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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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89년 작품이다. 가상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이 때문에 영화 <매트릭스>와 <인셉션>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앞선 작품이다. 이 당시나 이전에 가상현실이나 아바타 등을 다룬 sf소설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제목처럼 가상세계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전개 때문에 색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과연 마지막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인지는 각자에게 열려 있다. 만약 이 세계를 더 즐기고 싶다면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저작권 사용 계약서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음미하기 전에 도망치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산속 낡은 건물로 숨어든 그는 자신이 꼬리를 삼키는 뱀 같다고 느낀다. 이 바로 앞에 이 계약서가 진짜임을 강조하는 글들이 나온다. 왜지? 그리고 단지 게임 계약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도망을 다니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바로 과거 속 이야기로 들어가서 그의 경험을 들려준다.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말이다.

주인공 우에스기는 게임북 공모전에 브레인 신드롬이란 작품을 제출한다. 분량 초과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진 업체가 나온다. 바로 입실론 프로젝트라는 게임회사다. 이 소설 제일 앞에 나온 계약서의 당사자다. 예상하지 못한 계약과 함께 그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계를 만나게 된다. 프로토타입으로 불리는 장갑이다. 그런데 이 장갑 정말 대단하다. 현재의 기술로도 구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놀라운 현실감을 준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한 후 1년 반 정도 회사에서 연락이 없다. 혹시 게임 개발은 없어진 것일까? 계약금을 모두 받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원작이 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싶다.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던 그에게 회사에서 연락이 온다.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말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게임은 클라인-Ⅱ로 불린다. 회사는 원작자인 그에게 테스트 플레이어가 되어주길 바란다. 프로토타입이 손만으로 가상 경험을 하게 한다면 클라인-Ⅱ는 전신을 덮으면서 가상현실로 인도한다. 이 놀라운 기술은 게임 속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서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한다. 인터넷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기술이다. <인셉션>의 세계와 비교한다면 조금 비슷할까? 그런데 이 개발이 완전하지 않다. 오류가 생긴다. 물론 이런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그를 데리고 왔지만 이상하다. 이것은 다른 테스트 아르바이터 리사와 연결되면서 더욱 의심을 불러온다. 게임의 새로운 방향도 만들어지지만 말이다.

가상현실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주는 설정을 이 소설도 따라간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논외로 하고 이 설정이 얼마나 독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얻었다고 본다. 물론 중간에 허술한 트릭 하나를 발견하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일부를 예상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흩어버림으로써 열린 결말을 만들어 독자의 상상력을 키웠다. 내가 기억하는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현실인지 묻게 만들면서 심하게 비약하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현실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뭐 이런 작품을 볼 때면 늘 생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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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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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구병모의 첫 소설집이다. 온라인서점에 접속해 책 정보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지만 서점에서 그냥 책 표지를 봤다면 장편으로 착각할 수 있다. 표지 어디에도 소설집이란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난다.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서점에서 주문을 하기에 단편집임을 알지만 오프라인에서 사거나 이벤트 등으로 받을 경우 첫 단편에서 호흡을 놓치고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사라지고 있다. 단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기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뒤에 수록작품의 발표지면을 표기한 것은 반갑고 고맙다. 가끔 어느 단편이 먼저 발표되었는지 궁금한 소설집을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편이다. 이중 두 편은 신작이다.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데 서평으로 먼저 만난 적이 있다. 특히 <위저드 베이커리>의 호평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음 작품 <아가미>도 호평을 받았고, 이 두 작품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물론 더불어 선입견도 생겼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위에서 말한 장편 착각을 했다. 목차를 보면서 확인하니 단편임을 알게 되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장편의 호흡을 읽을 뻔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확인 작업이지만 그래도 가끔 놓치는 경우가 있다. 

선입견과 첫 작품이 이 소설집이 어떨 것이란 첫 인상을 심어줬다. 물론 다른 단편을 읽으면서 이런 선입견들은 깨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한참 한국 단편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누군가의 흔적들이다. 당연히 부정확하고 저질인 기억력은 명쾌하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다. 분명 어딘가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하는 감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기시감으로 치부하면 간단하지만 그 동안 읽은 내공이 있어 이것을 거부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재미를 방해한 것은 아니다.

<마치 ……같은 이야기>는 비유가 사라진 도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문장이 간결하고 사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아니다. 비유가 사라졌다고 문장이 더 사실적이고 간결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고갈되고 삶이 건조해질 뿐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기계로 대체된 도시라고 해야 하나. 점점 더 많은 효율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간성이 어떻게 메말라 갔는지 생각하면 마치 미래 사회 같은 이야기다. 언론 통제로 인한 현재도 물론 가능하다.

