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 - 전 세계를 감동시킨 아론 랠스톤의 위대한 생존 실화
아론 랠스톤 지음, 이순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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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면 이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것은 저자가 오른팔이 돌에 깔린 채 협곡에 갇혀서 보내야 한 시간이다. 거의 6일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돌에 깔린 팔을 절단한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끔찍함과는 거리가 있다. 갇히고 절단을 한 후 무사히(?) 돌아온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갇힌 후 그 극한의 상황을 대처하는 과정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차분함과 열정은 냉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론은 열정적이고 행동적인 삶을 산다. 어릴 때 그는 겁이 많았다. 스키를 타기 전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스키를 타고 난 후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바뀌었다. 새로운 삶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변화는 그를 현실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한 후에도 그의 삶은 높은 산과 협곡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결국엔 그 직장도 그만두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대단하다. 경제적인 안정과 부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좀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삶의 도중에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 이후로도 그 삶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유타주의 말발굽 협곡으로 그는 휴가를 간다. 협곡에 있는 암각화 사진을 찍고, 그곳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순간만 해도 그냥 보통의 협곡 경험담 정도다. 그 길을 가다 여자들도 만나고, 협곡을 오르내린다. 콩다방이나 영화관 예고편에서 본 암벽 사이를 미끄러져 물에 풍덩 빠지는 장면도 없다. 그냥 평범한 일정이다. 하지만 갑자기 변한다. 그가 떨어진 돌덩이와 협곡 벽 사이 오른 손이 낀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냥 재수 없는 일 정도다. 그런데 손이 빠지지 않는다. 협곡 사이에 몸을 지탱하면서 손을 빼야만 한다. 쉽지 않다. 이 사고로 그는 127시간 동안 협곡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책 구성은 그가 협곡 사이에 낀 하루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지 고민하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로 옮겨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현재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면 과거는 살아온 발자취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보내는 긴 하루라는 시간이 그에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면 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중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행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156쪽)에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이 옮겨간 것이다. 위험을 즐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성향일 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그가 빠진 위험을 구해줄 수는 없다.

협곡 사이에 낀 그가 생존을 위해 가진 도구나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 로프, 칼, 비디오카메라, 500밀리 물, 기타 몇 가지 소품만 있다. 하루 만에 탈출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그가 간 곳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실종 신고가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고, 어디서 그를 찾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길게 살아남아야만 구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의 이성은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특히 물에 관해서는 더욱 빠르다. 실종 신고와 구조까지 머릿속에서 계산한다. 하지만 너무 부족하다. 결국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실 지경에 이른다. 거기에 허공에 자신을 지탱할 방법을 강구하고, 팔을 빼기위한 방법을 계속 시도한다. 첫날부터 팔을 잘라야 한다는 인식을 가장 먼저 하지만.

극한 상황에 빠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인 팔을 자르는 것도 그가 가진 조잡한 도구로 하기 쉽지 않다. 실제 그가 어떻게 팔을 절단했는지 묘사한 장면을 읽으면서 그 섬뜩함과 대담함과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피부 조직이 완전히 살아있는 팔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힘줄과 신경과 뼈가 남아있다. 읽으면서 나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는데 나 자신이 그 아픔의 일부를 느끼는 것 같았다. 다행히 괴사한 조직 덕분에 그가 과다출혈로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한 팔로 협곡을 내려가고, 계속해서 생존을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만날 때까지. 헬기로 병원에 옮겨져서도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는데 정말 놀랍다. 몸의 화학변화가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었는지 모르지만 이성과 용기와 결단력과 실천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대단함은 그 상황을 헤치고 나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산을 오르고 스키를 탄다. 오른 팔을 자른 후 더 빠르게 산을 탄 것을 두고 두 팔을 자르면 더 빠르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신체의 조그마한 불리함을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간다. 그가 겪은 127시간 속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했다. 특히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힘 빠지게 하고 포기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미래가 현재가 되고 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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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
미치오 슈스케 지음, 황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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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미스터리는 좋아하는 두 장르다. 뭐 워낙 좋아하는 장르가 많다보니 그냥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청춘소설로 볼 수 있는 것은 화자인 아키우치와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미스터리는 당연히 이 네 명이 알고 있는 한 소녀 요스케의 죽음 때문이다. 시작은 뭔가 분위기가 묘한 카페에서 이 네 친구가 비를 피하기 위해 모인 순간부터다. 그리고 미스터리 소설에서 자주 본 듯한 “이 중에 살인자가 있는지 없는지.”같은 도발적인 문장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살인자 이야기에 비해 이어서 나오는 장면들은 한 순진한 청년의 풋풋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키우치는 짝사랑하는 치카의 연락을 받고 택배 아르바이트 사이에 친구들을 만나러간다. 그 친구들은 쿄야, 히로코 등이다. 이 네 명은 아키우치와 쿄야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곧 쿄야와 히로코가 사귀고, 그녀의 친구 치카가 함께 하는 형태다. 물론 여자에게 말도 못 건네는 아키우치가 치카를 미남자로 착각해 자연스럽게 말은 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곧 여자임을 알고 그의 입은 자물쇠로 채워진다. 그녀에게 반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만. 이런 관계를 설명하면서 한 청년의 청춘을 느끼게 만든다. 이 관계들은 이후 한 편의 청춘소설 같은 재미를 준다.

