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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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짜 책이 된 남자 이야기다. 어느 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훔친 책 때문에 책이 된 남자의 오디세이다. 그의 변신과 긴 여행은 책에 대한 애정 그 자체다. 그가 겪은 모험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섬뜩함을 느끼고, 감정이입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과연 책을 좋아하는 지 자신에게 묻길 바란다.

비블리 씨는 우연히 한 책을 훔친다. 그 과정을 보면 너무 자연스럽다. 그의 과거를 보면 책과 함께 한 인생임을 알 수 있다. 글을 모를 때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까지 책을 늘 옆에 두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책을 읽을 정도니 대충 짐작이 간다. 그가 죽은 자 옆에 있던 그 책을 훔쳐 집에 왔을 때만 하여도 앞으로 펼쳐질 괴상하고 기이한 모험을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책’을 단숨에 읽지만 마지막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잠을 자면 악몽에 시달린다. 엄청난 고통에 빠지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 책과 멀어지고자 하지만 운명처럼 그를 따라온다. 그 책을 위해 평생 모아온 책을 싼 값에 팔기도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권, 바로 그 책이다. 악몽과 몸의 이상을 어느 정도 극복한 그에게 다시 고통이 생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참다 참다 아주 강렬한 비명을 지른다. 옆집 사람들이 경찰과 함께 그의 방에 들어온다. 그가 없다.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는 책으로 변해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다.

책으로 변한 그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으로 변한 그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그 집을 청소하기 위해 온 청소부다. 그녀는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온다. 딸이 책을 펼쳐 읽는데 책의 생각들이 아이의 머릿속으로 옮겨간다. 아이가 느낀 의문을 엄마는 대답해줄 수 없다. 아이에게 내침을 당한 책은 도서관 사서의 책상으로 간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 것이란 짐작을 한다. 하지만 작가는 괴상하고 고약한 취미를 가진 도서관장을 등장시키고 새로운 모험을 준비한다. 이 관장에게 나쁜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책의 일부를 도려내어 보관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가진 책이 분노하여 관장을 공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미움을 받은 책을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아마추어 작가였던 도서관장이 자기 책 출판을 바라고 원고와 함께 그 책을 보낸다. 출판사 편집자는 아마추어 작가에겐 관심이 없다. 그 책을 들고 집으로 간다. 인기작가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는데 인기작가가 책의 내용을 보고 비평을 가한다. 책은 분노한다. 다행이 아내가 그를 말려 멈춘다. 하지만 편집자는 그 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이에 그 책은 분노한다. 나체로 잠자던 그녀를 그 책은 공격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운 일인가! 그녀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책은 다시 출판사로 간다.

여기서 다시 인기작가였지만 최근 두 작품 판매실적이 좋지 않았던 작가를 등장시킨다. 밤에 몰래 출판사에 들어와 혼자 이짓 저짓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원고를 불태우고, 그 책을 품고 사장실에서 뛰어내린다. 죽음이다. 책은 당연히 문제없다. 다만 지나가던 개의 오줌이 묻었을 뿐이다. 이렇게 내동댕이쳐진 책이 가는 곳은 헌책방이다. 여기서 책은 유명 비평가의 손에 들어간다. 비평가의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비평은 비블리 씨를 분노하게 한다. 다시 그 책은 비평가를 공격한다. 그 책의 공격에 비평가는 죽는다. 다시 그 책은 헌책방으로 흘러간다. 

비블리 씨는 헌책방에 손상당한 외형을 고친다. 잘 빠졌다. 한 신사가 와서 고가에 그 책을 구입한다. 책을 아끼는 그의 모습에 비블리 씨는 만족한다. 그런데 그는 책을 모아두기만 할 뿐 읽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모셔두기만 하는 책보다 읽은 사람의 흔적이 남은 책이 되고 싶은 비블리 씨는 책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트린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책의 공격과 헌책방으로의 귀환이 이어진다.

