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 영화와 광고로 본 문화의 두 얼굴
김선희 지음, 송진욱 그림 / 풀빛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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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광고로 본 문화의 두 얼굴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제목에서 영화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맞다. 제목과 부제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준다. 우리는 영화나 광고 같은 대중문화를 접할 때 보여주는 것의 이면을 잘 살펴보지 않는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자극적인 광고 문구에 열광할 뿐이다. 저자는 이런 영화와 광고의 이면을 보려고 하는데 이 책을 대중문화에 대한 개인적 저항의 경로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중문화 혹은 현대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이나 원리 같은 것은 없고, 세계적인 석학의 연구 성과나 충고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 저항 기록 속에서 다양한 이론과 시각을 만나게 된다.

모두 네 개 장으로 나누었다. 복제되는 현대 신화에서 감시와 통제, 신화가 된 소비, 신분상승 판타지를 다루고, 문화 거울로 자기 바라보기에선 성장에 관한 판타지, 불안 마케팅을 이용한 보험, 현대 가족의 신화와 균열을 보여준다. 공존을 위한 숙제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정의와 선, 세습되는 불평등, 우리속의 오리엔탈리즘을 만나고, 마지막 지구 단위로 생각하기에서는 근대, 산업기술, 환경오염, 전쟁 중계 속 시선을 통해 나의 존재를 더 넓게 확장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현상과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와 광고. 현대 대중문화에서 이 둘보다 자극적이고 영향력이 큰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히 현대문화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없앴다고 이 둘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광고는 잡지 등의 출판 매체를 통해, 길거리 옥외 광고판을 통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거리 곳곳에서 보이고 들린다. 영화 예고편조차도 옥외 광고판을 통해 볼 수 있으니 이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면 깊은 산골에 맨몸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 외의 것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불편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영화와 광고를 배경으로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낯설 때도 있지만 이미 다른 매체 등을 통해 경험한 것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이나 한정된 이야기 속에서 만났지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구분은 각각의 영화와 광고를 통해 해체되고 분석되는데 읽다보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은 평소 한 번 비틀어보는 나보다 한 번 더 비틀거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현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대중문화 비판 혹은 광고문구대로 제멋대로 후벼파기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 중 한두 개만 말해보자. 먼저 “판타지가 사랑받는 것은 현실이 고단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회적 벽이 있기 때문이다.”(55쪽)란 문장이다. 신분상승 판타지를 이보다 더 날카롭게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없기에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한탕주의가 생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여자만 꿈꾸는 판타지였다면 지금은 남녀 모두 바라는 것이 되었다. 화려한 포장 그 뒤에 감춰진 삶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견고해지고 있다.

“타자에 대한 관용과 이해는 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174쪽) 이 문장에서 내가 하는 행동들을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기부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활동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한다는 말의 참뜻을 되새겨보게 한다. 물론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기부가 아니다. 다문화 가정 혹은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는 구분 또는 분류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문장이다. 사실 영화나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직접 간접으로 수없이 경험하는 것이 이런 구분과 분류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냥 보고 지나갔던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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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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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이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이 소설을 통해 아우슈비츠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 읽고 쓴 서평에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학살이나 잔혹 행위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쓴 글이 보인다. 감정이입이 절제되면서 그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전작보다 가독성이 더 좋다. 화려한 수식어나 문장 등이 없는 것은 전작과 똑같지만 유태인 빨치산이란 조금 특이한 소재가 관심을 불러온 것이다. 

