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 시모다
리처드 바크 지음, 박중서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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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창시절 <갈매기의 꿈>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고 갈매기라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는데 그 책을 펴는 순간 정신없이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의 말과 행동과 도전과 용기는 가슴 한 곳을 뭉클하게 만들고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후 늘 그렇듯이 그의 책은 나의 필독서 목록에 올라갔고, 여기저기에서 구해 읽고는 했다. 하지만 처음 받은 감동을 지속적으로 받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그런 시기에 이 소설도 읽은 듯한데 지금 그 책을 찾을 수 없어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것 말이다.

사실 이 책을 나는 착각했다. 최근에 나온 신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1977년 작품이다. 분명히 90년대에 읽은 듯한데 최근작으로 착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화려한 광고 글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말에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분명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한 재미를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시모다의 말을 지금은 조금씩 혹은 완전히 공감한다. 이런 변화는 좀더 삶을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문장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대목은 필기체로 나오는 앞부분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대부분이 여기에 나온다. 그 후에 나오는 것은 실용편 혹은 해설서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부분은 왜 기계공 시모다가 자신을 메시아로 떠받드는 사람들을 떠나 사람과 기계로 이루어진 일상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행한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시모다를 떠받들면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의 명령이라면 지옥불의 고난도 충분히 기쁘게 감당하겠다고 말할 때 나는 사라지고 광신만 남는데 아주 간결하게 이 상황을 보여준다. 

많은 분량의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으면 다르다.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고 불가의 일체유심조와 맞닿아 있으며 다중우주론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있다. 아마 예전에 읽을 때는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너무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환상이 아닌지, 내가 바라는 바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한다. 사실 이 부분으로 넘어오면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지 말이다.

한때 화두로 삼고 있던 것이 ‘일체유심조’였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이 말을 가슴속에서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다. 내가 읽은 몇 권 되지 않는 자기계발서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단어로 집약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소설도 이 단어 하나면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메시아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아니라 기적에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중국 선종의 고사가 떠올랐다. 한 고승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해석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은 틀릴 수도 있다.”(227쪽)는 문장처럼 틀린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되짚어보게 한다면 다음에 읽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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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넘버 포 1 - 로리언에서 온 그와의 운명적 만남 로리언레거시 시리즈 1
피타커스 로어 지음, 이수영 옮김 / 세계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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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광고글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베이의 격찬이다. 그것은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만 했다.’는 완료형 문장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세계적인 거장 두 사람이 이런 표현을 했을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기에 더해 세계적인 대 흥행작인 <해리포터 시리즈>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교하면서 더욱 부채질한다. 크게 흥행한 소설이나 영화를 이용한 광고문구들이야 이미 이전에 많이 보아 과장된 것임을 알지만 역시 두 거장의 격찬은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오락영화를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기 말이다.

