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나 자신이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금방 주변에 나만큼 읽는 직장 동료가 보였다. 그후 백수로 살면서 그때보다 몇 배로 읽으면서 이제는! 하고 생각했다. 이런 조그마한 자부심이 깨지는 데는 불과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북카페를 통해 나보다 더 고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을 한 권씩 모으는 습관이 심해진 것도 그때인데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보다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란 착각이 깨어진 것도 바로 그때다. 또 나와는 달리 잘 정리된 책장과 책들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책중독자의 고백에서 시작하여 치유하기 까지 모두 열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나보다 훨씬 더 중증인데 공감하는 부분을 처음부터 발견했다. 그것은 똑같은 책을 사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산 것을 잊고 다시 산 책이 발견될 때면 좁은 집 공간을 생각하며 왜 샀지 생각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책 더미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이전에 읽은 책을 찾으려고 몇 시간을 뒤지다 포기하고 직장동료에게 빌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책 더미가 무너져 정리하다 그 책을 발견하고 황당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책중독자 테스트를 해보면 상당히 중증으로 나온다. 사실이다. 집에 쌓여 있는 책 더미들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수십 수백 권 있지만 새로 나오면 또 산다. 서점에서 받은 마일리지가 쌓여가면서 또 한 번씩 정리하며 산다. 이벤트가 벌어지면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산다. 반값행사를 하기에 마일리지 소진을 위해 목록을 보았는데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책들 중 가지고 있는 책이 더 많다. 혹시 또 같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한다. 읽는 것은 나중이고 할인과 이벤트에 그냥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전혀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이유로 산다. 이유는 ‘언젠가 읽겠지’다. 

책중독 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희귀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책 상태가 좋은 것을 선호하지만 초판본이나 희귀본을 특별히 수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덜하지만 이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는 꼭 서점이었고, 새로운 동네에 가면 헌책방을 둘러보았다. 싸게 나온 책 중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다면 득템했다는 기쁨에 젖었고, 들고 간 가방만으로 부족해서 끈으로 묶어 들고 오기도 한다. 서점의 할인코너나 정액코너는 잠시 고민에 빠지게 하지만 지갑을 열게 한다. 언젠가 볼 것이란 이유로 말이다. 좁아지는 공간과 점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책구입을 생각하면 가끔은 희귀본으로 한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손에서 책이 떨어진 적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면 늘 손에 한 권의 책이 있다. 혹시 들고 다니던 책을 다 읽게 되면 불안해하고 혹시 그때 누군가의 집에 있다면 그 책장의 책을 뽑아서 읽는다. 두 권을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책의 무게와 새로운 책을 사 넣어야 하는 공간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읽을 순서를 정해놓고 있기에 읽던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라면 다르지만. 언젠가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깨어나 심심해서 끄집어낸 책에 빠져 정신없이 읽은 적도 있다. 당연히 빌려서 그 날이었나 그 다음날 다 읽었다. 다른 친구에게 추천했는데 재미없었다고 한다. 

이전에 사진으로 지하실 공간을 책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의 서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가슴 속에 그런 공간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런 공간을 좋아하는 짝을 만나기도 힘들고, 그런 공간을 만들만큼의 재력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책들을 보고 너무 많다고 버리라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요즘 e-북이 많이 나오는데 공간을 위해서 갈아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예전에 업무 시간 중 시간이 남아서 다운 받아보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손에 들고 읽는 맛이 아직은 좋다. 서점을 가면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다행인 것은 역시 돈 부족이다. 공간 부족이다. 이렇게 나의 책중독 이야기는 간략하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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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만 가지고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작가 우에무라 나오미란 이름도 낯설다.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이란 문구에서 왠지 모르게 자기계발서 분위기가 난다. 해제를 쓴 고도원이란 이름이 보이고, 작가에 대한 이력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이다. 12년만에 복간되었다는 소식과 북극권 12,000Km를 1년 2개월간 개썰매로 홀로 횡단하면서 남긴 일기라는 말에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내의 고독하고 힘든 기록에 빠져들었다.

제목에 나오는 안나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나오미가 이누이트 사람들에게 구입한 암캐다. 그 긴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였고, 무엇보다 선두에서 달린 암컷이다. 안나는 이누이트 말로 여자를 의미한다. 이 이름을 붙였을 때만 해도 안나는 작가에게 그렇게 큰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길고 얼어붙고 녹아내리고 아무도 없는 곳을 달릴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가 바로 안나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목적지 코츠뷰가 보였을 때 그런 말을 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에 안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따뜻하고 신뢰 가득한 미소로 그것을 직접 보여준다. 띠지에 나온 바로 그 사진이다.

