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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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을 처음 만난 것은 <그대의 차가운 손>이었다. 그 당시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을 때다. 한때 너무 즐겨 읽었지만 여성작가들의 사변적으로 흘러가는 소설에 질렸던 때다. 몇몇 작가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그 책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다. 사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몰입하였고 단숨에 읽었다. 또 다른 장편 <검은 사슴>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단편집 <여수의 사랑>은 너무 무거워 읽기 힘들었다. 이런 시간들을 하나씩 거치면서 한강이 한승원의 딸이란 정보보다 작가 한강으로 강하게 자리 잡았다. 

길지 않은 장편이다. 채 200쪽이 되지 않는다. 이전의 장편처럼 술술 읽힌다. 작가 소개 사진도 이전과 달리 밝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이런 자그만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펼친 책 첫 문장이 의문을 불러온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고대 북구의 서사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보르헤스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한 문장이다. 한 연구자는 그 문장을 보르헤스 문학으로 들어가는 의미심장한 열쇠라고 말했다. 작가는 지극히 조용하고 사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다고 썼다. 어느 것이 정답일까? 알 수 없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해석을 염두에 둬야한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조금씩 눈을 잃고 있다. 교차 서술 방식으로 이 두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말한다. 미래에 함께 만날 것이란 예측은 너무 간단하다. 이 둘이 만나는 곳은 희랍어 시간이다. 그녀는 학생이고, 그는 선생이다. 이미 사어가 된 희랍어를 통해 이 두 사람은 만났다. 학생과 선생으로.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상대방이 지닌 아픔과 장애도 몰랐다. 어쩌면 오해가 더 많다.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의 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45쪽)고 깨닫고 말했다. 그때 궁금한 것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결혼이 사랑에 의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과거는 상실로 가득하다. 열일곱에 처음 말을 잃고 이혼 후에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겼다. 물론 중간에 다시 말을 되찾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말의 상실은 그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귀신에 홀린 듯한 사랑을 경험한 남자의 실명은 유전이다. 그의 사랑도 실패했다. 빛도 점점 잃어간다. 이런 그가 그녀에게서 발견한 것이 있다.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온 ‘두려운 데가 있고,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는 침묵’이다. 여자가 섬세하게 남자의 얼굴에서 눈물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다.

