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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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으로 원론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그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출발한다. 그는 클라우제비츠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전쟁론>에는 풀어야 하는 암호문이 있다고 말한다. 암호라는 단어에 순간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저자는 놀라운 작업을 보여준다. 그것은 47장의 분쟁지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15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데 놀라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분쟁지도는 전 세계의 분쟁을 연도별로 지도 위에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많은 나라가 한 해도 빠짐없이 분란을 겪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분쟁지도이기도 하다.

왜 전쟁을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욕심 때문이다. 개인의 욕심들이 모인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나의 욕심이 다른 사람들의 욕심과 충돌한다고 전쟁이 일어날까?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극단의 상황인 전쟁 전에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을 해독한 최후의 답으로 ‘개인적 의지’를 꼽는다. 물론 이 개인적 의지는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란 것이다. 맞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가와 군인이다. 그렇다면 이 손가락을 조종하는 것은 누굴까?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무시하고 있다. 

손가락을 움직인 주체는 누군가에 대한 것은 논외로 하고 저자가 말하는 정치가와 군인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을 위해 먼저 재래식 전쟁 무기와 화학무기 및 핵무기 등의 새로운 전쟁 무기와 어둠 속에서 세계를 움직였던 두 거대 조직 CIA, KGB 등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두 조직이 전 세계를 무대로 어떤 음모와 분쟁을 일으켰는지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유명한 이야기 속에서도 알지 못했던 몇 가지가 나와 다시 한 번 더 놀란다. 이 책이 출간된 연도를 생각하면 이런 사살을 몰랐다는 것에 내가 오히려 놀랄 정도다. 

CIA나 KGB의 음모 외에도 놀랐던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생화학무기하면 먼저 베트남 고엽제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사용되었다. 그 원천 자료는 그 유명한 731 부대의 것이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관동군 마지막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가 731부대의 실험을 자백하자 미군 측에서 이 증언을 부정했다. 뭔가 더러운 뒷거래가 있은 것이다. 이런 무기를 가진 자라면 당연히 사용하려고 할 것이고 한국전쟁에서 이 무기가 사용되었다. 이 논리 구조가 바로 저자가 말한 개인적 의지의 일부란 것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갖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전쟁이란, 나의 의지 달성을 적에게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실력행사이다.” (220쪽) 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와 전쟁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정치와 같은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이 때문에 개인적 의지가 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전으로 <전쟁론>을 선택했고, 이 고전이 끼친 영향력을 역사상 유명인물로 하다 보니 이런 개인적 의지는 더 부각된다. 일정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전이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히틀러 등에게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개인적 의지의 총합이 전쟁이라면 어떨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개인적 의지의 총합을 이루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저자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요인들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이 깊이까지 파고들지 않은 것은 사실 안타깝다. 저자가 전쟁을 왜 하는가에 대해 답을 낸 것에 일부분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저자는 분쟁지도를 만들면서 전쟁과 분쟁을 같이 표시했다. 의지의 충돌이란 측면에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분쟁과 전쟁은 분명 다르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분쟁으로 표기한 부분과 일본의 그 극렬했던 전공투를 생략한 부분은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의문이 생긴다. 클라우제비츠에 대한 평가도 앞과 뒤가 다른데 솔직히 너무 급변했기에 놀랐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느낌이랄까? 아니면 잘못 이해한 것인가? 이런 의문과 부분 동의에도 불구하고 47장의 분쟁지도와 새로운 정보들과 분석은 충분히 읽을 가치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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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우리문고 23
마커스 주삭 지음, 정미영 옮김 / 우리교육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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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형제가 개 경주장에 온다. 이 둘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처음에는 그냥 미성년자 정도로만 알려준다. 이 둘은 자신들이 가진 10달러를 개 경주에 걸려고 한다. 미성년자이기에 배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주변을 살피면서 자신들 대신 내기할 어른을 찾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에게 부탁한다. 만약 그들이 배팅한 개가 우승하더라도 돈을 떼먹지 않을 사람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에피소드를 통해 루벤과 카메론 울프 두 형제의 성격을 살짝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 울프 가족의 비루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는 삶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다.

