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의 탄생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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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아이비리그는 하버드다. 어릴 때 본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란 드라마에 강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미국 최고 대학에서 하버드가 빠져 있으면 왜? 라는 의문이 생긴다. 아이비리그란 것을 알게 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동부의 몇 개 대학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명칭은 몰랐다. 뭐 하버드를 알면 되었지 하고. 하지만 미국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다른 명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 놀랐다. 그것은 이 대학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사실 이 단어를 듣게 된 것은 옷 입는 스타일 때문이다. 한때 유행했던 스타일이다. 패션에 둔감하기 그지없는 나에 비해 후배나 친구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는 이 대학들이 어떤 대학인지도 몰랐을 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때 이런 스타일이 유행했고, 이 단어들이 우리 삶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는지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책 속 기러기아빠처럼 강한 비판을 하지만 남모를 숭배를 하고 있는 상태임을 깨닫는다. 이 숭배가 가끔 주변 사람이 너무 쉽게 들어감에 따라 별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부제는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의 탄생이다. 미국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대학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전작들처럼 방대한 인용과 논리적인 글 전개는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놀라는 것이 있다. 어렴풋이 느꼈던 미국인들의 아이비리그에 대한 강한 열망과 숭배를 확실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서울대 합격이나 사시 합격 등을 했을 때 플랜카드를 걸고 잔치를 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을 위해 쏟아 붓는 돈을 본다면 오히려 한국의 부모가 밀릴 정도다. 어느 부분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성직자를 배출하기 위해 설립된 대학들이 실용주의와 결합하면서 변신하기 시작한다. 군산학복합체로 변신한 현실에는 실용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기업의 하수인 혹은 기업 그 자체가 되었다. 이 변천사를 통계와 다른 저서들의 인용으로 풀어낸다. 옛날 반전시위로 사회변혁을 위해 노력했던 학교가 이제 단순히 고소득을 위한 훈련소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임금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더욱 심해지는 아이비리그에 대한 열망과 숭배는 읽는 내내 씁쓸했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대학의 문제점 중 하나가 대학 강사에 대한 것이다. 너무 높은 비율의 시간 강사가 존재하고 있고, 전임교수가 되지 못해 교수들에게 총을 난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 대한 작은 환상을 품고 있었는데 단박에 깨진다.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세습 입학 비율은 예상을 초월한다. 몇 년 전 고대나 연대 등의 합격 비리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도 미국의 나쁜 구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니 이미 따라하고 있다. 또 아이비리그로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글에서 이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을까 의문이 생긴다. 입학시험인 SAT가 가난한 학생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는 글에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단지 그들은 돈 많은 부자나 권력자 자녀의 들러리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정말 많은 자료가 나온다. 교육을 생각한다면 좋은 토론 자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의 가지가 여기저기로 뻗어나간다. 미국을 움직이는 힘, 세계를 움직이는 힘 등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아이비리그에 대한 가장 멋진 비유는 “부자들은 하버드를 ‘쇼핑몰’로 여기고 저소득층은 신분 상승을 위한 ‘구명 보트’로 여긴다.”(248쪽)는 글이다. 또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자 등의 자녀들을 위해 학교가 변하는 현실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상업화로 치닫고 있는 대학에 대해 “대학을 비영리 기관으로 간주해 면세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230쪽)는 질문에서 대학뿐만 아니라 종교단체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상업화와 거대화만 남은 교육, 종교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뭐 저자는 교육이 종교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또 입시관련 사업의 확장은 또 다른 사회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비리와 부조리의 연결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실용주의, 능력주의, 서열화, 상업화, 엘리트주의. 이 단어들이 현재 대학을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조금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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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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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들,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관악초청강연에서 안철수 교수가 직접 강연한 내용과 질문 · 답변을 담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그의 경영에 대한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내용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강연을 엮은 책이다 보니 핵심 내용이 잘 간추려져 있다. 일부분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듣거나 본 내용이지만 그의 경영 원칙을 마음속으로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서 생략된 중요한 내용을 들려주고, 독자나 시청자의 궁금점 몇 가지를 채워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안철수 교수의 강연, 패널 질문과 토론, 청중과의 대화 등이다. 제1부는 그가 농담처럼 <무릎팍도사>에서 잘린 것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코 보여주지 못했었던 것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4시간 이상 녹화를 하였다고 하는데 방송에 나온 시간은 그것의 1/4도 채 되지 않는다. 방송 목적에 따라 짤린 시간이 많고, 그가 말하고자 한 대목이 많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인기 방송이 인간 안철수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반면에 그가 방송에서 말하고자 한 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강연한 경영의 원칙이 엄청나게 특별하냐고 하면 아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책들에서 이미 보고 읽은 내용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하는 대목은 <무릎팍도사>가 오히려 더 재미있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경영의 원칙과 삶은 실천이라는 행동 때문에 완전히 색다른 빛깔을 가진다. 그 과정이 결코 일상적이지 않는데 왜 그렇게 그를 몰아갔는지 알려주는 대목에서는 그가 평범한 사람과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인물과 이론과 책과 사색에 대한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

