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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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으론 두 번째다. 처음 읽은 책이 <제5도살장>이다. 출간 당시 엄청난 광고 문구와 sf란 소리에 혹해 읽었다. 일반적인 sf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읽었으니 이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무미건조하게 줄거리만 따라가면서 읽다보니 그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화려한 이력은 그를 포기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책들을 몇 권 구입한 후 그에 대한 이해를 조금 높여보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소설에 대한 접근 방법을 조금 바꾸니 이전에 몰랐던 재미가 눈으로 가슴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은 하워드 W. 캠벨 2세다. 2차 대전 당시 그는 나치의 스타 방송 요원으로 나치를 찬양하고, 숭배하였다. 그의 방송은 열렬한 나치 찬양자들을 감동시킬 정도로 파급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동시에 미합중국 첩보원이었다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 도중에 암호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꽤 양질의 정보가 전달되었다. 미국의 첩보원이라고 하니 그가 자신을 희생하여 조국을 위해 한 몸 바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아니다. 단지 그가 아마추어 배우고, 나치당원의 외면과 내면을 탁월하게 해석하여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첩보원이 된 것이다.  

 

 이런 그의 첩보 활동은 전후 그를 악명에 반해 전범으로 처분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그는 나치의 열렬한 찬양자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을 그가 계산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를 첩보원으로 만든 프랭크 위르타넨이란 자가 말했듯이 이런 행동은 상상력에 의해 이미 계산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이 그가 간첩이라고 하여도 독일에 봉사한 것만큼 적에게 봉사하지 못했을 것이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나 뒤에 프랭크가 그를 나치라고 말한 장면은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그 행위 속에 첩보활동이 있었다고 하여도 말이다.  

 

 소설은 곳곳에 유머가 넘쳐난다. 그의 첩보 활동을 알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을 말하는 대목이나 그처럼 훌륭한 스파이를 어떻게 믿겠냐고 말할 때 입가에 자연스럽게 띄운다.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이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장면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희극적 상황을 극대화한 장면들과 사람들은 그 과장된 표현으로 인해 더 재미있고, 섬뜩하다.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조그마한 불씨가 나중에 큰 불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점을 시사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가 악이 있는 곳을 말하는 대목이다.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이 나오게 된 상황이 나치였던 그를 오헤어가 찾아오면서다. 오헤어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술주정뱅이에 순간적 감정에 휩싸인 무리들이 함께 왔는데 그들의 행동이 나치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그를 적으로 삼고, 그 적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장면은 그를 두고 벌어진 코믹하면서 섬뜩했고 가슴 아팠던 장면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집 어딘가에 있을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그가 만들어낸 상황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찾아내고, 웃음을 짓게 된다면 나의 즐거움도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반전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오고, 희극적인 장면들은 이전에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제5도살장>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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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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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여러 권 읽었다. 전작들도 모두 재미있었고 이 책 또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사라진 이틀’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그 속엔 다양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도 그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담겨있다. 각각의 단편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검시관을 하나로 엮어낸다면 ‘사라진 이틀’과 비슷한 구성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종신검시관이나 교장으로 불리는 검시관 구라이시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고 있는 8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각 단편마다 화자나 주인공은 다르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구라이시 종신검시관이다.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인연이 빚어내는 사건들 속에 야쿠자를 닮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검시관이 있다. 외관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보면 분명히 조직에서 윗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검시와 추리엔 빈틈이 없다. 그가 보여주는 실적은 경이적이라 그의 말 한마디가 수사의 방향을 바꿀 정도다.  

 

 처음 종신검시관이라는 제목과 책 소개 글에서 구라이시가 능동적인 주인공인줄 알았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죽는 사연 또한 모두 다르다. 자살인 경우도 있고 타살인 경우도 있다. 그 각각의 사연을 짧지만 강력한 인상을 주는 등장인물들로 꾸려나가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중요하고 그 숨겨진 사연과 비밀은 안타까움을 준다. 그러나 그들 모두 종신검시관 구라이시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감정과 믿음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다.  

 

 소설의 원제가 현장검증을 뜻하는 임장이라고 한다. 그 사건 현장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8편의 이야기 중에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눈앞의 밀실’과 ‘한밤중의 조서’와 ‘실책’이다. ‘눈앞의 밀실’은 이전에 읽은 ‘클라이머즈 하이’의 신문사를 떠올려 주면서 트릭이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하였다. ‘한밤중의 조서’는 부성애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한다. 혈액형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한 그가 긴 시간이 흐른 후 DNA 조사로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마음엔 든 ‘실책’에선 기록이나 밖으로 드러난 업적보다 잠시 동안 자신과 함께 일한 직원의 사연을 더 중요시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과거로부터 그 기억을 담아온 ‘17년 매미’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종신검시관 구라이시에 대한 나의 솟구쳐 오르는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 단편이고 구라이시의 능력이 너무나도 특별하지만 각각의 사건이나 트릭 등은 재미있었다. 몇몇은 쉽게 맞출 수 있는 것이고, 몇몇은 일본사람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일본인이기에 풀 수 있는 트릭은 한국 작가들도 좀 더 노력하여 한국 사람만이 풀 수 있게 만들어 내었으면 한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전에 한글을 암호로 이용한 일본추리소설은 본 듯한데 상당히 특이하였다. 물론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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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늑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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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역사 속에만 남은 일본 늑대 이야기로 문을 연다. 그렇게 길지 않는 분량에 작가가 풀어낸 늑대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이미 늑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왜곡되어지고, 과장된 늑대의 이미지를 상당히 지워내었다. 그렇지만 통계자료와 역사 속에 있는 늑대를 그리워하고, 간략하게 정리된 이야기 속에 살려낸 늑대들은 주변에서 늘 보는 개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시대 현실과 맞물리면서 한 편의 소설로 탈바꿈한다.  

