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
정의한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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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의 시선을 끄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라오스다. 요 몇 년 휴가 때 다녀온 곳은 태국이다. 혼자 배낭 하나 매고 간 그곳은 어느 순간 너무나도 낯익은 곳으로 바뀌었다. 여름 휴가가 다가오면 직장 동료들이 이번에도 태국 갈 것인지 물을 정도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그렇게 길지 않은 휴가 동안 편안하게 여행하고, 특별한 준비 없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낭 매고 두세 번 다녀오는 사이 익숙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끔 태국 관련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힐끗 쳐다보는 여행지가 라오스였다. 백수로 지낼 때 함께 여행을 갔던 후배가 한 달 동안 동남아 여행을 하자고 할 때는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몇 권의 책과 정보 때문에 여행지 우선순위로 바뀐 것이다. 그러다 만난 이번 책은 그 환상을 심하게 키워줄 것을 생각했다. 예상은 생각보다 많이 빗나갔다.

솔직히 라오스에 대한 정보를 본격적으로 검색한 것은 최근이다. 낯익은 태국을 조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라오스에 대한 단순한 정보만 알고 싶다면 라오스 관련 여행안내서 한 권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늘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솔직한 경험담이다. 작년에 <굿빠이, 여행자 마을>을 손에 들고 주저 없이 빠이로 떠났다. 책 정보에 혹해서 떠난 것이다. 실제 그곳에 도착해서 만난 빠이는 책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와 그곳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본 것의 차이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래도 빠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평온과 아쉬움을 남겨줬다. 이 책을 선택할 때 어느 정도 작년 같은 일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나의 현실이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않지만.

제목만 보면 얼마나 황홀한 여행을 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황홀한 여행의 환상이 깨어진다. 물론 그가 경험한 멋지고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풍경이나 감상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라오스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느끼는 솔직한 감상이다. 이 감상은 이 책을 읽기 전 라오스 관련 여행 사이트에서 검색한 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일주일 동안 라오스를 간다면 어디로 갈까 고민했던 곳들이 하나씩 무너지거나 큰 의미가 없어지고 전혀 낯선 지명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길에서 만난 라오스 생태우 기사들의 장삿속은 그곳에서 만나게 될 순수함을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물론 이해한다. 어느 나라나 이런 기사나 사람들이 있으니까.