유태인에 대한 나의 관심과 견해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어릴 때 그들의 엄청난 고난과 노력에 감탄하며 이스라엘을 칭찬했다면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상업화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했는데 새로운 정보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바뀌게 되었다. 언론과 자본에 의해 왜곡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면서 정확한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이런 번복과 반복은 시오니즘과 유태인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 인한 탓이 큰데 지금도 가끔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다.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 힘들다. 이전에 각 나라의 유태인이 반목하고 경쟁하고 무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란 적이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히틀러에게 동족을 판 사실을 읽을 때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단결과 고난으로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 뒷면의 숨져진 다른 면을 본 탓이다. 이런 다른 면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의 나치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 혹은 전투는 한두 군데 게토에서 벌어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무력하게 죽음 속으로 걸음을 옮긴 그들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위대한 이스라엘 건설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태인 빨치산. 참 낯선 용어다. 하지만 역사 속에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집단수용소를 탈출해서 전장을 벗어나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나치와 싸웠다. 이 책이 이 모든 투쟁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들도 무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나치와 싸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유럽에서 유태인 빨치산이 다른 빨치산들에게 공격을 받아 전멸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과 그 지역에서 유태인에 대한 깊은 반목으로 또 다른 빨치산에게 긴장을 품고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동시에 같은 편에게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어려움에 그들이 처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유태인에 대한 각 민족의 인식과 행동을 알게 한다.

주인공은 유태인인 멘델이다. 그는 나치에 의해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숨어 살다가 한 소년을 만난다. 러시아 군인 출신 레오니드다. 군 낙오자인 그와의 만남은 홀로 외롭게 살던 그가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둘의 동행을 통해 작가는 히틀러의 광기, 스탈린의 잔혹성과 위험, 위선적인 유태인의 이중성, 유럽의 반유대 정서를 밖으로 드러낸다. 낯익은 장면도 만나지만 생소하면서 낯선 사실을 만날 때는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정보가 너무나도 아우슈비츠에 집중되면서 놓친 부분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이 때문에 정확한 유태인 평가를 내리는데 왜곡이 일어난다. 반면에 이 소설이 지닌 가치를 다시 재평가하게 만들기도 한다.

빨치산하면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힘겹게 싸워야 했던 그들 이야기를 만났을 때 신선함을 느꼈듯이 이번 소설도 그랬다. 그것은 유태인 빨치산이란 것도 있지만 각 지역마다 많은 빨치산이 존재했고 후방교란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과 그 한계도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빨치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삶의 순간과 유머를 즐겼다는 점은 사람이 지닌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게달레 대장의 바이올린은 그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를 통해 또 다른 비극의 한 면을 알게 되지만.

비정규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이 한계 속에서도 그들은 생명을 내던져 싸운다.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지만 그 치열함은 분명히 드러난다. 정보와 역정보, 반목과 대립, 현실과 희망, 인간과 비인간 등을 담담하게 말하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나’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들은 충격과 불편함을 던져주고, 똑같은 악당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찐한 울림을 준다. 가볍게 읽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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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2011년 일본서점대상 1위 수상작. '유머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일본 미스터리계의 새로운 히어로로 떠오른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최고 히트작이다. 이 작품은 천방지축 재벌 2세 여형사와 까칠한 독설가인 집사가 펼치는 본격 추리극을 바탕으로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과 저자 특유의 유머 센스로 무장하고 있다. 

이전에 본 일드가 연상되는데 개성 강한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상당할 것 같다. 일본서점대상 1위란 점도 재미를 보장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빅 픽처>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장편소설. 유럽 독자들의 입에 가장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화제작이다. 그 이유는 워킹우먼(이 소설에서는 신문기자)인 샐리 굿차일드가 소설의 주인공이며, 그녀가 겪는 고통이 일하는 여성들의 위기감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샐리는 곧 일하는 여성들의 분신이자 자화상인 셈이다. 

지난번에 번역된 <빅 픽처>에 반했으니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의 3대 작품 중 한 권이라니 이번에도 즐겁고 재미있고 정신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제프리 디버, 로버트 B. 파커, 로버트 크레이스, 데이비드 모렐… 추리 소설 독자들이 숭배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22명이 공개하는 초특급 캐릭터 창조 비화. 국내에서도 출간되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22명이 그들의 경찰과 탐정 주인공들을 어떻게 탄생시키고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결말지을 것인지 그 비화를 밝힌다. 2010년 에드거 상 비평 부문 수상작. 

너무나도 화려한 작가들과 그들의 주인공에 대한 창조 비화가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주인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이 팍! 

