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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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은 손문과 함께 중국 근대사를 떠올릴 때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두 사람은 세트처럼 떠오른다. 역사를 배울 때 비슷한 시기와 그 중요성이 하나의 묶음으로 기억하게 만든 모양이다. 하지만 한 명은 정치가로 이름을 알렸고, 다른 한 명은 소설가로 더 익숙하다. 그 중 소설가가 바로 노신이다. 대표작은 그 유명한 <아Q정전>이다. 사실 어릴 때 이 단편을 읽고 왜 재미있고, 중요한지 전혀 몰랐다. 다시 읽으려고 사놓았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지금 다시 읽으면 그 재미와 가치를 깨닫게 될까? 의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노신은 소설가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그림쟁이라니 낯설다. 이 낯선 기분은 이 책을 소개글에서 본 몇몇 그림과 디자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뛰어난 그림쟁이였는지 알게 된다. 분명히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지만 다양하고 아름답고 간결한 디자인들은 인상적이다. 그리고 노신 자술과 관련기록과 엮은이 해설은 그 시대와 그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중국 사람에게 존경받는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그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책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화, 전각, 평면디자인, 선묘, 책과 잡지 디자인 등이다. 이 중에서 국화는 단 한 작품이고, 전각은 세 작품, 평면 디자인은 다섯 작품이다. 그 외 대다수는 선묘와 책과 잡지 디자인이다. 사실 전각까지는 적은 작품과 낮은 감식안으로 뛰어난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평면 디자인에서 보여준 부엉이는 귀엽고 친숙하다. 국휘는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왠지 표절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히려 북경대학 교휘가 훨씬 중첩적이면서 간결한 의미로 강한 인상을 준다. 

선묘 부분에선 대부분 설명에 부가된 그림들이 많다. 해부도 이야기는 그 당시 해부도에 대한 인식이 낭만적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초상화나 중국 유물에 대한 선묘들은 그가 얼마나 역사에 관심이 많고, 유물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저승사자에 대한 그림은 나의 낮은 기억을 새롭게 만들고, 효를 다룬 그림에 대한 해석은 전통적 시각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일본 번역가에 대한 답신에 실린 선묘들은 지금도 가끔 중국 소설을 읽을 때 낯선 단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실 이 책에서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책과 잡지 디자인이다. 몇 작품에선 6-70년대 한국 책 표지를 떠올려준다. 하지만 몇몇은 지금 당장 사용해도 신선하고 깔끔할 것 같다. 가끔 해설자가 풀어내는 시선과 다른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은 현재의 시선에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조악하거나 성의 없는 책 디자인이 많은데 노신이 만든 책들의 디자인은 정성이 가득하다. 이런 다양한 디자인이 낯선 즐거움을 준다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노신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만약 그 시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중국 근대사에 대한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 풍부한 그 시대 문학과 미술에 대한 정보는 아직 나의 공부가 많이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 

많은 그림과 디자인으로 사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새로운 노신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되고 예상보다 더디게 읽혔다. 디자이너로서의 노신뿐만 아니라 번역자 노신도 같이 만난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탄압을 벗어나기 위해 출판사나 작가의 이름을 바꾼다거나 하는 행동을 통해 시대의 단면을 읽게 한다. 또 낯익은 중국 근대 작가들이 등장하여 반갑다. 단순히 역사 속 인물이자 유명한 작가로만 인식하던 그를 인간 노신 혹은 그림쟁이 노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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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케인
로버트 E. 하워드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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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 <코난 - 바바리안>을 좋아했다. 헬스로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든 그가 펼치는 검과 마법의 세계는 신비로웠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터미네이터보다 이 작품이 가끔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영화의 원작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로버트 E. 하워드다. 그래서 <야만인 코난>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하지만 원작 소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화의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조악한 번역 때문인지 모르지만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영화로 나온 이 소설의 원작을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 현실이 아닌 SF 영화 이미지가 살짝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 총이 등장하기에 19세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는 17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다. 이런 착각을 뒤로 하고 읽다 보면 이 영국 청교도 솔로몬 케인의 활약에 빠진다. 그리고 그가 마주하는 모험과 액션과 원시적 공포는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구성인데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의 모험은 고대의 신비와 함께 살금살금 책 전체로 퍼져나간다.

