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늘 관심을 두는 한 작가의 작품이 실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다. 그리고 아직 그 재미를 온전히 누린 적이 없는 듀나의 단편을 이번 기회에 누리고 싶다. 아직은 낯선 몇 작가의 작품은 또 어떤 재미를 줄지 기대하게 된다. 한국 환상문학의 미래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sf소설이 엔더의 게임이다. 이 작가의 작품이 한때 외국 판타지,sf 장르 순위에서 <반지의 제왕>과 항상 1,2위를 다투었던 것을 기억한다. 엔더가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우주로 나간 이야기들이 너무 무거웠는데 이번 소설은 어떨지 모르겠다. 엔더의 다른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의 장광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에겐 재미있기만 하다. 이 책의 분류가 사랑, 연애와 함께 호러, 공포가 들어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에서 유명한 괴담을 재해석했다는데 그가 이해한 요쓰야 괴담은 어떤 것일까? 그러고 보니 요쓰야 괴담이 무엇인지 모르는구나! 그래도 읽고 싶다. 

  

해리 보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예전에 나온 앞의 두 권을 생각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것은 기억한다. 늘 이 시리즈가 이어져서 나오길 바랐는데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란다. 이 작가에 대한 외국 평가는 늘 대단한데 이번에도 변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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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큰 기대 없이 읽었다. 그런데 대단하다. 다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계가 놀랍다. 많은 수식어로 이 소설을 평할 수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읽는 것이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흠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상 밖으로 재밌고 잘 읽히는 문장과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 힘든 일정 속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짬짬이 읽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정확하게 말해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잭의 다섯 째 생일날에 이야기가 시작한다. 벽장에 자러간다는 말에 먼저 고개를 갸웃한다. 이어지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는 보통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연속해서 나오는 환경이 충격을 던져준다. 얼마 전 해외 토픽에서 본 사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주 충격적이어야 할 장면들이 일상의 삶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지닌 매력 중 하나다. 방에 갇힌 엄마의 시선이 아닌 다섯 살 잭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방에서 살았고 한 번도 방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그곳만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의 시선으로 말이다.

충격적 범죄의 진상이란 표현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이가 인식하는 세계가 갇혀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엄마의 지식을 통해,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아가는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처음엔 상당히 조숙한 모습을 보여줘서 놀랐는데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서 이 조숙함은 과장된 것임이 드러난다. 이때 갇힌 세계 속에서 인식하는 세계와 열린사회 속에서 인식하는 세계가 다름을 알게 된다. 갇힌 방 속에서 그가 알고 있던 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밖으로 나온 세계는 너무 많아 혼란을 가져다준다. 물론 이것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기는 하다. 

이야기는 방 속과 밖으로 나누어진다. 방 속에서 이 두 모자는 큰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하지만 둘 만의 세계 속에서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아이의 시선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바로 이런 점이 아이를 조숙하게 생각하고, 부족함이 없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드 닉으로 불리는 납치자의 방문과 삶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보여준다. 이 인식을 아이에게 한정하지 않고 사람들로 확대하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방 밖으로 탈출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방 밖으로 힘겹게 탈출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하나의 이야기 감으로 생각할 뿐이다. 비록 아이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집요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망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두 모자의 차이가 발생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면서도 하나씩 배우고 익히며 받아들이는 반면에 엄마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해석에 힘겨워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 모자를 보기 때문이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녀의 상황만이 아주 특별하고 잔혹한 것처럼 말할 때 “아이들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온갖 방식으로 감금돼 있어요.”(409쪽)라는 말로 우리가 못 본 채 가리고 있는 눈을 비판한다. 사회 속에서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사건들을 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만약 이런 사건이 몇 번 더 일어나고 반복된다면 우리가 이런 사건도 눈을 가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순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역시 깊이 있는 이해와 해석으로 풀어낼 수 있다.

