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베러 블루스 - 재수 듣고 그리다
재수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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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명의 재즈곡과 그 곡이 나온 같은 이름의 영화다. 스파이크 리 감독에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였다. 이 재즈곡에 반해서 시디를 산 후 한동안 이 음악만 줄기차게 들은 적도 있다. 노라 존스의 앨범과 함께 직접 산 몇 되지 않는 재즈 앨범이다. 뭐 찾아보면 거장의 앨범도 몇 장 있겠지만 그들의 음악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름 때문에 샀다. 책에서 본 명성 때문에 사서들은 것이다. 물론 좋았다. 하지만 개인 취향이나 몰입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만화가 재수, 잘 모른다. 시선을 끈 것은 제목이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재즈 곡명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펼친 첫 장면이 군악대 모습이다. 별 셋을 단 장군을 위한 이,취임식 행사 연주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수를 한다. 별 하나가 사라지는 그림이 나온다. 이 장면은 꿈이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군 제대 후 남자들이 가장 겁내고 두려워하는 꿈이 군에 다시 입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악몽에서 깬 그를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공포 대상인 직장 생활이다. 

이태백 시대에 직장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의 직업이 회계사임을 생각하면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인공 구근운에게 이런 반복적인 일상은 자신의 삶을 갈아먹을 뿐이다.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과 자신이 사라진 삶과 직장 상사의 서류 던지기 신공은 더욱 각박하게 상황을 만든다. 재즈를 좋아하지만 연주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재즈가 아닌 음악이라도 제대로 듣고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트럼펫을 한밤중에 잠시 불어보지만 옆집 아줌마의 원성만 살 뿐이다. 삶의 탈출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삶을 작가는 음악 기호를 사용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또 다른 삶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리고 숫자는 그의 직업에 대한 감정이자 혼란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숫자로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의 증상은 심하다. 사람 얼굴이 제대로 보이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러다 천둥번개에 의해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이 사건은 그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숫자가 0으로 보이는 것이다. 삶이 리셋되어 초기화된 것이다. 과거가 사라졌다는 것은 현재도 사라지고 변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부터 일상을 벗어난 삶이 일어난다.

예쁘게 그려진 그림은 아니다. 오히려 투박하다. 각 장마다 새로운 음악 기호를 표시한다. 음악과 구성의 조화다. 화면 구성은 원근을 무시하거나 섬세한 연출을 통해 두 사이의 간격을 좁힌다.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이용한 듯한 연출인데 곳곳에 이런 영화 기법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그림만 본다면 강한 인상을 주기 힘들다. 하지만 이야기에 집중하고 화면 구성과 내용을 연결시키면 달라진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지만 감정과 상황을 적절하게 담아내었다. 작화보다 연출이 더 뛰어난 작품이다. 잊고 있던 재즈에 대한 향수와 열정을 살짝 깨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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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완전 정복
마크 사버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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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해리 렌트다. 그의 아내 안나는 성형수술을 받던 중 죽었다. 아내가 못생겼냐고. 아니다. 예쁘고 날씬하고 부자다. 이런 여자가 왜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했을까? 혹시 죽은 것이 의료사고는 아닐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콜걸과의 외도로 알 수 있고, 두 번째 답은 심장마비라는 설명으로 그냥 넘어간다. 소송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너무 간단한 설명이다. 뭐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아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날에 시작한다.

아내의 장례식이 있는 그날 그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식당으로 간다. 그녀는 몰리다. 멋진 꽃미남 남자 친구와 사귀고 있지만 이 남자 조금 문제가 많다. 해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많이 끌린다. 성적 환상을 품는다. 그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으면 아내의 장례식 날에도 그곳에 갔겠는가. 그럼 그녀와 잘 아는 사이일까? 아니다. 그날 이 둘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손님과 직원으로. 그녀에게 압도당한 그는 손님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직원 추천 메뉴를 부탁한다. 그 음식의 이름은 몽테크리스토다. 그가 결코 먹고 싶지 않았던 음식이다. 힘겹게 먹고 장례식장으로 떠난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그냥 평범하다. 슬픔이 흘러넘치지도 않고,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장례업체의 농간에 비싼 관과 베개를 주문한다. 살짝 베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관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무겁다. 이 때문에 안색이 변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슬픔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보고 싶어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아주 슬프게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에게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몰리를 꼬시기 위한 작업도 같이 진행된다. 아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짓을 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끝에 오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소설은 거의 여섯 사람이 이끌고 나간다. 해리, 안나, 몰리, 루실, 클레어, 맥스 등이다. 죽은 아내는 과거 속에서 다루어지고, 나머지는 현재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몰리를 유혹하기 위한 단계로 선택한 웨이트리스 루실은 점차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모적인 인물에서 해리의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인물로 변한다. 그의 말과 행동 때문에 문제도 생긴다. 그 행동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한 것이고 너무 쉽게 다가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선행을 통해 그는 잊고 있던 감정의 싹을 느낀다. 아내가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그를 선택하게 만든 선한 마음의 싹이다. 또 그녀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해리가 성장하게 만든다.