사라 누나가 술에 취해 들어왔을 때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가는 사람은 카메론이다. 그녀가 그를 보고 아빠라고 잘못 말하지만 그 속에는 강한 자기혐오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왜 그녀는 이렇게 망가진 채로 집에 들어왔을까? 작가는 이 가족이 처한 현실을 하나씩 보여준다. 아버지의 사고와 실직으로 인해 가정 경제가 파탄난다. 실업급여 신청을 거부하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한다. 집으로 수없이 날아오는 영수증들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큰 형이 부모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이 완고한 부모는 거부한다. 민감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두 형제에게 누나와 아버지에 대한 나쁜 소문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누나를 무시하는 놈에게는 더욱.

형 루벤은 잘 생겼고 몸도 좋고 싸움도 잘 한다. 이런 소문을 들은 불법 권투 흥행사 페리가 찾아온다. 그의 조건은 싸워 이기면 50불은 받고, 져도 관중이 던져주는 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합 중 사고가 나도 이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이 제안을 받았을 때 형은 동생도 좋은 선수라고 말하며 같이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두 형제는 페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이 늘 하던 한 손 권투를 보여준다. 동생도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두 형제가 이 불법 권투 경기에 참여할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한다. 이미 형은 마음속으로 참여로 결정한 상태다. 이렇게 두 형제는 라운드에 올라가게 된다.

소설은 시종일관되게 카메론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그는 루벤 형을 동경하고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멋진 외모와 뛰어난 권투 실력은 시합장에서 그를 스타로 만들었고, 그 주변에는 멋지고 예쁜 여자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링 위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강렬한 의지다. 그가 첫 시합에서 공포에 질려 도망만 다닌 반면 형은 얼마나 멋지게 상대를 KO시켰던가. 타고난 신체 조건이 탁월하지 못한 그가 시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사뭇 안쓰럽다. 그렇지만 점점 싸우면서 용기를 얻고 앞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모습이다. 그가 쓰러져도 일어나야 했던 것과 아버지의 삶과 연결시켜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지독한 가난과 힘겨움 속에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버지가 이 말을 할 때 숙연해진다.

이 소설이 단순히 링 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영리하게 왜 이 두 형제가 이런 불법 권투 시합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 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이 시합으로 얻게 되는 돈들은 부모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등과 같은 의문을 품게 만들고 가족애를 느끼고 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두 형제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부모를 돕자는 마음이 있었지만 실제 이 시합을 통해 두 형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과 자긍심과 용기 등이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용감하고 저돌적이었던 형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두려움을 보았을 때 같이 본 것은 역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형과 부모의 모습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삶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넘어져도 계속 일어나야하고 일어날 때 그들 앞에 미래가 열린다.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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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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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처유상수. 정말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말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매번 만나게 되는 상수(上手)들은 나를 채찍질한다. 운동 좀 한다고 느끼는 순간, 책 좀 읽는다 하는 순간, 일 좀 안다고 하는 순간, 책 좀 가지고 있다고 하는 순간, 말 좀 한다고 하는 순간, 운전 좀 한다고 하는 순간. 거의 모든 순간마다 상수들을 만났다. 그런데 더 나를 채찍질하는 것은 이런 상수들도 그보다 더한 상수를 만난다는 것이다. 과히 천외천(天外天)의 세상이다.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면서 문화유산답사 상수의 글에 빠져들었다.

이 답사기가 다룬 첫 번째 장소는 경복궁이다. 서울에 살면서 수차례 갔지만 솔직하게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다. 몇몇 곳이 지금도 인상에 남아 있지만 그곳에 얼마나 멋지고 과학적이고 의미 있는 곳인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갔을 때는 한창 공사를 하던 중이라 지금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회루의 모습과 궁전에서 보았던 굴뚝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다. 굴뚝의 경우는 왕궁에도 굴뚝이 이렇게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것 같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화려한 궁궐이나 나무나 화계 등이 아니라 박석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밟고 지나갔던 그곳이 이제 경복궁에 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아마도 최근에 콘크리트나 시멘트 길만 걷다보니 이런 바닥에 더 정감이 가는가 보다.