잭이 방에서 탈출할 때 보여준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 엄마가 계획을 짜고, 반복된 연습이 있었다 하여도 겨우 다섯 살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아이를 방 밖으로 내보내려는 엄마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지만 말이다. 엄마의 의지와 잭의 용기 있는 행동 때문에 엄마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역시 성장이 어느 순간 멈춘 어른은 세상의 시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제 우린 나왔는데, 내가 엄마를 구했는데, 엄마는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449쪽)할 때 눈시울이 붉혀졌다. 그리고 그녀의 현재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다. 대부분의 소설가라면 아마 이 엄마의 시선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은 정말 작가의 대단한 능력이자 통찰이다.

“우리는 문밖으로 나갔다.”(555쪽)란 마지막 문장은 아이가 인식하는 좁은 세계와 엄마가 받아들이는 세계의 어둠을 털어낸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문밖으로 한 발을 내딛었지만 단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에서 희망과 밝은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들 앞에 펼쳐질 세계가 결코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두 모자가 과거와의 이별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갇혀 있는 방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의 씨앗이 마구 자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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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버터플라이 - 아메리칸
마틴 부스 지음, 만홍 옮김 / 스크린셀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책 소개글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서부영화의 고전 <셰인>이다. 조용한 이탈리아 마을에 살면서 마지막 한 방을 날린다는 것이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니콜라이>라는 독특한 암살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더 읽으면서 사라졌다. 그것은 이 소설은 주인공인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기존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암살 무기를 개량, 개조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쪽 세계에서 최고다.

이렇게 암살자나 은둔자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이전에 읽은 작품들 속 장면이나 주인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물론 이렇게 떠오르는 인물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앞의 책들에 한 명 더 보탠다면 아마 암살자를 다룬 최고의 작품 중 한 권인 <자칼> 속 자칼일 것이다. 이 인물을 떠올린 것은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만든 총을 시험하러 들에 나간 장면 때문이다. 원작 소설도 인상적이었지만 영화 속 한 장면은 더 인상적이었다. 혹시 그 소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반적으로 암살자를 다룬 영화에서 무기 제작자는 조연이다.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다르다. 그가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처음에 읽으면서 혹시 그가 아주 유명한 암살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다. 집을 구하고, 집을 보호하고, 늘 미행에 신경 쓰고, 한순간도 총을 자신의 주변에서 놓아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들이 기존에 어떤 한 곳에 콕 박히기나 숨는 경우가 대부분인 무기 제작자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왜 다른 무기 제작자들이 그렇게 숨어 사는지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그리는 그림이 나비이기 때문이다. 화가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대외적 활동인데 이런 그를 다르게 보는 인물이 있다. 베네데또 신부다. 이 신부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고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직업에 맞게 그가 미스터 버터플라이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사실을 말하라고 할 때 잠시 흔들리는데 이것은 그가 살고 있는 마을과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그를 쫓는 사람의 정보를 알려주고, 정보를 내주지 않는 것도 그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다.

조금 템포가 느린 소설이다. 긴장감을 불러오는 순간은 있지만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늘 주변을 경계하는 사람의 일상이다보니 약간 지루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전문분야가 나오면 다르다. 열정이 넘치고 재미있게 이어진다. 이미 다른 곳에서 알고 있는 지식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가 만년에 꽃 피운 사랑을 이야기할 때 불안과 공포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자신은 특별히 죄 지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는 나쁜 행동을 했다. 단지 직접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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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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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옥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고등학생들이었다. 물론 이 미사일이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실제 같은 위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학생 과학 경시대회에 나오는 것이나 영화 속에서 학생들이 날리는 미사일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옥상은 맞지만 미사일은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실제 이 미사일은 미국이 보유한 전략 미사일을 의미한다. 옥상은 이 소설 속 화자인 츠지오 아카네가 과제를 그리기 위해서 올라간 장소이자 그곳에서 만난 세 명의 남자들과 결성한 옥상부를 의미한다.

