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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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한 번 읽고 싶은 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손에 들어온 <중세의 가을>도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읽지 않고 있다. 소설에 집중하는 독서 습관을 조금은 고쳐보자는 마음에서 평소에 관심이 있던 놀이를 다룬 이 책을 들었다.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했는데 역시다. 하나하나 예를 든 부분을 읽으면 쉽게 다가오는데 전체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면 전체 구도가 파악되지 않는다.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생각들과 제대로 같이 놀지 못한 탓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의 목적은 ‘여러 문화 현상들 중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지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놀이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탐구하려는 것’이고, ‘놀이의 개념을 문화의 개념과 통합시키려는 것’이다.(21쪽) 그래서 용어도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역사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전공 분야들인데 그 연구 결과들을 읽으면서 방대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놀이와 함께 풀어내는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그 본질과 의리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놀이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말하고, 놀이 속에 있는 진지함을 말한다. 진지함과 놀이가 서로 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놀이를 하면서 우리가 진지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놀이가 자발적 행위이자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는 점과 놀이가 경쟁 혹은 재현이란 말에서 그 의미를 더욱 폭 넓게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의례 부분과의 연관성은 우리 문화 예식들이 놀이의 영향으로 어떤 식으로 재현했는지 가장 잘 드러내어준다. 앞에 나온 개념들이 이 속에서 많은 부분 담고 있음을 또한 알게 된다.

언어에서 놀이의 개념을 찾는데 이 과정은 문화인류학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경기를 놀이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풀어내면서 놀이의 한 속성을 설명한다. 이때부터 놀이와 다양한 의미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하나씩 풀어낸다. 그 처음이 법률이고, 전쟁, 인식(지식), 시, 신화창조, 철학, 예술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것들 속에 놀이가 담겨 있다니 예전에는 그냥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약간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로 오면서 진정한 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프로화된 스포츠 등이다. 이것은 ‘진정한 놀이가 되려면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하는 그런 게임이 되어야 한다.’(376쪽) 말처럼 놀이 자체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흔히 모든 일의 최고 경지는 즐기는 것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로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일들이 바로 놀이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멋대로 추측해본다. 강한 몰입으로 그 일에 빠질 때 넘쳐흐르는 행복감과 즐거움을 생각하면 놀이가 주는 강력한 힘을 알 수 있다. 

사실 한 번 읽고 이 책을 다 이해하기는 무리다. 분명히 나의 오독도 존재한다. 텍스트 속에 깔려 있는 생각들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서 읽다보니 이해도의 깊이가 부족하다. 언어, 문화, 역사 등을 통해 놀이를 풀어내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그 의미 하나하나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이 책에 대한 해설서가 필요할 것 같다. 분명하게 안 것 하나는 놀이가 문명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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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론 투게더 Alone Togeth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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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삶은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하다. 한때 즐거움이 어느 순간은 의무도 바뀌고, 삶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나의 기준에서 사물과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의무와 책임을 벗어던지고 나로 살아가고 싶은 본심이 가득하지만 사회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본심을 만약에 그대로 드러내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이 소설 속 주인공 야나세가 가진 능력은 바로 이런 본심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저주라고 부른다.

파장의 공명을 통해 다른 사람의 본심을 읽는 능력을 가진 야나세지만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야나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 집안의 유전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것도 많다.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만들고 본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다면 아마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저주로 불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가 한 명의 친구도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야나세는 힘들게 의대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가진 저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자 자퇴한다. 그리고 대안학원에서 아르바이트 선생을 한다. 그 어떤 학교나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이 이곳에 온다. 수업시간은 있지만 수업은 없고 모두가 그냥 앉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갈 뿐이다. 이 학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다녔던 의대 가사이 교수가 그를 찾는다. 자살 미수로 입원한 환자를 죽인 그가 말이다. 채 한 학기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그를 기억한 것은 그가 물은 질문 때문이다. 그리고 한 소녀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그가 죽인 여자의 딸 사쿠라다.

