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
레슬리 덴디.멜 보링 지음, C. B. 모단 그림, 최창숙 옮김 / 다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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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란 제목으로 먼저 나왔던 책이다. 역자 이름이 다른데 이력을 조사하니 동일인이다. 최근에 제목만 살짝 바꾼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재간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예전에 읽은 사람이나 저자에게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책을 두 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출판사와 다른 번역자가 새롭게 번역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출판사와 번역자라면 최소한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간임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에 열 번째로 나오는 과학자 때문이다. 스테파티아 폴리니라는 여성의 생몰연도와 책 내용이 조금 이상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책에는 그녀가 1910년 생, 1999년 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가 참가했던 동굴고립실험 일자가 1989년 1월 13일이고, 그녀를 젊은 이탈리아 여성이라고 묘사한다. 그녀가 90세까지 산 것은 좋은데 80세에 실험에 참가한 것과 실험도중에 생리가 끊어졌다는 표현에서 단순히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생몰연도를 알려고 검색하다 비슷한 목차의 책을 발견했고, 같은 책임을 알게 된 것이다.

재간 정보나 잘못 기재된 기록은 아쉽지만 책 속에 나오는 열 명의 과학자는 놀랍다. 그 중에서 퀴리 부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것은 더욱 놀랍다. 그래도 조금은 이런 과학자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낯설다. 그래서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놀랍고 신기하고 존경스럽고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사용한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된 수많은 혜택을 생각하면 약간 부끄럽다. 뭐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저자들은 이런 낯선 과학자들을 사람들 앞에 내놓으면서 우리가 자신에게 해 본 실험과 그들의 실험이 어떻게 다른지 머리말에서 분명히 말한다. 그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의 용기와 열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열 명의 과학자 중 몇몇은 실험의 결과에 따라 목숨을 잃었다. 그 자신이 실험체가 되면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험체가 되었고, 그 때문에 연쇄적으로 그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그 시대의 한계는 존재했다. 이 한계는 책 구성 상에서 ‘이제는 알아요!’ 같은 내용을 통해 알려지고, 현재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독자들은 열 명의 과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현재 그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고 발전했는지 알게 된다. 

열 명의 과학자들의 실험을 읽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실험이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온도 실험을 위해 방의 온도를 높이면서 그 속에 머물거나 소화 실험을 위해 위 속으로 나무 튜브를 넣는다. 치과 수술을 위해 자신을 마취제 실험에 사용하고,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감염된다. 호흡 연구를 위해 바다 속, 땅 밑, 고지대를 오가면 실험하고, 드라마를 통해 인숙해진 심장 카테더법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려준다. 이제는 당연한 것 같은 안전벨트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고, 동굴 같은 곳에 고립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일련의 실험을 단순히 흥밋거리로 본다면 특이하다거나 미친 것 아니냐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들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이 실험의 한두 가지 이상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동물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체실험까지 가기 전 우리는 수많은 동물들을 사용해 실험한다.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지만 가끔 동물들의 고통을 무시할 때도 있다. 저자들은 자신을 실험체로 사용한 과학자들 이야기 속에 몇 번이나 집어넣으면서 이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역자가 인용한 그 잔혹한 독일과 일본의 인체실험 등과 묘하게 연결된다. 바로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물음이다. 흥밋거리로도 재미있지만 과학과 실험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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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북유럽 최고의 스릴러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히는 '여기자 안니카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이 시리즈가 전세계에 9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어느 독자의 리뷰에서 '자극성은 없으나 무게와 깊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대목에서 관심이 더 갔다. 그리고 책 소개글 중 '이 독특한 연쇄 범죄를 사회적 시각에서 분석해낸다'는 부분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님을 짐작하게 만든다. 거기에 시리즈의 첫 권이라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제10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 만장일치 수상작이다. 무슨 상을 만장일치로 받았다고 하면 괜히 한 번 더 시선이 간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에 대한 평을 읽은 후 더욱 심해졌다. 각기 다른 취향과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매력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서정적인 순정이 깃든, 새로운 감각의 추리심리극이란 평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를 보는 듯하다는 평과 함께 한 번 들면 단숨에 읽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스릴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스티븐 킹은 혹평을 했다고 해서 더 관심이 간다. 이전에 존 카첸바크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평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독일 포로수용소가 공간이란 부분에서 더 흥미를 느낀다. 두툼한 분량은 단숨에 읽기 힘들지 모르지만 즐거움을 오랫동안 주기에 충분할 듯하다.  