이 세 명의 남자들 특이하다. 먼저 싸움꾼으로 알려진 쿠니시게는 이 모임을 만든 인물이자 간결하고 직선적인 행동으로 사건에 직접 다가가는 학생이다. 사와키는 짝사랑하는 육상부 미야세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하기 위해 1년간 말을 하지 않는 괴짜다. 옥상부에서 유일한 1학년인 히라하라는 꽃미남 스타일이지만 허무와 권태에 휩싸여 있다. 이런 특이한 남학생 사이에서 홀로 여학생으로 남은 아카네도 어떻게 보면 결코 평범한 여학생이 아니다. 만약 평범했다면 이런 괴상한 부원들의 모임에 참가하지고 않았고,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 개성 강하고 하나씩 과거를 가진 고등학생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시대적 배경은 조금은 황당한 설정이다. 거대제국 미국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었고, 그가 감금된 장소에서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납치된 것도 조금 놀랍지만 황당한 것은 이 미사일 기지의 점령으로 인해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겪게 되는 두려움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목적지를 입력하고 미사일을 날린다면 그곳이 초토화되는 것은 맞지만 너무 과장되고 코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치 종말론에 빠진 광신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설정이 마냥 코믹하고 과장된 것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옥상부를 결성하고 그들이 펼치는 활약은 처음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치기어린 활약이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다른 사건들이 하나씩 엮이고 꼬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먼저 시체 사진 한 장과 총을 발견한 후 킬러를 찾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종말론적인 환경 속에서 태어난 벌신님 사건이나 육상부 미야세를 뒤쫓는 스토커 사건이나 아카네 동생의 폭행 사건이 일어난다. 각각 독립적인 사건처럼 하나씩 완결되었기에 역시 고등학생들의 유쾌하고 즐거운 청춘 미스터라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 사건들이 거대한 배후를 가지고 하나씩 연결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연결이 완성되는 것은 책 마지막에 와서이지만.

청춘물에서 늘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그대로 놓아두는 부모다. 아카네의 부모는 동생이 록 음악을 하는 것을 방임하고 오히려 격려한다. 큰 틀에서 문제가 없다면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다. 이 자유가 너무 많아 순간적으로 아카네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름 그것을 잘 즐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카네와 묘한 관계가 형성되려는 쿠니시게의 부모도 특이하다.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좀비 영화를 연애영화라고 말한다. 아버지도 역시 러브호텔에서 고등학생 아들을 아르바이트 시키고 억압을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둘이 사건의 중심에서 힘차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심각한 사건도 발생하지만 기본적으로 설정과 캐릭터가 주는 재미로 가득하다. 특히 캐릭터는 네 명의 주인공과 그 가족 외에도 곳곳에서 보인다. 킬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모든 사건이 나중에 그와 연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숨은 주인공이 그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살인 대상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나 시간 여유를 주는 것과 오해를 하는 것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재미다. 이 능력 있지만 조그마한 실수가 많은 킬러를 주인공으로 한 편의 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번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쿠니시게의 어머니는 다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등장할지 의문이다. 뭐 이 소설이 시리즈로 나올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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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세계
테리 프래쳇 지음, 송경아 옮김, 조니 두들 그림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테리 프래쳇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멋진 징조들>이란 책 때문이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 두 공저자의 이름이 너무 낯설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닐 게이먼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를 조금씩 알게 된 반면에 테리 프리쳇은 그냥 공저자였다.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출간된 책 중 <디스크 월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표지와 내용이 청소년용(알고 보니 청소년용도 있기는 했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신간 목록에서 발견한 이 책은 이름은 많이 들어 잘 알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는 작가 선집에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읽었다.

