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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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12인용 식탁에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있는 것은 고양이들과 그녀가 차린 음식뿐이다. 이곳은 중세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집이다. 방은 모두 열두 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없고 고양이만 가득하다. 이렇게 고요다에 대한 환경을 보여준다.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를 찾아오는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강인한, 잡지사 <인스토리>의 기자다. 그의 목적은 1억 원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한 번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는 고요다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이제 이 두 남녀가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고요다, 1억 원 문학상을 받은 신비로운 작가다. 그녀의 첫 작품 <뒤꿈치>는 70만부가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그녀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녀의 부모가 자살했다는 것과 그녀가 그들의 자식이란 것 등이다. 이런 과거는 숨기고자 하는 마음과 밖으로 토해내고 싶은 욕망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그녀의 과거를 독자에게 알려주는 인물이 바로 강인한 기자다. 그가 인터뷰를 위해 펼치는 사기극과 능청스러움은 실로 대단하다. 고요다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녀를 흔들어놓고 그 누구도 머물기를 원치 않던 그녀의 집에 머문다. 그리고 이 두 남녀는 인터뷰를 둘러싼 심리대결을 펼친다.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기자와 이를 막고자 하는 작가의 대결은 강호 무림고수의 대결과 같다. 한 수 펼치면 상대방은 거기에 응수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치고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허점을 노출한다. 물론 이 허점은 상대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술수다. 처음에 팽팽했던 대결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고요다가 산전수전 다 겪은 기자의 노림수에 당하면서 기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기자의 능력 탓만은 아니다. 그녀 속에 쌓인 고통과 외로움이 조그마한 자극 속에서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기본 줄거리는 한 은둔 베스트셀러 작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의 연쇄실종 사건 미스터리를 바탕에 놓아두면서 환상소설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성들의 실종과 그녀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단순히 그녀가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가족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수많은 의문과 미스터리를 깔아놓았다. 이 의문과 미스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밝혀진다. 하지만 실제 재미는 이 미스터리가 아니라 고요다와 강인한의 밀고 당기는 관계에 있다. 좀더 빨리 좇아내고자 하는 고요다와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인터뷰를 하려는 강인한 기자의 관계 말이다.

처음 낯선 작가의 첫 장편이라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단숨에 읽었다.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섞인 구성에 두 남녀의 밀고 당기기가 예상외의 재미를 주었다. 과거를 하나씩 드러내는 과정은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모든 사실을 말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강인한의 반응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식과 인식을 벗어난 것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 습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의 강인한이 쓴 인터뷰 기사는 재미난 반전이자 그녀를 이해하는 그의 정도와 한계를 보여준다. 또 이 인터뷰는 고요다가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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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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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전태일 열사 40주기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그는 죽었다.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이 책 마지막 장에 간략하게 나와 있다. 그 간략한 내용 속에 한 노동자의 분신자살이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그를 만나고, 분신자살한 노동자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열사이자 투사이고, 한 엄마의 아들이자 사랑을 하는 젊은이였고,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자 한 노동자였다.

예전에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눈시울 붉혔는데 지금은 전태일이란 이름에 무덤덤해졌다. 청계천에 있는 동상을 보아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만 할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현재의 삶속에 그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가 충분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사회과학 출판사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가 연대해 만든 공동 기획·출판 도서 <너는 나다>가 그런 여유를 나에게 주었다.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출판사마다 다른 접근법으로 전태일을 말한다. 첫 번째 레디앙은 ‘전태일 열전’이란 이름 아래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현재 살아있는 동명이인 전태일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학창시절, 가족, 사랑, 노동 등으로 분류하여 실었다. 인천, 평택, 전주, 부산, 거제에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영업자이자 고용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전태일도 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삭막하다. 일과 술을 제외하면 다른 활동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바로 생활하는 다른 전태일이 너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것은 다시 고용주인 다른 전태일의 말에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문제점을 환기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가장 많이 전태일을 떠올려주었다.