    

표지가 전혀 추리소설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작품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시리즈 중 네 번째라고 한다. 이런 약간의 아쉬움을 날리게 된 것은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쓴 호평이다. 서평도서로 풀리면서 약간의 주례사 평도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2010년 독일 아마존이 선정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라는 설명에 기대를 걸어본다. 가끔 이 나라 추리소설이 취향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영화로 최근에 개봉되었다. 역시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다. 뭐 원작을 넘거나 제대로 표현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이 소설에 관심이 간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다. 척보면 알지 않냐는 지극히 분명하고 단순한 대답을 얻었 수 있지만 좀더 생각하면 아주 철학적이다. 많지 않은 분량에 아주 무겁고 많은 생갈할 거리를 집어넣었다는 부분에서 더 관심이 간다. 혹시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짧은 지식이 한탄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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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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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위해 인터넷 서점으로 책 제목을 검색하니 두 권이 나온다. 그 중 한 권은 당연히 이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어산지와 결별했고 한때 위키리크스의 2인자였던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의 책이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위키리크스의 정보를 제공하는지는 사실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한 권은 내부자의 책이고, 다른 쪽은 위키리크스와 같이 작업을 한 적이 있는 <슈피겔>의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또 두 작가들이 어떤 목적으로 책을 썼는지도 감안해야 하는 사항이다. 다른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와 어산지에 대해 좀더 객관적인 자료를 원한다면 이 책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수많은 뉴스가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 파장을 우리나라 언론에서 큰 비중을 두고 다루지 않았기에 잘 몰랐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네이버 검색으로 위키리크스를 치니 뉴스가 겨우 6천 건 정도 검색된다. 위키리크스가 지구촌에 불러온 파장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적다. 우리와 관련 없는 정보가 많기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는지 아니면 의도적인 회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글 검색에 비해 너무 적다. 특히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아랍혁명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도 아랍혁명을 이들과 연결해서 말한 아는 분 때문이지만.

처음 위키리크스에 대해 잘 모를 때 이 폭로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국가의 일에는 비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밀주의를 싫어한다. 사적영역이 아닌 공적영역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때만 해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보가 어떤 것인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몰랐다. 아니 많이 혹은 중요하게 언론에서 다루지 않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웹사이트가 끼친 영향을 여기저기서 듣다보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런 나의 관심에 대한 조그마한 화답이자 더 많은 의문을 남겼다. 

흔히 우리는 ‘모르는 게 나았다’는 말을 한다. 진실을 알게 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충격과 고통 때문이다. ‘모르고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말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아픔이 현재와 미래에 크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분명하고 투명하게 말이다. 물론 여기엔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다. 우리사회의 성숙된 인식과 행동이다. 하지만 이 전제조건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나의 착각과 의문이 지금 현재는 넘어갈 수 있지만 미래엔 또 다른 불씨를 남기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아픔을 주는 진실이란 말에 동의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정보들은 사실 치명적이다. 나처럼 국제정세나 정보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세상은 다르다. 그들이 폭로한 정보가 기밀이고, 숨기고 싶은 비밀이자 그들의 치부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거대제국 미국이 이 사이트 하나를 없애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어산지의 죽음을 외쳤고, 국가 차원에서 각 나라와 업체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유일의 강대국 미국이 말이다. 책 곳곳에 나오는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에 대한 분노는 반대로 그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부분이자 흥미로운 점이다.

