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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와 추리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결합이다. 이 소설의 배경도 프랑스 대혁명 후 루이 16세의 아이 중 루이 샤를이 죽은 사실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 후 새로운 왕이 된 루이 18세가 다스리던 왕정복고 시절의 1818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이 샤를이 과연 죽었는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실제 누군가, 그를 죽이려는 사람은 누군가 등이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실존인물이자 수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모델로 삼은 비도크다. 여기에 엑토르 카르팡티에가 화자로 등장하여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자를 19세기 초 프랑스로 데리고 간다.
이야기는 회상 형식이다. 현재 그는 성병학 전공 교수다. 그 유명한 비도크와 함께 몇 주 보냈을 뿐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다음 왕위 계승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음 왕위 계승자를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엑토르의 불행했던 연애사를 짧게 말한 후 늘 보던 부랑자 바르두와 만난 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바르두가 아니다. 그를 따라 와서 집안까지 들어온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온갖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비도크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시체에게서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험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죽은 시체의 이름은 크레티앵 르블랑이다. 엑토르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인물이다. 악명 높고 능력 있는 비도크가 쪽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도크와 엑토르와의 첫 만남도 그렇지만 이후 보여주는 비도크의 변장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이 뛰어난 변장술은 현대 탐정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그는 변장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조사 능력은 더 탁월하다.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상대와 주변을 조사하고 탐문하는 기술은 그 시대를 뛰어넘었다. 이런 능력이 엑토르에게 오게 만들었고, 완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에 그를 곁에 둔다. 하지만 뒤로 가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엑토르 부자의 이름이 똑같고, 아버지가 과거에 한 일이 무지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일은 소설 속에서 일기 형식으로 나오는데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을 해소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화자의 아버지가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한 일은 루이 16세의 아들 루이 샤를을 돌보던 것이다. 부모가 왕이었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게 그는 검은 탑에 갇혔다. 단순히 죄수로만 있은 것이 아니라 성적 학대까지 당한 모양이다. 여기에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충분한 식사도 하지 못하면서 건강에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아버지 엑토르가 의사로서 탑에 간 것이다. 그가 남긴 일기는 바로 이 치료 과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인 루이 샤를의 생존을 담고 있다. 만약 혁명 정부가 공표한 루이 샤를의 죽음이 가짜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말이다.
모든 음모에는 배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이 배후를 끝까지 숨긴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엑토르와 비도크가 엉성한 콤비가 되어 이 배후를 쫓는 것이 기본 줄거리라면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은 아주 훌륭한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경찰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비도크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충분히 작가가 이런 상황을 현대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인내력을 발휘한다. 나만의 착각일까?
역사소설이란 시대 배경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차분히 읽게 되면 현대물과 다른 재미를 준다. 하나씩 의문을 풀고, 그 사이사이에 단서가 나오는데 엑토르는 그 정보를 혼자만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정보 공유를 통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중간에 생긱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물론 이것을 위해 책 중간에 단서를 하나 살짝 흘려놓았다. 모두 읽은 후 이 단서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기대한 속도감은 없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비도크란 존재만으로 만족스럽다. 혹시 다음에도 비도크가 나올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