후마니타스의 만화 ‘나태일&전태일’은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지.” 만화 속 배경은 게임개발부서다. 주인공은 나태일. 잠시 쉬러 간 곳에서 외계인을 만난다. 지구 정복하러 왔다는데 그에게 진다. 이 낯선 외계인이 회사에서 일한다. 그가 외계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에게서 다름은 보지 않고 하나의 노동자로만 본다. 외계인은 이주노동자로도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다른 노동자로도 환치가 가능하다. 여기에 편의점 알바녀를 등장시켜 사회의 또 다른 비정규직을 비춰준다. 결국에 보여주는 것은 게임 개발하는 나태일이나 전태일이나 모두 열사나 투사가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임을 말한다. 열사란 단어에 짓눌려 있던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시 살아난다.

삶이보이는 창의 ‘열혈청춘’은 청춘일기와 청춘수다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일기는 청년 노동조합 ‘청년 유니온’의 조합원들 이야기다. 이들은 우리가 집밖에서 혹은 집안에서 늘상 마주하는 청년들이다.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입으로 자신들을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왠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나도 밝은 웃음에 놀라고 나도 같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청춘수다’는 스물다섯 살인 세 명의 남녀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충격적인 것은 “경희대가 너무 높다고, 경희대 다니는 애가 자기 같은 애를 만나겠느냐는 거”(14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대학서열이 연애서열, 입사서열로 바뀐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의 욕망을 좀더 깊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철수와 영희는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란 제목에 부제로 하종강의 노동백과를 붙였다. 다섯 이야기로 나누어지는데 제목과 부제처럼 노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다. 단순히 노동에 대한 것에 한정되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역사도 함께 담고 있어 많을 것을 배울 수 있는 알찬 구성이다. 특히 6.25 당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보다 지금 법이 못하다고 한 부분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근로기준법이 일본 노동 기준법을 번역하면서 노동대신 근로를 넣은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자들이 거의 죽었다는 사실과 새로운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바로 전태일이란 부분에서 왜 전태일 열사가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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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리퍼블릭 - Orange Republic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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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공화국이란 말이 있다. 한국에서 강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끔 보는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강남을 아주 특별한 곳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불쾌함이 치솟는다. 그곳에 사는 것이, 그곳에서 노는 것이 특별히 선택받은 것처럼 포장할 때 역겨움은 더 강해진다. 90년대 오렌지족이란 이름이 세상에 떠돌았다. 좀 논다는 아이들은 이곳이 필수였다. 그런데 곧 진짜 오렌지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청담동으로 옮겨갔다. 한두 번 간 그곳에서 그들은 뉴욕을 말하고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처럼 표현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척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이 소설은 한 소년 준우의 성장기이자 강남 오렌지족을 다룬다. 준우가 오렌지족과 구별하는 존재로 원래 살았던 감귤과 강북에서 넘어온 탱자로 나눈 것은 하나의 말장난이다. 그가 자라던 그때는 정말 왕따라는 말조차 없던 시대다. 일본을 통해 이지메란 단어가 들어왔지만 아직 사회 전반에 퍼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왕따니 은따니 하는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등의 모임에서 이런 현상이 하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왕따 같은 것이 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유행으로 번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을 통해 퍼진 단어가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오렌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왕따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대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지만 하나의 사건을 통해 조직의 숨은 브레인으로 자리 잡는다. 그 사건은 같은 반 아이들의 섹스비디오다. 시기적으로 빨간 마후라보다 앞선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이 준우인데 머리를 써 해결한 것도 준우다. 이때부터 그는 그 조직의 브레인으로 음지에서 움직인다. 음모자이자 막후 조정자로 움직이는 그의 초반 활약은 대단하다.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던 신세에서 이제 한 조직의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신은 감귤에서 오렌지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것이 놀기 좋은 곳에서 질탕하게 즐기는 것이지만 말이다.