1974년 12월 20일 야콥스하운에서 시작한 일정은 1976년 5월 8일 코츠뷰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무려 12,000Km다. 그냥 평범한 날씨에 평지를 다녀도 쉽지 않은 거리다. 그런데 북극의 추위와 눈과 고독과 싸우면서 가야 한다. 그것도 현대의 탈 것이 아닌 개썰매를 끌고 말이다. 그 시대는 지금처럼 GPS도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개가 끌다보니 그들이 지치거나 도망을 가면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냥을 해야 하거나 운 좋게 혹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만약 도착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힘겨운 여정을 그는 시작했다. 

1년 2개월의 긴 여정이다. 그 사이에 그의 생일이 두 번이나 지나갔다. 혼자와 개썰매를 이용했다는 것이 최초인데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개들이 있었고, 그가 지나온 곳에서는 친절한 이누이트 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그의 단독 횡단을 폄하할 수는 없다. 읽는 내내 그가 느낀 불안과 공포와 행복과 열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정도의 위기도 몇 번이나 지났다. 홀로 울기도 하고, 되돌아갈까 고민도 쉴 새 없이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불안과 두려움은 아침과 함께 사라졌다.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앞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이전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비록 그 이후 다른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실종되었지만 말이다.

문장은 사실 소박하다. 사실의 나열로 이루어졌다. 일기와 날씨와 그날 한 행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힌다. 전혀 화려한 수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간결한 문장으로 그것을 사실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빠졌을 때, 홀로 울 때, 돌아가고 싶을 때, 불안해 할 때, 공포를 느꼈을 때, 이누이트 족 등에게서 고마움을 느꼈을 때, 약간 긴장이 사라졌을 때, 개들을 심하게 다룰 때, 차마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못할 때, 자신이 느끼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개를 혹사했다고 느낄 때를 그는 그대로 표현했다. 이런 감정들이 단순함을 넘어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그가 북극권을 횡단하면서 만난 사람은 적지 않다. 사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의지와 용기와 열정과 도전 정신이다. 이누이트 족들마저 고개를 가로 흔드는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아무도 없고 죽음의 공포가 끝없이 다가오는 일정을 보낸 그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의 유혹을 견뎌낸 것도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쓰러져도 자신을 끝없이 일어세우는 그를 보면서 머릿속에서는 북극의 풍경을 계속 재생해본다. 힘겨워 쓰러지려고 할 때 그와 개들에게 힘을 준 불빛도 스쳐지나간다. 몇몇 장면에서 현대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결코 중요하지 않다. 평생 내가 도전하지 못할 일이지만 가슴 한 곳은 읽는 내내 그와 함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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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책이란 것만으로 선택했다. 이전에 읽은 책이라고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 산책>이 전부다. 이 책도 이번 책처럼 상당히 두툼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덕분에 그의 책은 대부분 구매해놓았다) 그때의 경험이 강렬했기에 이 책의 두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책은 두께에서 조금 얇을지 모르지만 한 쪽의 분량은 더 많다. 이런 구성은 요즘 같은 나의 집중력을 생각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한 쪽 한 쪽 넘기는 즐거움이 조금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박식함과 위트 있고 유머스러운 글에 푹 빠져 있었다. 

원제는 다. 아마도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책의 영향으로 원제와 다른 제목이 붙은 모양이다. 이것은 역자도 지적했듯이 ‘발칙한’이란 단어가 들어간 일련의 책 제목과 비슷한 선택이다. 물론 집에 관해 저자가 서술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제목이 다른 책의 아류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뭐 저자가 하나의 시리즈로 계속 이런 책을 낸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사생활. 사실 이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 속 서민 생활을 보아도 사생활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이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조그마한 집에서 가족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현실에서 사생활이란 것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거세어지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각자의 방을 하나씩 가지면서 이런 사생활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가족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너무 심하게 되면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게 되지만.

이 책은 집과 사생활의 짧은 역사란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시작은 집이다. 집이란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각각 차지하는 공간을 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이다. 다루고 있는 공간을 보면 홀, 부엌,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두꺼비집, 거실, 식당, 지하실, 복도, 집무실, 정원, 보라색 방, 계단, 침실, 화장실, 육아실, 다락 등이다. 단순히 목차만 보면 이런 공간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공간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왜 이런 공간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와 관련된 인물과 역사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하고 말이다. 

