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정년이 보장된 해양생물학 교수직을 그만 둔 후 남캘리포니아대학교(USC) 영화과에 입학했다. 말하기는 쉽지만 이런 안정된 직장과 직위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적지 않은 나이에 말이다. 그럼 왜 그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대중과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과학이 전문가와 과학자들끼리만 알아먹을 수 있는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님을 증명해주기를”(10쪽) 바라면서라고 말한다. 원제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말아요’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아주 가끔 과학서적을 읽는다. 거의 대부분 힘들게 읽었다. 저자들이 전혀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서평을 보면 알기 쉽고 명확하다는 평들이 많지만 실제 일반 독자에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정말 아주 가끔 보게 되는 과학 다큐는 더 심하다. 순간 집중은 하지만 그 집중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무조건 나에게서 찾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저자 탓을 해도 될 것 같다. 과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어려운지도.

부제를 보면 숫자가 흥미롭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숫자들과 그래프가 나열되면 경제학 전공인 나도 머리가 아프다. 전문용어나 약어가 남발할 때는 그 단어를 검색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 종사자나 극소수의 일부만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아주 쉽고 대중적인 과학 책을 쓴다면 어떨까? 아마 그를 뛰어난 과학자로 보지 않고 대중에 들러붙은 가벼운 과학자로 폄하할 것이다. 아니라고? 실제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줬던 칼 세이건의 사례로 알 수 있다. 연구 성과와 상관없이 그는 국립과학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그의 인기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례를 읽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 중 예전에 과학자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는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정부 용역 등을 하면서 점점 멀어졌다고 지적하는 대목을 보면서 놀란다.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과학 정보가 제공된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상업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다행인 것은 이 내용들은 비교적 쉽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발표가 돈이나 정지적 목적을 위해서란 것이다. 과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제대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낯익지 않는가. 불과 몇 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과학은 ‘아니다’에 핵심이 있다. “과학은 이미 정립된 요소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요소들을 걸러내는 학문”(185쪽)이라고 한다. 이런 특징은 그들을 비평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시선에서 과학을 설명하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나도 수없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리와 복부에 대한 그의 설명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삶과 업무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자기계발서나 커뮤니케이션 책이었다면 조금 지루했을 텐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잘 읽힌다. 그가 만든 영화가 어떤 반응을 가져왔고,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줄 때 과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대중과 호흡하는 과학자가 되길 바란다. ‘그런’ 과학자가 되지 말고. 지나가듯이 간결하게 설명한 곳에서 드러나는 의미심장한 내용들은 광고나 홍보 등에 적용해도 될 것 같다. 그보다 가장 먼저 나부터 바꾸고 적용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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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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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내 심장을 쏴라>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에 쓴 서평을 보니 앞부분에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아니다. 초반부터 강한 흡입력을 보여줬다. 열두 살의 소년이 자기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호기심을 불러오고, 성장한 현재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곧 왜 그의 아버지가 그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지, 그를 계속해서 쫓으면서 괴롭히는 사람이 누군지,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7년 전 밤으로 돌아간다.

소년의 아버지 최현수는 살인마로 불린다. 그는 7년 전 한 소녀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강에 던져 죽였다. 거기에 세령댐의 수문을 열어 아랫동네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가장 쉽게 이유를 찾는다면 단순히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살인마로 충분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고 분명해 보이는 그 사건 뒤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찾아서 한 편의 소설로 만드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소년을 거둬 키운 아저씨 안승환이다. 이 아저씨는 그 당시 소년의 룸메이트였고,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그 사건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어린 소년이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친족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받아들이고, 소년 주변으로 계속 선데이매거진이 와서 그와 주변을 뒤흔들 때 같이 옮겨 다닌 사람도 바로 그다. 그의 소설을 통해 소년은 그 날 밤 일어난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간다.

승환은 세령댐 보안팀원이다. 새로운 보안팀장으로 최현수가 온다. 최현수는 전직 프로야구선수다. 아마추어 시절 대단한 경력을 보여줬지만 프로에서는 2군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야구선수로만 지냈으니 그가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있다면 190이 넘는 건장한 체격 정도랄까. 야구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그에게 악바리 같은 아내 은주가 있다. 그녀의 과거사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술집 작부 출신의 엄마와 그 밑에 주렁주렁 달린 동생들이 있었다. 그 삶을 벗어나려고 달아났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한 그녀다. 그런 그녀가 동생 대신 나간 소개팅에서 현수를 만났고, 아들 서원을 낳았다. 성공한 프로야구선수 아내였다면 인생이 바뀌었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평탄할 리 없다. 덕분에 그녀는 악바리 같이 돈을 모으고 대가 더 센 여자가 된다.

