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마게 푸딩 -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특별한 이야기
아라키 켄 지음, 오유리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불과 며칠 전 현대 인물이 6세기 과거로 가서 활약을 펼치는 소설을 읽었다. 마크 트웨인의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다. 이번엔 과거에서 현재로 온 사무라이 이야기다. 둘 다 모두 시간여행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이 과학을 이용해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보여준 반면에 이 일본 소설은 가볍고 감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현대가 잃어가고 있는 과거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더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트웨인의 소설이고, 가볍게 읽기 좋기는 아라키의 소설이다.

촌마게는 낯선 단어다. 당연하다. 일본 상투를 그렇게 부르는데 이 소설에선 에도 시대에서 온 사무라이 기지마 야스베의 특징을 나타낸다. 두 자루의 칼을 차고,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옛 상투를 한 상태로 현대에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하다. 그런데 코스프레가 일상적인 일본에서 그렇게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싱글 맘 히로코가 처음 그를 보고 생각한 것이 분장인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칼이 나오면서 위험을 느끼고 공포와 낯선 느낌을 받는다. 이때도 그녀는 그가 설마 에도 시대에서 왔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한다. 이런 도입부는 이미 여러 시간 여행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이라 낯익은 것이다.

낯익은 설정과 전개를 보여준다. 야스베가 히로코의 도움을 받다가 그 집에 눌러앉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기는 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그가 과거에서 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통과의례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이 과정을 가볍고 간단하게 처리한다. 사실 이 과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히로코 모자와 야스베의 생활에 집중하게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나라지만 다른 시간대의 두 문화가 가볍게 충돌한다.

문화 충돌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부분도 강하게 부각하지는 않는다. 야스베를 통해 사무라이 시대의 예의와 노력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현대에 점점 사라지고 있는 가치관이기도 하면서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야스베의 생활 속에 풀어놓으면서 히로코의 시선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녀의 삶은 현실에서 이제는 조금 낯익은 싱글 맘이다. 물론 이것이 쉬울 리가 없다. 이 힘겨운 일도 작가는 무겁고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하나의 생활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녀가 야스베의 도움으로 일에 집중하면서 성취욕을 느끼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시 나중에 가사 일 때문에 정체 혹은 퇴보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우선 순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소설의 재미는 사실 대부분 야스베와 관련된 일에서 생긴다. 그는 현대 음식 중 과자나 케익 등에 놀라고 반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만드는 단계까지 간다. 얼마나 뛰어났는지 아기까지 입에 케익을 묻히고 먹을 정도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입가에 침이 고였다. 그리고 그가 청소를 하면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가 이런 일을 하게 되는 데는 히로코의 집에 공짜로 눌러앉아 살면서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무라이가 현대로 와서 가정주부의 일을 하는 것이다. 빈틈없이 깔끔하고 깨끗한 일처리는 습관에 붙은 것이고, 이 시간들은 히로코의 아들 도모야와 가까워지고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냥 무난하고 즐겁게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좀 지루할까? 그래서 야스베의 TV 케이크 콘테스트 출연을 통해 그의 새로운 삶과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온다. 콘테스트는 사실 재미있다. 음식 만화나 영화 등에서 느끼는 화려함과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과거에서 현재로 온 그의 변화와 삶을 재현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출연으로 얻은 성공은 개인에게 득일지 모르지만 히로코 모자에겐 독이 된다. 히로코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빼앗기고 도모야는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스승을 잃기 때문이다. 여기에 살짝 작가는 에도 시대 사무라이 삶을 비틀어서 보여준다. 야스베의 대사를 통해서 말이다. 이런 작업들이 가볍고 재미있는 흥미위주의 이야기에 우리가 현실에서 잊고 있는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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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의 작은 새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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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노 도모코를 처음 만난 것은 <유리 기린>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 느낀 어둠을 따뜻하게 마무리했던 것을 기억한다. 연작단편이면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 후 이 작가의 다른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상당히 궁금했다. 그 기대는 읽으면서 가슴 따뜻한 일상 미스터리가 주는 재미로 채워졌다. 뭐 가끔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에 감탄을 하면서 현실에서도 저런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모두 다섯 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후유키 게이스케와 호무라 사에 커플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게이스케다. 첫 이야기 <손안의 작은 새>를 읽을 때만 하여도 이 소설이 어떤 형식으로 흘러갈지 제대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게이스케가 좋아했던 요코와 결혼한 선배를 만나 과거의 미스터리를 풀어낼 때만 해도 큰 느낌이 없었다. 바로 이어진 사에의 이야기도 역시 독특한 부분이 있지만 게이스케의 능력을 제대로 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모두 읽은 지금 그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탁월한 직관과 통찰력에 말이다.

