 책에선 예전에 읽은 적이 없다. 물론 나의 기억이 믿을 만 하지는 않다. 하지만 장편을 주로 읽은 나에겐 신선하고 놀라우면서도 재미있다. 특히 서문에서 작가가 말하는 SF단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질적인 배경을 창출해야 하는 과학 소설가들이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엄청난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한 예로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를 말하는데 절대 공감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면 그 혹성의 풍경과 놀라운 생명체들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동시에 낯선 풍경과 환경 때문에 착각을 하기도 한다.  

 

 총 33편의 단편이 있다. 기본적으로 연대순으로 나온다. 각 단편 밑에 작가의 간단한 해석과 출처가 표시되어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다른 단편집이 한 권 있다. 그것은 <하얀 사슴의 이야기>다. 나의 귀차니즘 때문에 정확하게 세어 보지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편수가 실려 있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가의 이미지를 많은 부분 무너트리게 한다. 정확한 과학 지식을 배경으로 쓴 글도 있지만 왠지 허풍선이 같은 해리의 역할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유머와 위트가 가득하다. 어쩌면 상당히 황당할 수 있지만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너무 많은 단편이 실려 있어 하나씩 평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 단편들과 먼 우주여행을 그려내는 이야기와 해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놀라운 과학의 발명(?)들로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범주에 포함되지 않지만 놀랍고 흥미로운 단편들이 곳곳에 있다. 그렇지만 각각 다른 이야기와 분야로 놀랍도록 정확하고 예언적인 미래를 지금 현실에 들어맞도록 풀어낸다. 그 속에 시대의 한계가 분명히 보이긴 한다. 누가 소련이 먼저 우주로 나갈 것으로 생각했으면 컴퓨터가 이런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겠는가!  

 

 많은 이야기가 재미있지만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다. 소설 공모전에 떨어졌지만 1956년 휴고 상을 받은 <동방의 별>이다. 과학 지식과 종교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과학과 이성으로 놀라운 현상을 해석하고 있다. 물론 그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냐에 따라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해리의 이야기 몇 편은 정말 재미있다. 컴퓨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학적인 이야기인 <평화주의자>나 밀주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소동을 다룬 <주동자>나 새로운 자연의 보고인 바다를 과학 지식과 욕망으로 풀어낸 <바다를 캐는 사람> 등은 특히 인상적이다. <육식동물>과 <임계질량>의 마지막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었다. 이런 작품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작가의 이미지를 깨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이 단편집에서 기존에 작가가 보여주었던 작품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작품들이 주는 위트와 해학이 더 강하게 다가온 것뿐이다. 다른 단편집도 빨리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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