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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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를 생각하면 그의 걸작이자 이전에 읽다 실패한 <신곡>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단테가 주인공이거나 <신곡>과 관련된 작품들을 몇 년 사이에 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번도 약간은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생각한 것보다 나았다고 해야 하나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의 서평에 기대보면 부족하지만 내가 읽은 단테와 관련된 소설 중에선 가장 나은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은 사실 읽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항상 필독서로 지정되는 것을 보면서 몇 차례 도전을 하였지만 번번이 초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니 내가 아는 신곡은 다른 이들이 읽고 난 후의 감상이나 요약된 일부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데 신곡을 읽을 필요는 없다. 뭐 읽었다면 좀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작가가 핵심을 요약해서 사건과 연결시키니 읽는데 큰 무리가 없다. 덕분에 아주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다. 몇몇 장면과 대목에선 이전에 본 책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1756년 물의 도시 베네치아(베니스)에서 한 유명한 배우가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단지 한 명밖에 죽지 않았지만 암흑의 10인회 수장인 빈디카티는 최고의 스파이자 바람둥이인 흑란 피에트로를 감옥에서 풀어줘 범인을 쫓게 한다. 초반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왜 첫 살인으로 감옥에 수감된 죄인을 풀어 살인자를 쫓게 할까 였다. 보통 참혹한 살인이라도 다음에 벌어질 연쇄살인이 없다면 자체 인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가서 이해가 되었다. 왜 그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변화와 실패 등등이 밝혀진다. 그리고 숨겨진 최후의 범인에 대한 나의 예상은 맞았고, 이 대목에선 아쉬움이 느껴졌다. 약간은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다루어진 트릭이기 때문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독자라면 다른 몇몇의 책에서 이와 같은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정확한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같이 트릭에 둔한 인물이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인자가 남겨놓은 시구는 단서를 제공하지만 지금처럼 풍부한 자료도 편리한 인터넷도 없던 시대다. 몇 사람이 죽고 난 후 그것이 단테의 신곡에서 인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신곡을 인용한 살인이 벌어지지만 살인자에 대한 윤곽을 잡기는 어렵다. 이후 드러나는 단서들은 어쩌면 너무 쉽게 나타난다. 협박당한 자들이 갑자기 협력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단서가 되는 문서의 일부를 발견하는 등의 기회로 베네치아를 덥고 있는 음모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신곡에서 말하는 9개의 살인은 진행된다. 그리고 흑란이 좌충우돌하면서 펼쳐 보이는 활약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좀더 꼼꼼하게 읽는다면 내가 놓친 몇 가지 단서들로 인해 평가가 달라질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긴장감이나 무시무시한 공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지적인 트릭이 나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정도도 아니다. 잔혹한 살인과 그를 둘러싼 신곡의 인용이 재미를 주지만 가장 큰 재미는 흑란 피에트로라는 등장인물이 주는 활약과 그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치밀하고 살아있는 현장감이다. 특히 마지막 베네치아 카니발 장면과 두 세력 간의 대결은 이 소설의 백미이자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사이사이에 죽음이 오가고, 음모자와 음모를 막는 자들의 긴장된 싸움과 축제를 단순히 즐기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은 재미를 넘어 많은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설마? 한 인물이 범인의 수장이고,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약간 떨어지기도 하지만 뒤로 가면서 붙는 속도감과 재미는 이를 충분히 덮을 만하다. 사랑과 질투와 음모와 상징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베네치아의 현장은 재미있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탈리아 이름 때문에 약간 고역이긴 하지만 서양의 이름 난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찬조출연을 하니 소소한 재미 또한 있다. 큰 기대 없이 읽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소득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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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두 번째 이야기 : 인생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기 혁명 - Think Harder! 몰입
황농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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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분야가 자기계발서다. 하지만 요즘 일 년에 몇 권씩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꼭 읽게 된다. 이번에 나온 <몰입, 두 번째 이야기>는 자의에 의한 선택이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몰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고,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정보로 나의 삶을 더 효율적이고 원활하게 만들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전편에 대해 쓴 서평을 찾아보니 이번에 나온 것과 같은 내용이 몇몇 보인다. 그 대표적인 것인 것이 ‘천천히 생각하기’와 ‘운동’이다. 실제 이 둘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제로 ‘인생의 완성도를 높이는 자기 혁명’이란 글이 보인다. 목차를 가볍게 훑고 본 내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첫 부분에서 후회와 좌절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왠지 나의 생각과 맞지 않다. 어릴 때부터 들었고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이 후회와 반성이기 때문이다. 어디의 속담인 것으로 기억하는 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 같은 것이다. 저자는 후회를 “최선을 다하려고 결심했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할 때 생긴다.”(23쪽)고 정의한다. 즉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수긍하지만 최선에 대한 굳은 결의를 자주 하다 보면 후회의 감정이 발달하고, 후회의 쓰라림이 커지고, 이를 무서워하고 무서워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최선에 대한 굳은 결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반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왜 그렇게 했지’라고 생각하기보다 그 일을 왜 그렇게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이것을 고칠지 반성하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묻게 된다. 