치카의 부름을 받아 간 곳에서 먼저 만난 사람은 쿄야다. 혼자 낚시를 하고 있다. 곧 대학 조교수인 쿄쿄 선생의 아들 요스케가 큰 개 오비와 함께 나타난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상당히 똑똑해 보인다. 잠시 후 음료수를 사러간 히로코가 온다. 이들의 만남은 아르바이트 호출로 깨어진다. 그가 만나길 바랐던 치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떠난다. 그때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가 온다. 하지만 그는 가야만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청춘소설이다. 그런데 그날 이 세 명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나오고, 그 길 건너편에서 요스케와 오비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쿄야가 소총으로 뭔가를 노리는 듯한 포즈로 로드케이스를 공중으로 향했고 참새들이 몇 마리 날아갔다. 그 순간 오비는 이빨을 드러낸 채 무언가를 듣는 듯 귀를 앞으로 하고 땅을 차고 나선다. 팽팽하게 당겨진 붉은 끈을 잡은 요스케가 끌려간다. 대형트럭이 달려온다. 다행히 오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요스케가 없다. 소년은 차 밑에 깔려있다. 죽은 것이다. 바로 이 장면과 순간이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끌고 간다. 왜 오비는 갑자기 달려나갔을까, 왜 쿄야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단순히 이 장면만 보면 너무나도 범인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뻔한 범인을 내놓는다면 누가 미스터리를 읽겠는가. 여기서 작가는 한 번 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반전을 준비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내놓는다.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 편으론 한 순진한 청년의 순애보다. 짝사랑하는 치카에서 마음속으로 수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한 두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 본 그.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실들은 들으면서 의문과 의심만 깊어진 그.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고 동물생태학자인 마미야 교수를 찾아간 그.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들켰지만 잘 감추고 있다고 자신하는 그. 그의 주변으로 새로운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주동적으로 사건 속으로 뛰어든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건의 모든 단서를 기억하고 있던 그. 이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내야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할 수 있는 연출로 이어간다. 곳곳에 단서를 숨겨두고 독자를 힘겹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불공정한 전개를 펼치면서. 특히 동물생태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들은 아쉬움을 준다. 마미야의 설명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지만 ‘아!’ 나 ‘오!’ 같은 감탄을 자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절하지만 상쾌한 여운이란 표현에 동의한다. 특히 아키우치 세이의 풋풋한 사랑을 볼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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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피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9
메리 E. 피어슨 지음,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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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교통사고 후 일 년만에 깨어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렸고,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본 어머니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처음 이 장면을 읽을 때만 해도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단지 혼수상태에서 1년 만에 깨어난 사실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읽으면서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의미하는 바도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 소녀와 인간, 죽음과 사랑, 윤리와 과학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이야기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문제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사고 후 깨어난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불안해 보인다. 음식도 정해진 것만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읽은 책과 본 영화 등에서 얻은 통밥은 그녀의 정체를 금방 파악한다. 이어서 나오는 단서들은 이런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다. 작가는 약간 미스터리하게 그녀의 정체를 숨기면서 이야기를 중반까지 끌고 나가지만 곧 그녀가 순수한 의학의 힘으로 깨어난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것은 제나 아버지의 사업과 관계있고, 그 시대 윤리 문제와 충돌이 있는 일이다. 이런 설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를 미래의 가정 속으로 끌고 들어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