언어와 빛. 이 둘을 잃어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가슴 속으로 잔잔히 파고든다. 그들이 느끼는 고독의 깊이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 짙어진다. 남자가 안경을 깨트리고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하나의 사고는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그 남자의 입을 통해 언어가 쏟아져 나온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와 말을 할 수 없는 남자의 대화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여자가 남자의 손에 글을 쓰기 전에는. 그 한계도 분명하다. 보지 못하니 장황하게 쓸 수 없다. 간단한 단어만 쓸 뿐이다. 이 부조화와 불안 속에 둘의 접촉이 일어난다. 그들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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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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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하루에 세 편의 시를 읽자고 마음먹고 며칠 동안 실천한 적이 있다. 끝내 시집 한 권을 마치지 못했다. 다른 재미있는 소설이 많은데 하면서 미루어뒀다. 사실 일반 독자에 비해 읽은 시가 적은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박노해와 김남주의 민중시에 충격을 받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카프 시집과 김수영의 시집을 구해 읽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버스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가장 좋아했던 기형도의 시집도 멋모르고 읽었다. 외국의 번역시집도 몇 권 구해 읽었다. 하지만 이 시집들이 나에게 시로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즐거움과 재미를 완전히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시 읽기의 즐거움과 재미는 계속 바라고 바라는 바다. 작년 초에 읽은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시와 철학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를 잠시 맛보았지만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이 책은 사실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철학과 시의 결합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를 기억하고 있지만 과연 작년 같은 재미를 누릴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 김용규의 <다니>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이 두 철학자가 어떻게 보면 비슷한 내용으로 한 권의 책을 낸 것이다. 강신주가 시인 한 명과 철학자 한 명을 연결했다면 김용규는 한 철학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하도록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철학자는 하이데거다. 수많은 시인과 시가 인용되는데 가장 중요한 시인 한 명을 꼽으라면 김수영이다. 그를 가리켜 해방 후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하는 학자들을 자주 만났다. 그래서 그의 시집을 구해 읽었었다. 그런데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가 나의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에게 시는 학교 교육에 의해 재단된 것 외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박노해와 김남주의 시가 머릿속을 강타한 것이 바로 너무나도 쉽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 있구나 하고. 늘 시 이야기를 할 때면 학교에서 배운 것들에 대한 나쁜 기억만 난다. 그때 시의 매력을 제대로 배웠다면 아마 집에 소설보다 시집이 더 많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영화가 별로 재미없었다. 국어 선생하는 친구는 재미있었다고 하는데 나에겐 그 어떤 느낌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의 처음이 바로 이 영화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메타포에 대한 것. 상당히 재미있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 편의 소설처럼 읽었다. 이 분위기는 조금 더 진행되었다. 시 속에 담긴 철학을 뽑아내고,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시를 펼칠 때 아! 하고 감탄도 했다. 거기까지다. 더 깊은 곳으로 나의 사유가 감성이 다가가지 못했다. 한계다. 시를 철학을 통해 쉽게 풀어낼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철학자의 단어로 바뀌는 순간 헤맨다. 철학의 벽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나를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아쉽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모두 아홉 장이다. 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시인이란 누구인가로 마무리한다. 메타포에서 시작하여 사랑을 말하는데 계속 고개를 끄덕인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읽었던 시, 몰랐던 시, 아무 느낌 없는 시, 새롭게 다가온 시 등이 저자의 손길에 의해 다른 의미를 띄고 다가온다. 비교적 쉽게 풀어낸 시에 대한 철학들은 잠시 이해하게 만든다. 거기까지다. 철학 용어와 철학에 대해 훈련받지 않는 내가 단숨에 시와 철학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단순히 따라 읽기 그 이상은 아니다. 또 후반으로 갈수록 하이데거의 철학을 기반으로 시를 풀어내었기에 그 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책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 시는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아주 가끔 시집이나 시를 읽는다. 만약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면 이 시 읽기를 통해 바로 잡힐 것이다. 학창시절처럼 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눈으로 시를 보라는 기획 의도는 충분히 공감한다. 어느 대목까지는 함께 발을 맞춰나갔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파편화된 시어들을 제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시와 철학. 이 둘은 앞으로 새롭게 평생 공부해야할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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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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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 좋게도 명성에 비해 읽은 적이 없던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소설이 호평으로 가득했고 덕분에 그녀의 책을 한두 권씩 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들은 책더미 속으로 사라지거나 다른 책들에게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조차 책더미에 묻혀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 작가의 신작이 나오거나 책더미 속에서 이름을 발견할 때 읽어야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때뿐이다. 기한이 생기지 않는 한 점점 게을러져 가는 나에게 새로운 작가는 넘사벽이 된다. 

책소개에서 체스에 대한 소설이라는 간단한 정보를 얻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나 서평을 신청할 때 책 정보를 세밀하게 읽지 않는다. 혹 읽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책 제목도 너무 낯설어 잘 외워지지 않았다. 고양이와 코끼리가 잘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단어인 리틀 알레힌이 너무 낯설었다. 체스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단어이자 명사에 담긴 알레힌은 이 소설에서 엄청나게 중요하다. 비록 리틀이란 정의 속에 그가 속박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면서 이 단어가 지닌 의미와 운명과 힘을 깨닫게 된다.

리틀 알레힌에 대한 한 편의 전기같은 소설이다. 그의 유년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을 연대순으로 다룬다. 그와 체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양이와 코끼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왜 리틀 알레힌으로 불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살았고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차분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감정이 충분히 고조되고 열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순간에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단숨에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 속으로 점점 스며들게 한다. 길게 그 분위기를 이어가도 될 텐데 짧고 간결하게 다룬다. 아쉽지만 그 순간이 삶의 일부분뿐임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소년인 리틀 알레힌의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이 전부다. 부모는 이혼했고, 엄마는 죽었다. 그를 키운 것은 할머니다. 풍요롭지 못한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남들처럼 맛있어 보이는 것을 사먹지도 못하고 탈것도 타지 못한다. 백화점 옥상에 살았다는 코끼리 인디라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친구다. 아기 때 올라갔지만 다 자란 후 너무 커지고 무거워서 내려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할아버지와 옆집 벽 사이에 갇혀 죽었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귀신으로 불리는 미라다. 그 공간은 결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데 괴담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그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다.