책이 되어버린 남자의 모험을 통해 작가는 책에 대해 말한다. 책에 대한 애정과 비평가에 대한 날선 시선과 편집자들의 속물근성과 읽기보다 수집하기를 더 좋아하는 장서가 등을 등장시켜 이를 날카롭게 비틀고 비판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헌책방이다. 책에 생기를 불어넣고, 주인을 찾아주고, 그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지도 못하면서 사놓기만 한 책과 가끔 찾아가는 헌책방에 꽃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 속에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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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왕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창식 옮김 / 들녘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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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읽은 소설이 아니다. 제목에서 느낀 분위기와 도시 판타지라는 것에 혹해 보았다. 책 뒤표지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단어를 굳건하게 드러내었지만 읽는 도중에야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가끔 나의 이런 무신경과 허술한 선택적 단어에 스스로 놀라기도 하지만 기대한 정도의 소설은 아니었다. 아마 도시 판타지라는 단어에서 예전에 본 ‘네버웨어’와 비슷한 분위기를 생각한 것 같다.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서 만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참 멋졌다. 하나의 피리로 그 무시무시한 쥐떼를 해치우는 것을 보며 그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것엔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었다. 대단한 능력에 비해 그가 보여준 인간성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작가는 ‘쥐의 왕’이라는 소설을 자신의 정치색과 함께 판타지로 풀어내고 있다. 그 정치성은 처음부터 드러나지만 완전히 그 실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명확해진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고, 집에 돌아온 그가 잠에서 깨어나니 아버지가 떨어져 죽어있었다. 경찰에 연행되어 범인으로 의심을 받고 여기서 쥐의 왕을 만난다. 그리고 밝혀지는 놀라운 출생의 비밀. 그것은 쥐와 사람의 피가 섞인 새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존재의 성립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고, 이것이 마지막 갈등과 새로운 세상을 풀어내는 원인이 된다. 

사울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존재가 7백 년 전 동화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임을 알게 되지만 그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나이에게 당한 왕들이 뭉쳐 물리치려고 하지만 그의 피리 소리에 그들은 너무 무력하게 넘어간다. 여기에 작가는 자신의 음악적 이해를 풀어놓은데 생소한 음악이기 때문인지 쉽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냥 무협소설의 음공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으려나? 

이야기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파생되었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전개를 보면 굉장히 영상 중심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 피트와의 결투 장면이나 마지막 전투 장면 등에서 잔혹하면서도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내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사실 이 장면들이 소설의 백미다. 보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생각하고, 이전에 나온 영화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며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속도감과 몰입도가 높아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후반으로 가면서 붙는 속도감과 재미는 대단하지만 역시 입체적인 느낌을 전체적으로 살려낸 것은 아니다. 인간이나 다른 존재들이 피트의 음악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이나 사울의 갈등이 조금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나 크롤리 형사의 역할이 뒤로 가면서 너무 없어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 영화 속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들로 자신만의 개성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낯익은 장면들과 익숙한 동화를 차용한 이야기가 새롭게 각색되고 재미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난 때문이다. 비록 상상력을 완전한 모습으로 표현하기에 약간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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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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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69년 6월 16일, 서로 관련 없던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한 가족이 찰스턴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성 유다 고아원 정문 앞으로 두 명의 고아가 도착하고, 러틀레지-배닛 저택에서 마약단속이 있은 것이다. 열여덟 살인 화자 레오 킹 인생에서 이 날처럼 의미 있는 날은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날 그는 평생을 같이 할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변화를 이루게 된다.

레오, 그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두 살 많았고, 아름다웠고, 뛰어난 운동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보호해주던 형 스티브가 열 살 때 자살을 했다. 이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퇴원 후 학교 스타의 부탁을 들어준 덕분에 마약 소지죄로 잡혔고, 3년간 보호관찰을 받았다. 이 시기가 우울하고 힘들어야 했겠지만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새벽이면 신문 배달을 하고, 봉사 명령에 따라 캐논 씨를 돌봐야 했다. 이 힘든 일을 통해 사회를 보게 되고,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그 날의 만남을 통해 한층 발전하고 도약한다.

그의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아름다운 쌍둥이 시바와 트레버, 산골소년과 소녀로 불리는 성 유다 고아원의 두 남매 나일즈와 스텔라, 레오처럼 마약 소지죄로 퇴학 당한 후 전학 온 찰스턴 귀족들 채드와 몰리,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에 의해 흑인 학교에서 전학온 아이크와 베티가 그들이다. 이들은 레오의 삶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평생 우정을 간직한 친구들이다. 이 책은 바로 레오의 삶과 이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두 가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그 미스터리는 스티브 형이 왜 자살을 했느냐 하는 것과 옆집에 이사 온 쌍둥이를 평생 괴롭혀 온 아버지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만약 작가가 이 두 사건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아마도 멋진 스릴러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집중함으로서 깊은 감동과 강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비록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이 엄청나게 놀랍고, 추악하고, 잔인하고, 충격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1969년 6월 16일은 블룸스데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 날이자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레오의 어머니는 뛰어난 조이스 연구자이자 마니아다. 레오란 이름도 그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지엽적인 사실을 뒤로 하고, 이 날 레오가 만난 친구들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강한 유대를 가지면서 연결되어 있다. 젊은 날의 그들은 충돌하고, 화해하고, 우정을 쌓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성장하고, 살아간다.