솔직히 소설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강인한 의지를 가진 캐릭터의 매력과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펼치는 액션이 있기에 이런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를 중심에 두고 있고, 그가 공부한 원시의 세계는 17세기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힘을 발휘한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고대의 신비와 공포와 전설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 그가 만나게 되는 모험은 육체의 충돌도 있지만 마법과 정신의 대결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붉은 그림자>에서 만나게 되는 엔롱가의 마법은 고대의 신비와 공포를 그대로 담고 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이 때문에 이 단편집이 어떤 성격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금 <야만인 코난>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처음 케인이 한 소녀의 죽음에 분노하고 복수를 맹세하는 것을 보고 괜히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성격상 특징이다. 선을 위해 악을 쫓고 무찌르는 그의 활약은 깊은 이성의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이면서 본능적인 행동이다. 작가가 야만인이라 부른 아프리카 원주민들보다 더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기준은 자신의 믿음이다. 그래서 가끔 불편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흑인들이 백인인 그가 보여주는 무기의 힘이나 활약 때문에 신으로 섬기고자 할 때 자신도 인간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인간 솔로몬 케인을 만나게 된다. 

솔로몬 케인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전능하지는 않다. 늘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이때마다 실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무시무시한 원시적 공포를 대면했을 때나 중과부족의 세력에 짓눌릴 때조차 그 의지는 조금 굽히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무모한 행동이지만 그 속에서 활로를 찾는다. 이런 엄청난 모험의 반복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더욱 단련시킨다. 거기에 일반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회복력은 그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의 한계를 분명하게 만들면서 초월적이거나 환상적인 활약에 대한 기대를 애초에 꺾어버렸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느꼈다. 동시에 고대의 전설의 중세에 되살려 공포를 조성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솔로몬 케인의 단편이 모두 열여섯 편인데 여기에 몇 편이 빠졌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뒤에 실린 두 미완성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결말이 예측되었는데 과연 맞을지 모르겠다. 이번 소설로 <야만인 코난>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 탓하기 전에 놓친 재미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단편 속 어느 것을 기초로 만들어졌을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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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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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님 독특하다. 까다롭다. 술 좋아하고, 칵테일은 보헤미안 드림을 선호하고, 담배는 던힐만 피운다.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땡중이 분명한데 일본에선 다른 모양이다. 어쩌면 슈겐도라는 종교가 이것을 허용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외형적 사실은 매주 토요일 밤 스낵바 에이프릴에서 지장 스님의 살인사건 경험담을 듣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곱 주 동안 벌어지는 그 모임은 그 이야기를 듣는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

단편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명탐정 코난과 김전일이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스님이 가는 곳도 마찬가지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속 저택의 가장파티에 우연히 참석한 곳에서, 여우에 씌어 있던 노파를 구한 후 신흥종교에 빠진 딸을 구하러 갔다가, 지나가는 길에 친구의 집에 잠시 들렀다가, 야쿠자 똘만이와 시비가 붙었다가, 산속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내를 도와주다가, 산속에서 멧돼지를 만나 꼼짝 못한 순간 등의 만남을 통해 살인사건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처럼 사건을 예방하지는 못하지만 탁월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찾아낸다.

이 일곱 편의 이야기 진행방식은 동일하다. 모임에 사람들이 모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 이야기에 맞춰 지장 스님이 자신이 경험한 살인사건을 말한다. 먼저 현장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사건이 벌어지기 전 상황을 이야기하고, 사건 후 현장을 다시 한 번 더 말한다. 이 이야기 속에 사건과 단서를 동시에 담고 있는데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리를 먼저 내놓는다. 가끔 지장 스님이 움찔할 정도로 정답에 다가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도 맞추지 못한다. 반면 미스터리 마니아 도코카와 부인의 의문을 그가 너무 쉽게 맞추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스님의 경험이 사실인 것과 상관없이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더욱 사로잡는다.

반복되는 형식이지만 소설 속 화자인 전직 영화 청년 아오노가 모든 사람의 바람을 담아 “꼭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이하, 지장 선생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진짜 있었던 일인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그 체험담을 듣고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할 뿐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추리소설의 화신이란 표현도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또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따지는 순간 손 안에서 사라져버리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까.”(363쪽)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그들이 지장 선생의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한 후 그가 사라진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사라진 후 모임은 계속되지만 이제 지장 선생은 없다. 이것은 독자에게도 큰 아쉬움이다.