기본 줄거리는 가사이 교수가 죽인 여자의 딸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 속엔 야나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녹아있다. 기억을 교묘하게 자신이 편리한대로 왜곡한 그나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아들을 눈치채고도 신고하지 못하는 엄마나 직장을 잃고 가장의 허울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지만 겉으로 드러난 부정을 위해 노력하는 척하는 아버지 등이 교차하면서 연결된다. 그가 저주를 내려 그들을 한 명씩 해방시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하다. 자신들과 비슷하지 않는 그를 손가락질하고 질타한다. 대부분이 감정을 속이고 진심을 왜곡하고 사회 속 일원으로 맴돌기 때문이다.

<미싱>에서도 참 글을 잘 쓴다 생각했지만 장편에서도 그 능력은 변함없다. 가볍고 빠르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고, 너무 솔직하게 감정을 까발린다. 불편함을 넘어 충격적일 때도 있다. 아마 텐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사회가 틀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내세워서 현대의 가족이나 삶을 그려내었다. 일상적이지 않고 가장된 부분도 많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의 사회 문제가 점점 한국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볼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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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털 엔진 견인 도시 연대기 1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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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인 도시 연대기 4부작 중 첫 권이다. 이 책에 대한 설명 중 피터 잭슨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화려한 수상경력은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지구 종말 이후를 다루었다는 것과 SF 어드벤처계의 디킨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볍게 시작하여 단숨에 모두 읽었다. 그리고 지금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하고 앞으로 펼쳐질 다른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상상해본다.

시간적 배경은 약 3천 년 후의 지구다. 이 시대는 과학이 극으로 발달한 후 60분 전쟁으로 멸망한 다음 시대다. 전쟁의 여파로 산과 바다가 불안정하게 뒤틀리고, 삶을 위해 한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재난을 기다리는 일이다. 이때 한 과학자가 움직이는 도시를 발명하고, 살기 위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한다. 초창기는 생존과 필요에 의해 움직였다. 하지만 자원이 점점 고갈하면서부터 움직이는 도시는 하나의 포악한 육식자로 변한다. 소설의 첫 장면이 런던 시가 광산 타운을 쫓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먼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역사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런던 시는 시장이 모두 위에서 권력을 잡고 있지만 각 길드가 함께 도시를 운영하고 있다. 주인공 톰 내츠워디는 역사학자 길드의 3급 견습생이다. 부모가 하층민 계급이고, 길드에 들어올 때 돈이 없어 3급이 된 것이다. 평범한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밸런타인이다. 친절하고 자상하면서 위대한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데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첫 장면에서 벌어진 추격전 끝에 런던 시가 광산 타운 사냥에 성공한다. 그 도시에 있던 물건들 속에서 박물관에 갈 유물이 있는지 검사를 하려고 밸런타인과 함께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한 소녀가 밸런타인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고 막는다. 암살자는 달아나고 톰은 쫓는다. 소녀를 거의 잡았을 때 소녀는 자의로 움직이는 런던 시 밖으로 몸을 날린다. 그리고 톰에게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이 이름 때문에 밸런타인은 톰을 토시 밖으로 밀어버린다.

