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타노 다케시는 나에게 영화감독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얻다 보면 코미디언으로 더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한때 영화를 좋아해서 유명한 작품과 감독들을 찾아본 때문이다. 이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단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영화제 상을 엄청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이 졸았다. 재미없었다. 나와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영화배우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 직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 전에 쓴 독설을 실었다. 이 나누어진 부분들을 읽으면서 앞부분의 느낌이 뒤로 가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시간 순으로 보면 독설이 앞이고, 병원의 단상들이 뒤일 텐데 뒤바뀐 순서가 이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설에 담긴 내용들이 민감한 사항들이 많고, 그의 정확한 정치성을 모르다 보니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인기 연예인이 생각나는 대로 갈겨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만 작가와 이 책을 낸 한국 출판사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한 후 생각들을 정리한 글부터 사실 나의 신경을 살짝 긁어 놓았다. 너무 적나라한 것이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지만 나의 생각과 충돌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조금 불편했다. 솔직함을 넘어서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들은 욕이 살짝 튀어나오는 부분도 생긴다. 특히 자신의 오스트리아의 하루를 형무소의 시간과 비교하는 대목에선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그가 만약 한국 군대에서 근무를 했다면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편한 감정도 많지만 솔직함과 날카로운 인식은 그를 또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5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개인을 말살하고 묶어 생각한 것을 그는 5천 건으로 풀어낸 것이다. 사회문제 이전에 개인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지금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고 파묻힌 현장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날카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중력을 사색할 때는 왠지 모르게 건담 시리즈가 생각났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퍼즐 푼 것으로 보는 장면에선 깊이가 느껴졌다. 

붉은 색으로 나누어진 독설들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키면 더욱 불편해진다. 일본 헌법이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의 글은 일본인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마 이 모든 것이 싸움에 진 탓으로 돌리는 유치한 행동으로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공격과 일본사람들에 비판과 질타는 거침없다. 자유의 개념을 정확하게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평등으로 넘어가면 강자의 논리가 넘실거린다. 남성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교육이나 외교문제로 넘어가면 대안 없는 비판과 무책임한 말로 가득하다.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란 부제가 붙어 있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독설들이다. 이 독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궁금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생사관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단상을 통해 드러난 사색과 관찰에서 가끔 뛰어난 점이 보일 뿐이다.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하여 통쾌하고 유쾌할지 모르지만 그 글을 읽고 생각을 걸러내는 입장에선 굉장히 불편하다. 일반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읽고 싶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겐 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많은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정치성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구성 때문에 더욱 불편하고 가끔은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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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드디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의 첫 권부터 읽은 사람이 부럽다. 앞으로 두 권이나 더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에선 사랑하지만 주변에서 맴돌고 다가가지 못했던 두 연인이 하나로 연결된다. 그리고 앞의 두 작품에서 강하게 켄지를 사로잡았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잔혹한 악당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강한 용기와 인내와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미 앞에서 엄청난 경험을 한 이 콤비가 강력한 협력자를 잃은 상태에서 그 위험한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늘 그렇듯이 시작은 누군가를 찾아달라는 부탁이다. 부탁을 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패트릭과 앤지를 미행하고, 이들이 다가가자 기절시킨 후 깨워서 의뢰를 한다. 의뢰내용은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들 앞에 이미 패트릭의 선생이었던 제이 베커가 조사를 했다. 그는 뛰어난 명탐정이다. 그가 딸의 흔적을 찾고, 살아있다고 말하고 오는 중 삼십 킬로미터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높은 수임료에 혹한 이 둘은 제이의 보고서를 토대로 다시 하나씩 새롭게 조사한다.

조사를 하면서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슬픔치유원이란 단체다. 대부호 트레버 스톤의 딸 레지나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이어진 곳이다. 그녀가 슬픔에 빠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트레버 부부가 폭력배들의 공격을 받았고, 이때 트레버의 아내가 죽은 것이다. 그 앞에 레지나의 남자친구가 익사해 죽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암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삼중 공격이 그녀를 힘들게 만든 것이다. 이 엄청난 마음고생이 슬픔치유원이란 심리치료원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체 이상하다. 보통의 심리치료단체와 그 성격이 다르다. 힘겹게 가지고 나온 자료로 조사를 하니 이상한 종교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제목과 연관시켜 종교단체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사건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치유원의 수뇌가 부바 일당의 무력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면서 레지나의 흔적은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떠난 놈이 단체의 돈 이백만 불을 가지고 달아났다. 위험한 놈으로 소문난 그와 달아난 그녀가 과연 살아있을까? 그녀를 찾았다고 말하고 사라진 제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다. 그 놈의 마지막 흔적이 있던 곳, 플로리다로 그들은 떠난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사실들은 앞에 벌어진 사건이나 단체를 잊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하면서 무시무시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종교적 색채는 사실 뒤로 가면서 사라진다. 그의 전작들처럼 인간에 대한 탐구와 연민과 사랑과 믿음과 불신 등이 뒤섞인다. 자본의 폭력이 드러나고, 인간의 약점을 노린 단체의 폭력과 착취와 약탈이 벌어진다. 연쇄살인범이 수십 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자본의 폭력은 한 나라를 기아와 폭력으로 밀어 넣는다. 사실을 왜곡하고, 겁주고, 협박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들에겐 인간의 존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도구나 수단일 뿐이다. 이 악당을 상대하려고 하자 주변에서 멈추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발휘된다. 무모할 것 같은 도전과 굴하지 않는 용기가 통쾌함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속엔 늘 변함없는 씁쓸함이 깔려있다.

