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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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를 말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장르 소설을 제외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은 외국작가는 그가 처음이었다. 몇몇 유명작가의 작품이나 세계문학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는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그 당시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한 그의 소설을 두고 통신에서 오고 간 대화들은 나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든 소설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소설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는데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것이다. 문체와 이야기가 기존 소설과 완전히 달랐다. 오죽하면 그 당시 한국 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낸다고 했겠는가. 

잡문집이란 제목대로 온갖 글들이 다 실려 있다. 모두 열 꼭지로 나눌 수 있다. 서문 해설 등, 인사말 메시지, 음악, 그의 르포집 <언더그라운드>, 번역, 인물, 눈으로 보는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문답들, 짧은 픽션, 소설 쓰기 등이다. 이 잡다한 듯한 글들을 통해 바라보는 하루키는 한 소설가에서 한 명의 음악애호가이자 번역가이자 인터뷰어이자 생활인이다. 정말 하루키를 알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안내서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에세이 등을 통해 그의 일상이 드러나지만 이 책처럼 다양한 분야를 함께 다루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 팬에게는 멋진 안내서이기도 하다.

수많은 글 중에서 역시 눈길이 가는 것은 음악과 번역과 인물에 대한 부분이다. 그의 재즈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는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듣고 공부했는지 글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다. 그가 쓴 음악 에세이를 아직 읽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란 느낌이 든다. 이 글들이 행복한 책 읽기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들을 통해 깊이와 넓이를 보여줬고, 마음으로 그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의 글쓰기가 음악과 관련 있다는 부분에서는 살짝 아주 많이 부러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작가가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챈들러다. 이 둘이 그의 문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이 둘의 작품을 해설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직 느껴보지 못한 재미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또 그가 번역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과 창작 작업이 번역 작업과 밀접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다시 한 번 하루키 문체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서를 다시 읽거나 원서를 읽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루키의 영향이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원서 욕심을 내다니 정말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엄청난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그가 풀어낸 재즈나 록은 반드시 들어봐야 할 것 같고, 읽고 칭찬한 작가의 소설 등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마 그가 느낀 즐거움과 재미의 반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몇 차례 시도는 할 것 같다. 뭐 책 읽으면서 당장 예전에 받아둔 재즈 음반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살짝 놓아두었던 재즈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기회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몇몇 소설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사놓고 고이 모셔만 두고 있는 작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일깨운다. 뭐 이런 경우는 다른 소설가들의 글 속에서도 자주 만나지만.

읽으면서 참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새롭게 하루키를 보게 되었다. 그가 벌써 소설가가 된지 삼십년이 되었다는 사실에서는 나도 그만큼 나이 먹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실 최근 몇 작품은 왠지 옛날 같은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긴 작품일 때 특히 그렇다. 오히려 짧은 글이 더 좋은데 이것은 예전과 정반대다. 많은 소설을 읽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오래전에 누군가가 하루키의 진짜 재미와 매력은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에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요즘 특히 그렇다. 이 책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다. 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분명하다. 덕분에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강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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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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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거니 시리즈 1권이다. 시리즈라고 하니 현재까지 엄청 많이 나온 것 같지만 이제 2권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 책이 작가의 처녀작이다. 달랑 2권의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수많은 작가와 매체의 극찬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가끔 이런 극찬이 책읽기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다르다. 트릭이 신선하고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캐릭터와 구성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장면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너무 짧아 그냥 스쳐지나갔는데 중반 이후 이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 장면이 지닌 의미와 연결된 과거를 알게 된 것은 거의 끝 무렵이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뉴욕의 전직 형사였던 거니의 사진예술 작업 장면이다. 그가 하는 작업은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통해 그들이 지닌 악의와 냉철함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살인자들의 초상 - 그들을 체포한 형사 作(작)’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가 기획될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작업이다. 은퇴한 그의 하루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런 약간 평온한 일상에 변화가 온다. 대학 친구였던 마크 멜러리가 그에게 한 사건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이다. 그것은 3주 전에 온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편지 내용에는 원제처럼 숫자 하나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1과 1000사이의 숫자다. 마크가 생각한 숫자는 658이다. 그런데 편지 속에는 그 답이 적혀있다. 어떻게 이 숫자를 맞췄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이 이후에도 발생한다. 그에게 이 편지를 보낸 범인이 또 다른 숫자 놀이를 통해 그 답을 맞춘 것이다. 사실 이때 이 트릭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런 트릭이 가능한가 생각했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 그 트릭을. 

