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눈 - 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
퍼거스 플레밍.애너벨 메룰로 엮음, 정영목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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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위대한 탐험가가 남긴 경이와 장엄의 기록이란 부제와 함께 한 남자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 어린 시절 누구나처럼 탐험은 위대한 환상이자 로망이었다.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하니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겼고, 만화나 영화 등을 통해 만난 모험가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볼일 없고 유치한 곳들이지만 그 당시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긴장되며 환상을 불러오는 모험이었다. 자라면서 책 속에서 만난 탐험가의 이름과 업적은 지금도 강하게 머리 한 곳을 차지한다. 몇몇 탐험가는 허위로 밝혀지고 과장되게 평가된 업적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모두 61명의 탐험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 후 남긴 54편의 탐험기가 실려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모험가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탐험가 중 처음 듣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학창 시절 배우고 읽은 책들 대부분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인물들 중심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평가가 약한 인물은 자연스레 낯설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만날 때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부족한 지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이 탐험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편집자 서문에서 “불가피하게 누가 탐험가이고 누가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탐험가의 정의는 ‘새로운 탕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발견은 무엇이고, 새로운 땅은 무엇인가?”(8쪽)라고 묻는다. 어느 정도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아직 오리엔탈리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편집자들은 “탐험가란 미지의 땅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 르포르타주를 쓰는 것보다는 조사를 이유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며, 최초로 그렇게 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었다.”(9쪽)고 정의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머릿속에 꼭 담아둬야 할 대목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편집자들이 한 것은 탐험가들의 기록을 발췌해서 나열한 것이 전부다. 탐험가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각 탐험기 앞에 나오지만 본문은 탐험가들의 기록이다. 그들이 듣고 보고 기록하고 그리고 촬영한 것을 선별하여 실었다. 당연히 글들은 각양각색이다. 쉽게 읽히고 해석되는 글도 있지만 너무 장황한 묘사 때문에 집중력이 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이 탐험가들이 직접 쓴 글이다. 결코 평탄하고 쉽지 않았을 탐험 도중에 그들은 잠깐 틈을 내어 기록한 것이다. 이 부분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탐험 도중 죽고, 그 후 후발대에 의해 기록이 발견되어 알려졌을 때는 더욱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매력은 그림과 사진들이다. 글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루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발췌했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끔 탐험가의 기록에서 처절함이나 공포, 또는 이상할 정도의 여유를 발견해서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 내용을 압도한다. 낯설고 위험한 곳을 담아낸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글 이상의 파급력을 가진다. 사진에 눈이 빨려 들어가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멋지다, 대단하다, 저랬구나 등의 감탄사를 토해낸다. 어쩌면 이런 사진 때문에 글에 더 집중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탐험가들이 왜 이런 위험한 일을 할까? 등산가에 산을 왜 오르냐고 물으면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이란 답을 내놓는다고 한다. 단순히 이 일을 즐기기 위해서, 삶이기에 그렇다는 의미다. 꽤 많은 탐험가들이 이 일을 즐기기도 하지만 호승심이 강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세계최초, 인류 역사상 처음 등과 같은 수식어는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조금씩 나오는 국가 간, 개인 간 경쟁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가게 한다. 이때도 그들은 기록을 남긴다. 바로 그 결과물의 집합체가 바로 이 책이다. 탐험가가 가지 않은 곳은 없다. 지구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깊은 곳을 넘어 달까지 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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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상자 꿈꾸는 달팽이
루스 이스트햄 지음, 김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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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잊고 싶은 만큼 그 기억은 강렬하다. 잊고자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기에 잊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삶은 이렇게 잊고 싶은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 당시의 아픔, 공포, 고통, 두려움, 좌절 등등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난다. 닫아두었다고 생각한 기억의 상자가 열릴 때 있는 힘껏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조금씩 흘러나와 과거의 그 순간으로 우릴 데려간다. 아주 가끔은 이 상자의 개봉이 아픔을 넘어 치유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알렉스, 그는 영국으로 입양되었다. 양부모의 사랑과 양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가 오면서 자신의 위치를 빼앗긴 레너드는 그를 질투하고 괴롭힌다. 이 둘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큰 후에 양자로 입양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 중 한 가지다. 이런 보통의 일상 속에 그를 그대로 받아주는 가족이 있다. 바로 양할아버지 윌리엄 조지 스미스다. 그는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부모는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고, 할아버지는 그곳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스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스크랩한다. 바로 거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알렉스와 할아버지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있다. 전쟁이다. 이 두 사람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 할아버지는 2차대전 때 형을, 알렉스는 보스니아 내전 때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이 두 사람에게 그 당시의 기억은 잊고 싶은 것이다. 누가 이것을 깨우려고 할 때 거부감을 느끼고 절대적으로 반대하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알렉스는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가는 것을 막고 싶다. 병으로 고생하는 도중에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반응과 행동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 의문을 파헤치면서 잊고 싶어하던 기억을 되살려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할아버지는 콘치로 불렸는데 이 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의미한다. 처음 이런 제도가 2차 대전 영국에 있었다는 것을 읽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 당시 겪어야 했던 비난과 폭력 등을 생각하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안타깝다. 이것은 다시 할아버지를 들들 볶으면서 자신들의 비통함을 달랬을 것이라는 커비 선생님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그를 만만한 표적으로 삼고 공격한 것이다. 쉽게 말해 남탓을 한 것이다. 좀 심하게.