몰리. 이 모든 선행과 변신은 몰리 때문이다. 몽테크리스토라는 샌드위치가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상시키고 그 소설 속 주인공 당테스가 그의 제2의 인격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자기주장 없고 소심하고 찌질한 중년 남성의 가면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선행과 그에 따른 부작용 등은 그를 진짜 변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거짓말로 채워졌던 시간들이 진실로 가득해진다. 고해처럼 풀어내는 진짜 감정과 사실은 삶을 새롭게 만들고 성숙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과연 짝사랑의 끝은 어떨까? 의문을 품게 한다.

맥스는 의사 동료이자 조언자고, 처형 클레이는 아내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를 압박한다. 왜 동생이 성형수술을 했을까 하고. 엄청난 부자 집안에서 아웃사이더였던 그녀는 해리와 말이 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진실을 알 때 그를 파멸로 이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와 행동이 하나의 목표로 다가갔을 때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과연 어떤 일어 펼쳐질까 하고.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쳤던 아내 안나는 사실 그에게 버거운 존재다. 그들의 처음은 좋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모와 싸우기를 거부하고 남편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틈이 생기고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가 조금씩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창녀들에게서 불안한 안식을 찾게 한다. 밖으로 보기에 더 없이 좋아 보였던 부부의 숨겨진 감정과 행동들이 하나씩 벗겨질 때 이 부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더 없이 착하고 따뜻하고 좋은 아내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나쁜 한 가지가 있다. 자기 뜻대로 사람을 조정하려는 것이다. 해리가 루실에게 잠시 보여줬던 바로 그 행동 말이다.

한 중년 남자의 좌충우돌 짝사랑 이야기와 성장을 동시에 다룬다. 우발적인 행동 하나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솔직한 감정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게 만든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로 변한다. 이 변화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먼저 털어놓는다. 그때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읽는 동안 정말 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정말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것이 아름답고 보기 좋다기보다 안타까움이 더 든다. 아내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더욱.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붙는 가속도와 밝혀지는 부부의 실제 관계는 몰입도를 놓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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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
김영희 지음 / 알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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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을 처음 본 것이 영화 속이었다. 악마와 싸워 이긴 주인공이 악마를 영원히 가두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소금사막이었다. 그때 든 생각이 만약 이 소금들이 다 사라지면 악마는 다시 부활하겠구나 였다.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이 책 속에서 그곳을 보니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금사막이 이 책의 제목이지만 작가 김영희에게는 60일간의 남미 여행 중 잠시 둘러본 곳 중 하나다. 그곳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수많은 감동과 의미를 부여한 곳들 중 한 곳이란 의미다.