두루뭉실한 시와 함께 한 편지와 더불어 X. 아리브디스의 사서함으로 289.87달러를 현금이나 수표로 보내라고 한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면 될 텐데 마크에게는 남모를 과거가 하나 있다. 현재 그의 직업은 수련원 원장이다. 책도 몇 권 내었다. 하지만 과거에 그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여행 중 알코올에 취해 아내의 죽음을 놓친 적이 있다. 이 편지가 그의 아픈 과거를 떠올린 것이다. 그 사건으로 현재의 그로 완전히 변했지만 그 기억은 변함없이 그를 따라 다닌다. 성공하고 부유한 수련원 원장에 아름다운 새 아내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어지는 수수께끼 같고 의문으로 가득한 편지와 전화는 그를 불안으로 몰아간다. 거니가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했지만 가진 것을 잃기 원하지 않았던 그에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는 살해당한다. 이 살인사건으로 은퇴했던 그가 현장에 다시 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참고인에 진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경력을 알고 있던 검사가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일종의 컨설턴트다. 이때부터 경찰 자료를 얻게 되고, 사건의 유사성을 뒤쫓게 된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고 연락이 오고, 그 현장을 다녀온다. 처음에는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파헤치자 같은 범인임이 드러난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다.

독특하고 기발한 트릭에 기대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 전체적인 매력은 데이브 거니에게 있다. 은퇴했지만 그가 하는 현재 작업이 전 직업과 관계를 맺고 있고, 그의 냉철하고 몰입이 강한 성격과 생활은 평온한 일상을 거부한다. 아내와 함께 은퇴한 생활을 즐기기에 그는 아직 젊다. 겨우 마흔일곱이다. 이전에 그가 거둔 대단한 성공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그런데 은퇴 후 아내와 알콩달콩한 일상을 즐기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흔적은 그를 계속 따라붙는다. 아들 카일과의 불편함도 여전하다. 이런 불완전한 그의 삶이 한 축을 이룬다.

거니의 삶이 한 축이라면 살인사건은 또 다른 핵심 이야기다. 누가, 왜?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트릭은 단순하지만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범인이 계속해서 살인을 하고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연쇄살인에도 그렇다. 범인 흔들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역시 편지다. 이런 범인과 경찰의 대결과 긴장 관계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어진다. 경찰 내부의 갈등과 뛰어나고 열성적인 형사도 나온다. 하지만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하나씩 발견되는 시체를 통해 정확하게 계획된 연출이 드러난다. 강적이다. 정말 잘 짠 구성이다. 

거니의 캐럭터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 매들린이다. 풍부한 지성과 직관을 통해 중요한 순간에 그에게 영감을 준다. 거니와의 불안정한 결혼 생활은 또 다른 긴장감을 조성한다. 범인상을 만들기 위해 파편적인 사건의 단서들을 하나로 꿰어나가는 거니에게 매를린은 영감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열혈형사 같은 잭 하드윅이 등장하여 약간은 평면적인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조금 등장 분량이 적다는 느낌이 들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살짝 팁 하나. 숫자를 생각해라. 단순하게. 통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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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레는 어디인가 - 길.사람.자연.역사에서 찾다
서승범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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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올레라는 단어는 꼭 가보고 걸어봐야 할 곳으로 다가왔다. 원래 올레는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란 뜻의 제주 말이다. 그런데 제주 올레길이 생기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제주올레 19코스는 기존 제주 관광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빼어난 자연 풍경과 걷기의 만남으로 도시의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탈출구가 된 것이다. 서울에서라면 걷기가 죽기보다 싫은 사람들이 비싼 비행기 값과 경비와 시간을 내어 이 올레를 걷는다. 다녀와서는 그 길에 대한 칭찬을 길게 널어놓는다. 그러니 올레란 단어에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올레가 아니다. 첫 이야기가 제주올레 16코스라고 해도 말이다.