저자가 이런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의 역사가 대부분 거시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미시사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한 조그마한 반발이다. 뭐 그 시작은 집에서 흔히 보게 되는 소금병과 후추병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집구석에 앉아서 세계사를 쓰게 되는 셈이 된 것이다. 집안이란 공간 속에서 그 각각의 방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살펴보는데 “욕실은 위생학의 역사, 부엌은 요리의 역사, 침실은 성행위와 죽음과 잠의 역사” 같은 식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 하고 감탄했다.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진화를 거쳐 왔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황하게 하나의 공간을 역사 속에서 위트와 박학다식한 지식의 나열로 설명하는데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이란 역사와 동떨어진 대피소가 아니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란 말처럼 집과 역사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집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이다. 현재 우리들이 아파트에 열광하고 그토록 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과학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저자처럼 거창하게 역사를 끌고 와서 하나씩 풀어낼 수 있지만 그냥 고개만 돌려도 우리는 그 변화를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0평대 이상을 선호하고 그렇게 많이 지었는데 이제는 미분양과 매매의 단절이란 현실을 마주한다. 최근에는 베란다 확장이 유행하고 있고, 층간 소음은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누적되면 우리 시대의 삶을 역사 속에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불과 150년 사이에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국만 본다면 백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특히 물질적 풍요는 그 어느 시대보다 대단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절약이 하나의 덕목이자 생활이었는데 어느 순간 소비가 모든 것의 최우선으로 돌아섰다. 양말은 기워 신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구멍이 조금만 나도 버린다. 음식 쓰레기로 낭비되는 것도 엄청나고 편리라는 것을 위해 낭비되는 자원도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보면 우리 시대만 이런 낭비가 있은 것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역사 속에서 부자들이 보여준 낭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유행이란 것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들이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럭셔리에 열광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낭비하는 것이 이 시대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비록 그 시대는 소수의 부자와 귀족이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계급이나 부와 상관없이 벌어진다는 것이 차이다. 만약 집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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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아서 왕 연대기 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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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서 왕 연대기 3부작 중 2부다. 이제까지 읽은 버나드 콘웰의 소설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조금 아쉽다. 실망스럽지는 않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아마 이전에 읽은 작품들로 인해 나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과 이 책 읽기 전 다른 버전의 아서 왕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다른 책들 속 이미지가 떠올랐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결말로 가기 위한 단계다 보니 이벤트도 조금 부족했고, 그 무엇보다 조금 늦은 출간으로 1부의 흥분이 많이 가셨다.

전작 <윈터 킹>이 탄탄한 구성으로 색다른 아서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그 아서가 새롭게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느 부분은 예전 스타워즈 초기 3부작 중 2부가 받은 평가가 연상되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끝없이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과정이 약간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전편에서도 기존의 아서 왕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서약을 중시하고, 원칙을 따르며 평화를 바라는 그의 신념은 분명 시대를 초월했다. 그런데 이 초월이 문제다. 그 시대는 그가 외친 원칙과 서약과 왕의 질서로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기독교와의 충돌은 새로운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전작과 동일하게 데르벨의 회상 방식이다. 처참했던 러그 계곡 전투 이후부터 시작한다. 이 전투 후 데르벨의 지위는 높아지고 더욱 중요한 인물이 된다. 아서 왕 연대기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데르벨의 모험 이야기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서가 있다. 작가는 아서 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구성 대신 데르벨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아서의 중요성과 위대함은 기본으로 깔아놓고 그 주변 상황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종합적으로 그려내었다. 데르벨과 만나는 아서의 모습은 지금까지 읽고 본 아서와 다르고 이 다른 모습으로 인해 새로운 아서 왕 이야기가 가능하다. 

미신과 광기와 종교의 충돌이 발생하던 시기다. 특히 종교의 충돌은 이번 이야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희미한 어릴 때 기억에 의하면 아서 왕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번 연대기에서 아서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그의 세력 속에 있는 기독교를 인정할 뿐이다. 이런 차이가 조금은 낯설지만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초기 기독교의 광신적인 모습은 아서의 정의롭고 냉철하고 관대한 지도력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관대함과 지독한 원칙주의는 그를 위험으로 몰아넣었고 너무나도 순수했던 사랑은 배신으로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게 만든다. 이 때문에 그렇게 바라던 아서 왕이 탄생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도 아서 왕 전설 중 두 가지가 깨어진다. 그 하나는 그 유명한 원탁의 기사고, 다른 하나는 성배를 둘러싼 모험이다. 성배 전설은 드루이드의 솥과 연결되고, 이것을 찾기 위한 과정은 초반의 재미를 상당 부분 책임진다. 이 솥을 찾으러 가기 전 데르벨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이 낭만적인 사랑은 분명 그 시대에 맞지 않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시대를 뛰어넘은 사랑을 하는 두 남자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비록 이 두 남자의 사랑이 다른 모습과 결말로 이어지지만 말이다.

원탁의 기사. 성배보다 개인적으로 더 멋지고 낭만적인 이야기다. 전편에서 호수의 기사 란슬롯 이미지가 산산조각 났다면 이번에는 원탁의 기사다. 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 앉을 탁자를 만들려면 엄청난 나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아서 왕 이후 각색된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원탁의 기사란 말이 나올 때 아서는 왕도 아니었다. 물론 불분명한 아서 왕 기록을 참고한 것이다. 연대기 오기도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캐멀롯이란 지명도 12세기 이후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서 왕 전설은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하다.