각각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내보내는 미스터리는 보통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들이다. 파편적인 정보를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로 연결하는 게이스케의 능력에 그래서 감탄하게 된다. 사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너무 작가의 작위성이 많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단숨에 뒤엎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리고 이 커플이 보여주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느끼는 훈훈한 감정을 그대로 전해준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애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분명히 추리소설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살인이나 복잡한 트릭은 나오지 않는다. 일상 미스터리 중에서도 조금 가벼운 편이다. 바로 이 가벼움이 주는 재미를 작가는 멋진 캐릭터와 상황으로 이어간다.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선생님으로 불리는 노인의 탁월한 추리능력은 게이스케와 동급 이상이고, 카페 에그 스탠드의 주인은 은근히 그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다. 거기에 두어 번 등장하는 고노 다케시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트릭을 펼쳐주면서 잠시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사에다. 그녀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미스터리가 게이스케의 해설로 인해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그녀의 감정과 성격은 ‘사에답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개성적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가장 많이 그려본 것은 카페 에그 스탠드다. 표지에 나오는 큰 벚꽃이 꽃인 실내 풍경도 상상해보고, 다양한 술병으로 가득한 찬장과 바텐더가 만들어내는 몇 잔의 칵테일도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난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공간에서 많은 미스터리가 풀리고, 그들이 자주 가는 공간이고, 삶의 비밀과 공감대를 같이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공간 때문에 약간은 작위적인 설정의 미스터리가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나만 그런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읽으면서 혹은 모두 읽은 지금 가슴 따뜻한 일상 미스터리가 주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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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어릴 때 <톰 소여의 모험>을 소년 문고판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그것은 축약본이다. 그 당시 애니로도 제작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톰 소여에게 상당히 감정 이입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반면에 허클베리 핀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책도 사놓았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겠다. 그러다 시공사에서 세계문학의 숲이란 구성으로 나온 이 책을 발견했다. 이전에 한 번 번역되어 나왔는데 절판이 되었던 책이다. 알게 모르게 이 책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상당히 두툼한 분량에 약간은 주저함이 있었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가끔 과도한 칭찬을 받는 책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과 지루함으로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걱정은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다. 손에 들고 읽으면서 정신없이 아서 왕 시대로 온 양키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이다. 처음에 풍자문학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은 트웨인의 다른 책들에게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뭐 당장 찾아서 읽을 것은 아니지만.

1889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왜 출간연도를 말하느냐면 이 소설의 기본 설정 중 하나가 현대의 인물이 타임슬립해서 과거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은 상당히 낯익다. 요즘은 잘 읽지 않지만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흔하게 보아서인지 개인적으로 약간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1889년에 했다면 어떨까? 그 진부함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거기에 다른 시공간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 뛰어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서 왕을 생각하면 항상 두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신검 엑스칼리버고, 다른 하나는 원탁의 기사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 둘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6세기 과거로 이동한 인물이 중심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현대와 너무나도 다른 과거의 삶을 그 속에서 재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설정에선 세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책 중간에 현대 미국영어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너무 쉽게 양키가 6세기 인물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나 그가 영향력을 발휘해 개혁을 시도한 부분이 너무 빨리 변화하는 부분이다. 뭐 이런 설정 또한 풍자와 비판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 받아들이면 상관없이 흘러가지만 말이다.

19세기 미국 대장장이가 6세기 영국으로 옮겨가게 만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먼저 대장장이를 보낸 것은 그가 과거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나 경제학자나 경찰을 보낼 경우 그 파급 효과가 그렇게 커거나 빠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장이라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 수 있다. 거기에 그가 과학 지식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좋다면 어떨까? 그가 과학의 힘을 발휘해서 그 시대 최고 마법사인 멀린을 물리친 것도 바로 이런 설정의 힘이다. 뒤로 가면서 약간은 만능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과학에 무지한 과거 인물들에게 과학이 만들어내는 힘은 그 어떤 마법보다 위력적이다.

왜 6세기 영국일까? 그리고 왜 미국 양키가 주인공일까? 이 설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계급과 관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그 시대 최고 민주국가였던 미국인을 등장시킴으로서 두 체제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6세기 속에서 19세기의 사회와 문화를 위한 혁명을 꿈꾸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이를 위해 만든 조직과 사람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여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드는데 그와 동시에 시대의 함정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굳어진 사고 체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도 과거의 계급관이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풍자와 탁월한 상상력과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재미다.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가서 무용담을 펼치는 그 과정 한 편 한 편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를 비판하고 풍자적으로 풀어내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로 이런 과정과 재미가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재미난 캐릭터와 시대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끔 의아한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보스를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상황에 맞게 혹은 극적으로 펼쳐지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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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는다. 그 상실감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2년 간 술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인터뷰어였던 자신의 길을 가게 되는데 한 통의 메일이 삶을 뒤흔든다. 그것은 죽었던 아내 이후에게서 온 것이다. 누가 이런 나쁜 장난을 하나 하고 위문을 품고 지우려고 한다.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그다. 메일을 연다. 아내가 나온다. 그녀가 죽기 전 바이앤바이란 회사를 통해 자신을 기억을 남겨놓은 것이다. 이렇게 그는 다시 아내를 만나러 가게 된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아바타로 다시 태어난 그녀를 말이다.