제나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가끔 섬광처럼 떠오르는 기억의 한 자락들은 너무 파편적이다. 어린 시절 비디오를 통해 그 기억 중 일부를 되살려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런 기억 상실에 대한 순수한 고민은 그녀가 세상에 한 발 내딛고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실을 아는 순간 바뀐다. 기억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외할머니 릴리다. 유전자 변화를 통해 벌어진 과거 사건들을 말하고, 순수한 품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녀는 과학을 통해 재탄생한 제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다시 그 시대 과학 생명 윤리와 맞닿아 있다. 소설 속에서 과거로 다룬 우리의 현실 혹은 미래는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간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할 것이다. 이런 만약의 가정에서 출발한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순수한 물음이자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부활 같은 기적을 기대하며 단순히 생명만 유지시키고, 또 다른 작품은 온갖 기계나 생명공학을 이용해 존재 자체를 재생시킨다. 이럴 때 우리가 받는 인상대부분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것이 단순하거나 괴물 같은 경우는 더욱 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라면 어떻게 할까?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나가 자신의 정체를 안 순간 두려워하고 고민한다. 그녀의 인식이 그 시대의 윤리 의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녀의 부모는 그 연장선을 벗어났다. 너무나도 분명한 이유인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자기들의 능력으로 그녀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떠나보내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가족 내 인식과 가치관의 충돌은 이 소설을 단순한 SF를 넘어 성장소설로도 읽게 만든다. 그리고 부모가 사용한 방법은 그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다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이런 철학적 물음은 제나의 고민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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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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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언제나 힘겹게 다가온다. 그의 높은 인지도를 생각하면 단숨에 읽고 몰입해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읽는 것은 왜일까? 그 명성에 대한 끝없는 동경, 읽었다는 것을 티내기 위한 행위, 아니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 중의 재미나 흥미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 이제는 르 클레지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물론 그 이후 계속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르튀르 랭보의 <허기의 축제>로 문을 열고, 허기에 대한 기억을 말한다. 전후 불량했던 식량 사정과 미군을 따라가며 그 유명한 대사 ‘기브 미 초콜렛’을 외치던 어린 시절. 처음 이 시절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육이오가 겹쳐보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후 미군이 진입한 모든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 당시 허기는 굶주림이다. 배고픔이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데 소설 속 허기는 또 다른 허기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읽으면서 그 허기가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다.

에텔이라는 부유한 집안의 딸을 주인공을 내세웠다. 해설에 따르면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어머니의 기억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풀어낸 소설이다. 하지만 기억과 사실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소녀의 삶을 다루는 과정에 역사적 사실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그녀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녀가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그 거대한 흐름은 그녀를 삼켜버린다. 어쩌면 그녀는 삼켜져버린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복원 혹은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외종조부 솔리망 씨는 어린 에텔에게 큰 선물을 준다. 추억과 유산이다. 이 둘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려지고 빼앗긴다. 연보라색 집은 그런 점에서 이 둘과 관계있다. 하지만 현실은 미래는 다르다. 솔리망 씨가 구상했던 연보라색 집은 에텔 아버지의 욕망에 의해 사라진다. 아니 에텔의 유산 자체가 넘어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미성녀자의 재산을 일방적으로 빼앗아 가는 것이 그 시절에 가능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것이 아버지라고 해도 말이다. 이 탈취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가족 전부를 추락하게 만든다. 그것은 부유한 자산을 정확한 검토나 확신 없이 사기꾼들에게 퍼주었기 때문이다. 허영에 물든 아버지의 모임 때문이다. 이 모임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인식을 그대로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후 이들이 어떻게 독일에 빌붙었는지도 보여준다.