현수가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데는 용팔이로 불리는 왼팔 신경 질환이 있다. 선수시절 부상과 심리적 요인이 겹쳐서 만들어낸 병이다. 선수를 그만 둔 그가 하는 것은 야구 구경과 술 마시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하나 더 꼽는다면 아들 서원이와 놀아주는 것 정도. 이런 그가 아내의 자기 집 갖기 계획에 의해 사택이 있는 세령댐으로 발령이 난다. 사택을 찾아가던 중 그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은 음주운전에 한 소녀를 차로 친 것이다. 무면허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면 소녀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아직 죽지 않은 소녀를 죽인다. 그리고 세령댐에 그녀를 버린다. 뺑소니가 살인으로 변하는 순간이자 그의 삶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다.

그날 죽은 소녀의 이름은 세령이다. 그 마을 지주이자 치과의사인 오영제의 딸이다. 늦은 밤 그녀가 차에 치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아버지 영제의 폭력이다. 영제는 자신의 폭력을 교정이라 부른다. 이 폭력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에 맞지 않으면 교정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아내가 그의 폭력에 못 이겨 도망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딸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어린 딸은 아버지의 폭력에 무참하게 노출된다. 한 번은 승환의 도움으로 병원에 가지만 늘 그렇듯이 지주의 위력과 가족문제는 다른 사람이 참견하기 쉽지 않다. 그 날 밤도 이런 교정을 피하던 중에 발생했다.

이런 상황들을 하나씩 객관적으로 관철하는 인물이 있다. 승환이다. 그의 이력도 평범하지 않다. 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문학에 뜻을 둔 청년이다. 가족을 보면 그의 삶이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력과 더불어 세령과 연결된 사건은 단순한 관찰자로만 머무르지 않게 만든다. 뺑소니와 살인의 피해자인 세령의 시체를 수중에서 만난 인물이자 현수와 영제의 현재를 가장 가까이서 본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령의 죽음에 대해 처음에는 영제를 의심하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이나 분위기가 예상과 다르다. 영제가 승환에서 현수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그도 같이 움직이는데 이 과정을 그는 심리 묘사로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면을 말이다.

7년 전의 밤은 두 가족과 한 사내의 파멸을 담고 있다. 거기에 하나의 수수께끼로 품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달려가면서 그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한다. 이런 설정과 전개 때문에 한 편의 추리소설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이 나온다. 딸 세령을 죽인 범인을 추리하고, 그를 위해 복수를 준비하는 영제의 치밀하고 잔혹한 행동은 섬뜩할 정도다. 또 이 두 가족이 지닌 불안정과 위태로움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폭발한다.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현수의 노력이나 이것을 용서할 수 없는 영제 모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의 뒤틀린 과거사와 삶이 이것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묵직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주는 이 소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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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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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은 <인사이트 밀>의 작가다. 이 작가의 소설은 모두 다섯 권이 번역되었는데 대부분 가지고 있다. 사놓고 읽지 않은 것은 책 욕심에 사놓은 책들 밑으로 깔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점점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을 사는 것은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는데 그래도 집은 이미 책으로 가득하다. 신간 위주로 많이 읽는데 사는 즉시 읽지 않으면 점점 더 뒤로 밀린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갑자기 약속이 깨지면서 이 책을 빼서 읽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읽은 작품이 <소녀지옥>이었다. 그 기괴함을 단숨에 털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소녀지옥>에서 받은 무거운 느낌이 이 소설에서 단숨에 날아갔다. 왠지 무지 가볍게 읽히기 시작했다. 문장과 상황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간단한 책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부정확한 기억도 상당히 많았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다섯 단편 소설을 찾는 인물이 요시미츠가 아니라 그 단편을 쓴 작가의 딸 키타자토 카나코라는 것이다. 헌책방에서 일하며 그녀의 바람을 도와주는 요시미츠가 돈을 목적으로 이 다섯 단편을 쫓기 시작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착오다. 하지만 이런 착각이나 착오가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요시미츠는 휴학생이다. 집안에 문제가 생겨 큰아버지 고서점에 얹혀산다. 당연히 고서점을 일을 돕는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전날 매입한 코노 주조의 장서 중 잡지 한 권을 구입하려고 온다. 20년쯤 전에 발행한 동인지다. 동인지 전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카노 코쿠뱌쿠란 필명으로 짧은 소설이 실린 호만 사고자 한다. 가격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한다. 주인이 아닌 상태에서 즉시 답할 수 없다.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말하고 돌려보낸다. 책을 찾아 혹시 그 가치를 놓친 부분이 있나 하고 큰아버지에게 상의한다. 그런데 특별한 가치가 없다고 하며 천 엔을 부른다. 다음 날 그녀에게 연락을 하여 이 책을 건내준다. 그 사이에 그녀가 찾던 작가의 단편을 복사해놓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해주고 왜 그녀가 이 책을 찾게 되는지 이유를 듣는다. 그것은 이 작가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작품이란 것이다. 