톰과 함께 떨어진 소녀는 헤스터 쇼다. 그녀는 밸런타인이 부모를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고 했다고 말한다. 영웅 밸런타인이 자신을 죽음으로 밀어냈지만 그는 쉽게 믿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받은 교육과 삶이 거부의 몸짓을 하는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두 아이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하나씩 깨트리며 성장하는 모습이다. 작가는 그 과정을 환상이 아닌 처절한 현실을 통해 보여준다. 도시 간의 전투와 승리의 환호, 자아도취, 자기합리화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소설 속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도시진화론으로 표현된 도시 사이의 사냥은 현대 자본주의의 비정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반 견인 도시 연맹과 도시들의 대립은 수렵 문화와 농경 문화의 충돌 혹은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의 대결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리고 런던 시의 모습은 19세기 문헌 속에서 보고는 했던 런던의 삶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다. 신분상승의 욕망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고, 공존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한 것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 적나라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서술에서도 좀처럼 주저함이 없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거대한 런던 시를 생각해본다.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움직일까? 하늘을 나는 비행선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다양한 무기와 무시무시한 살인 기계인 부활군 스토커는 그 시대의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고 세계를 다시 보게된 톰의 성장과 헤스터와의 은밀한 유대감은 이 놀랍고 신기한 세계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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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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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들이 만났다. 아니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통해 짝짓기가 이루어졌다. 저자는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란 부제에서 알려주듯이 난해한 현대 철학을 역시 난해한 시를 통해 풀어낸다. 한 편의 시와 그 해석을 한 철학자의 철학으로 풀어서 설명할 때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게 된다. 그것은 그 설명이 쉽고 친절한 것도 있지만 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세계가 새롭고 신선하면서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21명의 시와 시인들 중 낯선 시인도 몇몇 있다. 거기에 비하면 철학자들은 낯선 사람이 더 많다. 워낙 유명한 시인과 철학자들이야 상식처럼 알고 있지만 그의 철학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 그 자체다. 그런데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철학과 철학자들을 만났다. 그 만남은 나의 사유 세계를 넓혀주고 깊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해석과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생각과 엇갈린 부분에서 갸우뚱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충동과 흡수와 관찰은 관심이 있었지만 어렵고 난해하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했던 그 학문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21편의 시와 철학자를 모두 말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그 중에서 몇몇만 추려보자. 이들은 시의 주관적이고 낯선 이미지들이나 철학의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를 깨고 나에게 다가온 것들이다. 동시에 갇혀 있던 이미지와 관념들이 산산조각 나고 삶속으로 조용히 파고들었다. 낯설기만 했던 시와 철학이 나에게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든 시와 철학이 그랬다면 정말 좋겠지만 강한 울음으로 다가온 것은 몇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작가의 말처럼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20대에 만났고 즐겼던 두 시인 박노해와 기형도의 글을 통해 추억과 기억을 새롭게 만들면서 문을 가볍게 열었다. 이때만 해도 기억을 더듬고 가볍게 나아간 정도다. 그런데 김남주 시인의 시가 아렌트의 철학과 만나면서 기존의 가치관들이 산산조각 난다. 근면, 정직, 성실, 공정, 충성, 봉사 등의 전통적인 덕목들이 무사유를 거치면 어떤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나치 시대의 아이히만인데 그가 수행한 유대인 학살이 광기나 악의 때문이 아니라 관료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과 성실성과 그 일이 끼칠 영향이나 그 사람들의 처지를 전혀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은 무사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권위니 명령이니 하는 것에 쉽게 굴복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수많은 행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배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이런 가치관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마주침과 관계를 지나 너무나도 인간적인 에로티즘에 살짝 발을 담군 후 유하의 시에서 욕망의 현장을 다시 만난다. 내가 겪고 만나고 경험했던 삶들이 다가온다. 그러다 다시 김수영의 시에서 왜 4.19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고, 다시 이것은 80년대 6.29선언으로 이어진다. 조그마한 성취가 주는 낭만에 취해 진정한 싸움을 중도에서 멈춘 우리의 현실이 느껴진다. 80년대를 뒤흔든 도종환 시인의 시를 그쳐 인식론으로 다가왔던 김춘수 시인을 만나고, 사놓고 아직도 읽지 못한 최영미와 사르트르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본다. 그 당시 시인의 평가를 시대 속에서 풀어내는 저자의 글에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일상과 비극을 담아낸 최명란 시인의 시에선 부끄러움을 느끼고 동시에 삶의 현실이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엄청난 비극이자 절망이 부외자에겐 한순간의 감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처참한 아우슈비츠가 이성과 합리성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는 순간 놀라게 된다. 광기나 비정상 때문이 아니라니 말이다. 이 현실은 동일성의 사유에서 비롯하는데 아도르노는 개별적인 것이나 비개념적인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시 전체주의와 맞닿아 있다. 쉽게 표현하면 어떤 나라에서 전쟁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것보다 구체적인 누가 죽었다고 설명할 때 사람들에게 더 쉽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다. 
