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미사키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지니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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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사라진다. 보통 이 문장을 보면 전쟁 같은 상황에서 엄청난 무기에 의해 파괴되는 도시를 연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도시는 정말 그냥 사라진다.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살던 사람이 사라진 도시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수 없다. 그곳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곳에 들어간다면 그 사람은 도시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다만 도시에서 사람이 사라진 후 마음에서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도시에 남은 흔적들을 회수하기 위해 들어간다. 그 도시와 관련된 자료를 수거하기 위해서다. 밤에는 도시의 반응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다.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런 상황 설명으로 시작한다.

처음 이런 내용을 보았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식을 가진 도시, 생명체와 같은 도시, 의식을 공격하는 도시라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도시를 사라지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핵무기 같은 것으로 공격하는 것을 알고 있던 나에게 30년에 한 번 살던 도시인들을 그냥 소멸시키는 도시가 너무나도 낯설다. 덕분에 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감탄을 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소설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다시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뭐 이 소설의 각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프롤로그, 그리고 에필로그로 다시 돌아가 등장인물을 확인하게 되지만 말이다.

도시의 소멸에 대해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의식을 지닌 도시를 다루지만 그 도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이번에 사라진 쓰키가세라는 도시와 연결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첫 장에서 이들을 한꺼번에 등장시킨 후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쓰키가세 소멸 후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간 후 현재로 올라오는 전개 방식과 더불어 마지막 장에 다시 쓰키가세의 소멸 시점으로 옮겨간다. 이 구성이 치밀하게 짜여 있는데 읽으면서 첫 장의 장면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의 사연과 삶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들이 잃었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잊고 있던 삶의 흔적들을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들의 의지도 역시.

읽으면서 이 소설의 장르 생각도 많이 했다. 시대도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고, 거류지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공각기동대 속 장면들이 떠오르고, 낯선 용어들은 무슨 의미일까 살짝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런 고민들은 잘 짜인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의지로 조금씩 사라졌다. 하지만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작가의 불친절한 설명과 열린 결말이 생각의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떻게 모였고, 연결되었고, 힘을 합쳤고, 앞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줬지만 가장 큰 프롤로그로 문을 연 덕분에 생각이 더 많아진 것이다. 

각 에피소드 속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나 자신도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사라진 것에 대한 치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63쪽)는 문장은 치유가 아닌 받아들임으로 봐야할 것이다. 현실과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삶의 과정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삶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중요한 말을 발견한다. “이상하네. 자기가 하는 일을 일일이 무얼 위해 하는 건지 생각하면서 결정해? 자기가 그걸 하고 싶은지 아닌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475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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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세상
캐런 러셀 지음, 권민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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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티븐 킹의 추천과 판타지라는 소개글이 이 소설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막내딸 에바가 유령과 사랑에 빠진 언니 오시올라를 구하기 위해 유령들의 세계인 지하계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난다고 했을 때 킹의 추천사와 더불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타지 세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어도 판타지의 공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현실이라는 높은 벽만 계속 나타났다. 예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 전개다. 킹의 추천사에서 킹이 만들어 보여줬던 세계를 미리 짐작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래도 흡입력 있는 문장과 개성 강한 등장인물로 재미있게 읽었다.

늪세상이란 제목을 보면서 이곳이 바로 판타지가 펼쳐지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늪세상은 이 소설의 주인공 가족 빅트리 일가가 운영하는 늪지대 테마파크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엄마의 악어 레슬링이다.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먼 늪지대까지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이 가족들은 악어를 세스라고 부른다. 그들은 늪지대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악어들과 살고 있다. 그러다 가장 큰 흥행 요소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것은 엄마의 암과 그로인한 죽음이다. 흥행 요소가 사라진 늪세상은 부채가 증가하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해 가족해체의 수순을 밟아간다.