이 잡지를 받은 후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다른 소설들도 찾기를 원한다. 요시미츠에게 그 소설들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한 편 찾을 때마다 10만 엔이란 적지 않은 금액을 내걸고 말이다. 자신의 독립을 위해 그는 큰아버지에게 알리지 않고 나머지 단편소설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조각들만 보여준다.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내는 것은 뒤에 가서다. 다섯 편의 리들 스토리를 통해 과거를 새롭게 인식하고 추론하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의미 없을 것 같았던 다섯 편의 단편들이 거대한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앞으로 나온다.

리들 스토리는 열린 결말을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결말이 바뀔 수 있다. 요시미츠가 처음 찾아낸 <기적의 소녀>도 한 문장으로 완전히 다른 결말이 가능하다. 이런 소설을 다섯 편이나 남겼는데 그 작품들이 특별하게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나코는 아버지가 남긴 기록 속에서 마지막 문장을 발견하고 열린 결말의 정답을 보게 된다. 문제를 모르니 그 정답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문제를 찾고자 요시미츠에게 부탁한 것이다. 처음에는 요시미츠도 돈에 눈이 멀었지만 그 단편들을 찾고, 읽고, 관계자를 만나고 조사하면서 한 작가의 단순한 창작활동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기본 줄거리는 카나코의 의뢰에 의해 단편 소설을 찾는 것이지만 실제 그 뒤에 숨겨진 의미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진실 찾기다. 리들 스토리를 통해 과거 사건을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놓았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가 남긴 답이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이 소설도 하나의 큰 리들 스토리임을 알린다. 제목처럼 단편 소설을 통해 진실을 찾아간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신선하고, 이런 상황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요시미츠에게 매력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요시미츠의 고서점 탐정 역할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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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지옥 이타카
유메노 큐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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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미스터리 3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 작품집이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3대 기서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읽어야지 마음먹었는데 막상 책을 구하고 나니 조금 시들해졌다. 아마 단숨에 읽을 수 없다는 것과 기서라는 것이 꺼려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 모양이다. 쉽게 구할 수 없을 때 그렇게 갈구했는데 손에 들어오니 순식간에 그 감정이 식은 것이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리스트에 굉장히 집착했다. 그 리스트에 올라온 작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읽으려고 했고, 몇 권 출간되지 바로 읽었다. 하지만 취향을 많이 타면서 아쉬움을 많이 주었다. 이런 경험도 조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단편집이 나왔을 때 역시 강한 욕망이 생겼다. 다른 한 편으론 기서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머리 한 곳에서 울렸다. 혹시 읽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데 이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잘 읽혔기 때문이다. <소녀지옥> 3부작은 특히 그랬다. 읽으면서 살짝 <도구라 마구라>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감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 사라진 것은 이 단편집을 읽고 난 후 읽은 다른 소설 때문이다. 두 작품이 너무나도 분위기와 전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뒤에 읽은 소설이 더 쉽게 읽혔다.

목차를 보면서 <소녀지옥> 아래에 나와 있는 제목들이 중편 소설의 각 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각각 다른 단편임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은 히메구사 유리코라는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비인후과 의사 우스키 도시히라가 그녀의 자살 소식을 그녀가 거짓말의 대상으로 삼은 규슈 제국대학 시라타카 히데마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작한다. 먼저 이 소식을 전해주러 온 남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녀가 예전에 어떤 거짓말을 하였고, 기괴했는지 보여준다. 사실 그녀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너무 뻔한 것 같았다.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고 그녀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가 간호사로서 보여준 재능을 생각하면 관련 인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거짓말 재능을 남용하면서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볼 정도다.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혹시 그녀의 자살도 거짓 정보가 아닐까 의심해본다.

<살인릴레이>는 지금은 사라진 여차장 이야기다. 역시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자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운전사 니타카를 둘러싼 여차장들의 이야기다. 그에 대한 평은 ‘도쿄 운전기사 중에서 제일 사내답고, 제일 평판 나쁜 사람’이다. 나쁜 소문들은 수많은 여차장을 꾀어내 내연 관계를 가지고 사귀다 질리면 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그와 사귄다. 사귄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빠지고, 무장해제 당한다. 복수를 다짐했던 여자마저도 그렇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들이 나올 때 거부감이 생긴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너무 남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화성의 여자>는 제목만 보면 sf소설 같다. 하지만 내용은 성인군자로 알려진 여고 교장의 허울을 벗겨내고,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을 하나씩 보여준다. 여고 창고에서 난 화재 사건과 그곳에서 발견된 여자 시체를 신문기사를 통해 알리면서 시작한다. 편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의 소설과 다르다 생각하는데 곧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편지가 등장한다. 우리의 고등학교 현실과 너무나도 닮은 꼴에 놀란다. 거기에 화성의 여자로 불렸던 한 소녀 이야기가 가슴 아리게 만든다. 탁월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 당했던 그녀가. 교장의 겁탈과 버릇 같은 중얼거림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여자 취급 받지 못한 그녀가 갑작스런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한 편의 복수극이란 점에서 통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이런 감정 변화 때문이다. 