할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됭케르크에서 사람을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 훈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용기는 동네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바로 위에 말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그때 받은 충격과 상실감과 공포를 기억의 상자 속 깊은 곳에 묻어두려고 한다. 미스터리처럼 이 과정을 다루는데 뻔한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비밀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이런 미스터리의 약점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전쟁으로 큰 아픔과 공포와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이 시대를 초월해서 자신들을 마주하는 것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족들이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화해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약간은 작위적인 마무리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할아버지의 과거와 됭케르크의 사실은 왜 전쟁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돼는 지 알려준다. 할아버지를 공격했던 두 사람이 사실보다 자신들의 바람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그를 공격한 것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전시하려고 했을 때 정부기관이 사찰하고 막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불편한 진실은 관료를 괴롭히고 많은 사람들의 환상을 깨트린다. 총을 들고 싸운 사람만 용기 있는 국민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나 뒤에서 전쟁을 독려하는 사람들은 그 참혹한 현실이 주는 공포, 두려움, 고통, 좌절, 포기, 용기 등을 결코 알 수 없다. 실제 이야기 속에 든 것보다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은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하고 고민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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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왼팔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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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노보우의 성>을 재미있게 읽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 구성에 개성 강한 캐릭터를 내세워 읽는 즐거움을 줬다. 그러니 이번 작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제목만 본다면 왠지 무협의 느낌이 난다. 야구 소설이라면 왼손 투수가 떠오르겠지만 시대 배경은 센고쿠(전국)시대다. 사실 일본 역사에 정통하지 않다보니 센고쿠 시대가 어디쯤인지 모른다. 이야기 중에 나온 해설을 보면 그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가 20세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어떤 시대인지 몰라도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이 시대는 조총이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전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총의 위력과 가치를 잘 몰랐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다. 시대 배경은 바로 노부나가가 3열로 조총부대를 꾸려 전국을 휘어잡기 바로 얼마 전이다.

노부나가 이야기를 해서 그가 이야기에 중심적으로 등장할 것 같지만 아니다. 때는 1556년 전국시대. 각 영지의 다이묘들 싸움이 끊이지 않던 시기다. 그중 도자와 가문과 고다마 가문이 싸운다. 병사의 수 등을 생각하면 도자와 가문이 밀려야 하나 이 가문에는 공로 사냥꾼으로 불리는 한에몬이 있다. 물론 고다마 가문에도 기베에가 있다. 하지만 무게의 추는 한에몬 쪽으로 기운다. 이런 개인 역량 차이에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한에몬이 처한 상황이다. 도자와 가문을 앞으로 이을 즈쇼가 해방꾼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공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가문의 병사를 위태롭게 만들지만 한에몬의 존재로 위협은 벗어난다.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원제는 <고타로의 왼팔>이다. 고타로는 열한 살이다. 등치만 본다면 맹장 한에몬에 뒤지지 않을 정도고 청소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소년 왠지 허술하다. 너무 착해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다. 할아버지와 둘이 함께 사는데 이런 괴롭힘을 받으면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아이의 마음이다. 이 마음 때문에 그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내지 못한다. 거기에 중요한 요인 하나. 그것은 이 아이가 왼손잡이란 것이다. 보통의 조총은 오른손잡이용이다. 겨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가 왼손잡이 조총을 쥐고 쏘았을 때 신의 왼팔이 된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병기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은 늘 적응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 시대 무장들은 조총을 그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로 보지 않았다. 그 무기를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몰랐고 이전의 가치관에 휩싸여 있었다. 무사가 보여주는 용기와 기백은 적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바로 이 때문에 한에몬이 적진을 향해 달릴 때 적들이 도망가는 것이다. 덕분에 그의 무공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 벽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가 무사의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는 계기가 있다. 바로 부하들의 생존이다. 살기 위해 인육까지 먹는 그들을 보았을 때 그 자신도 어느 정도 괴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다른 괴물을 전장으로 불러오게 되지만.