그 전에 노망든 할아버지가 먼저 요양원으로 떠나고, 큰 아들 키위가 그 다음에 떠난다. 집에 있던 돈 3백 달러와 함께. 곧이어 인디언인척 하는 추장 아버지가 떠나고, 늪세상에는 두 딸만 살게 된다. 큰딸 오시올라는 유령과 대화한다는 환상 혹은 영적 세계에 빠져 있고, 막내딸 에바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다. 이 두 딸이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다. 악어들을 돌보거나 그냥 자신들의 환상과 세계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니 오시올라가 준설선의 유령 루이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사라진다. 섬에는 에바 혼자 남았다. 언니를 찾기 위해 섬의 새 문제를 해결했던 들새 아저씨와 함께 지하계로 모험을 떠난다.

에바를 통해 펼쳐지는 늪세상의 현실과 모험이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면 키위의 육지 생활은 또 다른 축이다. 이 가족은 늪지대에 살면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했다. 통신 교육으로 어느 정도 과정을 이수한다고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다. 키위가 육지로 올라와서 하버드를 꿈꾸는데 현실과의 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막내 에바의 행동이나 심리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키위는 가족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테마파크 암흑세계에 취직한다. 이것은 정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사회경험을 쌓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변한 환경 속에서 힘든 적응기를 거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판타지를 다루는 것 같지만 지독한 현실을 그 속에 품고 그대로 보여준다. 에바를 통해 소녀의 환상이 어떻게 깨어지는지, 키위를 통해 알고 있던 현실 뒤의 또 다른 삶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성장소설로 읽어도 큰 탈이 없을 것 같다. 자신들의 세계가 깨어지고 현실을 하나씩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비록 소녀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소년에게는 헛된 명성을 잠시 주지만 말이다. 이 가족들은 하나의 희망을 품고 있다. 그것은 공연을 계속하고 늪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단지 현실 적응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가슴 한 편에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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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2011년 제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이다.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과 묘사에 마지막까지 독자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기묘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완전한 수장룡의 날>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들과는 조금 방향을 달리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환자와 의사소통을 한다니 흥미로운 설정이다. 거기에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은 기존 이 상 수상작과 분명히 차별화가 될 것 같다. 가끔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것도 과연 미스터리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하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다.

요네자와 호노부, 그가 2005년 발표한 장편소설이자 처음으로 도전한 본격 미스터리물이다. 담담하고 간결한 터치로 그늘진 청춘상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의 개성과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이라는 평이 눈길을 끈다. 애완견을 찾아주는 탐정이 되려고 한 그에게 찾아온 첫 의뢰인이 손녀를 찾아달라고 한다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다.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이 엉겁결에 떠안은, 역시나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점점 하나로 연결되어가는 과정은 본격 미스터리에서만 접할 수 있는 긴장감과 쾌감을 선사한다고 하니 이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무더위에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배명훈 작품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의 소설엔 경계가 없다. 상상력의 경계가 없고 표현의 경계가 없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경계가 없고, 인물과 캐릭터와 사물과 사상의 경계가 없다." 이 문구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무릎을 탁 친다. 맞다.


찰리 파커 시리즈 첫 권이다. 시리즈 첫 권은 언제나 나를 매혹시킨다. 비록 읽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시작부터 읽는다는 즐거움과 시리즈로 계속 나온다는 혹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를 위한 하나의 좋은 안전장치다.
연쇄살인범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찰리 파커. 경찰직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찾는다는 설정과 도시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살인마의 흔적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킬지 기대된다. 특히 책 소개글 마지막에 나오는 '사악한 범인을 쫓아 결국 그도 악마의 탈을 쓰는가?'는 문구는 도식적이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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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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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한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백가흠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읽기 전에 이 작가에 대한 평은 그리 온화한 것이 아니었다. 엽기라는 단어가 보였는데 이번에는 조금 변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전 작품이 얼마나 과했는지 모르지만 백민석의 소설이나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에 단련된 나에게 과연 이것이 통용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 예상외로 잔잔하다. 누군가는 하나씩 해부하면서 힌트는 도련님이라고 말한다. 자전적 내용이 담긴 글에서 창의성이 바닥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바로 과거의 답습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힘겹게 찾아낸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 접한 이 작가의 과격하고 엽기적인 전작에 대한 호기심을 누그러트릴 정도는 아니다.