뒤집힌 세계란 제목과 남과 북이 뒤집어진 지구의 모습은 이 소설이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먼저 품게 만들었다. 책을 펼쳐 읽으면서 세계 창조 신화 하나를 보게 되는데 낯익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나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기존 판타지와는 다른 평행우주를 다룬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평행우주를 다룬 소설과 영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평행우주론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SF소설일 것이다. ‘아마도’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연걸 주연의 <더 원>을 볼 때 이미 평행우주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은 평행우주의 신이 되기 위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 또 다른 자신들을 죽인다. 그들 모두를 죽이게 되면 유일한 한 사람으로 남게 되고, 신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다. 굉장히 오락적인 영화인데 내가 유심하게 본 것은 바로 평행우주였다. 물론 이연걸의 멋진 쿵푸 장면은 변함없이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 외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양자역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뭐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 <쿼런틴>이란 SF소설이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란 생각에 읽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난해했다. 양자컴퓨터부터 시작하여 나오는 과학 용어들은 주인공의 능력과 함께 난해함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이 소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은 다른 책과 영화 등을 보면서 익숙해지고 이론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언젠가 다시 읽는다면 전혀 다른 재미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살짝 품는다.

19세기 무렵 영국의 귀족 문화 속에 살던 소녀 다프네와 대남원양의 조그마한 섬 부족의 일원인 소년 마우의 만남은 전혀 다른 두 문화의 충돌이다. 이 두 사람이 마우의 섬에서 만나게 된 것은 지구의 종말처럼 다가온 거대한 파도 때문이다. 다프네가 탄 배 스위티 주디 호가 섬에 갇히고 그녀만 살아남는다. 마우 또한 소년에서 성인으로 가기 위한 시험 도중에 바다로 나왔기에 살아남았다. 처음에 이 두 생존자를 보면서 혹시 지구 종말 후 두 생존자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다른 부족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두 아이들의 만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과 오해와 이해의 과정들은 기존에 무인도에 남겨진 아이들 이야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탓에 직접 부딪히기보다 겉돈다. 특히 당시 영국 귀족 여성의 예절에 길들여져 있던 다프네의 경우는 심하다. 사실 그녀는 영국 왕위 서열 134번째 정도다. 그녀의 할머니가 이것을 강조하는데 소설의 설정 중 하나가 그녀 아버지 앞 서열자들이 모두 전염병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중에 그녀가 아버지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총과 칼로 큰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홀로 낯선 문화와 만나게 되는 그녀에게 이런 예절은 하나의 속박일 뿐이다. 원주민들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불필요한 겉치장인데 말이다. 특히 그곳이 뜨거운 햇살이 가득한 지역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녀가 의례적인 예절 속에 머물 때 마우는 행동에서 좀더 자유롭고, 머릿속에서는 자기 부족의 혼령들과 대화를 한다. 처음엔 환청이 아닐까 의심도 하고, 뭔가 판타지 소설처럼 신비한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것 또한 착각이었다. 물론 창조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신 로카하와의 대결 속에서 어느 정도 권능을 획득하지만 이때 그는 평행우주 속의 다른 세계를 이해한다. 이 인식과 이해는 다시 우리가 흔히 지금 이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간다면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사라질 것이란 희망 또는 기대가 잘못된 것이란 것을 알려준다. 이모로 불리는 창조주가 지구를 완벽하게 만들지 못했듯이 다른 세계에서도 이런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은 정말 탁월한 통찰력이자 인식론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마우와 다프네가 소통을 위해 하는 행동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단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자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오해가 빈번하다. 하지만 두 다른 문화가 충돌하면서 각각의 장점을 받아들이며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다시 현재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를 반복과 오해 속에서 배우게 되는 과정은 외국에 사는 선배의 한 마디를 떠올려주었다. “모든 언어의 바탕은 모국어다.” 

이름만 알고 있던 낯선 작가의 작품을 알고자 읽는 한 편의 소설이 지금 예상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우가 자신의 부족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 때문에 신에 대해 회의를 품는 것과 사제 아타바와의 대화는 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각각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다프네가 타고 온 배에서 나온 철과 도구를 보고 놀라는 원주민들이 이것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는 장면은 문명의 초기 발달사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로카하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마우를 구하기 위해 죽음 속으로 뛰어든 다프네의 활약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뒤바꾼 것이자 서양 신화의 재현이다. 읽을 때보다 읽은 후, 그보다 글을 쓰는 지금 더 많은 것들이 ‘나를 알아줘’하고 외치면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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