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에는 재미있는 내력이 있다. 첫 째는 작가의 아버지가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 팬이었다는 이유로 다자이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켜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 온 편집자의 기획에 마음이 동해서 쓴 다자이 오사무의 1988년 발표된 미완성작 <굿바이>의 속편 격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 조금 걱정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미완성작 문체나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이사카 고타로만의 재미와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것은 정말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읽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오사무의 미완성작 <굿바이>의 기본설정을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확인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여자와 동시에 사귀던 남자가 여자들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낯선 여자와 함께 한 사람씩 방문하여 이별한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원작이 몇 명인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다섯 명이다. 총 6화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먼저 각각의 여자를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 헤어지기 위해 다시 찾아가서 거짓말 같은 사연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여자들의 사연을 듣고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벌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호시노는 평범해 보이지만 특이한 인물이다. 다섯 명의 애인을 사귀었지만 그 속에는 그 어떤 계산된 의도가 없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하다. 이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간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사실을 그녀들이 몰랐다는 것은 더 놀랍다. 뭐 그의 순수함 때문에 그가 보여준 행동을 모두 이해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한 명의 애인과 헤어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왜 이사카 고타로인가를 잘 보여준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흥미로운 전개와 유머가 쉼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연인 마유미의 존재는 우유부단하고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호시노를 변화 속으로 몰아넣는다.

다섯 명의 여자를 사귄 호시노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이 마유미다. 그녀는 키 180센티에 몸무게 180킬로가 넘는 거구의 여자다. 거구보다 더 재미난 것은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다. 안하무인의 행동과 말이 상당히 눈에 거슬려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아마 호시노와 대립된 곳에 그녀가 위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호시노의 애인들을 만나 독설을 내뱉고 여자들의 아픔을 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하지만 결국 호시노의 바람을 들어주는 역할이다. 그가 결코 지녀본 적이 없는 무력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호시노가 변한 것 이상으로 그녀도 변한다. 그것은 마지막 단어의 받침 하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그 버스’다. 그가 어떤 사건과 돈 문제를 가졌기에 ‘그 버스’를 타고 인간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곳으로 갈까 궁금했다. 과연 ‘그 버스’라는 것이 실존하는지도 의문이고, 사건과 돈 문제도 어떤 것이길래 이런 무시무시한 버스를 타게 되는지도 말이다. 사실 이런 궁금점은 소설을 읽는 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 버스와 사건과 돈 문제가 각 애인들의 사연 앞에 힘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켜준다.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워가면서.

순수함과 착함으로 무장한 남자 호시노와 악의와 거침없는 행동과 말로 거구에 존재감을 더하는 여자 마유미는 정말 묘하고 멋진 콤비다. 첫 장면에서 이 둘이 호시노의 애인을 찾아가 그 상황을 설명할 때 그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이 둘의 부조화한 매력에 빠졌다. 이것은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재미있느냐, 없느냐가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과 연결되고, 작가가 지향하는 바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제쳐놓고 재미만 놓고 본다면 역시 이사카 고타로다. 어쩌면 너무 빨리 읽다가 거창한 의미나 상황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이 콤비의 활약을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콤비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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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경제 전쟁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표지에 나오는 “당신은 약자인가, 강자인가?”와 “길을 걷다가 돌이 나타났을 때,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왜 이 문장들이 중요하냐고? 저자는 3부 15장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피해가기보다 이 상황을 슬기롭게 혹은 현명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았다는 점은 독자들이 깊이 숙고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1부 경제의 역습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소매업의 붕괴 위기와 저신용 사채를 다룬다. 저출산 고령화야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다루어졌고, 점점 더 공감하는 부분이라 쉽게 다가왔다. 대기업 유통업의 SSM 진출이 동네상권에 미치는 영향도 기존 지식을 크게 넘지 못했다. 하지만 사채로 넘어가게 되면 상식과 지식을 통해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선 내용들이 나온다. 그것은 사채의 조달 금리와 다단계 판매다. 사채를 흔히 신문 등의 매체에서 다룰 때 자극적인 이자율에 중점을 두는데 저자는 왜 이런 고금리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면서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부업 이용을 권유한다. 물론 이런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없는 등급 외 사람들의 경우는 다른 문제지만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2부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는 펀드, 보험, 아파트, 연금, 청년실업 등을 다룬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들은 사실 기존 정보와 그렇게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펀드와 보험와 연금에서 공부와 설계를 강조한 부분은 너무 뻔한 이야기다. 집값의 완만한 하락 주장보다 더 급격한 하락을 예상하는 분석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이 부분에선 조금 시각이 갈린다. 누구나 알듯이 아파트가 거주 목적이 아닌 금융자산이라고 할 때 순간 미래가 암울했다. 자기 소득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파트 가격을 볼 때마다 그렇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중소기업 육성 부분에서 공감을 하고, 통계 착시를 통해 실업률을 왜곡하는 현실에서 인턴 같은 임시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느낀다.