이후에도 한하운을 통해 배제된 자들의 울부짖음을 듣게 되고, 타인에게 이르려는 욕망을 마주하고, 다시금 난해한 이상의 시를 만난다. 황지우를 통해 사랑의 내적구조를 조금은 알게 되고, 호네트와 박찬일의 만남 속에서 다시 상호 인정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만난 두 한국인은 이 책에서 가장 낯선 만남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낯설다. 저자의 평가를 듣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공부해야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책의 구성은 사실 간단하다. 한 편의 시를 내세우고, 시인을 말하면서 시를 해석한 후 철학자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 철학자의 철학을 시를 통해 하나씩 풀어내는데 이 과정을 통해 철학과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이래서 얻게 되는 이해와 깨달음은 결국 삶으로 이어진다. 철학과 시가 각각 양 극단에 자리한 듯하지만 서로 통하는 점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쉽게 읽었다. 몇몇 철학에선 나의 삶과 마주침이 부족해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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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3-2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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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 소설을 자주 읽게 된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한국의 근대와 현대 삶을 본다. 도시에선 현대인의 삶을, 시골에선 근대화 이전의 삶을 말이다. 이것은 중국이 급속하게 현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두 지역 간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진 탓도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계속되던 전통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통의 가치관과 현대의 가치관이 충돌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가는 바로 여기에 시선을 두고,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어릴 때 결혼은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순수했던 마음이 세상의 시선과 힘겨움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알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자신들만 쳐다본 것은 당연하다. 자기들의 사랑만 있으면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가볍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제일 먼저 문제되는 경제력부터 시작하여 두 집안 문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그들이 두 집안을 떠나 둘만 살아간다면 가족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가족을 떠나서 생활할 수 없고, 그 가족들에게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도시여자 샤오시와 시골남자 젠궈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부자는 아니지만 지식인 가족인 샤오시의 어머니가 젠궈와의 결혼을 반대한 것은 두 집안의 차이 때문이다. 경제력 문제도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사랑에 불탔던 두 연인에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둘은 결혼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것은 바로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부터다. 도시여자 샤오시를 자신들의 문화 속에 넣고 부리고자 했던 시골남자 젠궈의 아버지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샤오시가 이성을 앞세워 논리의 허울을 지닌 감정을 내세운다면 젠궈는 체면으로 대변되는 감정을 앞세운다. 둘만의 결혼임을 상기시키고, 젠궈의 고향에 가지 않으려는 그녀와 결혼 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그녀를 데리고 가서 그 동네 사람에게 체면을 세우려는 젠궈가 충돌한다. 결국 그녀가 그곳에 가지만 유산이란 나쁜 결과만 나을 뿐이다. 이후 이 둘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 그러다 다시 임신을 하지만 역시 유산된다. 이 사고와 젠궈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는 부부를 싸우고 대립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 감정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 부부가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에서 괴로워하고 충돌한다면 그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은 바로 젠궈의 아버지다. 두 아들 중 한 명만 대학에 보냈고, 나머지 한 명이 고생한 것을 기억하는 그가 선택한 것은 대학 간 아들에게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 보상을 통해 젠궈의 형에게 보상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갈등과 오해와 충돌이 생긴다. 자신들의 경제 능력을 초과하는 요구도 받아들이는 젠궈의 모습에 아내가 화났다. 젠궈는 이성적 판단보다 순순히 예 라고 말하면서 순응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런 반응은 단순히 형 대신 대학에 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가 뒤에 밝히는 사실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하였고, 그가 아직도 전통적 가치관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젠궈의 아버지가 샤오시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보여주는 무례함은 호가호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장면은 나중에 젠궈의 형 취직과 관련하여 형의 상사에게 보여주는 비굴한 모습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후반으로 가면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걱정과 근심은 강한 부정을 보여주는데 이 속엔 이기적인 마음이 강하게 깔려있다. 이것은 또한 샤오시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이성적인 판단과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그 또한 아들 샤오항이 젠자와 결혼하겠다고 할 때 보여준 반대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임을 드러낸다. 이성과 논리가 자신의 유리함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 샤오시와 젠궈, 대부호의 애인이었던 젠자와 연하남 샤오항, 젠자를 못 잊는 류카이루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족들의 모습은 결혼이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 집안의 문제인 동시에 두 문화의 충돌임을 보여준다. 하나가 오면 다른 하나가 가야 하는 계산적인 모습이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젠궈의 아버지처럼 터무니없는 것 같은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가 그대로 표현된 듯한 모습에선 추억이 떠오르고, 결혼이 환상이 아닌 현실임을 돌아보게 된다.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닌 이 소설 속에서 결혼과 사랑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잘 알려준다. 혹시 주변에 이런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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