약간은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을 발견했지만 곧바로 아주 멋진 문장을 만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좋아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라.”(25쪽) 살아오면서 이 문장이 지닌 의미를 참 많이 느꼈다. 우리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많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면 최선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너무나도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이런 수동적인 삶의 현실에서 이 문장이 지닌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가짐이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 “몰입은 자신의 일을 좋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41쪽)이란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편에 비해 이번에는 뇌 과학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과학적인 연관성과 고찰이 돋보이는데 몰입과 아이디어 관계에서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180쪽)는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걱정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문제를 풀 생각은 상대적으로 적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동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몰입을 하면 단숨에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뇌가 목표로 한 것만 지향한다고 말하고 그 목표의 중요성을 전달하려면 진지한 마음과 반복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기서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목표에 대한 몰입이다.

몰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 몰입도가 올라가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는 즐겁고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다. 일상생활에서 이것을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책에서는 이것을 종교와 연결시켜 풀어내는 부분도 많은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한다. 하나의 문제를 계속 머릿속에 담아두고 계속해서 풀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일상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안함과 머리 아픔이란 것 때문에 너무 쉽게 포기하지만 말이다. 

기존의 운동과 천천히 생각하기에 덧붙여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선잠이다.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이야 너무나도 많이 다루어진 부분이라 평범하지만 선잠은 조금 특별하다. 물론 선잠에 대해 관대하고 중요성을 지적하는 저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 선잠도 몰입의 연장선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졸린다고 자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선잠을 자란 것이다. 피곤한 오후 졸음이 몰려올 때 자는 그 짧은 잠이 얼마나 달콤하고 개운한지 아는 사람에게 악용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효율과 능률이란 부분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단순히 수면 부족으로 인한 졸음은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것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작과 달리 과학과 종교를 끌어들이고 몰입 사례를 설명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과학용어가 나오게 되면 조금 낯설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대중적인 자기계발서에는 조금 무거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시 변함없이 몰입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새로운 사실과 경험담을 듣는다는 것은 많은 도움을 준다. 전편을 읽은 사람은 좀 더 세부적인 실천에 도움을 받을 것이고, 처음 읽는 독자라면 몰입하고 몰입하는 일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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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수수께끼 - 플라네타 아르헨티나 문학상 수상작
파블로 데 산티스 지음, 조일아 옮김 / 대교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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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문학 작가가 쓴 추리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쓴 그가 첫 번째로 추리 소설에 도전 했다. 띠지에 나온 책 소개를 읽으면서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런 표현을 쓸까 의문이었다. 추리 소설의 모든 공식을 깬 새로운 형식의 탐정 소설이라니. 거기에 스페인 문학을 예전에 가끔은 재미없게 혹은 힘들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이 소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살짝 걱정했다. 이 걱정은 읽기 시작하면서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영미나 일본 추리 소설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제 아르헨티나도 낯선 곳이 아니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시그문도 살바트리오다. 그는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제네바 북쪽 마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해왔다. 지독한 구두쇠인데 그가 돈 쓰는데 아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생일 때마다 아들을 위해 직소 퍼즐을 사주는 것이다. 아들이 지능을 단련시키려는 아버지의 조그만 바람이 담긴 선물이다. 이런 가정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열두 명의 탐정 중 한 명인 레나토 크라이그가 등장한다. 그는 조수 없이 활약하는 탐정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그의 원칙을 깨고 채용공고를 낸 것이다. 살바트리오는 지원하였고 그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탐정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살바트리오가 해결하는 사건은 하나지만 그가 관여한 사건은 두 개다. 그의 스승 격인 크라이그가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사건과 그가 크라이그 대신 파리에 가서 만나게 되는 십이탐정과 관련된 살인사건이다. 비교적 짧게 다루어지는 첫 번째 사건은 그가 탐정으로 성장하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하고, 탐정의 삶 뒤에 숨겨진 실체를 알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아들라테레란 존재다. 흔히 조수로 불리는데 작가는 기존의 탐정 소설에 나온 조수들을 살짝 비틀고 그림자처럼 처리하면서 그 가치를 희화시켜 놓았다. 탐정과 조수 사이의 벽을 굳건하게 만들면서 철저한 조연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조수들이 탐정을 활약을 기록하고 발표하는 역할을 맡는데 이것은 기존 탐정 소설에서 조언자이자 관찰자 역할을 했던 조수 역할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이탐정이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열두 명의 탐정인데 처음으로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모이게 된다. 때는 1889년 그 유명한 에펠탑이 처음으로 공개된 해다. 그리고 이 열두 탐정이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탐정 역할을 설명하는 부분은 예전에 읽은 추리 소설의 오마주가 아닌가 할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열두 명의 탐정이 모였으니 모든 범죄자가 숨을 죽일 것 같은데 놀랍게도 파리의 대표 탐정 자리를 놓고 아르자키와 겨루던 탐정 다르봉이 에펠탑에서 죽는다. 실족으로 인한 사고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한 타살일까 논쟁이 있는 가운데 파리 대표 탐정 중 한 명인 아르자키가 이 사건을 맡고 그의 조수로 살바트리오가 선택된다. 