표지에 ‘길, 사람, 자연, 역사에서 찾다’란 단어가 보인다. 이것은 이 에세이가 묶인 주제들이기도 하다. 모두 네 꼭지, 스물넷 이야기로 엮여있다. 이렇게 분류를 했지만 결국 사람이야기다. 그와 그가 길에서 만난 사람, 풍경, 단상, 감상 등이 그가 여행 곳을 중심으로 풀려나온다. 이 과정이 깊은 사고를 그쳐 나오는데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것은 아마 그가 경험했던 것을 나도 겪고 싶고, 그가 본 풍경과 삶을 나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다녀온 곳 중 몇 곳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곳이 있는데 이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 책에서 제주올레에 대한 정보나 새로운 관광정보를 기대했다면 빨리 덮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다녀온 곳에 대한 평이 결코 일상적인 여행안내서와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길, 사람, 자연, 역사란 큰 틀과 인연과 단상을 이야기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행지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여행지 팁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곳에 가기 위해, 새로운 감상을 설명하기 위해 있을 뿐이다. 특히 관심 있는 맛집 추천에 인색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나오는 맛집 정보가 무척 반갑다.

개인적으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어지간한 거리는 걷는다. 하지만 점점 걷는 거리가 짧아지고 있다. 살짝 남 탓도 하지만 결국 게으름과 피곤함이란 핑계 때문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에 가장 빨리 가기 위한 발걸음도 있지만 문득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풍경과 사람을 볼 기회도 생긴다는 의미다. 그가 찾아간 곳 대부분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인 것을 보면 이 여행이 의도하는 바가 잘 드러난다. 관광이 아닌 여행, 단순히 보고 오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사람과 역사를 생각하는 것이 여기에 실려 있다.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육아의 기준에 눈길이 간다. 그가 세운 육아의 기준은 ‘주지 않는다’다. “안아주지 않고 안고, 먹여주지 않고 함께 먹고, 놀아주지 않고 함께 놀고, 재워주지 않고 함께 자는 것.”(77쪽) 영어의 'give and take'란 표현이 떠올랐다. ‘준다’란 것에 ‘받는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다는 지적은 머리를 강하게 울린다. 흔히 하는 말로 베푼다고 하거나 선심 쓰는 듯한 일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흘러나오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과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곱씹을 필요가 있는 육아의 기준이다.

‘나의 올레는 어디인가’에 대한 답이 이 책이다. 앞으로 그가 가야할 올레도 많이 남아 있다. 갔던 곳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 글들이 책 속 가득한데 충분히 공감한다. 시간이나 환경의 변화에 의해 풍경이나 인상이나 감상 등이 변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도 나의 올레는 어디인가 묻게 된다. 어딜까? 어릴 적 뛰어놀던 곳들은 이제 차들 때문에 감히 아이들을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시절의 기억보다 현재의 기억과 추억이 더 희미해지고 있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그 생활을 반성하지만 실천은 멀기만 하다. 또 핑계로 현실을 말한다. 지금이라도 나의 올레를 하나씩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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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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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 여섯 개가 딸린 2층 목조건물이 고구레빌라다. 이 조그만 빌라에는 몇 명 살지도 않는다. 주인인 고구레 영감을 제외하면 3명이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조그만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관계를 맺은 일곱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황당하고 변태적인 모습이 보이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과 고통과 행복 등이 느껴진다. 