두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설립과 성장과 현재다. 어산지의 어린 시절과 해커활동은 그를 이해하는데 기초를 제공한다. 그가 위키리크스를 만든 후 현재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여주는 대목들은 수많은 협력자와 폭로된 정보와 이에 대한 반응들 때문에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특히 두 저자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에 집중하려고 한 부분들은 어산지를 냉정하게 평가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그들의 기술이 자신들의 입장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널리즘의 광범위한 실패의 두 원인으로 기회주의와 돈을 꼽는 순간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위키리크스의 성공 중 하나가 정보를 폭로하고 이에 대한 각 정보기관들의 대응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정말 모든 것을 까발리고 그들이 폭로한 정보에 대한 제한 요청이나 법원 소송까지 이용하는 것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것들이 매체를 통해서 혹은 트위터 같은 수단을 통해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급속하게 변하는 세상의 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위키리크스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상반된 평가는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들의 폭로가 너무나도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영역으로 갈 때는 더욱.

저자들도 밝혔듯이 어산지의 전기를 다루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위키리크스에 관심이 있다면 무엇보다 어산지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산지를 중심으로 위키리크스를 다룬다. 어산지가 어느 정도 비중인지는 그의 말로도 알 수 있다. “위키리크스는 매우 안정된 조직입니다. 우리를 제거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예요. 하지만 저를 개인적으로 배제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376쪽) 이 말은 위키리크스의 현재 위치와 불안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 위키리크스에서 어산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앞으로 어산지의 행보를 계속 주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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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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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전 토머스 페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책 날개에 나오는 소개만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그의 영향력이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간략한 정보를 가지고 읽으면 그의 말년과 사후의 행적에 쫓는 이 책이 말하는 바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토머스 페인이란 이름이 낯설고, 저자는 과거의 시간 흐름 속에 현재를 집어넣어 서술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잠시만 방심해도 헛갈린다. 이런 약간의 수고와 집중력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면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정치변화를 조금씩 알게 된다. 

<상식>이란 책 제목만 보면 예전에 보던 <시사상식> 같은 책들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다. 100쪽도 되지 않는데 그 시대를 생각하면 1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다. 책 속에 핵심이 인용되어 나오지만 더 간략하게 요약된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토머스 페인을 검색하니 <상식>의 핵심 요약 정보가 나온다. 그것은 영국 왕실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적인 아메리카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하고, 미국독립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란 주장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는 아직도 영국의 식민지였고,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도 독립에 반대하던 시기다. 그의 상식이 얼마나 앞서 나갔는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저자는 단순히 토머스 페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의 유골을 둘러싼 행적과 미스터리를 통해 그 시대와 선구적인 인물들과 정치 변화 등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현재의 내가 과거 토머스 페인의 유골이 이동한 경로를 쫓아가면서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과 그들과 관련된 삶과 시대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 유골을 파헤치고 소유한 사람들을 뒤따라가면 몇 가지 공통점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노예제 폐지, 여성의 권리, 채식주의, 평화주의까지 온갖 대의를 위해 싸운 활동가였다는 우연이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지만 페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존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페인의 비참했던 말년부터다. 그가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년은 비참하다. 가난하고 술에 찌들고 병으로 고생하면서 남에게 얹혀산다. 그에 대한 비난은 정확한 근거 없는 모략에 가깝다. 그의 죽음이 어쩌면 조그마한 평화인지 모르겠다. 죽음이 휴식이 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 인물이 그의 유골을 파헤쳐 가져간다. 그가 바로 윌리엄 코빗이다. 그도 처음엔 페인을 공격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후 페인의 유골을 들고 다니면서 처음과 다른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진보한 것이다. 