홀로 여행하는 사람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왠지 심하게 공감하게 된다. “비어 있는 침대에 누군가 있다면 정말 손만 가만히 잡고 자고 싶을 정도로 한 손이 아쉽다.”(30쪽)고 말할 때 숙박을 위해 들어간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더블베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때 나도 그 빈 옆자리를 누군가로 채워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한 반면 나는 심한 낯가림으로 나만의 길을 갔다. 짧은 시간 내 속으로 좀더 들어가고 외롭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마 저자처럼 한 달 이상 여행한다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행 안내책을 비난하는 외국인에 대한 하나의 반론으로 나온 문장은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위대한, 어행을 통한 사람들의 마음의 치유라는 성과에 경의를 보내는 편이다”(94쪽)란 문장이다. 관광이 그곳을 단순히 보러가는 것인 반면 여행은 그곳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홀로 떠난 여행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좀더 나 자신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낯선 풍경에 눈길을 보내고,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두려워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잊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가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탐롯콩로다. 그가 경험한 동굴 여행은 그가 말한 대로 제대로 그 감상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문자 너머로 그 벅찬 감동이 전해진다. 사실 이곳은 이전에 라오스를 검색하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곳이다. 또 그가 예찬한 마을 나힌과 라오스의 항아리 전골 요리인 ‘머쯧’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라오스의 우선순위를 모두 바꿀 정도다. 물론 이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탐롯콩로를 같이 간 외국인들이 그가 느낀 감동의 반도 채 느끼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엄청난 감동을 줬다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인 여행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라오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개인적 호불호가 너무 분명해 정확한 참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한 여행지에서 다른 곳을 포기하고 간 곳에서 실망을 느낀다. 이때 그는 다른 곳에 갔다고 해도 이곳을 그리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자의 실질적이고 현명한 기본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짧지 않은 여행이다 보니 좋은 인상 못지 않게 나쁜 인상을 받는 곳도 많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말한다. 고맙다고. 자신을 조용히 받아주었고 또 가만히 봐줘서. 그 역시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40일 간의 라오스 여행 기록에 실린 부분적인 나쁜 부분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지금 나를 자극한다. 빨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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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밖으로 달리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6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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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sf소설인 줄 알았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비슷한 제목과 시간 밖이란 단어 때문이다. 표지를 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선입견이 작용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쳐들고 앞부분을 읽으면서 19세기 말 풍경과 뭔가 어색한 장면들이 나오면서 이제 본격적인 sf 이야기로 넘어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클리프턴은 19세기 말에 존재했을 것 같은 마을 하나를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한 곳일 뿐이다.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시대는 1996년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클리프턴은 실제 존재하지만 현실의 시간 밖에 존재하는 가상의 마을이다. 제목에서 시간 밖으로 달린다는 것은 주인공 제시가 살고 있는 마을의 시간이 그녀가 그 마을 벗어나는 순간 실제 현실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녀가 지금까지 믿고 있던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가면서 그 둘의 차이가 급속하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그녀를 옆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녀가 현실 속에서 움직이지만 그녀의 심리와 문화 상태 등을 생각하면 이것은 먼 미래의 세계다. 이 제목의 의미를 깨닫고 참 제목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제시가 평화로운 클리프턴을 떠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마을에 창궐하는 전염병 디프테리아를 치료할 약을 찾기 위해서다. 단순히 이 내용만 보면 성배를 찾아 떠나는 원탁의 기사 느낌이 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병 때문에 제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진실을 알게 되고 시간 밖으로 나가게 된다. 결코 그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말이다. 그리고 이 모험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지만 150년 이상의 시공을 초월한 그녀에게는 낯설고 신기하고 두려울 뿐이다. 작가는 이 낯설고 두려운 세계와의 만남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클리프턴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과거 마을이다. 이 마을을 만든 백만장자의 노력 외에도 이 마을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른들이 현재에서 과거로 옮겨왔다면 아이들은 과거가 현재인 줄 알고 살았다. 당연히 마을의 생활습관이나 문화는 과거를 재현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도구는 금기시 되었다. 이 마을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리고 클리프턴의 풍경을 떠올리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혹시 그 영화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길 정도다. 뭐 다른 소설인가에서 이런 비슷한 설정의 마을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어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디프테리아 약품을 구하고, 언론에 클리프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간 밖으로 나간 제시의 모험 이야기다. 시간과 문화 충격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성장을 돕고, 우리의 현재를 낯선 시각에서 쳐다보게 된다. 더불어 제시의 모험을 통해 쫓기는 여자 아이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낯선 시각에서 본 낯익은 풍경은 신선하고, 클리프턴의 풍경은 혹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들여다보는 다른 존재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영화 <맨 인 블랙 2>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결코 많지 않은 분량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재미도 있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제시가 클리프턴을 달아나는 과정과 달아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미스터리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있다.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고, 그 비밀을 풀기 위해 13살 여자 아이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와서 그 긴장감이 너무 풀려서 아쉬움이 있지만 멋지다. 가끔 종말론을 다룬 소설처럼 현재의 최첨단 삶을 갑자기 모두 잃고 그 답답한 과거로 퇴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과연 우리는 제시처럼 빠르게 현실에 적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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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두 종교학자의 대담
오강남.성해영 지음 / 북성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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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강남 교수의 <종교, 심층을 보다>를 읽었다. 예상 외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왠지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 책이 종교인, 철학자, 영성가 등에 대한 것이지 종교를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심층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가 많이 부족했는데 그 갈증을 이 책이 꽤 많이 채워주었다. 지난 책처럼 그 내용을 아직 제대로 소화를 하지 못해 정리와 숙고 등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 같은 수준이라고 해도 나의 종교관을 새롭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각 종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보니 표층종교를 신봉하는 교인처럼 표면에 머문 수준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지만.

제목에서 종교와 깨달음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믿음만 강요하고, 문자로 기록된 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다. 그들이 이것을 피하기 위해 상징이나 다른 의미로 풀어내는 것을 보았을 때도 억지스러움이 넘쳐났다. 이것을 지적하다 보면 역시 감정적 대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많이 놓쳤다. 이것은 “한국 종교 왜 이러나?”라는 한탄과도 이어진다. 오강남 교수가 <종교, 심층을 보다>에서도 이 대목을 인용했는데 그것은 한국 종교의 한계를 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그 방법이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의 심화다.