이번 시리즈에서 부바는 앞에 잠깐 활약하고 사라진다. 불법무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던 그가 없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였기에 아쉽다. 그리고 이번에도 켄지는 실타래처럼 얽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사라진 딸을 찾는다는 단순한 조사가 양파까기처럼 새롭고 눈물 나는 일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단서를 찾고 의문을 풀어내면 다른 단서가 드러나고 다시 의문이 생긴다. 이런 반복과 위협과 폭력 속에 마주하는 진실은 추악하고 지저분하고 잔혹하다. 작가가 책 마지막에 “장식도 가식도 없는 아름다움은 성스러우며, 인간의 존경과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436쪽)고 한 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 닿고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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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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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부터 책 욕심을 부채질한다. 부제를 보면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한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과 비어가는 지갑을 생각하면 순간 고개를 갸웃하지만 곧바로 자기위안의 말로 삼아버린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탐하는 욕망을 자제하라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읽기를 위해 차를 없앤 것에 비해 최근 나는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기회가 늘었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 정도 덜 읽게 되었다. 이런 작은 공감으로 기분 좋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기획은 베스트셀러 대신 책꽂이에 꽂혀 있는 보석 같은 책을 찾아서 알리는 것이다. 너무 많은 책으로 질리게 하는 대신 하나의 이야기에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었다. 가능한 최근작을 골랐는데 이 부분을 안타까워했지만 절판된 책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내가 읽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읽고 싶게 만들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희망, 정의, 정체성, 창의적 생각이 저자가 잡은 네 주제다. 희망의 장에서 만난 책들은 상당히 가지고 있고, 몇 권은 읽은 것들이다. 특히 <나무를 심는 사람>에 대한 글에서 나의 감동과 같은 부분이 많아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애니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서 시간도 공간도 잊게 만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쉬운 삶을 산 사람보다 도전하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잠수복과 나비>는 지금까지 그냥 묵혀두고만 있었는데 작가에 대한 사연이 새삼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의를 탐하는 책은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제목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 다시 나를 유혹하고, 오래전에 아주 즐겁게 읽은 <닥터 노먼 베쑨>은 퇴색하는 기억을 되살려준다. 착한 경제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은 다시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에 대한 나의 불만을 살짝 눌러줄 책을 찾게 되어 기뻤다. 좋아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하진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또 다른 방향으로 소설 읽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체성을 다룬 장에선 이전에 읽었지만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한 책을 다시 끄집어내어 읽고 싶게 만든다. 나의 취향과 독서법에 맞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졌거나 아직 어려서 그 재미를 몰랐던 책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그 매력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과연 다시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고, 동양철학 공부를 좀더 심도 있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 새롭고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 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분야다. 가끔 과학이나 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지만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다. 한때 가장 좋아했던 한국작가 고 이청준에 대한 글에선 그리움과 추억이 생각나고, 연속으로 읽으면서 그 어둠에 매몰되어 중단했던 고 김소진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기억보다 더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김승옥, 이문열, 조세희, 김성동 등에 대한 짧은 평이다. 안타깝고 아쉬운 현실이다. 그리고 <감응의 건축>을 읽으면서 저자가 받은 감동이 무주로 나의 마음이 향하게 만든다. 언제 시간 내어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책에 대한 깊은 내공은 부럽다. 다양한 분야와 깊이 있는 분석과 이해는 앞으로 배워야 할 점이다. 그가 책꽂이 꽂힌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쁨은 나 자신도 많이 누렸기에 동감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건성으로 읽은 듯한 책을 마주할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놓고 몇 년을 묵히고 있는 책을 만날 때는 올해는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지금도 분명한 것 하나 있다. 그것은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집이 더 좁아지고 지갑은 더 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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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톰스 캐빈 아셰트클래식 2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크리스티앙 하인리히 그림, 마도경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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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에 톰 아저씨와 조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약간은 과장된 평가와 함께 뇌리 속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없었다. 오히려 노예와 관련된 것이라면 쿤타 킨테로 대변되는 <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읽지 않은 소설보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기억하는 쿤타 킨테는 톰 아저씨와 다른 유형의 노예다. 톰 아저씨가 좋은 주인 밑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쿤타 킨테는 자유를 찾아 늘 탈출을 꿈꾼다. 물론 톰도 자유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자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선량한 주인 세인트클레어가 딸과의 약속 때문에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려고 한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약속이 불의의 사고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여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이것은 소극적인 대응일 뿐이다. 그를 노예로 생각하고 하나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이것을 용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쿤타 킨테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자유를 위해 수많은 탈출을 시도한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조지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조지는 탁월한 능력으로 공장에서 기계를 만들고 고용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그러자 이를 질투한 주인이 그를 학대한다. 이 때문에 탈출을 시도한다. 