초반에 기지를 펼치고 어른 흉내를 내어 사건을 무마하는 장면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오렌지로 변한 뒤 그의 생활은 뻔한 행동의 연속이다. 그가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 정복했다고 느꼈을 때 그 상대방도 역시 그와 같은 기분이었음을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여자 편력과 음주와 조그마한 모험은 잘난 척하는 것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준우가 주축이 되어 새롭게 모임이 만들어진 후 그들이 펼치는 활동은 아슬아슬하다. 자신들이 대단한 줄 알지만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임이 곧 드러난다. 그들은 어른을 흉내낸 소년들일 뿐이다. 

공인회계사의 아들인 준우와 술집 마담의 아들인 하진과 재벌의 딸인 신아와 부모 없이 홀로 압구정에 사는 예은은 이 소설의 주축 인물이다. 이들이 모여 결성한 조직이 치기로 가득한데 진실게임을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진실게임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패배한다는 법칙 말이다. 술, 섹스, 젊음의 호기와 치기 등이 어우러지면서 사랑과 우정을 말하고 느끼지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한때의 불놀이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때 그들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니 진심이다. 하지만 한때다. 그들의 관계가 너무나도 허약한 기반과 다른 환경과 거짓과 위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금 본 해설에서 강남 상류층이란 단어를 쓴 것에 놀란다. 그냥 그들은 부자와 관료일 뿐인데 말이다. 그들의 세계를 정면에서 다루었다고 하지만 사실 10대들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쾌락과 환락과 가면과 거짓과 허세로 가득한 삶 말이다. 타고난 환경이 좋아 성공가도를 남보다 쉽게 달릴 수 있지만 그 속에 보이는 삶이 결코 진실 되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을 추종하고 따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들도 결국 미국이나 일본 등을 모방하고 따라한 것이다. 가짜가 다른 가짜를 보고 진짜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그래서 웃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학창시절을 대단한 것처럼 간략하게 말한 것이 보인다. 쓸데없는 우월감이 지금도 살짝 남아있는데 부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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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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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이 혁명적 행위라고? 인류 최초의 직업으로도 불리는 매춘을 혁명적 행위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그리젤리디스 레알, 직업은 창녀다. 또 다른 직업은 작가와 화가다. 이 세 직업은 그녀의 묘지에 적힌 것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무덤은 놀랍게도 제네바의 왕립묘지에 신교개혁자 장 칼뱅과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그녀의 업적이 어느 정도기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이 부분은 작가 소개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떻게 그녀가 창녀가 되었는지, 창녀가 된 후의 삶은 어떤 것인지, 흑인에 대한 그녀의 예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사실 처음에 건조한 문체와 자유로운 구성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적응하고 난 후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문체가 가끔 집중력을 깨트리기도 하지만 삶의 자유와 더불어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그 삶이 아직도 윤리와 도덕이란 두툼한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나에게 버겁기만 하다. 