이 미스터리 단편들을 읽으면서 한둘은 범인을 맞추었지만 대부분은 놓쳤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범인이 쉽게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신경을 썼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지만 말이다.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긴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그의 이야기가 실제 경험담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살인사건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독특하고 까다롭고 개성 강한 이 행각승 탐정의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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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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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집을 읽었다. 역시 그가 보여주는 일상의 단편과 순간들은 건조하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낯선 공간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쩌면 그가 원제이자 마지막에 실은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서 “내가 하는 일은 완전한 현실에서 몇 송이만 따내어 거짓으로 내일에 남기는 작업일지도 모른다.”(206~7쪽) 문장대로 인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 일상들이 낯설 때도 여운을 남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목에서 전 세계 10개 도시를 배경으로 쓴 소설로 착각했다. 서울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의 도시들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쓴 <영하 5도>는 갑자기 화자가 바뀌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바뀐 부분을 읽게 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전환 속에서도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주제는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간 순간과 단상들로 여운을 남긴다. 이런 느낌은 <새벽 2시의 남자>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또 한 번 한다. 현실이 과거로 변하고, 현실 속에서 추억을 장소를 돌아보는 모녀를 보면서 삶이란 이런 것도 있지,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첫 단편인 <나날의 봄>에서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가 시작되는 연인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이어지는 단편들은 이런 봄날의 기운을 확 날려버렸다. <태풍, 그 후>에선 다른 두 연령대의 남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젖니>에선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조그마한 변화가 자신도 모르게 힘을 불러온다. <녀석들>에서 남자를 성추행하는 남자에 대처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수많은 여자들이 느꼈을 불안과 공포와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오사카 호노카>에선 중년의 미혼남성들의 만남을 통해 변화한 현실의 모습과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24 Pieces>는 모두 24개의 문장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다. 색다른 구성과 진행이라 흥미로웠다. <등대>의 동행은 처음엔 누굴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하고 즐겁다. 만약 과거의 나와 만나 함께 길을 가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캔슬된 거리의 안내>에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단서를 얻게 되고, 액자 구성 속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소설 속 현실이 결코 둘이 아님을 깨닫는다. 특히 마지막에 펼쳐지는 두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여운을 남긴다. 

10개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사람들과 사연은 모두 각각 다르다. 각각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냥 시간이 흘러간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순간들이 나의 삶 속의 순간과 비교가 된다. 비슷한 현실은 돌아보게 되고, 낯선 순간은 그럴 수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봄날의 햇살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 낮잠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는 숙취의 기운을 살짝 전해준다. 가볍고 날카롭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과 삶은 작가의 시선을 거치면서 건조하지만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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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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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석유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석유가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편안함과 풍족함은 없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중 석유에서 비롯하지 않은 물건이 거의 없다. 만약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혹은 만든 후 배달 과정 속에 석유가 있다. 예전에 이 사실을 알고 왜 그렇게 석유에 미국이 집착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석유가 사라진다면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 책 속에 많은 부분 나온다.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은 사실일 것이다.

원제는 “1갤런 당 20불”이다. 도대체 1갤런이면 어느 정도일까? 약 3.78리터라고 한다. 현재 자동차 휘발유 가격이 1700원 대임을 생각하면 한국은 이미 4달러 유가가 실현되고 있다. 이보다 유가가 더 높아지면 어떨까? 아마 자가용을 운전하기보다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이미 IMF시대에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무대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현재 우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휘발유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유가와 상관없이 유류세가 일정 금액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름값이 올라도 세금은 동일하고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적다는 의미다. 저자는 이런 것도 역시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유가의 변동에 따라 변하는 우리의 집, 차, 직업, 휴가 등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석유는 한정되어 있고, 그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이 사실 속에서 유가가 어느 정도로 올랐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에 대한 의문에 답한다. 그 처음으로 4달러를 말하는데 가장 큰 변화가 차다. 이 가격이 되면 사람들이 기름을 많이 먹는 차를 버리게 되고, 점점 유가가 오르게 되면 월마트 등의 대형쇼핑몰에도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우리도 현재 집 주변의 슈퍼마켓보다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미국의 경우는 30분 이상을 달린다고 한다. 교외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차로 출퇴근을 하는데 이때 기름값으로 지급하는 돈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심으로의 인구이동이다. 현재처럼 교외에서 차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시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장거리 출퇴근자들이 유가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전기차 등에 대해서도 말한다. 전기차를 모두 타게 되면서 생기는 과사용에 대해 대비하는 새로운 기업체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변화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상당히 흥미롭다. 이어지는 유가의 변화에 대한 미래 시나리오는 현실 속에서 뿌리를 두고 계속되는데 한 편의 SF소설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 덕분에 읽기는 더욱 쉽고 재미있다.

화석연료가 점점 소진되고, 그 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삶도 변한다. 교통수단이나 배송방법이나 사는 지역의 위치도 변한다. 낮은 유가가 우리의 삶을 풍족함을 넘어서 낭비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면 높아진 유가는 과거의 절약과 검약을 상기시킬 것이다. 에너지 사용이 과도해지면 각종 탈 것들의 운용비용이 상승하고,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에서 단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수많은 대체 에너지 기술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데 최선의 것으로 원자력을 꼽는다. 전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점점 다가간다는 사실엔 동의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어떤 기반 속에서 발전했는지, 우리가 누리는 풍족함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더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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