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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연금술
캐럴 맥클리어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팩션들이 많이 나온다. 당장 생각나는 인물만 해도 단테, 프로이트, 오스카 와일드, 마키아벨리 등이 있다. 이런 유명인은 금방 알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넬리 블라이는 조금 낯설다. 그런데 이 여자의 행적을 보니 대단하다. 19세기 후반임을 생각하면 현대 여성 이상의 대활약을 보여준다. 물론 시대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활약만으로 충분히 멋지고 매력 있다. 그녀의 대담함과 모험심과 시대 여성이 지닌 한계는 그래서 이야기 속에 더 빠져들게 한다.
넬리가 조금 덜 유명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다른 유명 인물들이 있다. 이제는 우유 상표로 더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 모든 환상 모험 소설가들이 존경한다는 쥘 베른, 파란만장한 삶과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 등이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19세기 만국박람회가 열렸던 파리를 배경으로 엮었다. 물론 이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인물은 넬리 블라이다. 그녀의 직업은 신문 <월드>의 기자이고, 신문사의 주인은 지금은 상으로 더 유명한 퓰리처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신문기자가 되었고, 먼 파리까지 와서 살인자를 좇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작가나 과학자 외에 또 한 명의 실존인물을 등장시킨다. 그의 별명은 잭 더 리퍼다. 그는 19세기 런던 매춘부 연쇄살인자다. 그에 대한 영화도 이미 나와 있고, 수많은 상상력과 추리의 결과 외과의사 출신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를 작가는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를 좇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정체를 몰랐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넬리는 대양을 건너서 쫓는다. 그 시대 사람들이 여자를 단순히 남자의 부속물 존재로 생각하던 시기에 말이다.
이야기는 매혹적이면서도 답답한 부분이 있다. 매혹적인 것은 역시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 시대와 역사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넬리를 통해 그들의 실제 같은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그 시대에 이미 돌연변이 같은 인물인 넬리 블라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변할 시대의 미래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그녀의 저작물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녀를 평가해야할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소설 속 기록만 보아도 충분히 뛰어나고 용감한 기자다. 시대물의 여주인공으로 멋진 여성이 등장했다.
답답한 부분은 이런 그녀에 대한 주변 남자들의 평가와 그 시대가 지닌 여성의 한계다. 탁월한 그녀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여자 주인공이 남자보다 더한 액션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은데 그녀는 연약한 여성 그 자체다. 이런 점은 어떤 면에서 고증에 충실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쥘 베른이나 오스카 와일드 등도 홈즈 같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다르게 본다면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 묘사다. 파리의 풍경은 가끔 만나게 되는 화려한 영상으로 포장한 모습에서 과장된 포장을 벗겨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도마뱀처럼 자신의 꼬리를 짜르고 달아난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그 과정에 만나게 되는 인물들과 상황들은 역사의 충실한 고증이다. 하지만 무정부주의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중간에 살인마와 무정부주의자를 연결한 부분에선 그녀의 역사 인식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나 자신이 그 시대 역사를 제대로 몰라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앞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또 하나 나왔다. 그리고 과학과 역사, 미스터리의 가장 매혹적인 만남이란 광고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살짝 ‘가장 매혹적인’이란 수식어에 갸웃거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새로운 모험과 도전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 이야기엔 또 어떤 유명인이 나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