이 대담집은 종교학자 두 사람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성해영 교수는 오강남 교수의 제자였다가 이제는 같은 교수가 되었다. 이 두 교수의 대담은 이 두 사람의 인식이 어디에서 일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담은 크게 세 장으로 나눈다. 1장은 심층종교란 무엇인가?, 2장은 심층종교는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3장은 깨달음의 종교는 어떤 모습인가? 이다. 특히 1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체험이다.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궁극적으로 ‘체험’이라는 점이다.”(31쪽)라고 할 정도다. 이때 체험은 깨달음 체험을 말한다. 이것에 뿌리를 둔 종교를 간결하게 표현해서 심층종교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의 차이를 깨달음 체험으로 간략하게 표현하면 조금 난해하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원리주의 등을 표층종교의 대표로 말하면서 이들을 지닌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심층종교의 심화가 왜 필요한지. 그 과정에 만나게 되는 깨달음이 어떤 의미인지 말한다. 이것을 동,서양의 종교를 비교하면서 풀어내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들기도 하지만 아! 그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체험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신비주의를 말하는데 이것이 비밀주의와 혼용하여 사용되면서 개념의 오해가 생겼다고 한다. 이 부분은 좀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 속에서도 이 오해가 아직 완전히 씻겨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장은 어떻게 보면 심층종교의 실천편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핵심 단어만 말하면 신비주의와 깨달음과 명상이다. 명상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서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불교의 화두선과 많이 닮은 부분이 있다. 이것은 두 교수도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다. 특히 경전이 써진 시대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를 지적할 때 나의 과거가 많이 부끄러웠다. 특히 다독으로 책 권수만 늘려온 시간들이 주변에 지식의 껍질만 산더미처럼 쌓은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단숨에 이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3장 깨달음 종교가 어떤 모습일까? 물을 때 사실 그 미래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첫째 이유는 역시 현실 종교가 지닌 부작용과 긴 세월을 지나면서 쌓아온 힘 때문이고, 그 다음은 심층종교가 지닌 매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인간이 지닌 한계와 욕망이 그것을 모두 담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큰 깨달음을 얻은 인물들보다 이미지에 의해 쉽게 소비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심층종교의 저변이 점점 더 확대된다면 이런 부정적인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뭐 순식간에 모두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올바른 종교에 대한 교육이 늘어나고, 종교 간의 대립이 사라진다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읽은 책에서 신비주의와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 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했을 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이 있다. 그것은 부흥회와 방언이다. 방언이 “성령 받음의 특징이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150쪽)이라고 말하고 “부흥회에서는 보통 방언이라고 하면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신만 이야기한다”(150쪽)고 했을 때 왜 사도 바울이 방언을 자제하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신비한 체험이라도 그것이 이성과 영성의 올바른 결합이 아닐 경우 제대로 된 체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없거나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거나 오해했던 부분들이 상당히 많아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이 책들이 나의 종교관을 좀더 분명하게 정립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닌 시작이란 것과 표층종교를 넘어 심층종교로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학에 대한 갈증이 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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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베할라 - 누가 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앤디 멀리건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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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 베할라가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책을 읽자마자 쓰레기 마을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곳이 어디인지는 몰랐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베할라가 히브리어로 두려움, 재앙이라는 뜻만 나온다. 저자 약력을 읽으니 필리핀 마닐라에 거주하면서 방문한 곳이란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보고 중남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떤 선입견이 작용했는지 잘 모르겠다. 쓰레기 산이나 마을을 동남아와 중남미 모두에서 봤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며칠 전 읽은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도 쓰레기 마을인 것을 생각하면 묘한 인연이다. 한국의 과거와 필리핀의 현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렸다. 

소설은 재미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장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밝힌다. 이 방식을 통해 독자는 한 사람의 시각이 아닌 다양한 직업과 연령과 사람들을 통해 그곳과 상황을 보게 된다. 물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변함이 없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은 쓰레기 하치장에 사는 라파엘 페르난데즈가 발견한 작은 가죽 가방에서 시작한 모험이다. 처음에 그와 친구 가르도가 이 가방을 발견했을 때 관심을 가진 것은 지갑 속에 든 1,100페소다. 지갑의 주인은 호세 안젤리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것들이다. 열쇠와 시내 지도.

쓰레기에서 나온 재활용품으로 그날그날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 지갑 속 돈은 엄청난 금액이다. 열쇠와 지도는 상대적으로 의미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다음 날 경찰이 찾아와서 잃어버린 가방을 찾는다. 만약 이 가방을 가져오면 베할라 각 집에 1천 페소를 지급하고, 가져온 자에게는 만 페소를 주겠다고 한다. 당연히 가방을 가진 라파엘이 손을 들어야 하는데 그냥 말없이 서있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은 늦어지면 사례금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때 그의 고모가 나서 라파엘이 뭘 찾았다고 말한다. 경찰이 묻는다. 신발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짧은 대화가 경찰과 라파엘의 대결 구도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된다.