순천 선암사 이야기는 내가 잊고 있던 가을 들판의 아름다움과 예전에 잠깐 느꼈던 절을 걸어 올라가면서 느끼는 싱그러움과 여유를 깨닫게 했다. 사실 유물에 대해 저자가 아무리 잘 설명해주어도 나의 감성과 깨달음이 단숨에 그것을 알 정도는 아니다. 다만 새롭게 그곳을 보고 좀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달성 도동서원은 이전에 갔던 안동 하회마을 근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서원을 떠올려주었다. 그냥 갔다가 그 서원의 아름다움과 풍경에 반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창과 합천의 답사기는 매번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갔던 길이기에 좀더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창 차를 몰고 다닐 때 이 정보를 알았다면 잠시나마 둘러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화강암 예찬인데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부여, 논산, 보령 편에 오게 되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을 만나게 된다. 그중 돌담길은 아련한 기억 속에서 갑자기 불쑥 치솟는다. 여행을 갈 때 조그만 길이나 골목을 보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어진다.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흙과 돌로 만든 벽이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풍경과 한 데 어우러져 떠오른다. 추억을 넘어 현실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역시 저자의 휴휴당이다. 그 멋진 집과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에피소드들이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부여에 대한 멸망 이미지를 바꿀 의견을 읽으면서 시대와 유적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은 조금 낯익은데 그것은 친구의 눈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서 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갔거나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한 곳들이나 유적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히 가슴에 와 닿은 말은 개발이 파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들이다. 편함에 익숙해지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잃은 현실의 나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여행이 목적지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속도에 열을 올리고 가는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즐거움을 잊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설악산을 갈 때도 터널을 통과해 목적지에 빨리 갈 생각을 했지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가면서 만날 내설악의 아름다운 풍경은 그냥 무시했다. 그러면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경치가 아름답고 멋있다고 감탄했다. 회사 워크숍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되지만 그만큼 나의 감성이 무디어졌고 여유를 잃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수의 안내에 따라 혹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가는 길에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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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디 아더스 The Others 7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푸른숲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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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잔잔한 소설이다. 사실 원작 소설보다 영화 정보로 먼저 만났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일요일 영화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 줄거리를 보았다. 압축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 특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헬싱키라는 조금은 낯선 도시에서 일본인이 식당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 그랬다. 호기심과 잔잔함이 조용히 흐르는 화면을 보고 영화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처럼 그냥 잊고 있었다. 그러다 인터넷 서점 신간정보에서 이 책을 보았다. 영화의 원작이란 느낌보다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 아닌가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소설이 먼저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었고, 분량도 부담이 없어 손에 쥐고 읽기 시작했다.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이다. 한쪽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데 좀 촘촘하게 구성하면 반으로 줄일 수 있을 정도다. 조금 긴 중편소설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분량은 그렇지만 이 소설의 재미와 여운은 그것을 능가한다.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읽으면서 행간과 사람들 사이의 여유를 즐기게 된다.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개성이 없는 듯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공감하게 만들고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거기에 이 조그마한 식당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카모메는 일본어로 갈매기다. 이 식당 주인 사치에는 헬싱키 사람들이 볼 때 아이 같은 외모를 가졌다.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착각이다.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문을 연 후 사치에의 과거로 이야기는 바뀐다. 처음 상상할 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어 이런 외진 유럽으로 왔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 이야기와 음식에 대한 열정을 보다 보면 지독하게 현실적인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중간에 운이 많이 작용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강한 울림을 준 것은 사치에 아버지의 오니기리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말하고,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란 문장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평소 식사 준비도 사치에가 한다. 그런 그가 아이를 위해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 오니기리다. 소풍 갈 때 만들어준다. 그녀가 헬싱키로 떠난다고 말한 다음 날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것도 바로 오니기리다. 이 소설에서 이 음식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사치에가 오니기리를 헬싱키 사람들에게 계속 권장하는 것도 이런 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식당에 손님도 제대로 없는 곳에 찾아온 한 독수리5형제 마니아 토미는 사치에의 유일한 헬싱키 친구다. 그는 매일 이 식당에 와서 공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치에와 간단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 그가 집착한 것은 독수리5형제 주제가다. 낯선 나라의 낯선 외국어로 이 주제가를 부르는데 정보 부재 때문에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낯선 헬싱키에서 사치에에게 부담없이 다가온 첫 번째 친구다. 또 이 친구 때문에 미도리를 만나게 된다. 독수리5형제 주제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을 찾는 중에 그녀를 만난 것이다. 그녀도 결코 어리지 않다. 그녀의 삶을 요약한 글을 읽다보면 너무 무미건조하다. 굴곡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이가 든 것이다. 그녀가 헬싱키에 오게 된 사연도 황당하다. 그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눈을 감고 지도에서 아무 곳이나 찍어 선택한 곳이다. 이렇게 만난 두 여자가 같이 식당을 운영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여자가 있다. 마사코다. 그녀는 비행기 화물이 분실되는 바람에 생각하지도 못한 방황을 한다. 낯선 도시에서 사치에는 좋은 안식처였을 것이다. 거의 매일 카모메 식당으로 오가는데 그러다가 그녀도 이 식당에 참여한다. 그녀는 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 이 나라를 선택한 이유가 어쩌다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다. 필란드의 조금 이상한 경연대회에 반한 것이다. 작가는 간략한 요약으로 그녀의 삶을 정리하는데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또 다르게 보면 특별하다. 개인의 삶이란 경험과 개인의 차이가 심한 것이니까. 조금 바빠진 카고메 식당에 그녀가 한 손 거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 속에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 어떤 과장도 화려한 수식도 없다. 세밀하게 장면을 묘사하지도 않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여백을 최대한 만들고,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사치에가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만한 가게를 만들고 싶어.“라고 말한 것과 닮아 있다. 점점 조미료 가득한 음식을 먹고,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들이 많아지는 요즘 기분 좋게 소설 한 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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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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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추리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결합이다. 이 소설의 배경도 프랑스 대혁명 후 루이 16세의 아이 중 루이 샤를이 죽은 사실과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 후 새로운 왕이 된 루이 18세가 다스리던 왕정복고 시절의 1818년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이 샤를이 과연 죽었는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실제 누군가, 그를 죽이려는 사람은 누군가 등이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은 실존인물이자 수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모델로 삼은 비도크다. 여기에 엑토르 카르팡티에가 화자로 등장하여 회상하는 형식으로 그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자를 19세기 초 프랑스로 데리고 간다. 