구성은 간단하다. 뭔가 특별하게 복잡하거나 특이한 것이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준다. 로리언 행성이 모가도어 인들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어린 아이 아홉 명이 그들의 보호자와 함께 탈출해 지구로 온다는 설정이다. 이 아홉 명의 소년은 각각 레거시로 불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설정은 이 아홉 명의 소년이 로리언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는데 그들을 죽이려면 순서대로 죽여야만 한다. 제목이 의미하는 넘버 포는 모가도어 인이 죽이려는 순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시작부터 세 번째 아이가 죽으면서 긴장감을 높여놓는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무대와 주인공 넘버 포의 능력 때문이다. 그들이 쫓겨 도착한 작은 마을 파라다이스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랑은 미국 드라마 <스몰빌>의 에피소드들을 연상시켜준다. 표지의 그림과 파괴된 행성에서 온 것이나 크리스털이 보여주는 로리언 행성의 모습은 너무나도 <슈퍼맨>을 떠올려준다. 뭐 <스몰빌>이 슈퍼맨의 학창시절을 다룬 드라마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가 능력이 드러났을 때 이를 숨기고 조절하려고 하는 장면도 역시 비슷하다. 거기에 모가도어 인들이 보여주는 암흑의 힘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다스베이더나 다른 판타지 소설 속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비슷한 느낌만 늘어놓으면 단순한 짜깁기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완벽하게 독창적인 소설이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이런 장면들이나 특징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행성의 재건과 모가도어 인들에 대한 복수란 두 가지 사명을 가진 주인공 넘버 포를 등장시키고, 그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빠르게 진행시키면서 피타커스 로어는 성공했다. 또 단순히 감상에만 젖어있지 않고 이야기 속에 다음 전개를 위해 복선을 깔아놓으면서 어떤 일이 앞으로 펼쳐질까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유지한다는 점은 아마 영화 제작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어린 슈퍼 영웅들이 나오는 수많은 영화나 소설처럼 이 작품도 비슷한 과정을 보여준다. 아니 자신의 생존이란 절박함을 내보이면서 여유가 많이 사라진다. 빨리 레거시를 수련해서 코앞까지 쫓아온 모가도어 인을 물리쳐야하기 때문이다. 늘 불안한 생활을 유지하든 그가 첫사랑 세라를 만난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또 하나의 시련이기도 하다. 다른 소설들에서 보았듯이 떠나야할 때 떠나지 못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 약간은 이런 공식적인 대입이 신선함을 없애기도 하지만 마지막 전투 장면을 정신없이 몰아치면서 그것을 잊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 속에 할리우드 공식이 많이 들어있어 아쉬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독특하거나 독창적인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난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는 소설이다. 단순히 재미라는 측면만 본다면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 최근에 다시 불거지고 있는 외계 문명설에 기댄 설정과 설명은 하나의 양념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 이미지로 가득한 소설인데 과연 어떻게 스크린 위에 펼쳐질지 기대된다. 또 다음 이야기 속에서 어떤 동료가 생기고 그 속에서 그가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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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한 조각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8
마리아투 카마라.수전 맥클리랜드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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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자란 한 소녀 이야기다. 내전 중에 반군에서 양손을 잃고, 그 전에 벌어진 성추행으로 아이를 낳은 마리아투의 실제 이야기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서 참으로 기구한 운명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마주한 사실들은 이보다 더했다. 그것은 단순히 마리아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남녀들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소년병들의 무시무시한 행동이 나오면서 지옥이 현실에 재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생겼다. 

분량은 많지 않다. 간결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던 시골 소녀 마리아투의 어린 시절을 간략하게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두 아내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 때문에 고모집에서 자란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책을 읽는 내내 만나게 된다. 그것은 문화와 종교와 삶의 차이가 만들어낸 것이자 관습이라 부르는 악습이 빚어낸 것들이다. 특히 여자가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할례를 받는 장면은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그 나라에서 어쩔 수 없는 문화라고 하지만 이런 악습이 그들의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열네 살 소녀가 겪는 참혹한 장면은 앞부분에 나온다. 반군들이 올 것이란 소문을 듣고 안정한 곳으로 옮겨갔지만 먹을 것을 가져오라는 고모부의 강력한 요청에 마을로 되돌아간다. 진짜 지옥은 바로 이때부터 생긴다. 총으로 쏘아죽이고, 불로 태워 죽이는 학살을 넘어 강간과 마체테로 불리는 칼을 이용한 살인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이어진다. 자신들의 말에 조그마한 토를 달아도 바로 죽는다. 임산부도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잔혹했으면 그녀가 잡혔을 때 죽음을 바랐겠는가. 그들이 보여준 잔혹 행위 중 하나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양손을 칼로 자르는 것이다. 한 손도 아니고 양손 모두 말이다. 자비로운 죽음마저 그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양손이 잘린 후 그녀는 다른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그 도중에 만난 남자의 망고 한 조각 도움은 정말 절실했다. 그녀가 잘린 손을 치료하기 위해 옮겨 다니는 중 한 마을에서 부딪힌 사건은 그 당시 사람들이 느낀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알려준다. 소문과 의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년, 소녀병들의 살인행위보다 더 무서운 장면인지도 모른다. 조금도 남을 믿지 못하니 긴장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마리아투가 영국에서 평온한 상황을 마주할 때 악몽을 계속해서 꾸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힘들게 프리타운에 도착한 그녀가 의사 등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료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임신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녀처럼 양손을 잘린 사촌오빠와 언니를 만난다. 병원은 그녀처럼 양손이 잘리거나 다른 곳에 상처 입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참혹한 운명이 그녀만의 특별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은 편이다. 비록 낳은 아들을 잃게 되지만 신문 인터뷰와 사진으로 통해 서방에 알려지고, 시에라리온을 떠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교육을 받아 가족들과 차별화된 삶을 살 기회를 얻는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단순히 행운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녀 자신의 의지와 용기와 노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나의 개인적 바람인지 모르지만 왜 이런 내전이 발생하고 그런 참혹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간략하게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아마 이 때문에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의 저자 이스마엘과 그녀가 만나는 장면은 시대의 두 피해자를 한 곳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 둘 모두 책을 썼고,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가 평온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끔 만나게 되는 아프리카의 내전은 언제나 나에게 충격을 주고 평화로운 나의 삶에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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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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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제목을 모두 알 것이다.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도 꼭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동물농장>이란 고전이 학창시절 늘 추천도서 혹은 필독서로 올라왔고, 때로는 반공교육을 위한 하나의 교재로 이용되기도 했다. 나 자신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 초반부를 잠시 훑어본 것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 당시 읽었다고 해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읽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만큼 이 소설은 낯익고 많은 상징과 비유와 은유로 가득하다.