그처럼 초년의 사고방식이 중간에 바뀐 인물이 있다. 몬큐어 콘웨이다. 처음에 그는 순회설교자였고, 노예 옹호자였다.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벌거벗고 순진무구한 흑인 아이들을 보면서 변화의 조짐이 시작된다. 이 변화는 에머슨을 만나면서 더욱 빨라지고, 그의 철학과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예전에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을 바로 잡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알게 된 페인은 그의 자서전을 쓸 정도로 빠졌다. 이런 그가 코빗에서 시작한 유골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고 쫓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저자 혹은 역자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문장에 빠졌다.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읽었다. 거기에 수없이 등장하는 유명인사와 지금 기준에서 보면 황당한 사건들이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은 숨겨진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시대의 상식이나 진보가 황당하거나 상식으로 변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더 강하게 든다. 또 하나의 의문은 단지 하나의 유골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집착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존경 혹은 상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가치들을 생각하면 조금 반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면 흥미로운 구성이다. 이 행적을 통해 페인의 유산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쉽게 ‘그것은 상식이다’라고 말한다. 그 상식이란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상식은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상식은 긴 세월을 거쳐 검증과 반론을 통해 다져져 온 것들이다. 나중에 바뀔 가능성도 많다. 변기나 전주 등의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대에 혁신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낡은 것 혹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 여성 참정권이나 노예 해방이나 평화주의 등도 처음엔 아주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상식이다. 이런 정치적 철학적 변화는 이 책의 재미다. 시대의 벽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싸우며 그 한계를 넘으려는 그들의 행적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마지막에 “토머스 페인이 어디에 있는가? 독자여, 그가 없는 데가 어디인가?”(272쪽)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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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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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돼지 씨 귀엽다. 사랑스럽다. 처음엔 단순히 하나의 별명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손끝과 발끝에 귓속과 똑같은 진분홍색 헝겊을 댔고, 꼬리는 매듭을 지었다.”는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돼지 인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조그마한 돼지 인형의 모습만 가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각처럼, 또 다른 사람에겐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아니면 그냥 돼지인형으로.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져있다. 봄에서 시작하여 한 계절이 돈 후 다시 봄에서 마무리된다. 다시 온 봄 이야기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고민이나 갈등이 해결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첫 이야기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연극을 통해 각각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놓으면서 웃고 울게 만든다는 점이다. 거기에 악당 이아고 역을 귀여운 돼지돼지 씨가 맡았다는 점은 뭔가 섬뜩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귀엽고 순진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계략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실제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여름부터 겨울까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처음엔 이야기의 문을 열고, 다음 봄에 겨울동안 얼어붙어 있던 관계들이 녹으면서 새롭게 되살아난다. 그 사이에 있는 세 계절은 한 쌍의 연인이 겪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과 오랫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던 부녀 사이를 떨어지는 낙엽처럼 보여주고, 마지막 겨울은 호러작가를 등장시켜 자신이 만든 허상에 매몰되면서 일어나는 으스스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 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돼지돼지 씨는 그 어떤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만약에 지금 내가 돼지돼지 씨를 호텔에서 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해본다. 

각 단편들이 모두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작품만 으스스하다. 겨울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인 <앨리스의 미궁호텔>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으스스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전혀 으스스하지 않다. 오히려 코믹하다. 단지 화자로 나온 호러 작가 구마노이의 시선과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돼지돼지 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 구마노이의 이런 착각이 허둥지둥하고 오버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오해와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이 힘을 발휘할 때 그는 두려워하지만 독자는 웃는다. 또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돼지돼지 씨의 외모 때문에 좀처럼 강력하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두 감정의 괴리감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책 뒷면을 보면 야마자키 돼지돼지 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40대 남자라지만 핑크빛 봉제인형의 외양을 가진 그를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쁜 아내와 두 딸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실제 이 작품이 시리즈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에서 그녀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10년 이상 장수한 시리즈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크리스마스의 돼지 돼지>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다. 읽고 싶다. 올 겨울에 인연이 닿는다면 산타로 변신한 돼지돼지 씨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돼지돼지 씨, 기분 좋은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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