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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즌 파이어 1 - 눈과 불의 소년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1월
평점 :
팀 보울러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모습에 매혹된다. 환상이 환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기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세계적인 성장소설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작품에 환상이 끼워져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이 환상들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독자들에겐 쉽고 편하게 읽히고,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달려가게 만들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제목만으로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눈과 불의 소년이란 부제에서 풍기는 환타지의 느낌은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 기대하게 만든다. 마법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 소년이나 소녀가 성장하는 그런 종류를 연상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냥 ‘소년’이라고 불리는 알 수 없는 존재가 현실을 벗어난 존재임을 알려주지만 이런 장치는 더스티가 성장하게 만들 뿐이다. 그 성장은 2년 전 갑자기 사라진 오빠와 그 오빠 때문에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이다.
소설은 크게 두 줄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소년’을 둘러싼 스릴러적 요소고, 다른 하나는 더스티 오빠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시작은 더스티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오면서부터다. 늘 오빠를 그리워하던 그녀에게 우연히 건 것 같은 말로 대화가 시작된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름을 묻자 그는 조쉬라고 한다. 사라진 오빠의 이름이다. 그녀는 놀라 그에게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가 있는 곳을 묻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발자국도 있고, 약통도 있지만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온다. 달아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힌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소년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단지 그의 발자국이 있는 곳에 그녀가 있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들과 더스티는 계속 충돌하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이 소년과의 만남은 늘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소년에 대한 나쁜 소문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통화하고 말한 기록은 그녀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런 만남이 계속된다. 소녀가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게 것은 바로 사라진 오빠 때문이다. 소년이 무심코 내뱉는 말 속엔 오빠가 그녀에게 늘 하던 말들이 섞여 있다. 불안과 호기심이 자라난다. 동시에 이 혼란스러운 상황과 전개가 더스티의 가족을 뒤흔든다. 사실을 알고 싶고, 사라진 오빠의 현재가 궁금하고, 자신은 더 알 수 없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빠르게 읽히는 이야기 속에 풀어놓았다. 빨리 읽히는 재미 속에 이 감정들이 뒤섞여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수도 생긴다.
소년의 정체와 오빠 실종 미스터리도 궁금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문이다. 바로 소년에 대한 것인데 한 소녀를 성폭행했다거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사라졌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이 소문 때문에 자경단이 조직되어 소년을 쫓고, 소년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더스티가 친구와 마을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결백을 주장한다고 믿어주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도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그녀만이 사실을 그대로 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도 그런 것은 아니다. 의심을 거듭하고, 사람들과 충동하고, 자신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서 얻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작가는 하나의 사실을 암시한다. 교묘하게 장치하여 끝까지 읽기 전엔 알 수 없다. 높은 가독성은 진도가 쑥쑥 나가게 만든다. 소녀의 심리와 행동은 가끔 이해되지 않지만 그보다 어른들의 갇힌 마음이 더 답답하다. 소년으로 대변되는 마주보기는 겉만이 아니라 속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눈을 가리고 거울을 아무리 봐야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열린 마음과 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소년이 소녀 곁에서 알려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움만으로 불행한 마음과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년의 등장은 바로 정체되어 있던 가족과 소녀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주보게 한다. 마주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마술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워야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