3부 새로운 희망에서는 농업, 에너지 전쟁, 사회적 기업, 금, 벤처캐피탈 등을 다룬다. 한국 농업의 구조적 정책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고, 우라늄과 원자력 부분은 집필 당시와 변한 사회 정치적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긴급 부록에서 일본 대지진을 다루지만 이 에너지에 대한 쟁점을 좀더 부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금은 이미 이것을 소재로 한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었다. 관심이 가는 주제는 사회적 기업과 벤처캐피탈인데 개인적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는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벤처캐피탈에 대한 저자의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글들은 사회적 기업과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에 읽은 미네르바의 책에 비해 깊이나 분석은 좀 떨어지지만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그의 해법은 하나의 참고자료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대안만 신봉할 경우 또 다른 문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약자와 강자를 묻고 걸림돌과 디딤돌을 말할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정해졌다.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고,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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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조지 오웰의 책들이 다시 번역되어 나온다. 예전에 읽지 않았던 소설이나 르포도 덕분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이 작품은 처음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럴 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숨은 걸작이란 상투적인 문구에 어쩔 수 없이 눈이 가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이름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더욱 그렇다. 책 소개에 나오는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사실 무겁다. 그런데 첫 문장을 읽고 난 후 이 뚱뚱한 중년 보험사원에게서 잠시 잊고 있던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간 후 현재가 이어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당연히 현재가 아닌 과거다. 그래서인지 분량도 가장 많다. 이 과거를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나와 우리 아버지들의 잊고 있던 역사다. 역사란 거창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누구나 살아온 길이 있다.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과거는 그가 현재에서 도망갈 유일한 곳이자 희망이 깃든 곳이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중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간다. 이 과정에 중년 가장의 삶이 하나씩 밝혀진다.

틀니를 낀 마흔다섯 살 중년의 아침으로 이야기 문을 연다. 일상적인 가정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는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사는 곳 웨스트블레츨리의 엘즈미어로드 교외주택단지로 장면이 바뀌면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주택금융조합의 영악한 사기 행위는 현대의 재건축조합이나 토건족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 이런 현실 속 조지의 일상이 그려지고 조그 왕이란 이름이 기억을 자극한다. 이 자극된 기억 속 세계는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속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의 유년 시절, 청년 시절, 군 시절, 제대 시절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풀어낸다. 성실한 부모 아래에서 평온하게 자란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부모들의 과거를 떠올려준다. 현재 삶의 무게에 짓눌려 뚱뚱해지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변화의 바퀴는 굴러가고 적응하거나 변하지 못한 사람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다루는 장면에서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향수와 그리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데도 말이다. 