소설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이 바로 그들의 만남과 충돌과 성장을 다룬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흑백이 한 학교에 다니면서 생기는 문제와 각각 가슴 속에 아픔을 묻고 살던 사람들이 레오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두 번째는 이제는 세계적인 여배우로 변한 시바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여신으로 군림하지만 아직도 학창시절 친구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찾아 온 것은 그녀의 쌍둥이 오빠 트레버를 찾기 위해서다. 그는 게이고,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에이즈 중독자다. 과거 속에서 현재로 시제는 바뀌고, 시대의 변화를 통해 각자의 현재 위치를 보여준다. 세 번째는 친구들이 그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간다. 이 과정에서 시바 남매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고, 그 시대 최악의 상황과 만난다. 에이즈로 인한 위험과 참혹함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 소년이 죽은 후 그의 부모들이 보여준 반응을 통해 부모의 사랑과 허세가 강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힘겹게 그를 찾는다. 

네 번째 부분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순간들이 나오고, 우정은 점점 자라나고, 가끔 충돌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평생 사랑할 반려자를 만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젊은 열기가 읽는 동안 전해지고, 그들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실 하나와 죽음 하나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트레버를 데리고 찰스턴으로 온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사실 그냥 읽기가 힘들다. 비극과 참혹함과 놀람과 추악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정과 사랑과 용기도 함께 있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한 평에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사우스 브로드가 어디 붙어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상상력을 통해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모습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태풍으로 반쯤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력과 용기와 열정은 그 길을 걷고 싶게 만든다. 이 긴 소설에서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시에 가장 강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평생 유머와 위트로 대화를 이어갔고, 신문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은 그를 정확하게 아는 순간이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지 않는 한, 배우는 ‘진짜 삶’을 경험할 수 없다.”(2권 446쪽)는 문장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멋진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을 덮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우스 브로드의 풍경과 레오와 그의 친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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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살인마 밀리언셀러 클럽 103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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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약간 어설픈 느낌이 있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루 포드의 행동에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을 연상한 것이고, 다른 이유는 현대 스릴러 문법에 익숙한 탓이다. 영화 속에서 그 악당이 보여준 치밀한 준비와 실행은 얼마나 섬뜩했던가. 이에 비해 루가 보여주는 행동은 CSI에 익숙해진 나에게 허점투성이로 보인다. 물론 현대 작품이라 하여도 더 어설프고 허술한 경우가 많다. 

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노볼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처음 의도한 것을 넘어서 점점 커져가는 살인행위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 만난 루의 모습은 친절하고 예절바르고 잘 생긴 남자다. 부 보안관으로 마을에서 신뢰를 얻고 있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폭력이 아닌 대화 등으로 그 일을 좋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큰 신망을 얻었던 의사였다. 하지만 이런 외면과 다르게 그에겐 남모를 아픔과 괴로움이 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을 따라가면 어릴 때로 돌아간다. 신망을 받고 있던 아버지의 예상외의 모습과 자신이 저지른 묻혀버린 폭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수면 밑으로 숨어 있었다. 언제 수면 위로 올라올지 몰랐는데 기회가 왔다. 그것은 마을에 들어온 창녀 조이스다. 처음 보안관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마을에서 몰아낼 지 아니면 그대로 둘 지를 결정하기 위해 찾아갔다. 첫 눈에 반한다. 그녀와의 섹스에서 폭력성이 드러난다. 그녀가 이것을 잘 받아준다. 그렇게 그녀에게 빠진다.

그에겐 입양된 형이 한 명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저지른 죄를 형 마이클이 뒤집어썼다. 마이클이 한 공사현장에서 죽었다. 실족사로 처리되었지만 마을 유력자 콘웨이의 살인임을 알고 있다. 이유는 콘웨이의 비리를 밝혀내었기 때문이다. 가슴 한 곳에 이 사실을 묻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복수의 기회가 왔다. 콘웨이의 아들 엘머가 조이스에게 빠진 것이다. 콘웨이가 마을의 해결사 루에게 그녀를 좇아내 달라고 부탁한다. 거액 만 불을 지불하고, 그녀는 떠나고, 엘머는 제자리를 찾는다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는 큰 착각을 했다. 루의 마음속에 있던 살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루가 보여주는 살인 행위는 간결하고 주저함이 없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하나의 상황을 만든다. 그것은 루이스를 때려죽이고, 엘머가 그 도중에 총을 맞아 죽는 것이다. 갑작스런 폭력으로 그녀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고, 그녀를 찾아온 엘머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다시 콘웨이와 그 현장으로 돌아와 처참한 현장을 돌아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만들어졌고,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신의 아들이 여자를 죽이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콘웨이는 겨우 목숨만 유지하던 그녀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펼친다.