 

 17살 소년이 있다. 그는 네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길에서 생활한다. 아버지는 묘지를 좋아했고, 그들은 늘 굶주렸다. 이 방랑의 시절에 아이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장면은 아이가 소년이 된 뒤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고아원에서 자란 소년은 몇 년 후 그 죽음의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를 찾아간다. 반갑지 않은 방문이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흐른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와 그 소녀는 너무나도 쉽게 긴 여행을 떠난다. 그들에겐 즐겁거나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여행이지만 그녀의 엄마나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유괴거나 행방불명이다.  

 

 소녀 유키코는 12살이다. 중학교 1학년이다. 그녀의 엄마는 좋지 않는 과거가 있고, 그 과거 때문에 그녀에겐 아버지가 없다. 위로 한 명 있던 오빠는 몸과 정신에 장애가 있었고, 죽었다. 이런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미쓰오다.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시베리아를 말하고, 야간 기차 여행을 말했을 때 쉽게 승낙한 것은 왜 일까? 이후 이 둘이 함께한 여행은 미숙한 소년과 소녀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이자 일본의 현실을 풀어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처음 소년이 유키코에게 말한 것이 <정글북>이다. 소년은 늑대 아켈라, 소녀는 모글리로 정한다. 이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 속 장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책 내용의 인용과 이 둘의 여행은 함께 나아간다. 소년은 결코 아켈라처럼 현명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소녀와 그의 여행은 <정글북>처럼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다시 <정글북>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하지만 이 둘의 이름이 중간에 다시 바뀐다. 그것은 <집 없는 아이>의 레미와 카피다. 여기서 다시 이야기의 분위기와 진행은 바뀌게 된다.  

 

 이 소설은 두 편의 다른 소설에서 영감을 받고, 이름을 빌려왔지만 그 소설들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이 둘이 가는 길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가 바로 전후 일본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신문 기사를 인용한 듯한 내용이 나왔을 때는 그냥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단순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둘의 여행이 이 신문 기사의 구체적 실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 없이 자란 소년에겐 잊지 못하던 과거를 소녀와의 여행으로 씻어내고, 부족한 여성성을 채워가고, 한 명의 성인으로 한 사람을 책임지는 성장을 나타낸다. 아빠 없이 자란 소녀에겐 오빠가 있었지만 정상이지 못함으로써 결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아빠와 오빠를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다.   

 

 읽다가 갑자기 분위기와 장면이 바뀌어 혼란스러웠다. 중반 이후 이런 비약이 이어지는데 이 둘의 여행이 단순한 가출이나 유괴 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둘은 바로 시대의 비극을 실현하는 연기자이가 희생자다. 소년이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우월감을 부르짖지만 결코 현실을 넘지 못하고, 소녀는 여행이 주는 자유와 일탈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은 ‘우리는 같은 피!’라고 외친 것처럼 나이는 다르지만 피보다 더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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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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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통일된 한국의 현실을 상당히 암울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꿈에도 바라는 통일이 현실이란 높은 벽에 부딪혀 어떻게 바뀔지 통일 독일과 여러 가지 통계자료와 상상력으로 그려내었다.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풍경이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 존재하기에 눈을 마냥 가릴 수는 없다.  

 

2011년 남북은 통일된다. 그 후 5년의 세월이 흐른다. 두 나라의 경제력 차이와 준비 단계가 없는 통일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혼란을 야기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북한의 군인들은 조폭으로 일부 변신하게 된다. 그 중 한 조직이 대동강이다. 이 조직은 하나의 빌딩을 지어서 은좌라는 룸살롱과 사무실을 밖으로 드러내고, 그 밑으로 무시무시한 땅굴을 파놓았다. 이 땅굴은 공문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곳에서 벌어지는 것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들이다.  

 

소설은 이 대동강이란 조직의 2인자이자 북조선 전투 기계였던 리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간은 리강이 평양에서 돌아온 시점과 이 시점으로부터의 과거가 병행하면서 진행된다. 이 과거는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룸살롱 은좌는 인간 욕망의 배출구이자 남북의 모순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은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거의 대부분 북한 여성이다. 남한의 고위직이 이곳의 주 고객이다. 고위직이 움직인다는 것은 고급 정보가 흘러넘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엔 특별히 시선을 주지 않는다. 단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삶을 그릴 뿐이다.  