이 둘은 리틀 알레힌의 성장과 관계있다. 코끼리의 성장이 자유를 속박하면서 그의 성장을 막고, 미라가 갇힌 것은 그가 목제인형 속에서 체스를 두는 것과 연결된다. 물론 그가 인형 속에서 체스를 두는 것이 체스를 가르쳐준 마스터와의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경험도 그가 체스판 밑으로 들어가서 고양이 폰을 쓰다듬으면서 둔 것과 이어진다. 점점 그가 사는 실제 공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체스판 위의 우주는 다르다. 대국자와 체스를 두면서 상대방의 기세나 말의 행보를 통해 그 우주를 이해하고 깨달아간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펼쳐진다. 그의 성향과 맞고 그가 추구했고 존경했던 반상의 시인 알레힌의 기풍을 닮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소설에서 가장 화려한 수식으로 가득한 것은 체스 대국이다. 일본 요리 만화나 바둑 만화 등에서 자주 보게 되는 과장된 수식들이 절제되면서 표현되어 있다. 그 매혹적인 문장과 단어들은 체스를 전혀 몰라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상이 아닌 최선의 수를 찾는다거나 서두르지 마라고 할 때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빠르게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지는 요즘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리고 리틀 알레힌이 목제인형 속에서 체스를 두지만 반상의 만남을 통해 다른 곳에서도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신비롭지만 매혹적이다. 비록 그것이 과장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 읽을 때보다 지금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리틀 알레힌이 성장을 멈춘 것은 <양철북>의 오스카를 연상시킨다. 멈춘 성장은 육체지 정신이 아니다. 오스카와 달리 그가 성장을 멈춘 것은 크지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코끼리 인디라와 마스터가 비대해진 몸 때문에 갇혀 살았던 것을 생각할 때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반대의 인물 미라에게 매혹된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수학공식 속에 엄청난 증명과정이 있는 것처럼. 실제 알레힌처럼 전설이 된 리틀 알레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이 소설에서 그는 애잔하게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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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굴레 - 경성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경성탐정록 2
한동진 지음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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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경성탐정록>을 재미있게 읽었다. 셜록 홈즈의 일제 시대 오마주인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이 책이다. 이번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왜일까? 전작에 비해 이번 소설의 표지는 강렬하다. 제목도 표지의 느낌과 더불어 강한 인상을 준다. 얼마나 강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시리즈 마음에 든다. 시대의 한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좋은 일본인 경부 덕분에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낯익은 동시에 낯설다. 그리고 반갑다.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려는 그의 노력에는 박수를 치고 싶다. 

모두 네 편이다. 첫 편 <외과의>는 고모부와의 식사 중 얻은 힌트를 통해 만들어진 단편이다. 살인의 이유는 진부한 연인 문제다. 조건 좋은 약혼자가 있는 남자가 그를 사랑하는 기생을 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약혼자가 의대 학생이다. 살인 방법은 코카인 1.5그램을 주입하는 것이다. 마약 과용이다. 작가는 이 살인자의 일기를 통해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 섬뜩한 상황 설명도 꽤 나온다. 완전범죄에 대한 자신과 열망은 결국 설홍주에 의해 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범인이 설홍주를 평가한 것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안개 낀 거리>는 한 남자가 죽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체의 정체는 놀랍게도 엄청난 거부 신의택이다. 그는 투기와 협박 등으로 부를 쌓았다. 당연히 적도 많다. 비가 온 덕분에 현장에 남은 증거도 거의 없다. 신타로로 불렸던 그의 영향력 때문에 위로부터 압박을 받던 레이시치 경부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설홍주가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치자 요인이 바로 이 경부다. 신타로를 파고들수록 나타나는 과거는 수많은 적들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야쿠자도 있다. 하지만 진범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범인을 대하는 설홍주의 대응법이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표제작 <피의 굴레>는 중편이다. 1910년 3월 5일 아침 동경 간다 구에서 한 남자가 쥐약을 먹고 죽었다. 이름은 허장남, 스물다섯 살이다. 뇌종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무려 22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 왜 첫 장면일까?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잡지사에 와서 광고를 내겠다고 한다. 다다이즘을 연상시키는 난해한 시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인물이 허장남이다. 광고를 내겠다고 온 인물은 흥행업의 귀재로 불렸던 김명수 사장이다. 그도 허장남처럼 쥐약인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했다. 이렇게 끝난다면 설홍주가 아니다. 그는 살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죽은 김 사장의 주변을 탐문한다. 그리고 시의 비밀을 밝혀낸다. 암호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난 소재가 될 것 같다. 트릭도 재미있지만 설정 등이 시대의 풍경을 잘 드러내어 흥미롭다.