<타자의 탄생>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금속에 갇혀 땅에 묻힌 남자 이야기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상반신 일부와 한 판이다. 처음에는 누가?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를 끄집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그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눈길이 간다. 호기심의 대상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점점 더러워짐에 따라 혐오의 대상으로 변한다. 이 변화가 우리의 심리 변화 과정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마지막 장면의 다음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표제작 <고의는 아니지만>은 지독한 현실 앞에 놓인 한 유치원 교사 이야기다. 그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 선의 뒤에 숨겨진 본심과 힘겨움과 지겨움은 어느 순간 폭발한다. 그녀의 폭발에 공감대가 형성되지만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에 더 눈길이 간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일상이 자신의 직업 테두리 밖에 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의 폭발을 참았어야지라고 말 못하겠다. 이기적인 학부모의 행동은 며칠 전 회사 동료가 말해준 한 어머니의 반응이 생각난다. 담임이 공차다가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발로 흉내 내면서 가볍게 툭 댄 것을 ‘그 선생 미친 거 아냐!’ 하면서 교육청에 신고하니 마니 했다는 엄마다. 물론 발로 찼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그것을 본 동료의 딸 이야기는 흉내 정도였다. 지독한 과잉보호와 이기주의가 교육계 비리에 대한 방패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장기>는 제목만 보아서는 티벳의 조장 풍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새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는다. 히치콕의 <새>라는 영화가 연상되지만 실제는 그런 공포 소설이 아니다. 못생겨서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도 직업도 구하지 못하는 한 20대를 통해 절망으로 가득한 현실의 풍경을 보여준다. 새들이 공격하는 사람이 바로 이 절망 가득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현실의 힘겨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들에게는 마지막 장면처럼 부러운 현실인지도 모른다.

<어떤 자장가>는 대필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 엄마의 아이 잠재우기 사투 이야기다. 끔찍한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데 그녀의 고통이 조금은 이해된다. 조금만 이해되는 것은 얼마 전 이 사투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출근 전 남편이 잠자는 아이를 보면서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얼굴은 잘 때가 제일 예쁜 법”(172쪽)이라 맘속으로 말하는데 그 처절했던 아내의 사투가 겹쳐지면서 후배 아내가 남편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재봉틀 여인>은 옛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의 폭력이다. 이 교사 똑똑하다. 그 장면을 촬영할 수 없게 휴대폰을 모두 압수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학생들의 증언으로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이 폭력 때문인지 학생은 만물수선집에서 재봉틀 여인을 만나 감정을 꿰매어버린다. 감정이 메말라버린 청년에게 벌어진 현실은 또 다른 88만원 세대의 은유다.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할 여유도 기대로 사라진 그들의 초상화다.

<곤충도감>은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말한다. 그 어떤 성욕도 용납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감정은 거세당한다. 인간성이 사라진 곳에 감정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이성은 작용을 하지만 삶의 의지는 꺾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자발찌를 찬 남자가 성욕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몸에 심어져 있는 생명체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범죄예방에 좋을지 모르겠지만 인권을 생각하면 다르다. 물론 누구의 인권이 더 중요하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현실에서 전자발찌와 성욕억제 약물 투여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답인 것 같은데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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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1 : 사라진 도시 다른 세상 1
막심 샤탕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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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존의 막심 샤탕과 분명히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도 있다. 그것은 속도감과 재미다. 피곤한 몸 상태로 이 책을 들었다. 분명히 기존과 다른 청소년 판타지란 소개에 약간의 걱정도 했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런 걱정은 쓸데없었다. 분명하고 빠른 장면 전환과 개성 있는 캐릭터는 이 놀랍고 새로운 세계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시작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열네 살 소년 맷이 주인공이다. 이 나이의 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현대에는 별로 없다. 물론 막나가자고 하면 그 끝이 없지만 말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기상이변을 먼저 보여준다. 요즘 흔히 만나는 장면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이상한 현상을 집어넣는다. 파란 섬광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파란 섬광의 공격을 받은 사람이 옷만 남겨놓고 사라진다. 처음 맷이 이 장면을 보았을 때 환상이나 꿈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폭풍설이 도시를 강타하던 그 날 이 파란 성광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도시를 파괴한다. 그리고 도시의 모든 것이 변한다.

