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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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쑤퉁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는 말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한 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뛰어난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런 기대는 책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도대체 책 속 누가 쑤퉁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자의 후기를 통해 작가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럼 왜 자전적이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역자의 말처럼 “하나하나의 독립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이 이미 실현한 혹은 미처 실현하지 못한 이상을 펼쳐 보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401쪽)는 설명에 만족해야 할까? 이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할 것 같다.

성북지대의 상징은 세 개의 큰 굴뚝이다. 화학공장에서 내뿜는 연기와 오수가 그 시절에는 성장과 일자리의 상징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매연과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환경소설이라면 이 화학공장이 주 무대이겠지만 실제 주 무대는 참죽나무길이다. 그리고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리수예가 나와 그의 아들 다성이 성장소설의 주인공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물론 그도 주연 중의 한 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두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제목처럼 성북지대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참죽나무길 사람들.

쑤퉁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섬세한 묘사를 통하여 소시민들의 일상과 기댈 곳 없는 약자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과 사회성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수퉁의 장편을 읽을 때 느끼는 것은 해학과 현실이라는 단어다. 그의 소설에서 만나는 비극들은 결코 감정이입을 통해 풀려나오지 않는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도에 멈춰있다. 그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해학은 이 비극들을 무난하게 넘어가게 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주변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사람이란 점에서 현실임을 느끼게 한다. 

성장소설이라고 하지만 과연 누가 성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네 명의 악동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이 넷은 모두 불량학생으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 삶도 성북지대 최고의 사나이라는 환상에 목을 매는 다성이나 가장 먼저 사회에 나가 유부녀와 바람이 난 쉬더나 좀도둑질이 습관처럼 몸에 밴 쩔룩이나 한순간의 충동으로 강간하고 감옥에 가게 되는 홍치 등을 보면 변함이 없다. 흔히 고난이나 아픔을 겪은 후 한 단계 높아진다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형식이 이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성북지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로 보면 다르다. 네 악동이 중심에 놓여있지만 그들과 연관된 부모나 주변사람들이 그 시대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층 소시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하나의 강간사건을 둘러싸고 두 이해관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그 이해관계가 어떤 식으로 변질되는지, 악다구니와 무관심으로 점철된 듯한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고 얼마나 끈적한지 작가는 섬세하면서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이런 삶의 모습들이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이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를 준다.

가난과 힘겨운 삶은 아이들을 빨리 늙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보면 늙은 척할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 괴리감은 그들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우연, 허세, 욕망, 일탈, 충동 등이 빚어내는 삶의 다양한 파편들은 그래서 아슬아슬하다. 또 그 시대의 불안정한 사회 모습은 예상하지 못한 극단적인 사건을 만든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다 비슷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 욕망이 극단으로 표출되는 곳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소설 처음과 마지막을 나오는 솽마오표 자명종은 한 가족의 아픔을 너무나도 강렬하게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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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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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공터에 서 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는 오지 않는다. ‘나’는 차 트렁크를 열고 들어간다. 그 속에 눕고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간다. 여기서 ‘나’는 화자인 온두고, 그는 성명이 ‘이름’이다. 첫 이야기는 이 둘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그 만남은 우연으로 가장된 필연이다. 온두는 남자의 핸드폰 벨소리에 평화를 방해받고, 남자가 그 땅 주인이라는 말에 안락한 보금자리를 잃을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뭔가 충돌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한다. 그리고 두 남녀의 과거 속으로 한 발씩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트렁커는 차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을 말한다. 먼저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왜 멀쩡한 집을 나두고 차 트렁크에서 잘까 생각했다. 뭐 세상에 괴팍한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런 모양이다 하고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 둘의 만남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하나씩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었다. 그들이 트렁크에서 자는 이유가 그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잘 수밖에 없었다는 부분은 아픔을 던져준다. 이 소설은 그 아픔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과정을 결코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온두. 따뜻한 콩이란 의미다. 그녀는 유모차 판매원이다. 판매능력은 대단하다. 전국의 아기 엄마가 그녀에게 와서 살 정도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유모차에 대한 애정이다. 이 애정은 유모차에 대한 모든 것으로 관심이 확대되고, 그것을 공부한 덕분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냥한 판매원이 아니다. 고객에게 굽실거리지 않는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고객이라면 그녀는 최악이지만 아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에겐 최상의 판매원이다. 이 차이가 그녀를 힘든 순간으로 몰아가지만 요즘 아기 엄마들의 고충과 현실을 살짝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녀가 이렇게 유모차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그 이유를 보여준다.