이 두 콤비가 멋진 활약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인 탐정 소설인데 작가는 역시 평범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조수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탐정에게 숨기고, 탐정은 조수를 동반자로 대우하지 않는다. 이 와중에 다르봉이 수사했던 사건이 에펠탑 건설과 관련된 협박임을 알게 된다. 당연히 먼저 이 사건을 수사하는데 쉽게 범인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또 다른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면서 십이탐정들은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과연 이 가설대로 다음 살인사건이 발생할까 생각하는 순간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다시 첫 번째 사건 해결과도 연결되는 부분이자 십이탐정 중 한 명이 말한 것과 이어진다. 

누가 탐정을 죽였고, 이어지는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이제는 누구나 당연하게 파리의 대표 상징으로 생각하는 에펠탑에 대한 당시 반대 여론과 파리만국박람회의 소소하지만 재미난 풍경과 에피소드는 자잘한 즐거움을 준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조금만 안다면 그 시기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나 문화충돌 등이 주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큰 재미는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추리하고 쫓는 과정이다. 과학수사의 기초를 곳곳에서 보여주며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는 부분도 나온다. 이런 세밀한 부분들과 악의 유혹을 한데 엮어서 기존의 벽을 깨부순다. 바로 이 부분이 마지막 반전과 더불어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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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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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SF문학에서 가장 매혹적인 소재는 무엇일까 물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시간 여행이다. 이 소설은 바로 시간 여행을 소재로 썼다. 그런데 이 시간 여행이 보통의 것과 다르다.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꾸려는 악당과 싸우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미래의 새로운 세계를 멋지고 화려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바라는 과거로 간다고 해도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로 가서 과거와 현재를 바꿀 수 없다면 타임머신은 단순히 관광용이라는 말인가? 이렇게 작가는 기존 타임머신 소재 SF와는 다른 SF 한 편을 내놓았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나 자신을 쏜다”고 말한다. 나는 현재의 나이고, 나 자신은 미래의 나다. 처음에는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몰랐다. 사실 그냥 대충 읽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 문장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이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의미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 작가가 만들어놓은 복잡한 SF세계 속에서 헤매고 다녀야 한다. 이 세계는 기존의 문법과 다르고 시재를 통해 시간 여행을 풀어놓는다. 아! 하고 어느 정도 알겠다고 하는 순간 새로운 사실들이 나와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낮은 이해력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구성과 전개는 분명 아니다.

기존 SF에서 사용한 다차원 우주와 현재와 미래를 바꿀 시간 여행은 없다는 전제 외에 새로운 것이 하나 등장한다. 그것은 타임 루프다. 주인공은 10년 동안 타임머신에 틀어박혀 실제 시간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과 생활하고 현실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상상한 한 시간짜리 가상현실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삶을 산다. 그가 10년짜리 타임 루프에 사는 반면 그의 어머니는 한 시간짜리를 계속 사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과연 미래에서 온 그 자신을 쏜 사실을 바꿀 수 있냐는 것이다. 즉 타임 루프를 깨트리고 과거를 변하게 만들 수 있냐는 것이다. 

타임루프를 다룬 영화나 소설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 같은 경우 매번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하루가 매번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연습을 통해 피아노를 배우고 한 여자를 사랑한다. 결국에는 어느 날 그 하루가 깨어지고 새로운 다음 날이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이런 자각조차도 반복된다. 타임루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반복된다. 