단편소설 여덟 편이다. 요즘 한국 단편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서 책을 꺼내 들었다. 첫 소설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를 읽었다. 제목부터 상당히 인상적이다. 소문이 단련된다는 것이 어떤 말일까? 이 소설은 사라진 두 여자를 둘러싼 소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탈북여성 림혜숙과 의사 남편을 둔 장 약사라는 위치는 사실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말도 없이 사라졌다. 림혜숙을 그리워하고 찾는 김 씨나 며느리가 사라진 것을 태연한 척 넘기려는 황 약사의 대응 방법도 다르다. 이런 와중에 소문이 마을 가득 생겼다 사라지는 소문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순간 보이는 몇 장면에서 작가에 대한 평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출발이다.

<그런, 근원>은 한 남자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준다. 불행했던 과거사와 현재를 다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아가는 도중에 벌어진 회상이다. 그의 가족사는 현대사에 가끔 나오는 그것과 비슷하다. 아버지의 실종, 어머니의 가출, 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탐욕. 여기에 동생은 깡패 짓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생존을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다 때밀이하다 발탁된 기획사 매니저 직업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이 새로운 삶이 그를 세련된 듯한 인물로 바꾸지만 삶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의 노인은 한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책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시절의 나 말이다. 물론 소설 속 노인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미래에는 이런 삶을 어느 부분 부러워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집과 서재에 매몰된 삶을 사는 이 노인 조금 이상하다. 이웃과의 대화나 상황이 현실을 넘어섰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신 안으로 파고들고 매몰된 삶과 죽었던 작가가 쓴 글씨가 사라져버리는 장면이 겹쳐진다. 

표제작 <힌트는 도련님>은 자전적인 글이다.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꼈는데 다른 이들의 평을 보니 확실하다. 과거와의 이별, 새로운 창작을 위한 고통을 다루는데 곳곳에 유머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유머가 폭소를 터트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허탈하거나 자조적인 웃음에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아직 읽지 않는 작가의 전작들을 생각하면서 이번 작품집에도 그런 강한 소설 한 편이 실려 있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대형서점에 자신의 책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소설가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는 키 작은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다. 그는 정수기를 판다. 그의 키는 150센티미터다. 이 작은 키 때문에 정수기를 잘 팔지만 삶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40이 넘었지만 비교적 동안 때문에 학생으로 오해를 받고,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는 그가 움직일 공간을 제약한다. 정수기를 팔기 위해 간 동물원은 그의 과거를 떠올려주고, 현실은 다시 그를 압박한다. 딸아이가 원하는 생일 선물을 산 그가 고민하는 장면에서 가슴 한 곳이 짠해진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통>은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했던 삶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느꼈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또 그들을 이용해 권력과 금력을 약취한 자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피상적이었던 그 고통이 현실로 다가오고 어떻게 그들이 고엽제 피해자가 되었는지 볼 때 나의 참을성 없었던 과거가 겹쳐졌다. 현실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더 큰 고통을 가하는 장면이나 약으로 환각의 세계를 빠져든 그를 볼 때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쁘이거나 쯔이거나>는 두 문제를 하나로 엮어내었다. 하나는 농촌 노총각 문제고, 다른 하나는 당연히 베트남 여성의 결혼 문제다. 결혼이라는 관습과 한국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이 결합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진다. 환상이 깨어진 자리를 채워줘야 할 남편은 마마보이에 본전 생각과 성욕만 가득하다. 오십이나 된 아들이 어린 아내와는 섹스만 하고 잠은 엄마 옆에서 잔다. 먼 타국으로 온 쯔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에 오면 늘 볼 것 같았던 동방신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텔레비전에서 본 서울의 화려함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 마흔여덟의 시동생까지. 환상이 사라지고 비루하고 처참한 현실만 자리한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파국은 너무나도 뻔하다. 더불어 마지막에 두 형제가 공모하는 웃음은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이다.