많은 고전들처럼 <동물농장>도 참으로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모든 판본을 제대로 읽지 않았으니 정확한 비교를 하기 힘들지만 비채 판은 상당히 많은 주석을 달아놓았다. 처음에 이 주석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이런 정치 우화 소설의 경우 주석자의 의도에 따라 작가의 원래 의도가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주석이 이야기의 흐름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방해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고민을 하다 주석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고 나의 지식 한도 내에서 그 해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주석들이 결코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를 충실히 따르고자 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은 너무나도 잘 알려줘 있다. 구 소비에트연방 초창기를 우화적으로 다루었다. 레닌의 분신인 듯한 돼지 메이저 영감의 꿈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희망을 동물농장의 동물들이 받아들이고, 협동하여 농장주를 몰아낸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바로 떠오른다. 이어서 나폴레온과 스노볼이라 불리는 두 돼지가 등장한다. 각각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분신이다. 이 둘의 권력투쟁과 함께 소비에트연방의 초창기 인민들의 삶이 그대로 농장 속에서 재현된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와 삶의 변화는 역사 속에서 이미 실컷 본 소비에트나 북한의 모습을 너무나도 닮아 있다. 동물농장으로 바꾸었다고 해도 원래 목적은 밖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주석에 대한 고민도 함께 사라지기 시작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이 소설의 뒤편에 나오는 해설에서 충실히 소개되었을 테니 그 의도나 의미 등은 생략하겠다. 다만 읽으면서 어릴 때 본 만화 영화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영화는 반공영화 <똘이 장군>이다. 정확한 내용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이 영화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동물농장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돼지들 때문이다. <똘이 장군>이란 만화 영화 속에서도 공산주의자는 모두 돼지 혹은 늑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캐릭터가 돼지가 지닌 욕심과 잡식성 탓으로 여겼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이 소설에서 빌렸는지 깨달았다. 억지로 그런 만화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 감독과 연출부의 창조성이 표절 아닌 듯한 표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 가지 고백한다면 어릴 때 이 영화를 보고 정말 공산당은 모두 그렇게 생긴 줄 알았고, 이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조금 긴 중편 소설 정도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한 시대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눈은 활자를 쫓지만 머릿속은 그 이야기를 분석하고 해석하기 바쁘다. 그 시대 상황을 알면 알수록 많은 재미를 발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학창시절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이 있어 대충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도의 난해함과 비유로 가득하다. 그 이상 알게 되면 더 좋겠지만 그 정도만 알아도 충분히 왜 이 소설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을 적으로 규정하고 투쟁하던 동물농장에서 인간들과 함께 축배를 드는 돼지들을 보면서 다른 동물들이 느낀 감정을 담고 있는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어느 것이 돼지 얼굴이고 어느 것이 인간의 얼굴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었다.”(188쪽)는 문장은 원래의 의도가 변질되고 왜곡된 현실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 모두를 위한다는 혁명이 소수를 위한 것으로 변할 때 썩은 내가 나고, 다시 혁명의 싹은 피기 시작한다. 이것은 또 자본주의가 점점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 요즘 세대의 현실이자 미래 모습이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는 그들의 손발이 되는 현실. 이런 현실이 자신들의 노력 부족 때문이라고 세뇌하는 현실. 사유재산은 신성해서 누구도 손 델 수 없다는 믿음을 강요하는 현실, 악법도 법이라고 강요하며 법치주의란 화려한 거짓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현실들 말이다. 이 책에 담긴 상징이나 비유 등을 해석하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현실의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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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주식회사 - 질병과 비만 빈곤 뒤에 숨은 식품산업의 비밀
에릭 슐로서 외 지음, 박은영 옮김, 허남혁 해설 / 따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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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두 읽은 후 다시 책을 보니 접어놓은 곳이 상당히 많다. 최근 나의 책읽기는 귀차니즘 때문에 접는 곳도 밑줄 치는 곳도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곳을 접었다는 것은 이성과 감성에 와 닿는 내용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그 대부분은 낯선 사실들인데 미국의 판박이가 되어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섬뜩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먹을 것과 삶의 질을 넘어 생존으로까지 인식이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얻은 지식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영화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로버트 케너 감독의 개인적인 제작 후기와 <패스트푸드의 제국>의 저자 에릭 슐로서와의 인터뷰를 포함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현재 미국의 흐름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소위 야채모독법으로 불리는 식품비방금지법의 무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권력을 가진 식품회사가 어떻게 일반 대중을 효과적으로 겁주면서 식품에 대한 진실을 원천봉쇄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담배회사의 권력을 줄였던 과거를 생각하며 우리의 노력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2부는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유기농과 식품과학과 식품과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본과 식량이 어떻게 맺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다름 아닌 비즈니스다.”(111쪽)란 문장을 읽으면서 불과 며칠 전 읽은 박범신의 신작 <비즈니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유기농이 우리의 건강한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유기농이 식품을 넘어 생존이라고 말한 대목에선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품과학이란 소재로 넘어가게 되면 유전자조작이나 개조 같은 현실을 만나게 된다. 이 주제는 책 속에서 약간 상반된 의견이 나온다. 지구촌 기아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피터 프링글의 주장은 이 식품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한 유기농소비자연합과 로니 커민스의 글에서 충돌이 발생한다. 피터가 “오늘날 유전자변형 반대자들의 두려움을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135쪽)고 말한 반면에 커민스 등은 “유전공학 생산물들은 사람의 건강에 유독하며 위험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상태다.”(149쪽)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사례를 나열하는데 이런 프랑켄푸드의 위험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식량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척박한 땅에서 제대로 수확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여기엔 몬샌토 같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견제와 필요한 사람들 손에 쥐어주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것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식품이 옥수수다. 한때 바이오디젤로 불리며 석유의 대체에너지로 인식되었던 식품이다. 이 옥수수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와 기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른 책에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 책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자료를 보여주면서 에탄올 사기극을 파헤친다. 특히 “25갤런 들이의 SUV 차량 연료통을 채우기 위해 소요되는 곡물이면 한 사람이 1년 내내 먹을 약식이 된다.”(172쪽)는 지적에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이 연료가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부족과 기아에 미치는 문제만 생각했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이 세계화와 식량의 무기화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관련 단체와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를 직시하게 만든다.