 에드거 상.골드 대거 상.다이아몬드 대거 상 수상 작가 딕 프랜시스의 장편소설. 경마와 도박, 한탕에 유혹된 인물들이 점점 수렁에 빠져들면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다. 속도감 있는 경마의 스피드와 흥분, 그리고 그 이면에 가려진 음모와 협잡을 스릴러와 능란하게 결합시켜 서스펜스뿐만 아니라 행운과 승리, 좌절과 모욕, 슬픔 속에 스며드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를 때 헌책방에서 재고도서를 샀다. 산 김에 읽는다고 했다가 홀딱 빠졌다. 그 후 딕 프랜시스 책은 필독서 중 한 권이 되었다. 하지만 제목이 다르게 출간되고 절판되는 와중에 재간인지 아닌지 의문이 마구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분명히 첫 번역작이란 사실. 거기에 최근에 출간되었다는 것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들 외에도 5월에 나온 수많은 소설들이 나를 유혹한다. 정말 5월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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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조너선 프랜즌 지음, 홍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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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다. 700쪽이 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이상이다. 조금 무겁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금방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이 소설에 대한 엄청난 찬사가 읽기 전 살짝 부담이 되었는데 모두 읽은 지금 공감한다. 미국적 정서가 너무 강하게 담겨 있어 거부감이 생기는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 속으로 한발 다가가면 진중한 문장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밑바닥에 유유히 흐르면서 결코 버릴 수 없는 진짜 사랑을 만난다. 

버글런드 가족이 이사한 후 그들이 살았던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 램지힐 지역 사람들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그들이 기억하는 버글런드 가족의 가장인 월터에 대한 신문기사에 의혹을 품는 장면이다. 그리고는 패티와 월터 부부가 램지힐 지역에 산 동안 일어난 일들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이 가족이 지닌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처음에는 이것을 강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다. 특히 엄마 패티와 아들 조지의 삶은 불안과 일탈과 십대의 반항으로 가득하다. 이웃사촌들 시각에서 본 버글런드 가족 이야기가 끝난 후 패티의 자서전 형식으로 과거 삶이 밖으로 드러난다.

패티의 청소년기를 읽다보면 진보와 정치의 허울을 먼저 만난다. 패티는 농구선수다. 그냥 그런 농구선수가 아니라 상당히 실력 좋은 농구선수다. 키도 작지 않는데 어느 날 파티에 갔다가 강간당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남자의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한 것이다. 남자가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는데 집에 와서야 그녀는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눈물을 흘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녀가 강간당한 사실을 먼저 발견한 것은 농구부 코치다. 엄마를 불러 이 사실을 알리고, 남자를 고소할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강간한 남자의 부모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고, 부모와 잘 아는 사이다. 딸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날뛰어야 할 부모가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딸을 단념시킨다. 놀랍다. 진보와 인권을 외치는 부모가 딸의 미래를 산산조각내는 순간이다.