이 부분은 이 둘이 다른 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굴레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조지와 그의 아내 엘리자가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것은 톰의 행동과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리자도 역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아이가 팔린다는 소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과 톰이 현세보다 내세를 더 믿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그 시대 기독교 내부의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이 둘은 모두 같은 주인 밑에서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팔려간다는 소식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아이를 위해 달아나고, 한 명은 주인을 위해 팔려간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벗어나려고 한 그녀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움직인 그를 보면 역사를 움직인 것은 바로 엘리자나 조지 같은 행동가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시각에서 톰의 위치가 조금 못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악덕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종교의 힘만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그가 주인이 준 통행증으로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 피해가 주인과 가족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도망가지 않은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 보여준 장면에서 약간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도망자인 톰을 그려내었다면 현재의 쿤타 킨테처럼 그 시대에 많은 동조와 호응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출 알고 있던 것이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나 전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새롭다. 단순히 모든 노예가 학대받았다거나 주인공이 노예를 학대했다거나 하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그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장면에선 가슴이 아린다. 약 150년 전 한 지주의 입을 통해 노예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말할 때는 그 시대도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 놀란다. 하지만 노예해방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이 존재했는지 알고 나면 이것이 단지 큰 발전을 위한 한 걸음이었음을 알려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관심이 가는 장면들은 두 번째 주인인 세인트클레어 집에 머물 당시에 있다. 그가 풀어내는 노예제도의 모순과 그 시대의 한계와 문제점이 현재에도 유효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바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과 영향력은 한 편의 종교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이 법으로 노예를 해방했지만 최근까지 그들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를 생각하고, 전통적 의미의 노예대신 급여의 노예가 되어 고용주의 말에 휘둘리는 현대인을 보면 흑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해방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족처럼 몇 가지 덧붙인다면 삽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노예매매와 탈출의 현장은 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노예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학대받고 탈출하고 죽는지 알게 된다. 삽화만 보아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불만은 번역에서 시대를 넘어선 표현이 드러난 곳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관련된 문장이 나올 때는 번역상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곳이 나타나 흐름을 흩트리는데 멋진 작품 속 옥의 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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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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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한 가지를 발견했다. 표지에 침팬지가 울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전에도 보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그림은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눈물의 의미가 무언가 하는 것과 왜 침팬지인가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찡한 울림을 주고, 폭력에 의한 피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식소설이라고 작가들이 규정한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 다니에 대한 묘사와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제니퍼의 현재와 과거사에 대한 것이다. 과거는 중국계 입양아인 그녀의 부모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해당한 것이고, 현재는 환경파괴에 의한 침팬지 사이의 학살을 다루고 있다. 제노사이드. 우리가 흔히 코소보 사태니 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을 말할 때 인종청소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선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린 침팬지 집단이 다른 지역을 침범하여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몇 번 이 장면을 보여주는데 잔혹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 외에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없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책 후기에 작가들이 말한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침팬지 수화는 허구로 만들어 내었다고. 하지만 읽는 내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수없이 나오는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나 이제는 익숙한 제인 구달이 그런 묘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숙제도 한 아름 안게 되었다. 세계화와 사회진화론에 대한 허상을 씻어내게 되었고 칸트의 철학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뭐 이 책과 관련된 책들을 꼭 읽지는 않겠지만 관심이 커져가고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만들어줘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작가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코소보 사태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고갔고, 폭력성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소보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글이 아닌 왜 침팬지에 대한 것이냐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않지만 역시 인간들의 직접적인 살인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거나 소집단을 통한 연구가 더 섬세하고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연구 대상이 많지 않지만 충분히 폭력성을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는 존재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종을 찾기는 비교적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식소설이라 말하여 어려울 것 같지만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오고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거창한 이론이나 엄청난 활극은 없지만 잔잔히 흘러내리는 감정의 깊이나 인식은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연구 대상에 감정이입이 되어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발생한 아픔과 비극을 보면서 제인 구달의 냉철한 탐구 방법은 경이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단순히 애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이자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존재로써 다른 종족에 개입하지 않는 그 인내력은 놀랍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사람마다 평이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정해야할 것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좋은 변화보다 나쁜 변화가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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