이 설정을 읽다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다. 아내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남편, 다시 가상세계에 나타난 아내. 이 둘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낼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욘더라는 가상공간을 등장시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현실의 삶과 사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거기에 현재 과학기술이 발전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사이사이에 널어놓으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중 많은 수가 이미 언론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말한 것이고, 혹은 sf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이미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시간적 배경은 통일된 한국의 30년 뒤다. 유비쿼터스가 일상화된 사회다. 작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전체의 일부나마 알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칩을 신경에 박아넣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모습은 이미 십 수 년 전 sf영화나 애니 등에서 본 것이라 낯익은 풍경이다. 우범지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 같고, 만남은 실제 공간보다 사이버 공간을 더 선호한다. 장례는 더욱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추모도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사이버세계가 발전한 곳에서 인간들의 감성은 변함이 없다. 바로 이 변함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이 아내를 잃고 괴로워한다면 피처를 통해 만난 사람들도 모두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사이버세상이 싫어 과거 기술로 돌아가 살다 화재로 아내와 아이들을 죽게 만들거나 태어난 자식을 잊지 못하는 엄마 등이 바로 그들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들이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방식도 조금씩 바뀐다. 아픔은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죽은 사람의 기억을 사이버 공간에 올려놓고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그들을 사이버공간에서 현실처럼 움직이고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놀라운 기술 덕분에 그들은 언제나 죽은 이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만날 수 있고, 아픔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치유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욘더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사이버세계를 배경으로 결국 펼쳐지는 것은 사랑이야기다. 사랑, 그리움, 상실, 아픔, 외로움 등을 다루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읽는 동안 과연 나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욘더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다시 이것은 이승과 저승이라는 다른 두 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과연 그들을 만나기 위해 현실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죽지 않는 것이 단순히 나의 두려움과 욕심 때문이 아닌지. 

욘더가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과 다르다. 주인공이 이후와 만나서 살아가는 동안 보여주는 영원한 삶의 정체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후가 진정으로 바란 것을 말할 때 서로가 생각하는 천국이 결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천국이 다른 사람에겐 지옥일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욘더를 둘러싼 미스터리나 진행이 조금 작위적이고 너무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 어떤 기술도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는 아직 무리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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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세계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시선을 끈다. 그 앞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문장으로 문을 열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시작은 알 모히드 바함의 <세계의 책>이다. 세계의 모든 책들이 결국 <세계의 책>의 주석서란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책이길래 이런 표현을 할까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고 한 아랍 현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 만 권의 책으로 역사를 기록했다가 왕이 더 간단히 줄여라는 말에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와 같은 간결한 문장으로 마무리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혹시 <세계의 책>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 답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전직 책 사냥꾼 반디에게 어느 날 책 사냥꾼들의 중앙인 비밀조직 미도당의 총수로부터 한 권의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는 받는다. 그 책의 제목은 <베니의 모험>이다. 이 책은 책 사냥꾼들 사이에 전설인 <세계의 책>을 찾는 단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책 사냥꾼의 길로 나선 것은 책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여자 소리의 안전을 위해서다. 이 부분은 은퇴한 고수나 킬러를 다시 현장으로 불러올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펼쳐지는 반디의 활약은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설정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을 찾는 모험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작가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가상의 책들은 그런 점에서 아주 성공적이다. 분명히 가상의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지만 그 요약된 내용에 나도 모르게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기기 때문이다. 뭐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경험은 더 많아진다. 작가들이 풀어내는 책 속의 책 이야기가 알을 까고 까면서 호기심과 궁금점을 점점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읽고나면 약간 허탈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충동을 좀처럼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지출한 돈이 적지 않은데 지금도 멈춰지지 않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쫓는 설정이지만 그 속에 음모와 배반이 중첩적으로 펼쳐진다. 책을 쫓는 모험은 어느 순간 반전을 펼치는 미스터리와 같은 전개를 보여주고, 그 사이사이에 나오는 책에 관한 수많은 목록과 가정과 설명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점점 사람을 매혹시킨다. 사실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런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책 이야기다. 반전과 배신은 사실 작위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 약간의 반감을 사지만 책 이야기는 나의 한계를 넘어 충동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득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나도 책 사냥꾼으로 나서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하여 다음 책으로 이어지고 이를 쫓는 과정은 모험이자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방치된 공간에서 발견하는 책이나 문을 닫는 동네서점의 현실은 너무나도 낯익다. 한 해 동안 출판되는 수많은 책들이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폐지공장으로 사라지는 현실을 알기에 이 또한 가슴 아프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서평에 의해 잊혀졌던 책이 관심을 받고 희귀본으로 변해 수집의 대상으로 변하는 현실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생긴다. 왜 그 당시에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금서목록을 지정했다는 설정은 얼마 전 국방부의 금서 에피소드를 떠올려주고, 책을 태우는 행동은 <화씨 451>의 미래를 잠시나마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매력 있다. 작가의 풍부한 책 지식과 상상력은 약간은 진부할 수 있는 설정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아마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 노래에 MR을 제거하듯이 책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제거한다면 정말 진부한 3류 모험소설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 이야기가 한 편의 멋진 환상소설로 변화시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책 사냥꾼으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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