의 첫 장면은 조금 황당하다. 일요일 늦은 오후 애인 아키오와 방에서 뒹굴거리며 어디 나갈까 대화를 하는데 주인집 개 존이 짖고 초인종이 울린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마유가 나간다. 3년 전 갑자기 사라진 전 애인 세토 나미키가 싱글거리며 서있다. 그녀 너머 겨우 하반신을 가린 아키오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넉살좋게 방으로 들어온다. 한눈에 오빠 동생 사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이 기묘한 상황과 어색한 관계는 한동안 지속된다. 이 시간 동안 마유의 심리를 차분하면서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풀어낸 이야기다. 과거의 추억과 사랑과 기억과 아픔, 현재의 감정, 이 뒤섞인 감정 속에 풀려나오는 현실. 

<심신>은 광고 문구에 넣은 노인의 섹스 문제를 다룬다. 고구레 영감이 왜 허름한 빌라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섹스에 대한 열망도. 그것은 얼마 전에 죽은 친구 고토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병실에 입원한 고토가 잠시 외출하여 아내에게 섹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거절 받은 것을 듣고부터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섹스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조그만 해프닝과 열망은 우리가 잊고 있는 노년의 사랑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노인의 섹스 문제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기둥에 난 돌기>는 어느 날 미네의 눈에 들어왔다. 이 돌기를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 성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환상을 같이 보는 한 남자가 있다. 야쿠자 분위기가 나는 마에다다. 이 환상을 통해 둘은 이어진다. 그리고 애견 미용사인 미네를 통해 고구레빌라가 이어진다. 그 매개체는 존이다. 미네와 야쿠자 보스인 듯한 마에다의 조금은 풋풋한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둘이 보는 환상의 원인에 도달했을 때 터져 나오는 아픈 과거는 가슴 아리고 아프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다. 

<검은 음료수>는 마유가 일하는 꽃집 주인 사에키 씨 이야기다. 갑자기 남편이 탄 커피 맛이 이상하다. 비릿한 흙탕물 맛이다. 남편은 늦은 밤에 아내가 잘 때 나가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들어온다. 분명히 외도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남편 주변의 여자들이 용의자가 된다. 마유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작가는 그녀를 통해 불안과 걱정이 주변에 어떻게 퍼지는지, 그녀와 남편의 과거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낸다. 이 이야기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주변 관계들을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구멍>은 한 변태 간자키의 훔쳐보기 이야기다. 그 훔쳐보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것의 즐거움과 감정 전이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가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대상은 아래층 여대생 미쓰코다. 3명의 남자와 동시에 연애를 한다. 독신남인 그가 보기에 그녀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훔쳐보기와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이 시점의 변화는 이전과 다른 고구레빌라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자를 변화시킴으로써 한 개인이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는 간자키의 훔쳐보기 대상인 미쓰코 이야기다. 그녀의 현재는 간자키가 본 그대로다. 하지만 과거로 넘어가면 결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온다. 문란했던 여고생시절, 대학시절. 이 생활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들려준다. 그리고 친구가 갑자기 아기를 맡기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은 이 단편의 핵심이다. 그녀의 현실과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 이 아픔과 상실은 이해할 수 없는 삶일지 모른다. 훔쳐보기를 통해 그녀의 현재를 가장 잘 아는 간자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비록 그의 위로가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마지막 <거짓말의 맛>은 마유의 전 남친 나미키 이야기다. 사랑했던 마유를 스토킹하는 그를 보여준다. 호기 있게 그녀를 떠났지만 그 주변을 맴돈다. 이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니지코 씨다. 그녀는 음식의 맛으로 거짓말을 판별할 수 있다. 그녀의 존재는 가끔 꽃집을 통해 드러난다. 나미키를 만난 것도 바로 그곳이다. 거짓말의 맛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해준 음식은 먹지 못하는 그녀의 사연과 나미키의 과거와 현재가 흘러나온다. 이벤트처럼 벌어지는 조그만 해프닝과 고구레빌라와의 인연은 읽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고구레빌라 이야기는 없다는 느낌을 준다. 더 읽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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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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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이란 이름을 언제부터 인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예전에 읽은 재일동포 역사학자로 착각하고 있었다. 서경식 선생의 책을 몇 권 사놓고도 그렇다. 아마 이름 착각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분의 역사책은 상당히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인터넷으로 강력 추천을 하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던 책이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습관 탓에 잊고 있었다. 그러다 재일동포에 서경식 선생의 또 다른 책을 추천한 글을 읽고 이름을 살짝 기억했다. 잘못된 기억이다. 그런데 전화위복이 되었다. 좋은 작가 한 분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집에 있는 책을 찾아 읽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서양 음악 참 어렵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하는데 클래식을 좀 알고 싶어 오전에 방송하는 FM클래식을 켜놓고 공부한 적이 있다. 작가가 한국에 와서 들었다는 그 채널일 것이다. 일요일 오전 노곤한 상태에서 들었던 그 음악들은 좋은 수면제였다.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고 연주자도 작곡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음악들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년을 들었고, 유명한 지휘자나 작곡가의 음반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몇 곡의 이름만 겨우 기억한다. 뭐 이런 무식한 음악 듣기는 그 후에 재즈나 메탈로 옮겨가기도 했다. 