온두의 평온한 삶에 불쑥 치고 들어온 남자의 이름은 ‘름’이다. 성은 이 씨다. 붙이면 이름이다. 이 이름을 갖게 된 것에는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는 이룸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름도 상당히 특이하지만 그의 과거는 더 특이하다. 아니 특이한 것을 넘어 섬뜩하다. 처음 온두를 만났을 때 기억을 잃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보드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효자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과거 이야기가 하나씩 나오고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들춰지면서 그런 감정은 퇴색되었다. 왜 그가 트렁커가 되었는지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두 트렁커의 이야기는 현재를 바탕으로 하지만 과거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듯하다. 특히 온두의 경우는 과거의 기억이 사라졌다. 아니 다른 자아를 이용해 과거를 윤색한다. 그녀가 가진 기억들도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데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더 깊숙한 곳에 진짜 어둠이 숨겨져 있다. 그녀가 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나 라고 되새길 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가 말이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복지나 양극화나 육아 문제 등이 살짝 밖으로 드러난다. 

빠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재미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두 트렁커의 이야기는 너무 무겁다. 우리가 흔히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했을까 혹은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일들이 나온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억하고 싶지 않는 일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경쾌하고 과장된 표현들을 통해 재미있게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힘들지만 정면에서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뒤끝은 즐겁고 따뜻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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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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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로워야 진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작가의 해석은 나에게 큰 충격이다. 여태 나에게 많은 의문을 주고 숙고의 대상이었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장이 새롭고 놀라운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 놀라운 글을 서문에 적어놓고 저자는 가장 중요한 개념인 소통(疏通)이라는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타자라는 것과 초월적 가치에 대한 비평을 가하며 지금까지 내가 알던 장자에 대한 생각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을 두 번째로 읽는다. 지난 번 열하일기를 읽고 그 해석과 새로운 모습에 즐거워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즐겁고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있었다기보다 새로운 모습을 접하면서 인식의 지평이 좀더 넓어졌다고 해야겠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노장철학이라는 표현에서 두 철학자를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데 작가는 이 두 사상가가 완전히 다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국가주의자로써의 노자와 아나키즘의 장자로 구분한 것이다. 첫 서두에 이미 저자가 이번 책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하겠다고 하였는데 보는 내내 그 영향을 직접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소통과 더불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차이다. 차이는 타자와 나의 사이와 인식과 삶의 문제로 발전하는데 그 해석을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더불어 노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해지고 장자에 대한 다른 저자들의 해석도 보고 싶게 만든다. 기존에 알고 있던 수많은 의미와 해석 등이 무너지고 새롭게 이해되고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은데 나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 한계를 알게 되지만 다른 저자들의 해석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고, 노자와 장자에 대한 공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적인 바탕에서 쓴 글이라 곳곳에 그 흔적이 넘쳐나고 그 반동으로 왜 사람들이 노자와 장자를 묶어 평가하였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나키즘이 지닌 모습이 노자의 철학과 완전히 다르다고 저자는 평하고 나 자신도 동의하지만 유교적 전통에서 상대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철학이 어쩌면 유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꿈에 대한 장자의 글들은 더욱 이런 생각을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보면 후대의 오류나 철학적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도 있다. 노장철학으로 묶는 것에 대한 반대와 차이를 저자는 보론에 보여주니 이를 참조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리라이팅 클래식에서 자주 접하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들뢰즈다. 그의 개념을 이번에도 저자는 장자의 철학을 해석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다. 노자나 장자 등과 같이 나에겐 잘 알지 못하는 철학자인 들뢰즈를 접할 때마다 항상 이 철학자의 책을 한 번 읽어야지 생각하지만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저자는 들뢰즈의 이론에서 노자와 장자의 차이를 말하는데 그 해석을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진 두 철학자를 발견하게 된다. 수직적 철학과 수평적 철학으로 말이다. 그리고 장자 철학에서 핵심인 타자와의 소통은 그 해석을 볼 때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날려버리게 되고 허무주의 등으로 알려진 장자의 실천주의와 아나키즘적 면모를 발견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나의 머릿속은 회오리치고 있다. 소통이라는 개념과 타자라는 개념과 아나키즘 등등의 수많은 해석과 초월적 존재인 수많은 감정과 정의 등이 책 서문에서 저자가 만한 우리가 흔히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선입견에 휩싸이게 하는지 느끼게 한다. ‘잊어라! 그리고 연결하라!’는 문장에서 알게 되듯이 막힌 것을 터 버리고 새롭게 연결하라는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존 개념과 의미에 막히기보다 새롭게 이해하고 깨달아야겠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이제 조금은 장자에 대한 윤곽을 잡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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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들의 귀환 - 지구 종말론의 실상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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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낯설지는 않다. 이미 팩션류 소설이나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암호> 같은 책에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도 지금처럼 이런 주장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한 정신 나간 연구자의 소설로 치부하면 간단하지만 이런 주장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계속 시선을 끈다. 거기에 그들이 주장하는 증거들 일부분이 귀를 솔깃하게 만들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저자는 2012년 12월 23일에 반드시 외계인이나 종말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시간 계산 오류를 지적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야 문명의 계산 오류가 아니라 서력의 오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혹시 그날 아무 일이 없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역사, 특히 고대사를 읽을 때면 늘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발굴되고 눈앞에 펼쳐진 자료에 대한 해석이다. 과연 이 해석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늘 있다. 특히 고대 문자에 대한 해석에서는 맞는 해석일까 하는 의문이 더 강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이롭게 다가오는 것은 거대한 구조물이다. 그것이 거대하고 정밀할수록 의문은 더 커진다. 어떻게 저 시대에 저런 것을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가능할까 하고. 이 책이 나의 이런 의문에 대한 조그마한 가능성에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외계문명설에 대한 수많은 학설 중 기본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것은 고대 유물이 지닌 놀라운 모습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곳은 조금은 낯선 안데스산맥 고지대에 남아 있는 푸마푼쿠다. 저자의 설명과 사진으로 본 푸마푼쿠의 모습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정밀하고 거대한 돌들의 모습이 저자의 주장처럼 석기 시대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과학 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자료가 많지 않다. 저자의 주장처럼 진화론자들이 이런 발견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실이 있는지는 나의 공부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다. 