시대와 재능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재능은 그냥 신기할 뿐이지만 때를 만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한에몬의 재능이 시대의 변화 속에 그 끝자락을 차지한다면 고타로의 재능은 새로운 시대를 보여준다. 바로 저격수로서의 재능이다. 물론 무사로서 한에몬의 재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 자리한 무사 정신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고타로의 재능도 너무 빠른 것인지 모른다. 너무나도 위협적이고 강렬해서 주변이 공포에 잠기고 없애려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현대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쉽게 땄겠지만.

단숨에 읽히는 매력은 변함없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하고 이야기 전개는 조금 단순한 느낌을 준다. 노보우의 개성이 너무 강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해설자로 등장해 시대를 설명하는 부분은 조금 어색한 기분도 들지만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고타로의 경이적인 사격술에 대한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왜냐고?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빠른 속도감과 가지를 많이 친 전개는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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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수장룡의 날
이누이 로쿠로 지음, 김윤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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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상현실을 다룬 일본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오카지마 후타리의 <클라인의 항아리>다. 이 소설은 게임을 소재로 다루었는데 이번 소설은 SC인터페이스라는 도구를 통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와 의사소통을 한다. 두 작품의 출간 시기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보니 과학 발전에 의한 설명이나 해설 등에서 변화가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영화 <인셉션>을 비교대상으로 삼는다. 아마 이 영화가 최근에 나온 영화 중 가장 가상현실을 잘 다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 작품의 차이를 하나 꼽는다면 <클라인의 항아리>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수상작이라면 이 소설은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J.D.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에 바치는 오마주란 글이 눈길을 끈다. 이 소설은 <아홉가지 이야기>란 소설집에 실린 단편이다.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라 이 평가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지만 소설 속에 나온 내용만 본다면 장자의 <호접지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실과 가상의 교차와 뒤틀린 현실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읽는 내내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샐린저의 소설 속 오르트기스 자동권총이 하나의 도구로 등장하여 가상현실 속에 또 다른 가상현실을 만들어낼 때 일상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인기 만화가 가즈 아쓰미는 자살을 시도했던 동생 고이치가 있다. 이 동생에 대한 옛 기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사는 섬에서 벌어진 고이치와 그녀의 익사할 뻔한 사고가 떠오른다. 떠내려가는 동생의 손을 잡았던 감촉은 아주 생생하다. 이 감각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온다. 그녀가 오랫동안 잡지에 연재했던 만화가 끝날 때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식물인간이 된 동생이다. 과학의 발달로 SC인터페이스란 장치를 통해 식물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동생과의 접촉은 늘 자살로 끝나고 만다. 왜 이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마무리될까? 그리고 샐린저의 오르트기스 자동권총은 왜 등장한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어릴 때 기억과 혼수상태 동생과의 의사소통과 인기 만화가로서의 삶이 나란히 진행된다. 각각 분리된 것처럼 보였던 일상들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현실과 꿈이 뒤섞이고, 어디까지 현실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아쓰미의 일상에 끼어드는 환상은 혹시 SC인터페이스의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섬세하고 교묘한 장치를 통해 단서를 앞에 심어놓았다. 그것을 알아챈다고 해도 쉽게 단정지을 수 없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사실을 통해 모든 상황을 뒤집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아! 하고 앞에 놓아둔 단서들이 하나씩 머릿속에서 깨어난다.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로 볼 수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늘 일본 미스터리의 다양한 시도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공정한가 하는 물음에 이 소설은 다른 서술트릭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또 스케일을 확대하지 않고 축소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결국 인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연과 관계들이 숨겨진 사실과 맞물려 힘을 발휘할 때 그 반전은 어쩌면 미스터리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어쩔 수 없이 <클라인의 항아리>를 연상시킨다. 가상현실에서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쉽다. 너무 그 구성 안에 안주하면서 억지 혼란을 심어주려는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을 자주 본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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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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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기자는 2008년 봄부터 2011년 봄까지 <한겨레21> 편집장으로 있었다. 이때 ‘만리재에서 ’란 칼럼에 글을 썼다. 이 글들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사 출신 손석춘 씨의 글 모음집 <새로운 바보를 기다리며>를 읽었었다. 우연인지 같은 신문사 출신의 칼럼이나 논설 등을 연속으로 읽고 있다. 왠지 한겨레와 나의 코드가 맞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그런 것일까? 손석춘 씨는 예전부터 잘 알던 이름이다. 반면에 박용현 기자는 낯설다. 원래 신문 논설이나 칼럼을 잘 읽지 않는다.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책으로 박용현이란 이름을 꼭 기억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표지의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래은행 옆 화장실에 철수와 영희란 이름으로 된 비슷한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살짝 저자의 약력을 본다. 그런데 별다른 내용이 없다. 특이하다면 간결한 것과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 정도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그의 학력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법에 대한 해석과 인용과 적용 등이 이전 어떤 칼럼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 하나를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그의 칼럼들을 열심히 읽었다.