강간당했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패티의 삶이 평탄하지 않다. 스토킹과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친구 엘리자를 만나고, 락 가수 리처드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강한 독립심을 가지고 있지만 충분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그녀는 그 사건 이후 가족을 혐오하고 멀리한다. 농구에서 승승장구하지만 그 시절 청춘은 인간관계가 서툴기만 하다. 이 시기에 미래의 남편 월터를 만나지만 사실 그에게 끌린 것은 아니다. 월터는 리처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윤리의식이 지나칠 정도가 강한 인물이다. 먼저 매혹된 것은 월터다. 그가 패티를 쫓아다니지만 그녀의 시선을 리처드에게 가 있다. 리처드는 자기 파괴적인 삶 속에서 문란하고 광란 같은 삶을 산다. 월터가 좋아했던 여자의 허울을 벗긴다는 명목으로 그 여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같이 한 적도 있다. 이런 삶은 이 세 친구의 관계 속에 불안감을 던져준다. 각각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대목에서는 왠지 모르게 포르노의 한 장면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십대의 성욕을 넘어선 어른들의 욕망과 충동이 그런 의문을 품게 한 것이다. 조이와 코니의 관계는 순수한 욕망에 기반을 둔 것인데 삶의 험난함과 진면목을 만나게 되면서 변한다. 이것은 다시 패티와 월터와 리처드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욕망과 갈등이 빚어내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더욱 그렇다. 사랑, 불륜, 우정, 결혼 등을 기반으로 엮어낸 이들의 삶은 정말 미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인지 공감대를 완전히 형성하지 못하는 대목도 많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참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고 있다. 결혼, 사랑, 불륜, 섹스, 세대 간의 갈등, 인종, 환경, 정치, 사회문제 등을 다루는데 그 폭과 깊이에 많이 공감한다. 특히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사랑은 그 모든 문제를 품고 용서할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욕망에 공감하고, 그들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솔직한 사랑에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히 사랑만 다루었다면 힘이 약했을지 모른다. 2004년 한 해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삶과 미국이 가진 온갖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이 소설이 지닌 힘을 깨닫게 된다. 콩가루처럼 부서진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 중 백미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놓친 것을 깨닫고 다시 발견하는 장면이다. 자유를 넘어서 사랑과 용서로 다시 모이는 그들을 보면 교훈적이란 생각도 들지만 진짜 가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야기 중에 한국 유학생과 한국제품에 대한 작가의 반감이 표현된 부분이다.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슨 일 때문에 이런 표현과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인 약속들이 많아 단숨에 읽지 못했지만 정말 매력적이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다른 소설 <인생수정>이 곧 출간되다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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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리 디코리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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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끔 해문에서 나온 애거서 시리즈를 한 편 씩 읽고 있다. 다른 책들을 읽는 중에 아주 가끔 읽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보던 책을 빌려 읽고 상당히 재미있어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는 작가였다. 뭐 그 당시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몰랐다. 특히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놀라운 결말이었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서 그 당시의 감탄을 제대로 평가해보고 싶기도 하다.

애거서의 작품을 연달아 읽다보면 그 형식에 질리게 된다. 하지만 가끔 읽다보면 편안하게 읽게 된다.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의 잔혹한 묘사나 치밀한 묘사나 멋진 추격 장면 같은 것은 거의 없지만 마플 여사나 포와로가 주는 매력과 일상으로부터 발생하는 살인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탁월한 탐정에 의해 파헤쳐지는 것이다. 범인에겐 재수 없는 것이고 독자에겐 즐거움을 준다.

이번 소설도 시작은 사소한 것으로부터다. 포와로에겐 뛰어난 개인비서가 있다. 그녀의 일처리가 너무나도 뛰어나서 정밀기계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그런 레몬 양이 생각하지 못한 실수를 한다. 이유는 언니가 일하는 호스텔에서 일어난 이상한 도난사건 때문이다. 포와로가 이에 관심을 가진다. 곧 그 집을 방문하고 식사를 하면서 호스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알게 된다. 많은 도난품에 대한 몇 가지를 해결한 후 그 도난사건의 범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살인이 발생하는데 단순히 도둑질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을 품고 있다.

이 소설엔 그녀의 장기인 평범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살인이 생기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건마저 파헤치는 그녀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요즘 많은 책에서 이런 형식을 보았기에 특별히 놀라지 않지만 1955년에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놀란다. 그녀의 특징은 범인을 찾는 과정에 단서를 제공하기보다 마지막 탐정의 설명에서 그 단서들이 나열되는 것이다. 억지로 찾고자하면 몇 가지 단서가 있지만 정확하게 추론하기엔 힘들다. 추리소설을 읽는 감이나 분위기로 맞출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이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이 소설에선 약간 그런 부분이 덜하다. 읽고 난 후 바로 단서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단서를 찾아내면 범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녀의 책을 읽을 때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여 즐겁게 읽을 뿐 범인 찾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범인은 우리의 명탐정들이 찾아주고, 그 동기까지 자세히 설명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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