값싼 식품 이야기로 넘어가면 법의 약점을 꼭 파고든 혹은 계획한 사실을 알게 된다. 수많은 하청업체를 통해 최상층부의 책임문제를 교묘하게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다시 한국의 수직적 하층구조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들의 책임을 밑으로 전가시키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 “상품은 자유롭게 무역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닫힌 국경의 땅, 미국에서는 국경을 통과할 때 이미 거기서부터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를 점검할 수 있다.”(239쪽)는 문장에서 자유무역이란 용어가 지닌 허구성과 자기기만을 보게 된다. 이 문제들은 자본과 식량의 장으로 넘어가면서 요약 정리되는데 어두운 현실에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한 해에만 인도에서 2만 5000명의 농부들이 자살을 했다.”(273쪽)는 예는 자본의 무자비한 자기증식과 파괴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우리의 농민들이 예전에 보여주었던 분신 등의 극단적 저항행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 3부에선 우리가 이것에 저항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먼저 <잡식동물의 딜레마>로 식품 등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클 폴란의 텃밭 가꾸기다. 이 조그마한 행동이 지구온난화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간결하게 보여준다. “큰 문제 대부분은 우리가 하는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외의 것들도 필요와 욕구, 기호라고 하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다.”(302쪽)는 문장은 삶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고어가 전구 교체가 답이라고 말한 대목에 대한 답이자 인식의 시발점이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나의 식품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수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기에 쉽지 않다. “궁극적으로 식품의 안전성은 개인의 선택과 양심의 문제라는 것이다.”(327쪽)에서 알 수 있듯이 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풀어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다시 식품 영양에 대한 이야기로 가면 다시 고민하게 되는데 고대부터 전해져오는 생활습관의 원칙을 그대로 재현한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현미 같은 도정하지 않은 곡물을 먹는 것 같은 습관 말이다. 이것은 다시 어린이 영양 개선과 개인에서 시작하여 지역공동체의 건강으로 문제인식이 옮겨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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