<나는 가수다> 첫 방송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광고할 때만 해도 이런 인물들이 나와 경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던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도 어떤 조그만 기대 때문이었다. 김영희 PD의 말처럼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의 첫 음을 내는 순간 빠져들었다. 최고였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 주지 못한 엄청난 몰입을 가져다 주었다. 주말에 유일하게 찾아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김건모의 첫 탈락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다. 재도전의 기회가 부여되었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다. 김영희 PD가 짤리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생긴다. 재도전의 방송이 또 다른 감동을 준 것이다. 최고 중의 최고였다. 그렇지만 그는 떠나야했다. 그 떠남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60일간 29번의 비행이 남긴 흔적이란 글과 그가 다녀온 곳의 지도가 눈길을 끈다. 첫 느낌은 부럽다였다. 60일간 여행을 간다는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주일 휴가도 빼기가 쉽지 않은 월급쟁이니 더욱 그렇다. 그가 다녀온 곳을 훑어보니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다.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하여 아바나를 거쳐 남미대륙을 한바퀴 도는 일정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너무 자주 이동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바닥에는 부러움이 깔려 있다. 대충 넘겨본 책 내용은 글자가 별로 없고 그림과 사진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읽어보니 맞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27만원짜리 디카로 찍은 것이고, 그림은 그가 현지에서 산 스케치북에 직접 그린 것이다. 사진을 보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 때문에 당연히 DSLR로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연히’가 무너졌다. 똑딱이로 이런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내다니 놀랍다. 아니 부럽다. 전문가들이 보면 또 다르겠지만 사진에 무식한 나에게는 그렇다. 이 사진과 그림은 그가 간 곳의 느낌을 잘 드러내준다. 조금씩 나오는 사유의 글들은 그림 등에서 받은 감흥에 잠시 쉼터가 된다. 그가 그곳에서 받은 느낌과 사유는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고, 느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가수> 하차 후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나가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인터뷰 등에서 본 내용도 나오고,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지금은 조금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식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나의 마음은 움직인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지지만 그들의 사연과 노래는 가슴으로 다가온다. 잊고 있고 잘 몰랐던 가수들의 등장은 반갑다. 물론 그가 떠난 후 <나가수>에 대한 글은 없다. 다만 이 책이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남미의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인식에 의문이 생기는 대목도 살짝 있지만.

그는 책 앞에서 말한다. ‘나는 피디다’라고. 비교적 긴 여행이지만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 남미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가 남미 여행을 간 것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게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은 없다. 사진과 그림과 짧은 단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는 부분은 나의 단상으로 채우면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을 말할 때 얼마 전 내가 외친 그 단어가 반갑다. “인생… 지금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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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이프
알 코리아나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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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라이프. 인생이 없다는 의미일까? 단순히 제목만 보고 의미를 해석하기 쉽지 않다. 이 단어를 작가는 우리가 아는 단어와 연결한다. 오타쿠, 히키코모리 등이다. 물론 이것도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진 그들이 사회와의 관계와 자신을 잃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좀더 쉬울까?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재미나 틀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삶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정보와 기억과 기록 등의 왜곡으로 연결시키면 어떨까? 

기억과 추억에 대해 우리는 강한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들은 많이 떠올릴수록 변화가 심해진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과거를 조금씩 손질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강하게 남게 된다. 만약 여기에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내가 바라는 것을 같이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말한다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왜곡되어진다. 그래서 정확한 역사의 기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좀더 쉽지 않을까?

왜 갑자기 기억과 기록을 말할까?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바로 만들어진 기억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빠져 공동체 삶에서 자기 찾기를 포기했다. 물론 생각은 끊임없이 한다. 친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눈물도 흘린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만들어진 기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영화 <토탈리콜>에서 주인공이 상대조직에 잠입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했던 것이 생각난다. 이 영화가 한 번에 기억을 조작했다면 소설은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를 통해 조금씩 이루어진다. 한 개인의 동선과 반복되는 소비 형식을 파악하면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진다. 정보의 축적은 디지털 세상에서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을 반대로 돌리면 어떨까? 에이~ 너무 복잡하다.

이틀 전 만 서른다섯이 된 나는 경찰에 잡힌다. 흰 셔츠에는 피가 묻어 있고, 앞 탁자에는 권총 매그넘이 놓여 있다. 매우 심각한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의문을 불러오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이틀 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그의 반복적인 삶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매주 일곱 편의 영화, 매일 다섯 시간의 온라인게임, 하루 최소 여섯 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동시에 할 때도 많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두 번째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현실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 과거가 현실로 달려오는 구성이다. ‘왜와 어떻게’에 대한 답을 과거로부터 찾아오는 방식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성이다. 왜 그는 살인을 한 듯한 상황에서 형사에게 체포되었을까? 새로운 삶을 살려는 그의 의지가 어떤 변화를 겪었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상황으로 이어졌을까? 처음에 든 생각들이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가까운 미래의 풍경은 낯설지만 익숙하게 다가온다. 현실을 조금 더 극단으로 밀고 갔기 때문이다. 마약을 의사들이 처방하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합병되고, 모두가 스마트폰 이상의 기계를 들고 다닌다. 