좋고 인상 깊고 배울 부분이 많은 강연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이야기한 부분은 가끔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목적을 떠올려준다. 최근 매체를 통해 대권 후보의 한 사람이 된 그의 행보가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 일 부분이 이 강연 속에 담겨 있다. 그가 걸어온 길에 새겨진 역정이 결코 거짓과 허위로 인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현재까지의 삶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삶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 않았다. 안철수연구소와 그의 온화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어려움들이 사이사이에 흘러나온다. 이 과정들도 하나의 성장을 위한 단계임을 말할 때 그가 왜 이 시대 사람들의 멘토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패널이나 청중과 대화할 때 보여준 유연하면서도 분명한 답변은 각 개인이 경험한 것의 깊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 후 다른 전문분야와 융합하라는 것과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생기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 이 대화가 담고 있는 현실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학창시절 그렇게 자주 들었던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부분은 옛 기억을 되살려주고,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에 대한 답변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IT관련 역사와 비화를 들려줄 때 그 속에 담긴 상업화의 폐해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뒤에 숨겨진 결단력과 실천력은 그의 강연과 대화의 행간에서 살며시 드러난다. 시대의 부름과 요청에 의해 정치로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된 CEO이자 교수인 안철수를 가장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이 강연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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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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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한 <코>를 비롯한 세 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 <침저어>로 제53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열대야>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했다. 몇 년 사이에 이름난 상을 여럿 받았다. 가끔 일본에서 이런 작가가 등장하는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경이의 신인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코>를 읽고 난 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서술트릭이 지닌 재미와 잔잔히 파고드는 서늘함이 함께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폭락>은 한 개인의 가치를 주식처럼 표현하고 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자신의 과거를 간호사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이야기 구조는 정말 기발하고 멋진 비유다. 현재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한 인간의 가치를 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것은 주가처럼 순간적으로 변한다. 우량주는 점점 그 가치가 높아지고, 부실하거나 불량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그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 엘리트가 사회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약간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과 끔찍한 현실은 상업주의와 비인권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난>은 한 공간에 갇힌 한 남자 이야기다. 한 파견회사의 계약이 끝난 후 다음 회사로 가기 전 회식을 한다. 그런데 술에서 깨어나니 이상한 곳에서 수갑을 찬 채 묶여 있다. 왜,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를 묶어두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런 알 수 없는 현실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물과 견과류만 그에게 남겨두고 떠난다. 어떤 말도 없다. 편지만 가끔 남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경찰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신고도 없다. 이런 나날이 이어지는 과정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것은 조그만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한국의 호러단편이나 영화 <쏘우>가 떠올랐다. 왜일까? 개인적으로 세 단편 중 가장 흥미가 떨어진다. 

표제작 <코>는 멋진 단편이다. 텐구와 돼지 두 종족으로 나누어진 어떤 가상 국가를 다룬다. 권력을 가진 쪽은 돼지다. 텐구로 찍히면 불리한 일들이 너무 많다. 격리, 수용되고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종족 구분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나치의 유대정책이 떠올랐다.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행동과 사람의 부산물들로 만들어진 다양한 도구들도. 단순히 이 구도로만 갔다면 좀 잔혹했을지 모르지만 멋진 반전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유독 냄새에 민감한 형사를 끼워넣어서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여준다. 분명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바로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다. 객관성이 사라진 공간에 주관들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현실은 무척 놀랍다. 훌륭한 서술트릭이자 반전이다. 그리고 곳곳에 드러나는 사실들과 비판은 씁쓸한 맛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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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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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쓰모토 세이초를 검색하니 인터넷 서점에 몇 권 올라와 있지 않다. 동서문학에서 낸 추리문학을 제외하면 태동에서 낸 <검은 화집>과 북스피어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중,하>가 눈길을 끈다.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너무 적다. <검은 화집>은 벌써 절판이다. 물론 그의 시대는 지금이 아니다. 그의 영향 아래 성장한 다른 작가들 시대다. 그의 걸작 단편 컬렉션을 낸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요코야마 히데오 등의 시대다. 하지만 헌책방을 돌다보면 그의 소설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의 시대가 아니지만 그의 명작은 지금도 출간되고 있고,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모리무라 세이치와 마쓰모토 세이초를 혼동한다. 왜 두 거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제대로 읽은 적이 없거나 이름에 약한 나의 성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의 성격도 있지 않나 짐작해본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두 거장임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의 증명>을 예전에 읽었지만 큰 감명을 받지 못한 것이나 세이초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한 동안은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제로의 초점> 사실 많은 기대를 했다. 