이야기는 회상 형식이다. 현재 그는 성병학 전공 교수다. 그 유명한 비도크와 함께 몇 주 보냈을 뿐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은 다음 왕위 계승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음 왕위 계승자를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엑토르의 불행했던 연애사를 짧게 말한 후 늘 보던 부랑자 바르두와 만난 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바르두가 아니다. 그를 따라 와서 집안까지 들어온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온갖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비도크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죽은 시체에게서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험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죽은 시체의 이름은 크레티앵 르블랑이다. 엑토르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인물이다. 악명 높고 능력 있는 비도크가 쪽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도크와 엑토르와의 첫 만남도 그렇지만 이후 보여주는 비도크의 변장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이 뛰어난 변장술은 현대 탐정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다. 그는 변장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조사 능력은 더 탁월하다.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상대와 주변을 조사하고 탐문하는 기술은 그 시대를 뛰어넘었다. 이런 능력이 엑토르에게 오게 만들었고, 완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에 그를 곁에 둔다. 하지만 뒤로 가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엑토르 부자의 이름이 똑같고, 아버지가 과거에 한 일이 무지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일은 소설 속에서 일기 형식으로 나오는데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을 해소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화자의 아버지가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한 일은 루이 16세의 아들 루이 샤를을 돌보던 것이다. 부모가 왕이었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게 그는 검은 탑에 갇혔다. 단순히 죄수로만 있은 것이 아니라 성적 학대까지 당한 모양이다. 여기에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하고, 충분한 식사도 하지 못하면서 건강에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아버지 엑토르가 의사로서 탑에 간 것이다. 그가 남긴 일기는 바로 이 치료 과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인 루이 샤를의 생존을 담고 있다. 만약 혁명 정부가 공표한 루이 샤를의 죽음이 가짜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말이다.

모든 음모에는 배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이 배후를 끝까지 숨긴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보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엑토르와 비도크가 엉성한 콤비가 되어 이 배후를 쫓는 것이 기본 줄거리라면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은 아주 훌륭한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경찰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비도크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충분히 작가가 이런 상황을 현대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인내력을 발휘한다. 나만의 착각일까?

역사소설이란 시대 배경에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차분히 읽게 되면 현대물과 다른 재미를 준다. 하나씩 의문을 풀고, 그 사이사이에 단서가 나오는데 엑토르는 그 정보를 혼자만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정보 공유를 통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은 사실이다. 덕분에 혹시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중간에 생긱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물론 이것을 위해 책 중간에 단서를 하나 살짝 흘려놓았다. 모두 읽은 후 이 단서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기대한 속도감은 없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비도크란 존재만으로 만족스럽다. 혹시 다음에도 비도크가 나올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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