그리고 전쟁. 1차 대전은 삶을 바꿔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전쟁과 정의를 외치는 젊은이들과 선동가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경험이 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이어지지만 선동에는 찬성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과 통찰로 이어진다. 이미 지나온 역사이기에 그의 통찰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다. 전쟁보다 전쟁 후를 더 걱정하는 그의 인식에서 그가 걸어온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뚱보 조지의 말과 행동과 심리를 통해 유머와 위트를 계속 풀어낸다.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기서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핵심은 2부와 4부라고 생각한다. 2부가 조지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주면서 시대의 흐름과 한 개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면 4부는 현대 속에 무너진 과거의 흔적과 현대 사회의 불안과 소외와 공포다. 2부에서 그가 가장 행복을 느꼈던 낚시를 위해 4부에 찾아간 고향은 이미 과거 기억 속 장소가 아니다. 이 장소와 환경의 변화, 조지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 추억과 현실의 불일치 등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속된 말로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일상에 지친 그가 숨 쉬러 간 그곳이 오히려 그를 질식시킨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본 표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공돈이 생긴 한 가장의 일탈기라고도 할 수 있다.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던 그가 싫증을 느껴 숨 쉬러 간다. 실제 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런 일탈(?)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이 더 각박해지고 빨라지고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라는 괴물이란 표현이 미래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나도 숨 쉴 곳을 찾지만 생활과 경제라는 단어들이 나를 삼켜버린다. 혹시 내가 숨 쉴 곳을 찾는다 해도 주변 사람들은 이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마지막 문장에서 그가 선택할 것을 아는 것처럼 나의 선택도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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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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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문타이거가 뭘까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이것이 모기향이란다. 왜 있잖은가 동그랗게 나사모양으로 말린 모기향 말이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모기향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과 모기향의 용도와 모기향 연기 등을 가지고 멋대로 추측해본다. 낭만적인 문타이거란 이름은 과거 그녀가 사랑했던 톰과의 추억이고, 모기를 쫓는 용도는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을, 연기는 희미한 기억 등이 아닐까 하고. 이런 멋대로 추측을 지금 하고 있지만 읽는 동안은 사실 많이 혼란스러웠다.

첫 문장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인상적인 문장 다음에 간호사가 나오면서 조금 황당했지만 그녀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삶을 세계사와 병치하겠다고 했을 때 살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역사가 사실과 허구, 신화와 증거, 이미지와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소설의 구성과 전개에 그대로 적용된다. 각 이야기마다 현실에서 과거로 빠져들고, 과거는 이미지에 의해 추억된다. 이 추억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고, 기록은 이미지의 영향 아래 놓이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쉽게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또 간결한 문장은 감정이입을 방해하고, 뒤섞인 과거와 관계는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사실 이 소설은 세계의 역사보다 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다. 개인의 삶이 역동적인 변혁의 시대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따라가면 그녀의 사랑이 중심에 놓여있다. 그 사랑을 좇는 과정에 그녀의 가족사와 삶이 하나씩 드러난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이 말이다. 이런 그녀도 그녀의 오빠 고든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녀에게 아이를 낳게 한 재스퍼도 마찬가지다. 그의 집안 이력은 러시아 귀족 출신 아버지에 데번의 유지인 엄마가 있다. 그런데 이 가족도 단란하지 못하다. 자신들의 결혼이 끔찍한 실수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이혼한다. 그는 가진 것을 잘 이용할 줄 알고 야심차고 인맥 든든하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된다. 이런 클라우디아와 재스퍼의 관계는 뒤죽박죽이고 파편처럼 부서져 있다. 아이의 아버지란 인연으로 이 둘은 평생 이어진다.

역사를 기록하는 인물이 클라우디아이다 보니 모든 기록은 그녀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그녀의 오빠 고든, 올케 실비아, 딸 리사, 아이의 아빠 재스퍼, 유일한 사랑이자 전사자인 톰 등의 인물 모두. 이 기록은 언어의 힘이다. “덧없는 것들을 보존하고, 꿈의 형태를 부여하고, 햇살의 반짝임에 영속성을 주는 그것.”(22쪽)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논쟁은 역사의 존재의미 그 자체”(32쪽)라는 그녀의 말고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적 기록인 그녀의 세계사가 개인 기록으로 바뀌면서 논쟁의 장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세계사를 두고 논쟁하고 싶은 인물들이 여럿 나타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되는 문장을 많이 만난다.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은 여운을 남긴다. 짧은 호흡으로 바쁘게 읽다보니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그녀의 삶에 집중한다. 거기서 보게 되는 것은 보통의 엄마도 아니고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도 아니다. 사랑했던 남자를 잃고, 자신을 강하게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가 “희망은 인내가 된다.”(236쪽)고 말할 때 희망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희망이 완전한 사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결코 버리지 못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톰의 일기를 제일 마지막에 배치해서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에 희망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나의 호흡과 집중력으로 단숨에 읽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파편적인 이미지와 기록의 연속은 초반 몰입에 실패하게 만들었고,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읽어나간 문장은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책의 재미와 구성 등에 접근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시점이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데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현실에서 과거로 빠져드는 것 역시. 하지만 그녀가 쓴 세계의 역사처럼 나도 세계의 역사를 쓴다면 과연 어떤 추억과 기록들이 나올까 순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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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이 미스터리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2
시본 도우드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유는 단 하나다. 제목에 미스터리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 읽은 탓도 있다. 잘못 읽은 글자는 런던 아이다. 런던 아이(London Eye)는 템스 강변에 있는 거대한 자전거 바퀴 모양을 한 회전 관람차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런던 아이(London boy)로 읽은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 소설의 미스터리 대상인 살림이 뉴욕으로 이사 가기 전 이종사촌을 만나러 왔다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살림의 실종을 런던 아이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한글과 영어의 묘한 결합이 책 처음부터 시선을 끌었다.