갑자기 사라진 어른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 전자제품은 모두 파괴되었고 문명의 흔적은 점점 사라진다. 이런 현실 속에 두 소년 맷과 토비아스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아난다. 하지만 이 둘을 쫓는 이상한 그림자가 있다. 의문을 자아내는 그림자의 존재는 중간중간 맷과 연결되고 그를 유인한다. 이 소설 속 미스터리 중 가장 큰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소년의 도시 탈출기는 생존을 위한 방편이다.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이 도주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 이런 이변이 생겼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데 중간에 앙브르를 통해 밝혀진 가정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무분별하고 파괴적인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면역체계를 건드렸고 그 때문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는 가정이다.

대자연의 역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부분은 이 소년들의 탈출기다. 중반 부분은 소년들이 모인 팬들의 섬에서 펼쳐진다. 그 전에 한 어른의 공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5개월만에 깨어난 맷을 통해 변해버린 세계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책 제목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어른들은 사라지거나 알 수 없는 괴물로 모두 변했다.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킨 것은 십칠 세 이하의 아이들뿐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들을 피터 팬에서 따온 팬으로 부른다. 그리고 변해버린 어른들과 아이들의 대결이 시작한다. 

현대는 엄청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 이 지식을 인터넷으로 쉽게 이용한다. 물론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지만 인터넷 의존도는 점점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가 학창시절 배우는 것은 그 시대의 흐름에 맞춰져 있다. 그 때문에 지국의 역습으로 변해버린 다른 세상에서 쓸모없는 것들이 엄청나다. 가장 기초적인 옷과 음식을 소년들이 도시의 상점 등에서 수집하는 것으로 이것을 보여준다. 문명이기가 사라진 자리를 금방 대체할 정도의 지식과 능력이 아직 소년들에게는 없다. 땅을 경작하여 농산물을 수확할 정도도 되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세계 문명이 태동하려고 한다.

다른 세상으로 변한 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이들의 초능력이다. 괴물로 변한 어른들을 상대하기에는 소년 등의 체력이 너무 딸린다.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식과 임기응변으로 적을 물리치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이 대안으로 작가는 초능력을 집어넣었다. 각각 자신의 생활 습관과 바라는 바를 결합한 초능력을 말이다. 그리고 맷을 영웅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 고전 문학의 향기가 스며있는데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의 대표작 <악의 삼부작>보다 치밀함이나 긴장감이 조금 약하지만 소년들의 등장으로 수위조절을 한 것 같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과연 어떤 다른 세상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모험을 펼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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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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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는 판타지나 sf 장르가 아닌가 하고 착각도 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읽고 난 후 황당함을 느꼈다. 천 명의 백인 신부와 천 마리의 말을 교환해 백인과 인디언 사회의 영구 평화를 도모하자! 는 발상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제안 아닌가! 그런데 1874년 9월에 샤이엔 족의 대족장 리틀 울프가 제18대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실제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럼 실제 일어난 일일까? 아니다. 이 기발한 제안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 멋진 허구의 세계가 펼쳐진다.

실제 제안은 거부되었지만 소설은 이 제안의 실용성을 주목하고 은밀하게 실천으로 옮긴 것으로 가정한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은 바로 이 제안을 실천으로 옮기는 순간부터다. 가칭 인디언 신부 계획은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여성들을 모아서 서부로 향한다. 그리고 이 비밀 계획은 한 여성의 일기를 통해 기록되고 알려진다. 그 여성이 바로 메이 도드다. 그녀는 1차 지원자 46명과 함께 미개인의 신부가 되기 위해 기차를 탔고, 그곳에서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있는 멋진 동료들을 만난다. 이 때부터 두 문화의 충돌 속에서 47명의 백인 신부들의 활약을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일기의 주인공 메이 도드가 이 계획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더 이상하다.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사랑 때문이다. 그녀가 집안의 일꾼 해리와 눈 맞아 아이들을 낳고 비천하게 살았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이것을 용납하기 못했다. 그녀의 두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그녀는 음란하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생기지만 예전에 한국에서도 가족들이 다른 가족을 정신병원에 감금했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던 그녀가 병원 탈출을 위한 제안이 왔을 때 금방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인디언 신부 계획이 밖에 드러나는 것을 겁낸 미 정부가 신부들을 모집하는 방식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메이 도드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찾아온 것이나 매춘부 쌍둥이가 자원한 것이나 또 다른 사연을 가진 여성들이 참여한 것은 당연하다. 인디언을 미개인으로 부르고 혐오하던 그 시절 그 누가 자신의 딸이나 누이를 말과 바꿔 신부로 보내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연 많은 여성들이 지원하게 되고 그 사연으로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성들이 등장함으로써 낯선 세계와 함께 하고 자신들의 삶을 좀더 다양하게 개척하게 된다. 