이 반복이라는 개념이 과거 불변이란 것과 맞물려 풀려나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책 한 권이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이란 책이다. 이 책이 주인공에게 나타나는 것은 미래의 나가 흘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이 책인데 현재의 나가 미래를 살짝 엿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 주인공이 고민한다. 과연 과거의 나에게 총을 맞기 위해 나가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현재를 만끽할 것. 현재를 늘이고, 그 안에서 살아갈 것.”(332쪽)이라고.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기존의 SF문법을 벗어난 전개와 이야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그가 타임루프 속에서 다른 시공간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것이나 [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란 책 속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성장한다고 해도 말이다. 시간문법에 동의하다가도 작가가 만들어낸 SF 정의들은 왠지 모르게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 혹은 미래를 아는 순간에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용기는 대단하다. 비록 바꿀 수 없는 미래라 하여도 말이다. 독창적이란 평에는 동의하지만 유쾌와 재미란 부분에서는 살짝 의문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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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블러드머니 필립 K. 딕 걸작선 3
필립 K. 딕 지음, 고호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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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시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화려한 비주얼에 암울한 영상을 가진 영화가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면서 관심을 끌었고,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토탈리콜>에 원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당시는 원작소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21세기에 오면서 그의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작으로 만들어진 것이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넥스트>, <컨트롤러> 등이 있다. 대작을 제외해도 두 편 정도가 있는데 한때는 SF 영화제작자들이 이 작가의 작품만 영화로 만드나 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소설들이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읽는 재미가 상당했다. 하지만 너무 암울한 전개는 기존의 밝은 SF에 익숙한 나에게 조금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코 끊을 수 없는 매력을 보여주면서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번에 폴라북스에서 나올 필립 K. 딕 걸작선 목록을 보면 이미 출간된 작품도 보이지만 절판되었거나 처음 번역된 듯한 작품도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에 장르문학에서 한 작가의 전집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꼭 완간되길 바란다. 이 전집 중 먼저 세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먼저 시선을 끈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것은 핵 전쟁 이후 세계를 그렸다는 소개글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종말 후 세계를 그린 수많은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고난을 겪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보여줬는데 암울한 미래를 잘 그려낸 작가라면 어떤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지 기대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하고 또 어찌 보면 독특한 미래의 풍경을 보여줬다. 그것은 종말 후 세계를 처절한 생존의 장으로 보지 않고 조금은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평범하다. 닥터 블러드머니로 불리는 브루노 블루스겔드가 스톡스틸 박사의 병원을 방문한다. 이 장면을 흑인인 스튜어드 맥콘치가 본다. 그는 TV판매원인데 낯익은 인물이 병원에 들어가는 것을 보다 가게 주인에게 욕을 먹는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새로운 TV수리공을 채용하는데 그가 바로 하피 해링턴이다. 그는 해표지증에 걸려 팔다리가 없다. 하지만 기계팔로 TV를 수리한다. 조금 특이하지만 평범한 마을 풍경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왜, 누가, 어떻게에 대한 설명 없이 핵폭탄이 터지고 세계가 파괴된 것이다. 이 구분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7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을 이야기 속에서 살짝 풀어놓는다. 변화된 삶을 보여주면서 앞에 나온 등장인물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엮이고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화성으로 가려고 우주선을 탔다가 인공위성처럼 지구 주변을 도는 데인저필드다. 그가 중요한 이유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향해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생존자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통신설비가 사라졌고, 식량은 부족하고, 의약품도 부족한 현실에서 이 방송은 자신들 외의 세계와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라디오가 아주 귀해져서 라디오 수선공을 납치하려고 할 정도고, 그의 방송이 나오면 마을 사람들은 라디오 앞에 앉아서 그가 들려주는 소설과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를 대신해서 유명세를 얻고 권력을 쥐려고 하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하피다. 하피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는데 신체에 없는 팔대신 정신의 팔을 가지고 있다. 먼 거리의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팔이다. 또 그는 뛰어난 수선공이기도 하다.

요즘 같으면 작가들이 하피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마을 간의 대립을 강화시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킬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마을 간의 대립은 조장하지 않고, 각 마을이 자치조직으로 운영되게 만들었다. 화폐가 아직도 존재하면서 교환거래를 돕고, 식량 쟁탈이나 기존 물품을 약탈하기 위한 단체나 조직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능력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조금씩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유도할 뿐이다. 한 명에게 이야기를 집중하기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미래의 삶도 현재와 다름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웅이 없는데 이 때문에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완벽한 종말이 아닌 세계에서 우리의 삶이 어떨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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