에텔. 그녀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다. 첫 번째 동성 친구 제니아는 몰락한 러시아 귀족 출신이다. 한동안 둘의 관계는 좋았다. 하지만 부와 욕망의 차이가 둘을 갈라놓았다. 현실적이다. 처음에 이 둘의 관계는 사실 위험해보였다. 아마 조금 야한 소설이었다면 동성애의 분위기를 풍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을 나만 받은 것일까? 그리고 이 관계는 그녀가 현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후 그녀 집에서 벌어지는 모임에 대한 그녀의 기록과 기억은 이런 현실을 더 깊숙이 이해하게 만든다. 집안의 몰락을 그녀가 목격했을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그 과정을 보았고 현실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부자들의 몰락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몰락이 무분별한 투자와 사기로 인한 것인 경우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어머니 쥐스틴은 너무 순종적이다. 명예란 추상적인 허상에 매달려 현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경제적 어려움과 허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쥐스틴과 아버지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다. 이 둘의 관계가 애정 넘칠 정도로 다정하지는 않다. 이 둘의 관계가 이어진 것도 역시 명예와 관련 있는 것일까? 작가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세밀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장면과 문장으로 추론해야한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기억은 단편적이고 추상적이며 개인적이다. 때때로 기억은 다른 인상들에 의해 왜곡되어질 수도 있다. 현재의 나에 의해서도 그 기억은 바뀐다. 종종 경험한다. 에텔의 성장이 세계사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풀려나가는 이 소설에서 기억은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과 추억을 잊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이고 조금의 왜곡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언제나처럼 작가의 문장은 좋다. 그렇지만 그의 감성에 나의 감성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녀의 삶을 떠올려보면서 그렇게 깊게 공감하지도 몰입하지도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 계속 나 자신에게 물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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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삼걸 - 천하 최강의 참모진
쉬르훼이 외 지음, 장성철 옮김 / 지식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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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삼걸은 그 유명한 장량, 소하, 한신 등을 말한다. 천하 최강의 참모진이란 부제가 달려있는데 왜 그런 평가를 받게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해석해서 보여준다. 이 과정을 따라가면 이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전에 한신 같은 인물이 왜 그런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 더불어 소하와 유방에 대한 평가로 새롭게 하였고, 천하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한초삼걸이라 말한 인물은 유방이다. 그가 천하를 얻은 후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이미 우리가 알 듯이 천자가 된 후 유방은 이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이 과정에 오기 전 이들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공을 세웠으며 이 때문에 유방이 느낀 불안이 무엇인지 되짚어간다. 그 과정 속에서 왜 역발산기개세의 초패왕 항우가 천하를 얻지 못하고 유방이 얻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바로 그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한초삼걸이다. 재미난 점은 장량과 한신이 항우의 수하로 있다가 유방에게 간 것이다. 그리고 유방이 마지막에 천하를 얻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패배를 겪었는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몇몇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유방이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이 책은 한초삼걸에 대한 분석이자 유방에 대한 분석서이기도 하다.

이전에 고 정비석 작가의 초한지를 읽을 때 많은 아쉬움을 느낀 인물이 있다. 바로 한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의 최후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그렇게 뛰어난 인물이 왜 반역자로 몰려 죽었는지. 한나라의 반을 움직였던 군사의 천재였다는 평을 얻을 정도였기에 더욱 그랬다. 소설 등에서 그려진 한신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었기에 이런 감정은 더욱 강했다. 하지만 이 두 저자의 설명과 해설이 단순한 토사구팽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반역에 대한 긴 세월 동안의 다양한 주장을 분석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내놓았다.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나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자 충분히 타당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들은 한초삼걸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통해 그들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장량. 흔히 장자방으로 불리는 위인이다. 그는 한초삼걸 중에서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자신을 낮추고 유방 곁을 떠나면서 자신을 지켰다. 현재도 쉽지 않는데 혼란의 와중에서 서로 공을 다투던 그 시기를 생각하면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그에 대한 사실보다 전설로 우리에게 더 많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기존에 장자방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방의 곁을 지켰다는 것이다. 사실은 중간에 그의 조상들처럼 한왕을 섬기기 위해 유방의 곁을 떠났었다. 하지만 역사는 두 위인의 투쟁 속에서 한 전략가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그 선택으로 천하를 얻게 만들었다. 

소하. 사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전략가도 장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유방이 천하를 얻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군사 천재 한신을 대장군으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모략을 통해 유방보다 많은 인기를 누렸던 한신을 제거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대단하게 느낀 것은 후방에서 보여준 그의 탁월한 지원 능력이다. 유방이 연전연패할 때도 관중에서 군사를 모아 보충해주었고, 경제를 활성화하고 안정시켜 유방의 부대에 군량미를 제때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의 탁월한 능력은 나중에 오히려 유방의 불안을 불러오는데 이 또한 역사의 재미난 점이다. 

2천 년 전 뛰어난 능력으로 개국공신이 된 그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책으로 나와 있다. 물론 대부분 그들이 중심은 아니다. 중심에 있는 인물은 항우와 유방이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케이블TV에서 제목이 한신인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것을 잠시 보았다. 이것은 얼마 전 상산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한 중국영화를 떠올려주었다. 너무 많이 다루어진 항우와 유방에 식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 외 인물들이 지닌 매력 때문인지는 아직 정확한 판단을 못 내리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정말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렇게 뛰어난 인물들을 모아서 천하를 얻은 유방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그래서 더욱 와 닿는다. 단숨에 읽히는 매력은 없지만 과거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동시에 현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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