모두 여섯 장으로 칼럼을 나눴다. 124편의 칼럼을 민주주의, 언론, 어린이, 인권, 정의 등을 주제로 분류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그의 전공 분야를 살린 글들이다. 일 년간 미국 로스쿨 유학 과정에서 경험한 것과 법철학을 인용해 풀어낸 해설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다. 그 바탕에 깔린 민주주의와 법치를 생각할 때 더욱더. 그래서인지 단숨에 읽기는 조금 버겁다. 간결하고 좋은 내용으로 가득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나 자신의 문제들도.

그의 논설과 해설이 탁월한 법 지식을 통해 빛을 발하지만 현실에서 그 빛은 가두어져 있다. 대부분의 신문 독자들이 조,중,동,매만 읽고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아주 아주 가끔 이 신문들의 논설을 읽을 때면 교묘한 말장난을 보게 된다. 곡학아세라고 하나. 아마 보수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도 나와 비슷한 표현을 할지 모르겠다. 이전에 독실한 한나라당 지지자 친구와 그 당시 유행하던 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것을 느꼈고, <김광수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읽은 한나라당 지지 상사의 말에서 다시 한 번 더 깨달았다. 그들과 나의 사이에 너무나도 큰 틈이 벌어져 있구나 하고.

MB가 집권한 후의 칼럼이다 보니 보수언론이 눈을 감거나 무시하거나 왜곡한 내용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반박이 담겨 있다. 거기에 그의 생활과 함께 풀어져 나오는 글들은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버스나 지하철 경로석 문제나 통화예절 등. 그리고 제대로 그 의미를 몰랐거나 묻혔던 판결문 등이 그의 글로 되살아난다. 어느 글에서는 나와 주변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사회의 어둠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당장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해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것들이다. 

최근 나꼼수를 통해 또 다른 정치비판의 눈을 본다. 코믹하지만 신랄하고 나름 잘 정리된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잊고 있던 잊고자 했던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멋진 칼럼들에서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글들이 수없이 나오지만 나꼼수의 영향인지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다. “악마는 늘 디테일에 숨어 있으니까요.”(203쪽) 악마 기자 주기자가 연상된다. 물론 이 인용된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조,중,동 이 지금까지 전체 맥락이 아닌 한 문장으로 전체를 왜곡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이때의 디테일은 주기자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의 디테일은 배경과 사실에 대한 디테일이다. 한 문장이 이런 연상 작용을 불러왔다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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