첫 장면에서 런던 아이를 탔던 살림이 사라진다. 그리고 고기능성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을 앓고 있는 테드가 살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데 도움이 된 것을 기록한 글로 이어진다. 이 글 속에서 만나게 되는 테드는 분명히 우리가 자주 만나는 아이들과 다르다. 처음에 테드의 말투와 행동을 보았을 때 아주 어린 아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열두 살이다. 조그마한 장애 같은 증후군 때문에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른 말과 행동을 할 뿐이다. 사실 이 소설이 지닌 재미의 상당 부분은 테드의 남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에서 생긴다. 그 순수함과 놀라운 회색 뇌세포 때문에 말이다.

살림은 테드의 이모 글로리아의 아들이다. 그녀는 이혼한 후 뉴욕에서 기획자 일자리를 얻게 된다. 뉴욕 가는 길에 언니 집에 잠시 들렀다 갈 예정으로 왔다. 그녀의 별명은 허리케인이다. 지나간 자리가 초토화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 모자가 잠시 머물면서 어디로 갈까 토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각자의 관심 분야가 잘 드러난다. 결국 높은 곳, 경치, 처음 등을 감안하여 런던 아이에 가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 관람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만 타기로 하고 엄마들은 카페로 간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이 한 남자가 와서 폐소 공포증이 있다면서 표를 공짜로 준다.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살림이 표를 받아서 탄다. 그리고 사라진다. 여기서 미스터리가 생긴다.

살림의 실종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분명히 그가 런던 아이를 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내릴 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의 실종으로 가장 놀란 것은 당연히 엄마인 글로리아다.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를 찾아다니고 혹시나 나쁜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이 걱정과 두려움 속에 이성은 마비된다. 어른들이 마비된 이성으로 걱정을 할 때 테드의 이성은 컴퓨터처럼 작동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홈즈의 가설 소거법이다. 처음에 8가지 가설을 세우고, 나중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은 분명 이 속에 들어있다.

테드가 세운 가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나 캣이다. 나머지는 아이라는 이유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특별한 병과 아이의 말에 귀찮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직접 자신들이 세운 가설과 발견한 단서를 쫓는 것이다. 이렇게 남매 탐정이 만들어지고 조금은 허술한 수사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둘의 탐정 활동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딱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머문다. 다만 테드의 번뜩이는 머리만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분석하고 추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정말 이 과정은 명탐정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테드와 캣의 탐정 활약이 주는 재미가 솔솔하다면 테드의 병으로 인한 특이함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당사자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 있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테드의 반응과 심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준다. 그가 집착하는 일기예보나 과학적 지식은 추리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데 이 또한 큰 재미다. 소년 탐정이라 활약에 제약이 많지만 성인이라면 또 한 명의 멋진 탐정이 등장했다고 말해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의 제한된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다음 사건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기다려진다. 

기본 구성은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 거리는 상당하다. 테드의 특이한 증후군, 이혼한 가정의 불안정, 어른들의 아이 의견 무시, 왕따 문제, 인종 차별, 고정관념과 논리적 사고 등 무사히 많다. 가디언 지의 토론 수업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소설이란 평에 동의한다. 테드의 추리를 따라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갈 때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누린다. 이 과정 속에 담긴 수많은 담론 의제들은‘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모든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신의 머릿속을 비워나가는 장면은 우리의 일상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작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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