<동정>은 한 폐병환자가 자신을 이용한 여자에게 매혹되었다가 그 환상이 깨어지는 이야기고, <여갱주>는 너무 뻔한 결말이 보여 조금 시시했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은 마지막에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보다 예상했던 끔찍한 살인과 그럼에도 매혹된 남자의 행동이 강한 여운을 준다. 이 세 편은 사실 앞에 나온 <소녀지옥> 3부작에 비해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3부작이 지옥이란 어떤 것일까 떠올려주고, 편지를 통해 사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결과를 먼저 보여준 후 ‘왜’와 ‘어떻게’를 풀어가는 방식이 뛰어나서 강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사견 때문인지 모르지만 여자의 감성과 행동 심리를 그려낸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생각 이상으로 잘 읽히지만 읽다보면 그 기묘하고 기괴한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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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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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 또는 리만 제타 추측은 1859년 베른하르트 리만이 처음으로 형식화한 것으로 수학사에서 모든 미해결 문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문제의 하나다.(위키백과)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내건 상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가끔 수학자를 다룬 책에서 몇 개의 가설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골드바흐의 추측>이란 책을 통해서 이런 미해결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수학자의 노력을 보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런 수학자의 노력을 다룬 것이 아니다. 수학자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 교수가 리만 평전을 쓰려고 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대학 수학교수란 것도 내가 볼 때 결코 평범하지 않은데 그 학계에서는 그냥 평범한 모양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 그가 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딱 대학 교수에 멈춰있다. 이런 정체된 삶에 돌파구로 구상한 것이 리만 평전 프로젝트다. 그는 ‘평전을 집필하는 것은 그 인물이 남긴 주요 업적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채로 걸러서 보여주는 일’(9쪽)이라고 말한다. 사실 리만 가설이란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리만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가 현대 수학이나 물리학에 끼친 영향도 몰랐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티리에 라이너트 후세 교수는 2005년 5월 9일에 대학교수실에서 사라진 후 행방불명이다. 소설은 실종 나흘 후 딸이 아버지의 기록을 경찰에 가져오면서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은 아버지의 일기부터다. 그 일기를 통해 후세 교수의 숨겨진 삶이 드러난다. 그가 왜 글쓰기를 배웠고, 리만 평전 프로젝트를 위해 어떤 연구와 조사를 하는지, 숨겨진 여자와의 관계까지 말이다. 이런 과정을 일기를 통해 보여주는데 리만과 자신의 이야기가 살짝 겹치는 부분들이 나온다.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그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병행하거나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리만의 삶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밝혀지는 그 시대의 수학계 풍경과 그의 수학이 현대 물리학 등에 끼친 영향이 후세 교수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와 나란히 진행된다면 리만과 화자의 삶이 과거와 현재 속에서 교차한다. 힘든 삶을 산 리만이 훌륭한 업적에 비해 충분한 여유를 누리지 못한 반면 화자는 업적에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산다. 천재의 과거를 쫓는 평범한(?) 작가란 설정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리만보다 자신의 삶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리만 평전은 프로젝트고 그의 새로운 사랑은 삶인 것이다.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후세 교수의 비밀스런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리만 평전 프로젝트를 위해 가입한 글쓰기 강의에서 새로운 여자 잉빌드를 만난다. 이 둘은 각각 가정이 있지만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사랑은 십대의 그것과 비슷하다. 사랑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사랑만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화자의 삶 속에는 그의 과거 추억과 기억과 가족들이 있다. 아무리 새로운 연인을 사랑한다고 해도 현재의 안락한 가정을 무너트리기는 싫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없는 약속과 회의를 만들어 그들은 만난다. 뜨거운 열정에 불타지만 그들은 성인이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킨다. 이 부분은 십대와 다르다.

천재 수학자 리만 평전이라는 기본 설정에 화자의 삶을 덧붙였다. 중간중간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특히 가우스. 아쉬운 것은 수학에 대한 지식이 고3 이후로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다. 물론 리만 가설을 풀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때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소설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은 더 높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저자는 리만의 비밀스런 삶을 일기 속에서 보여주는 동시 화자의 미스터리한 실종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게 만든다. 조금 가볍고 빠르게 읽으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읽을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조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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