이 미래의 풍경만을 보여줬다면 심심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스릴러적인 요소를 섞어놓았다. 첫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이 이어지면서 그가 한 행동에 숨겨진 의미가 있음을 암시한다. 단서는 과거 속에 있다. 이 과거는 화자가 결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날 정도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설정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곳곳에 낯익은 장면이나 설정이 눈에 들어오는데 더 찾으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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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작은 새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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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츠의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사실 집에 오츠의 소설이 몇 권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 얼마 전 읽은 존 어빙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다. 너무 유명한 작가의 경우 왠지 모르게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아마 너무 유명해 읽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지루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사놓은 유명작가 책이 너무 많아 선택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보통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부터 손이 가거나 이벤트로 받아 읽은 경우다. 이번에는 후자다.

솔직히 적지 않은 분량이다. 많은 분량도 아니다. 800쪽이 넘는 소설도 즐겁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550쪽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다. 뭐 가끔은 200쪽 정도 소설도 아주 버거워했던 적도 있다. 분량은 흔히 하는 말로 숫자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분량이 큰 문제는 아니다. 나의 집중력이 최고에 달했을 때는 휙휙 넘어갔고, 산만했을 때는 한 쪽도 힘들었다. 물론 단숨에 읽기는 살짝 부담이 되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가가 서술하고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에 나온 중요한 핵심 내용을 너무 쉽게 읽고 지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명은 살인용의자의 딸인 크리스타 딜이고, 다른 한 명은 피해자의 아들 애런 크럴러다. 전체 핵심적인 내용을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크리스타다. 그녀의 아버지 에디 딜이 경찰들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인상은 그녀의 아버지가 흉악범 혹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이런 인상은 바뀐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에 따라 산산조각난 가족의 풍경은 크리스타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거기에 살인용의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멈추지 않는다. 

애런은 어머니 조이의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가 어머니의 나체 시신을 보고 했던 행동은 이성을 넘어 지극히 감상적이다. 크리스타에 아빠에게 빠졌듯이 그도 아버지 델로이를 사랑하고 옹호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 아버지의 알리바이를 위증한 것과 알콜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등에서 드러난다. 그는 혼혈이다. 아버지가 세네카 인디언이다. 엄마는 당연히 백인이다. 미국의 인종 분류는 조금이라도 비백인의 피가 섞인 경우 백인이 아니다. 그가 혼혈인 것이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주어진 환경과 더불어 자신이 선택한 삶에 의해 뒤틀린다. 

이 둘에게 과거는 빛나는 순간이 아니다. 물론 빛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조이의 죽음으로 산산조각난다. 그 이전부터 심한 균열이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깨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놓아버리지 못한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최악의 상황이나 애런의 그 이후 삶은 비참한 삶의 바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비록 이 두 사람 모두 아버지가 무죄라고 절대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런 믿음과 상관없이 읽는 동안 누가 범인일까 의문에 잠긴다. 

가상의 도시 뉴욕 스파타. 그 조그만 도시의 풍경은 삭막하다. 곳곳에 드러나는 마약과 폭력은 낯설고 황량하다. 크리스타가 경험한 하룻밤은 미래의 삶에 대한 목적을 잃은 청소년들이 환락을 통한 자기파괴의 연장선이다. 모범생인 크리스타에게는 버겁고 무서운 것이고, 애런에게는 일상이지만 더 깊은 곳으로 빠지고 싶지 않은 삶이다. 특히 마약이나 살인 등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 애런이 가지는 거부감은 그가 가진 마지막 한 자락의 이성을 말해준다. 그 때문에 약물과용으로 죽지도 않고, 감옥에 오랫동안 갇히지도 않는다. 

두 사람을 연결하는 운명의 힘은 지독하게 강하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둘의 강렬한 열정과 탐닉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십 수 년 동안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욕망이 폭발할 때, 오랫동안 자신들이 믿든 진실을 확인했을 때 그 운명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으로 바뀐다. 특히 마지막에 크리스타가 보여주는 선택은 그 운명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운명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만 본다면 오츠의 소설에는 조금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은 후 나의 작가 목록에 올릴지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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