단순히 이 백인 신부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미있고 유쾌했을지 모르지만 깊이는 부족했을 것이다. 작가는 두 문화의 충돌을 보여주고, 각 문화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환상이나 전설 속 인디언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인디언들을 만나게 된다. 각각의 의도에 의해 왜곡된 인디언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 누구보다 순수했고, 그 순수함이 우리의 시각 속에 잔인함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새로운 긴장감을 주고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졌던 그 시대의 일면을 마주하게 한다. 

이 작품은 기발한 제안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으로 그 제안을 발전시키고 그 상상력을 현실의 기반 위에서 멋지게 구현했다. 메이 도드를 비롯한 각각의 백인 신부들은 그 시대의 기준으로 역외자들이고 기존 질서의 도전자들이다. 이들의 개성을 새로운 문화 충돌 속에서 세밀하게 그려내었는데 이것도 역시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 빛을 발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눈길을 끈 여성이 있다. 흑인인 피미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 모두 자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데 현재의 활약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남자 인디언과 어울려 초원을 달리고 적을 무찌르고 사냥을 하는 그녀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예정된 결말을 다시 되새겨본다. 기대 이상의 재미와 새로운 역사의 한 장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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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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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 나오는 절해고도 중 대부분이 요즘은 너무 쉽게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완전히 다르다. 쾌속선으로도 몇 시간 걸리는 곳이거나 자기가 살 던 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물론 강화도 옆의 교동도처럼 멀지 않은 곳도 있다. 그래도 그곳을 가지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야 한다. 심리적인 거리감은 현재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거기에 위리안치라니 얼마나 가혹한 처벌인가!

위리안치는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킨 형벌이다. 섬이라는 공간이 유배지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와 격리된 곳이다. 그런데 가시나무로 둘러쳐 외부와 완전히 동떨어지게 했다는 것은 엄청난 유배다. 유배를 간다는 것이 중앙 정부의 권력과 가까웠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심리적인 박탈감은 더 대단했을 것이다. 유배지 특성 상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책 속 몇몇은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몇몇은 십 수 년을 그곳에서 보내며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두 저자는 유배된 섬이 절망의 땅이었고, 무기징역형이었기 때문에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었다. 이 사실은 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거나 학문의 성취를 이루거나 예술혼을 더 높인 인물이 나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졍약전 같은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유배되어서 한 번 가고 관리로 한 번 다시 그곳에 간 조정철의 사연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조정철의 위리안치는 그 정도가 심해 다른 인물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절해고도는 곧 멋진 풍경이 있다는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아닌 곳도 있다. 하지만 저자들이 다녀와서 보여준 멋진 사진들은 지금 봐도 절경이다. 개발의 손길에 많은 부분 해손된 곳이 있음을 감안하면 그 때는 더욱 멋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 유배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다를 것이다. 마음이 막혀 절경이 눈에 와 닿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섬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가도 유배형이 풀리면 금방 떠났다는 사실은 역시 집보다 못함을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유적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문헌에 기대어 그곳을 찾아가는데 약간 아쉬움이 있다.

두 저자가 이 먼 곳을 찾아가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유배지에 그들이 남긴 기록들이 그 섬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절망의 땅과 그 반대의 기록들이 그들을 부른 것이다. 이 기록들은 다시 이 글을 통해 독자의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든다. 단순히 멋진 풍경으로 기억하던 곳이 ‘아! 예전에 이곳에 유배되었지만 결코 그 의지가 꺽이지 않은 인물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것은 또 유배지가 절망의 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임을 알려준다. 그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은 인물이 나온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모두 열네 곳과 열네 명의 인물의 다룬다. 낯선 인물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역사서에 자주 혹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작품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또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이런 유배를 견뎌낸 인물이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알려준다. 그 시절을 힘겹게 견뎌낸 것이 어느 정도 큰 밑거름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 곳곳에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 몇몇을 새롭게 보게 된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익현의 최후와 명사십리의 의미다. 더불어 이제는 멋진 관광지 혹은 풍경을 가진 곳이 된 절해고도로 발길을 옮기고 싶다. 뭐 그곳에서 선조의 흔적은 뒤로 밀리고 절경에 더 눈길을 더 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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