일이 처음 꼬인 것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은 그가 엘머에게 받은 돈을 무심코 조니에게 주었는데 그 돈에 표시가 되어 있은 것이다. 살인현장에서 사라진 돈을 조니가 사용하다 잡혀온 것이다. 그 돈의 출처를 말하면 루가 살인자임을 알 수 있다. 검사와 보안관은 조니를 잘 알고, 심문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루에게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 대담함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 후로 계속 상황이 꼬이고,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주변 의심은 점점 심해진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 살인자의 심리묘사에 있다. 연인 에이미를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음을 말하고, 한 번 터진 살의가 넘실거리며 주저함도 사라진다. 한 번 꼬인 상황은 점점 루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냉혹함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그 모든 상황을 예측한 그의 대결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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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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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기를 어느 순간부터 한 권씩 읽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대부분의 여행서가 정보 전달과 피상적 감상에 빠져 있는 것에 비해 그의 책은 깊은 사색이 돋보인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행서가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반면에 그의 책은 읽으면서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경험하고, 그 속에서 생각한 것들이 나의 직접 간접 경험과 충동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약간 더딜 뿐이다. 동시에 공부해야 할 것을 던져준다. 그냥 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라가기엔 나의 머리가 너무 컸다.

이번 아메리카 여행에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모터홈이다. 쉽게 말해 주거 가능한 자동차다. 그는 이것을 서부개척기 포장마차의 현대판으로 생각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음에도 힘들게 이런 도구를 선택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 안의 시점에서 미국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어디서나 숙박이 가능하다는 편리성 때문이다. 후자는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모터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터홈만의 교통법규와 모터홈 주차장을 대부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착각을 통해 긴 여행을 한 그가 모토홈으로 일주일이라도 미국을 여행해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많은 도움과 신선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60마일쯤 남쪽 바다를 따라 이어진 라구노 비치의 호텔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낯선 곳에서 그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일주일을 머문 후 한 노부인이 중년의 백인여성과 같이 걸어오다 말을 한다. 이 말을 받아 그가 대답한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같은 날 밤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가 바로 루스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다. 작가를 보고 그녀는 무척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미국 가정 속 일면을 들여다보고, 그녀와 함께 사는 자클린느를 통해 할리우드에서의 삶을 되짚어본다. 

긴 여행을 통해 작가는 미국의 한 가지 특성을 말한다. 그것은 짧은 역사를 가진 다인종 다민족 국가란 것이다. 미국인의 연설에 유머가 들어가는 것과 모두가 알고 있는 우상을 똑같이 부러워하는 감정으로 동경하고 있다는 연대감이 미국이란 국가를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의 이벤트를 본 후 느낀 그의 감상은 고개를 주억이게 한다. 하지만 다시 열광적인 분위기 뒤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미국식 ‘고독한 군중’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여자를 통해 더욱 가슴으로 와 닿는다.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 가장 소중한 양식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7개월간 약 2만 킬로미터 여행이다. 사람이 밀집한 공간도 있지만 로키산맥의 바위투성이나 사막을 만나기도 한다. 이곳에서도 그의 사색은 멈추지 않는다. 차로 달리면서 변하는 주변풍경은 풍요에서 불모로, 생명의 합성지대에서 죽음의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느낀 것은 한 단어로 표현된다. 애쉬(ash). 재다. 이것은 다시 달을 다녀온 두 우주인 이야기로 나누어지고, 각각 다른 반응을 묘사하면서 결국 재로 돌아온다.

뉴욕에서 여자를 Man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각한다. 이것을 다민족이라는 환경이 낳은 하나의 소산이라는 인식에 이르는 순간 다시금 그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다민족 다인종 국가란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 앞에 패밀리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과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면서 애완견으로 미국과 일본 두 나라를 비교하는데 이 부분도 역시 인식의 차이를 보인다. 

재미난 에피소드는 역시 맥도날드와 관련이 있다. 일본 발음상 맥도날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그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 맥도날드임을 생각하면 그 상황들이 묘하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한때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맥노날드고, 이 경험으로 미국 식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면서도 가로젓게 한다. 가슴 짠한 멕시코 소년의 에피소드는 모토홈의 가재도구가 소란을 피우게 만들 정도로 그를 흔들어놓았다. 긴 여행에서 그의 감정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20년 전 여행기지만 그가 경험한 것들과 생각들은 아직도 펄떡펄떡 뛴다. 다민족 다인종이란 현실에서 시작하여 그 눈으로 바라본 미국이지만 결국은 그가 본 것은 미국이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자기 안의 또 다른 뿌리를 그곳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다시 나와 우리의 뿌리와 현실이 그곳에 닿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 여행기라기보다 현대문명에 대한 고찰이란 역자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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