한때 결혼과 매춘의 차이가 무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런 고민은 내밀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느 부분에선 윤리와 도덕이란 허울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그것도 잃지 않기 위해 보수적으로 조금씩 변한다. 이런 변화가 그녀의 행동과 삶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았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보여준다. 쾌락을 위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거나 마리화나를 파는 행위는 비록 과거의 흔적이라 하더라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한 의지는 강한 인상을 남기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사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 것은 섹스나 매춘이 아니다. 바로 자유다. 소설 중간에 그녀는 부자 인디언 흑인을 만나 삶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그 삶은 여자를 집에 가두어두고 가사 일에 전념하는 것을 넘어 억압하고 노예처럼 만드는 일이다. 그녀가 왜 그 남자의 아내가 도망쳤는지 깨달았다고 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편안한 일을 위해 힘든 일을 포기하고 달아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매춘 등을 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매춘으로 발을 돌리게 될 때까지의 삶과 본격적으로 매춘을 할 때와 매춘과 마리화나 판매를 동시에 할 때다. 처음 하나의 직업으로 그녀가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 다만 또 다른 삶의 한 면을 본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했다. 그녀를 찾는 수많은 남자들의 성적 취향과 변명과 넋두리가 더 흥미로웠다. 욕구불만을 창녀를 통해 풀어내는 수많은 남자들의 행진은 지금도 변함없다. 특히 그녀가 그렇게 흑인 예찬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데 잠깐 잠깐 나오는 감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 또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에서 검정은 많은 뜻을 품고 있다. 먼저 그녀가 사랑했던 흑인의 색깔이다. 밀입국자로서 매춘녀로 살면서 그녀가 겪게 되는 삶의 어둠이기도 하다. 이것을 좀더 확대하면 매춘여성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 소설 속에서 그녀보다 더 자유로운 존재인 집시들의 어둡고 아픈 과거가 담겨 있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검은 색의 의미가 거의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가볍게 읽기에, 매춘에 대한 흥미로 읽기에, 단순히 한 여성의 삶의 질곡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도덕과 윤리라는 두 시선을 벗어던져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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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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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저택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로맨스’란 문구가 사람을 혹하게 만들었다. 아흔여덟의 그레이스가 자신이 하녀로 일했던 리버튼의 저택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물론 이 회상에는 한 영화감독 우슐라의 방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상은 그녀가 처음 리버튼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1914년 7월이다. 하지만 이 모든 회상은 하나의 시간을 향해 달려간다. 1924년이다. 영국의 전원대저택에서 일어난 일상과 사건들은 하녀 그레이스의 눈과 기억을 통해 하나씩 되살아난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과 평생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다. 그레이스에게 리버튼의 저택이 바로 그곳이다.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굶주리고 살던 그녀가 이집에 오면서 힘든 일을 하지만 깨끗하고 배부른 생활을 한다. 어린 나이의 그녀가 귀족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기 또래의 주인집 아이들이 즐겁게 놀 때 그녀는 집안을 청소했다. 이 아이들은 하녀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서로가 유령처럼 움직인다. 물론 보고 듣고 하는 것은 있다. 다만 서로가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위치를 계속 주입하는 문화 속에서 그녀가 품게 되는 생각은 한계가 분명하다.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하는 부분을 보면서 그 시대의 단면을 살짝 엿보게 된다. 어떤 부분에선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위치 때문에 그녀는 이 소설에서 주연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삶도 중간 중간에 나온다. 하지만 리버튼이란 제목에서도 나오듯이 귀족집안의 영애인 해너 하트포트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모든 이야기의 끝자락에 위치한 1924년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녀 역시 시대적 한계 속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채 말이다.

로맨스는 하트포트 집안의 딸 해너에게 집중되어 있다. 하녀 그레이스의 짧은 연애도 잠시 나온다. 미스터리는 크게는 1924년의 사건이고, 소소하게는 그레이스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이다. 작가는 로맨스를 바로 시작하지 않고, 약간은 뻔한 장면을 연출한다. 두 여동생과 오빠로 구성된 놀이가 다른 틈입자로 인해 깨어진다. 그 다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한 소녀와 틈입자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기를 작가는 금방 시작하지 않는다. 한 집안의 몰락을 통해 다른 이야기를 만든 후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불같은 사랑으로 키운다. 그리고 이 사랑은 과거를 잊고 현재만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화 <남아있는 나날>이다. 아마도 하녀 그레이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의 절제가 아주 돋보였던 영화인데 자신의 직업을 위해 사랑을 뒤로 미뤄둔 장면이 그 생각을 더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지만 분명하게 듣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출생의 비밀은 분명하지 않다. 1924년 사건 후 그녀의 삶이 아주 간략하게 나오는데 이 대목이 간략함을 넘어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남아있는 나날>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악몽과 상상과 추억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은 1924년의 사건이다. 이 사건을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널어놓았다. 하트포드가의 간략한 역사와 그들의 삶이 그 시대의 비극인 1차 대전과 겹치는 순간부터 뒤틀린다. 진실을 위한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았지만 왠지 모르게 짜임새 있다는 느낌은 없다. 마지막 편지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지만 오버한 연출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 두 남녀의 불타는 사랑이야기다. 그 사이사이에 급변하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왠지 강하게 와 닿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극적인 1924년의 사건이 발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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