는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발표가 빠르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 과연 어디까지 자전적인지 알기 쉽지 않다. P가 말하는 과거사 중 한 장면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통해 자주 보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참가한 사람의 반응은 낯설다. 특히 어떤 정확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참여한 사람이 아닌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예전에 소설가 친구가 있으면 어떤 이야기하기가 겁이 난다고 한 글이 생각난다. 다음에 소설로 그 이야기가 활자화되기 때문이란다. 과연 이 소설 속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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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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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읽었다. 단 하나의 장편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그다. 바로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등장인물과 장대한 전쟁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었다. 지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가끔 들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 재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이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를 보면서 역시!를 외쳤던 적이 있고, 이 소설에서 <은영전>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바뀌는 대전도를 설명한다. 이 대목은 얼마 전 읽은 <문 로스트>를 연상시켰다. 물론 <문 로스트>와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도 대륙의 변화도 다르다. 하지만 대륙의 날씨 변화라는 점은 이 두 일본작가가 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혹시 지진 등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특유의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면 이 원작들이 나올 당시 이런 종류의 대재앙을 다루는 내용이 하나의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공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도 전 인류는 달에 월면도시를 만들고 거주했다. 대전도는 3년에 걸쳐 벌어진 대재앙이다. 이 때문에 100억 명의 인류가 죽었다. 대전도 후 월면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강림처럼 내려와 완벽한 도시 및 자원 개발 계획에 따라 일곱 도시를 건설한다. 이 일곱 도시는 당연히 경쟁을 하는데 작가는 하나의 전제 조건을 단다. 월면도시 사람들이 지구 표면의 사람들이 지상 500미터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상을 날아오르면 올림포스 시스템에 의해 파괴된다. 이 장치로 달은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하지만 월면도시가 달을 강타한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면서 지배자는 없지만 시스템에 의해 제약되는 지구를 만들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환경 속에 벌어진 일곱 도시 이야기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길지 않은 분량인데 전쟁과 영웅과 정치를 다룬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 <은하영웅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정치 문제가 전쟁으로 발전하고 이 전쟁에서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한다. 재미난 부분은 군인을 철저하게 정치에 부속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은영전>에서 라인하르트를 통해 위대한 독재자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보여주는 반면 양 웬리를 통해 민주주의의 혼란 속에 감쳐진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물론 이 소설 속 사령관들은 정치인들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가끔 태업을 하면서 조율을 한다. 그리고 독재자로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가게 만들어 정치에 대한 작가의 혐오를 느끼게 만든다. 이 부분은 <창룡전>에서 신랄하게 일본 정치를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앞 세 단편이 네 명의 개성 강한 사령관을 등장시켜 전쟁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이후 두 편은 이들의 미묘한 견제와 협력 속에 펼쳐진다. 군인 외에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는데 류 웨이다. 첫 이야기 아퀼로니아 전쟁을 다룬 <북극해 전선>에서 날카로운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과 인선으로 전쟁을 승리하게 만들고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과 그림자는 전편에 드리워져 있는데 낭중지추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가 충분히 활약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다.

이 소설 속 전쟁 영웅들은 공격이 아닌 방어로 명성을 얻었다. 예외라면 케네스 길포드 정도다. 첫 이야기에서 그가 이끈 대승도 상대 도시 최강의 인물 AAA와의 대결이 아닌 데 이런 직접적인 대결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의외의 전개라면 각 도시 최고의 군인들이 연합으로 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목표에서 벌어진 <페루 해협 공방전>은 최강의 군인들이라도 하나의 지휘계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그 위력이 반감됨을 보여준다. 하나의 명령 아래 긴밀한 협조와 치밀한 계획과 자기희생이 따랐다면 쉽게 승리했을 이 전쟁을 말이다. 그리고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정치인들의 욕심을 견제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가끔 전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는 장군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는 변함없다.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화 두 개만 말하겠다. “어린애는 스스로 굶어서 장난감을 사지만, 군인은 타인을 굶겨 병기를 사게 한다. 어린애는 마르고 군수 기업은 살찌는 거야.”(162쪽)와 류 웨이가 ‘전쟁 개시 결의에 찬성한 정치가가 최초로 전선에 나올 의무를 진다’는 법률안을 내고 부결된 것을 아스발이 “그야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면, 전쟁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으니까요.(16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한국처럼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특히 많은 나라에서 류 웨이의 법률안은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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