마지막 단편 <날개 없는 추락>은 씁쓸한 뒤끝을 남긴다. 설홍주의 형 이야기나 특고 이야기는 그 시대를 그대로 보여준다. 설홍주의 활약으로 인한 멋진 환상들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이번 사건도 처음에는 추락에 의한 사고사로 보였다. 손 박사의 의견에 의해 타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피살자 백청만, 일본명 사이고 시로와 제1 발견자 현준건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난다. 당연히 그는 제1 용의자가 된다. 재미난 것은 이번 사건의 의뢰자 역할을 손 박사가 했다는 것이다. 일제 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품고 있던 그가 이 둘의 연관성을 알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백청만은 과거에 독립운동의 배신자였다. 이 때문에 특고가 주시하고 있다. 만약 빠른 시간 안에 진범을 잡지 못하면 특고가 그를 데리고 가서 범인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재빨리 진범을 잡아야 한다. 설홍주가 용의자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죄수의 딜레마는 그 당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식상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한계와 비극과 아픔은 가슴과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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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파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1
블레이크 넬슨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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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오마주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주 오래전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읽지 않았던 고전을 읽겠다는 생각에 선택해서 읽은 소설이다. 한때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해 그 유명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읽은 적 있다. 하지만 그때도 왠지 모르게 읽지 않은 소설이 <죄와 벌>이었다. 상당히 두툼한 분량이라 조금 질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책이 더 두껍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바로 그 유명한 세계문학을 기원으로 쓴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1월 3일부터 1월 8일까지 오리건 해변에서 썼다. 처음에는 이 날짜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지 속 시간과 편지 쓴 날짜가 맞지 않았다. 오타인가도 생각했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차이를 알게 된 것은 거의 마지막에 와서였다. 왜 이런 형식을 가졌는지, 이 편지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마지막 순간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물론 많지 않은 분량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결한 문장과 소년의 심리에 대한 탁월한 묘사다.

소년이 파라노이드 파크에 간 것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해서다. 사귀기 시작한 여자 친구 제니퍼의 유혹도 뿌리치고 친구 자레드와 그곳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자레드가 꼬시려고 했던 여대생의 호출로 약속을 깬다. 제니퍼를 만날까 생각도 하지만 보드의 유혹이 더 강하다. 혼자 공원에 있는데 한 부랑자가 다가온다. 스크래치다. 5분만 보드를 타게 해달고 한다. 빌려준다. 5분 후 돌아온다. 그의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러다 스크래치가 기차를 타자고 한다. 역으로 들어가는 기차를 올라타는 것이다. 새로운 재미와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그때 경비원이 그들을 보았다. 

단순히 쫓아낼 줄 알았던 경비원이 납이 든 것 같은 봉을 휘두른다.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가 도망가는 것은 성공하지만 스크래치는 잡힌다. 스크래치가 당한 위협을 보고 그를 구하기 위해 보드를 휘두른다. 처음에는 약하게 그 다음은 아주 강하게. 운 나쁘게 경비원이 쓰러진 곳은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다. 몸이 뒤틀리고 끌려간다. 결국은 두 동강 난다. 죽었다. 이 상황에서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순간의 갈등 후 달아난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한 소년의 두려움과 심리적 갈등이 섬세하면서도 깊숙이 묘사된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소년도 엄청난 고민을 한다. 또 소냐처럼 메이시 맥러플린이 등장한다. 살인이 중심에 놓여있다. 이런 설정과 구성이 <죄와 벌>의 오마주임을 나타내준다. 하지만 다른 시대와 공간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한 가족의 해체, 청소년의 성, 이 시대의 양심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부모의 이혼은 소년의 고뇌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를 보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제만으로 벅차다. 가족 관계마저 인스턴트화 되어 가는 듯하다. 양심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순간 드러나는 거짓말은 이 시대의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죄와 벌. 살인을 저지른 죄로 소년은 벌은 받는다. 법에 의한 벌이 아니라 양심과 두려움에 의한 벌이다. 처음에는 살인에 대한 뉴스를 찾는다. 없다. 얼마 후 뉴스에 나왔을 때 경찰의 손길을 두려워한다. 도망가는 것도 생각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너무나도 무겁다. 잡혀갈 줄 모른다는 두려움과 누군가를 죽였다는 양심은 같이 다닌다. 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가족과 친구들은 단지 자신들의 판단으로 그를 재단할 뿐이다. 그가 바란 것은 진실을 말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다. 물론 더 깊은 곳에는 잡히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평생 이 벌이 자신을 따라다닐 것임을 알고 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2007년 칸 영화제 60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스케이트보드가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 스케이트보드를 작가는 글쓰기에 비유하고, 영화감독은 스케이트 보더들을 아웃사이더로 본다. 이 둘의 차이가 왠지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작가는 편지 형식을 취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어떨까? 열린 결말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진실을 말할지 아니면 영원히 입을 다물지. 문장에 대한 극찬은 원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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