추천사에서 “오늘날 주류학계는 신들의 이야기를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환상으로 치부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 다시 말해, 뭔가가 우리 조상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들이 뭔가를 목격하고 구전설화를 통해 이런 사건들을 전하려고 했다.”(7쪽)고 말하면서 수많은 경전과 역사 속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다. 만약 이 해석이 맞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나 신앙은 산산조각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이런 주장이 주류에서 배척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받은 교육의 견고함이 쉽게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증거와 해석과 학자들을 모아서 하나의 실로 꿴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을 현실의 매체에서 자주 보았기에 의심을 눈초리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결국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결정은 각 개인에게 달려있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하나의 소설로도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대한 구조물이나 유적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현재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외계문명설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뭐 대부분의 독자들은 하나의 오락거리 그 이상이 아닐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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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오름 2012-02-21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값이벤트라 망설이는 중이네요..ㅎ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폴 오스터의 신작이다. 개인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미국 현대 작가 중 가장 좋아한다. 아마 그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과 구성이 나와 맞는 모양이다. 뭐 나만 맞는 것은 아니지만. 1967년과 2007년. 이 다른 두 시간 속에 담긴 이야기는 무얼까? 하나의 우발적 사건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니 그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다. 

  

   

커트 보네거트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날카로운 풍자를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당시 백삼십여 명을 안락사시켜 '죽음의 의사'로 불리던 잭 키보키언 박사의 도움을 받아 4분의 3만 죽은 상태로 사후세계에 가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한다는 내용이라는데 분량도 짧다. 그 짧음 속에 담긴 풍자와 유머를 생각하면 고인이 그리워진다. 혹시 실제 사후세계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군더더기 없는 히기시노 게이고 소설을 생각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최고작을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늘 혹시 하는 기대를 한다. 이 소설이 과연 데이터 축적이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봄바람의 나른함을 날리기에 충분할 것 같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시리즈가 단순한 오락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매혹적인 캐릭터를 창조했고, 이야기꾼인지 말이다. 이전에 나왔다가 절판된 후 다시 나오기 시작한 이 시리즈가 몇 권까지 나올지 모르지만 출판사의 홍보처럼 끝까지 나와주었으면 한다. 사실 몇 년 동안 여섯 번째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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