문화 웹진 ‘나비’에 총 66차례 33회분을 연재한 것을 책으로 내었다. 이전에 비슷한 제목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낸 적이 있다.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겼다. 서양음악과 서양미술은 지금도 나에게 완전히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아마 저자가 수없이 듣고도 몰랐던 말러의 음악이 끌라우디오 압바도가 지휘하는 루쩨른 축제에서 문이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언젠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보고 듣고 느껴야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수많은 작가들의 멋진 문학적 표현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책의 전개 방식은 기억과 추억과 서양음악을 같이 융합시킨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에 대한 추억과 기억과 사실을 풀어낸다. 이 기억이 1회분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2010 잘츠부르크음악제의 경우는 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거장 고 윤이상 선생의 경우는 4회고, 2010년 말과 2011년 초에 빈에서 보낸 것을 연재한 횟수는 6회다. 이렇게 횟수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서양음악을 자신의 감성으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쓴다. 그가 느낀 감정이 솔직할수록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늘어난다. 표현이 세밀해지고 문학적으로 변하면 부러움이 늘어난다. 앞에서 말한 서양음악의 문이 아직 나에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한 권으로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욕심이 살짝 있었다. 음악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책으로 생각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첫 회분을 읽으면서 단숨에 깨졌다. 서양음악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상들이 하나의 주제로 꿰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서양음악과의 만남에서 새로운 깨달음까지 다루면서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말할 때 공부가 평생해야 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그의 동반자이자 음악교사인 F가 한 음악가의 음악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보수적인 관객들의 음악 해석이다. 그에게 신선했던 그 작업이 그들에겐 장난처럼 유치해보였던 모양이다. 이것이 과거로 흘러가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이야기에 이르면 아련하고 가슴시린 아픔으로 변한다. 그에게 음악은 행복도 즐거움도 아닌 과거의 악몽이기 때문이다. 음악가에 대한 평가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면 한 편의 책을 두고 다투었던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열정이 있고 이해의 깊이가 있기에 가득한 일이다. 뭐 나의 경우는 그냥 멋도 모르고 싸운 것이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뮤지컬을 보러갔다. 뮤지컬이 끝난 후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즐겁게 놀았다. 막이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 장면을 보고 이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외국에서는 여운을 즐기고자 빠르게 빠져나가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에도 불구하고 바로 나가더라는 대목이다. 우리의 관람문화가 잘못된 것일까? 영화도 자막이 올라오자마자 빠져나간다. 왜 일까? 또 고 윤이상 선생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예전에 읽은 윤정모 씨의 작품 <나비의 꿈>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과 저자와의 만남이 엮이면서 색다른 감상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에 나오는 서양음악 중 기억에 남는 제목이 거의 없다. 나의 한계다. 무지다. 하지만 몇 년 전 <노다메 칸타빌레>란 일드를 통해 서양음악의 즐거움과 재미를 누렸듯이 언젠가 서양음악이 한 발 더 다가오는 날이 자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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