콘웰은 소설 속에서 아서의 입을 빌려서 정치와 역사 왜곡 가능성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어차피 왕이란 거짓말로 사는 존재가 아니더냐? 거짓말 없이 다스릴 수 있는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왕의 명성을 쌓는 초석이 거짓말이니 당연한 노릇이지. 시인들에게 돈을 주고 비루한 승리를 위대한 업적으로 만들면서도 결국 이따금 그들이 불러주는 거짓말을 믿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526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서 왕 전설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되었다. 또 왕과 거짓말이란 부분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다른 것을 위해 그 거짓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그 누군가.

흥미 있고 재밌는 소설로 읽어도 좋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준다. 왕과 서약, 새로운 민족과의 투쟁, 고대 종교인 드루이드교와 기독교의 충돌, 수백 년이 흘러도 그 위대함이 변치 않는 로마의 건축물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할 수밖에 없는 개인, 미신과 저주와 마법의 세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피 튀는 전투와 사실적인 묘사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재미있고 만족스럽다. 이제 마지막 3부에서 왕으로 변한 아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데르벨의 손은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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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고 좀비 -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백상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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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사실 소설에서 좀비는 좀 낯설다. 그 낯설음은 좀비가 하나의 단위로 등장할 때 그 위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무리를 지어 덤빈다면 다르다. 대부분 좀비 영화나 소설이 종말론적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과 달리 좀비들이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더 많은 지역 때로는 전 세계로 확산된다. 살아있는 시체에 집중하는 작품도 보이지만 그 원인을 바이러스 때문으로 돌리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도 하나의 추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작품이 실려 있지는 않다. 모두 다섯 편이다. 대상작인 <섬>은 읽으면서 강풀의 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전개도 분명 다르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공간과 좀비라는 존재가 순간적으로 그 작품을 떠올렸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갇힌 아파트는 섬과 같다.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먹을 것을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거리를 걷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좀비처럼 분장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공포적인 분위기보다 왠지 모르게 경쾌한 느낌이 더 난다. 

<어둠의 맛>은 풍자적이다. 첫 좀비가 나오는 공간을 용산으로 잡았다. 세입자 중 한 사람이 시발점인데 그 시작이 가슴 아리다.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현실을 넘은 후 다시 현실 문제로 돌아온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종말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조금은 색다른 좀비가 등장하면서 강한 블랙코미디를 보여준다. 특히 좀비의 장점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살짝 끌린다. 역시 이 작품도 공포보다는 유쾌한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아픈 현실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잿빛 도시를 걷다>는 재미나 구성면에서 가장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외톨이로 살고 있던 그녀가 세상 변화를 모르는 것은 좋은데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왠지 앞부분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모성애와 새로운 좀비헌터들의 등장이 공포와 액션 모두 부족하게 느끼게 만든다. 잿빛 도시의 회색 빛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않으면서 공중에 그냥 뜬 듯하다. 예상하는 결말을 뒤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 오히려 그것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여기서 예상하는 결말은 나의 예상이다.

<도도 사피엔스>는 영화 이미지가 가득하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문용어를 비롯한 과학지식을 잘 녹여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점에 비해 아쉬운 것은 역시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긴장감 부족이다.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너무 무난한 전개다. 분량에 비해 이벤트가 부족한 것도 역시 아쉽다. 하지만 역시 잘만 다듬는다면 매끈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정 부분 할리우드의 분위기가 풍길 수 있지만 말이다. 진행의 가속도를 빠르게 올리고 공포를 더 강화한다면 장편으로 바뀌어도 부족함이 없다.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은 어느 날 좀비로 가득한 세상에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을 노래한다. 읽으면서 밀라 요보비치의 <레지던트 이블>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녀와 같은 강력한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생존자들의 노력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도 역시 생존의 제일 요건으로 즉각적인 살해로 규정하고 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기본 전제 조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공존이 아닌 파괴라는 전개가 왠지 조금은 씁쓸하다. 

제목은 종말을 맞이했을 때 소수자가 된 인간이 섬과 같은 곳에 갇히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섬은 또 성이자 유일한 생존의 터전이다. 이곳을 벗어났을 때 미래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희귀동물들을 격리 보호하는 것처럼 종말의 세계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가둔다. 아직 초기에 있는 한국 좀비 문학이다 보니 해외 작품과 비슷한 모습과 인용한 부분도 많이 보인다. 공포 쪽에서도 분명 주류는 아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작가들이 나온다면 가장 한국적인 좀비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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