착하게 살아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한다. 그런데 착하게 살면 과연 복이 올까? 라파엘이 경찰들의 질문에 바로 그 가방을 내주었다면 어땠을까? 베할라 주민들이 때 아닌 횡재를 했을지 모르지만 라파엘, 가르도, 래트 등 세 소년의 스릴 넘치고 활기차면서 멋진 모험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들의 모험이 보여주는 가치 등을 말이다. 아!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활약과 승리가 단순히 그들만의 노력은 아니다. 그 중간중간에 신부님과 수녀님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찰의 압력과 폭력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모든 의문을 파헤치고 진실을 밝히려는 그들의 용기와 열정과 노력과 재치다.

기본 줄거리는 스릴러 방식이다. 가방을 발견하고, 그것을 찾으려는 경찰이 나타난다.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가방 속 물건들을 둘러싸고 쫓고 쫓긴다. 이 과정에 물건이 가진 중대한 비밀을 밝힌다. 또 암호를 등장시켜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 과정들만 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정치와 경제와 사회 현상을 적절하게 녹여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곳에 만나게 되는 부패한 정치와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픈 현실이다. 진실과 정의가 사라진 곳에서 희망을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세 소년이 보여주는 모험과 활약은 용기 가득한 순수함으로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그들이 선택한 해결 방법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욕심 많은 어른들과 완전히 다르다. 희망의 메시지란 단어에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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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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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미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는 것이자 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에 최소한 한두 번은 어떤 일에 물건에 사람에게 미치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 경험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 물론 마니아의 세계로 가면 긴 세월 동안 미친 듯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미친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친 것과 조금 다르다. 가끔 그 경계가 희미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 속 두 주인공은 과연 미쳤을까? 묻는다. 그럼 읽는 동안 나는?

작은 이빨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는 진과 진이라는 연인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은 두 연인. 그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 연인이 생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얼마일까? 뭔가 특별한 인연 같다. 하지만 이 특별한 인연은 산산조각난다. 바로 그 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서. 진은 유진의 스케치에서 그 섬 여자 아이의 누드화를 보고 임신한 여자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본다. 그때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죽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여자 아이를 찌른다. 여자 아이는 비명을 지른다. 그 후 흔들린다. 진과 집과 그 아이와 땅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다. 

그 섬에서 드라이버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야나가 등장한다. 그는 개 한 마리를 친 적이 있다. 개 그림자의 환영 때문에 다시 온 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진이다.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일까? 그녀는 이야나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고, 이야나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재미난 것은 역시 친구 만이다. 그 섬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만의 삶을 통해 그 섬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만은 자신이 가진 매력을 팔아서 생활했고, 그 매력이 사라졌을 때 만난 엄마의 존재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본능에 충실한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솔직함과 두려움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현실이 아닌 과거 속에 살아가는 두 남녀와 대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본능은 무얼까? 성욕일까? 진과 이야나의 만남과 동행은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서다. 이야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진은 자신이 찾는 유진의 환영을 쫓기 위해서. 이 만남이 이어지고 우연한 사고인지 의도인지 모를 여권 분실 이야기는 하나의 일을 바라다보는데 사람의 경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만을 통해 알게 된 힐러의 이야기는 이 두 남녀가 갇힌 기억의 지옥을 벗어날 하나의 주문 같다. 진은 7년 전 일어난 살인의 기억이고, 이야나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수니에 대한 집착이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지진과 쓰나미다. 7년 전 사건 속에 일어난 지진과 현재 밀려온 쓰나미는 삶의 전복이자 회생이다. 과거보다 현재의 쓰나미가 더 처참한데 그 현장을 작가는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그 섬을 자주 다녀왔고, 그 섬에서 시체가 불타는 것을 본 경험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전에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2~3년이 지났는데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놀란 적이 있다. 아직도 치워지지 않았다는 것과 그 처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에 동시에 놀랐다. 그 당시에는 치워지지 않은 것이 게으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경제력과 그 충격 때문이 아닐까 하고 바뀌었다. 물론 그 국민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뿐이었다.’라고 몇 번이나 외친다. 진과 진의 결합은 이제 과거 시재로 변했다. 진이 사라진 유진을 찾아 7년 동안 몇 번이나 그 섬에 왔지만 그녀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 이것은 기억의 지옥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고통이다. 정체된 시간은 그녀의 삶을 강하게 지배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 그녀를 과거 속에 묶어둔 것이다. 이때 나타난 이야나와 쓰나미는 그녀의 정체된 삶을 뒤흔든다. 그녀가 그에게 말한 “돌아올께요”는 그녀를 떠난 유진을 잊게 만들고, 기억의 지옥을 마주하면서 극복하게 만든다. 쓰나미가 만든 참혹하고 극한 상황이 그들을 현실 속에서 연결시킨다. 시간은 다시 흐르고 그들의 관계도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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