 

 대동강이란 조직 엄청나게 살벌하다. 북한 군인들로 이루어졌다는 것보다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의 거침없는 행동이 무서움을 더한다. 빌딩 지하에 만들어놓은 시체 소각장은 은밀하게 자신들의 살인 흔적을 지우고, 조직의 공포를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과 무서움이 책 전반에 걸쳐 있기보다 오히려 리강의 심리 묘사와 행동을 통해 회색지대를 그려낸다. 통일 한국의 현재는 밝고 아름다운 미래보다 과거와 현실의 무거움과 결코 올라올 수 없는 구덩이로 표현된다. 그가 믿고 살았던 과거의 진실은 현실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느와르 풍의 전개와 림병모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회색 분위기와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과 잘 조사된 기록을 바탕으로 한 미래의 상황은 견고하게 현재를 그려내었다. 하지만 이런 현재들을 무리하게 마무리하면서 이야기는 비약과 돌출이 심해진다. 장르문학의 틀을 빌렸지만 제대로 장르문학의 재미를 살리지 못한 것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각자가 처한 현실과 과거를 보여주지만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한 것도 재미를 반감시킨다. 분량을 더 늘이고 작가가 만들어낸 미래 이야기를 더 늘어놓았으면 어땠을까?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너무 우연과 작위적인 것도 역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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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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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늘 놀라운 사실들을 만나게 된다. 현대 의학 기준에서 보면 정말 무지의 극치와 오만으로 가득한 의사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기득권이란 거대한 힘으로 새롭게 발견되거나 밝혀진 사실을 억누르고, 무시하고, 왜곡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의학계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신뢰를 생각하면 과거의 잘못은 현대의 불신으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환자와 더 나은 의학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의사들을 보게 되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그 중 한 명이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바로 이 소설은 이런 문제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소설을 두 개의 시간이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캐롤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여인의 시간이다. 전자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간다면 후자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자의 경우는 분량이 짧다. 그렇지만 그녀의 간략한 행적은 그 시대 상황을 함축으로 잘 나타낸다. 캐롤이 탐정처럼 사건을 뒤쫓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여자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는 불과 백 년 전이란 사실이 무색하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캐롤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소위 말하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의학박사 학위를 딴 후 유명한 외과의사 오슬러 교수 밑에서 더욱 많은 의학 지식을 쌓고자 한다. 시간이 지나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교수의 신뢰를 얻는다. 교수는 그 때 새롭게 건설되던 한 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 병원이 현재에도 이름을 떨치는 존스 홉킨스 병원이다. 교수는 그를 수석 보조의로 데리고 가려한다. 이 일은 그에게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한다. 하지만 한 동료의 독살과 한 여자의 죽음이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교수 밑에는 많은 의사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터크다. 그는 실력도 있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우연히 터크의 초대를 받아 캐롤은 하루 밤의 멋진 경험을 한다. 싸구려 가짜 샴페인 때문에 숙취로 고생하지만 그 밤의 여행은 이 소설에서 과거를 풀어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터크가 병원에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캐롤이 그날 밤 여정을 쫓아 그의 하숙집을 찾아간다. 추리와 대담한 노력 덕분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집에서 만난 것은 콜레라처럼 보이는 병으로 죽기 직전의 터크다. 곧 그는 죽는다. 전염병인 콜레라로 의심되기에 관청에 신고한다. 그의 시신을 병원에서 해부하다가 의사였던 그가 청결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콜레라로 고생했다는 의심이 생겨 검사를 한다. 비소 중독에 의한 독살이다. 이제 사건은 전염병에 걸린 의사 이야기에서 살인사건으로 변하게 된다.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 가기 전 캐롤은 교수와 함께 그 사회 상류층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여기서 놀라운 미녀 애비게일을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빠진다. 그녀는 미술적 재능이 상당하다.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놀랍고 즐겁다. 이 때 경찰은 터크의 집에서 놀라운 금액을 발견한다. 그는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그리고 애비게일은 그녀가 좋아하던 레베카의 행방을 그에게 부탁한다. 혹시 그녀가 아프다면 병원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준 사진을 보자 그는 소설의 첫 장면에서 부검을 위해 들어왔던 한 여자의 시체를 떠올리게 된다. 이제 사건은 하나의 연결 고리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두 개의 죽음과 그 시대의 풍경과 상황과 인식을 바탕으로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치들이 그 당시는 배척당하고, 하나의 중독이 만들어낸 비극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게 된다. 그 시대의 모습이 과도기적 현상을 보여주고, 이제는 마약의 대명사가 된 헤로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된다. 견고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독자에게 궁금증을 높이지만 그 반전이 놀랍기보다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된다. 의사가 탐정을 맡다보니 유리한 점이 많다. 의학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받지 않고, 재빠르게 해석한다. 이런 장점은 약한 반전을 가려준다. 미스터리보다 팩션의 재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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