작가의 명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중반에 범인의 윤곽과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범인을 맞추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분명히 아쉬운 작품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이면을 생각하고, 왜 이렇게 내가 빠르게 범인을 맞추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그리고 빠르게 읽히는 내용과 전개는 상당히 몰입하게 만든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다른 매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대 배경은 1957년 겨울이다. 스물여섯 살의 이타네 데이코는 가을에 선 본 남자 우하라 겐이치와 결혼한다.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이다. 나이 차이가 적지 않고 선을 본 후 얼마 되지 않아 둘은 결혼한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이상하고 낯선 장면이지만 그 시대는 그랬다. 우하라는 광고대행사 가나자와 지점에서 근무한다. 결혼하면 도쿄 본사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그런데 우하라가 업무인수인계를 위해 혼다와 함께 가나자와에 간 후 돌아오지 않고 실종된다. 이제 겨우 신혼 한 달만에 말이다. 이 소설은 그의 실종을 둘러싼 의문과 이어지는 살인사건을 뒤쫓는 아내 데이코의 조사 기록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추리소설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지만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 일반 사람이 탐정 역할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한때 신문기자가 탐정 역할을 주로 맡은 적이 있지만 경찰이 상당히 배제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사건을 뒤쫓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추어 탐정이라기보다 실종자의 아내로서의 절박함이나 의문이 더 강한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의 탐정 역할은 파편적인 정보의 조합을 통해 드러난다. 남편의 과거 행적과 피해자의 이상한 행동이 단서다. 그 단서를 쫓아가면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아픔을 만나게 된다. 그 아픔은 시대가 만들었고,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범인과 동기는 사실 쉽게 중간에 드러난다. 이렇게 간파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사이에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소설들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간에 범인을 쉽게 맞추는 대부분의 경우가 바로 비슷한 구성이나 전개를 가진 소설을 이전에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뭐 대부분은 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우지만. 그리고 중간 중간 드러나는 시대의 풍경과 삶은 상당히 낯설다. 현재의 일본과 너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을 제외한다면 한 편의 시대소설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할 정도다.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은 이것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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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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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를 말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 장르 소설을 제외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은 외국작가는 그가 처음이었다. 몇몇 유명작가의 작품이나 세계문학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는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그 당시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한 그의 소설을 두고 통신에서 오고 간 대화들은 나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당연히 모든 소설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소설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는데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것이다. 문체와 이야기가 기존 소설과 완전히 달랐다. 오죽하면 그 당시 한국 작가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낸다고 했겠는가. 

잡문집이란 제목대로 온갖 글들이 다 실려 있다. 모두 열 꼭지로 나눌 수 있다. 서문 해설 등, 인사말 메시지, 음악, 그의 르포집 <언더그라운드>, 번역, 인물, 눈으로 보는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문답들, 짧은 픽션, 소설 쓰기 등이다. 이 잡다한 듯한 글들을 통해 바라보는 하루키는 한 소설가에서 한 명의 음악애호가이자 번역가이자 인터뷰어이자 생활인이다. 정말 하루키를 알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안내서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에세이 등을 통해 그의 일상이 드러나지만 이 책처럼 다양한 분야를 함께 다루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 팬에게는 멋진 안내서이기도 하다.

수많은 글 중에서 역시 눈길이 가는 것은 음악과 번역과 인물에 대한 부분이다. 그의 재즈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는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듣고 공부했는지 글을 통해 충분히 전해졌다. 그가 쓴 음악 에세이를 아직 읽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란 느낌이 든다. 이 글들이 행복한 책 읽기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들을 통해 깊이와 넓이를 보여줬고, 마음으로 그 음악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의 글쓰기가 음악과 관련 있다는 부분에서는 살짝 아주 많이 부러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작가가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챈들러다. 이 둘이 그의 문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이 둘의 작품을 해설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직 느껴보지 못한 재미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또 그가 번역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과 창작 작업이 번역 작업과 밀접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다시 한 번 하루키 문체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서를 다시 읽거나 원서를 읽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루키의 영향이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원서 욕심을 내다니 정말 대단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엄청난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그가 풀어낸 재즈나 록은 반드시 들어봐야 할 것 같고, 읽고 칭찬한 작가의 소설 등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아마 그가 느낀 즐거움과 재미의 반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몇 차례 시도는 할 것 같다. 뭐 책 읽으면서 당장 예전에 받아둔 재즈 음반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살짝 놓아두었던 재즈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기회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몇몇 소설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사놓고 고이 모셔만 두고 있는 작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일깨운다. 뭐 이런 경우는 다른 소설가들의 글 속에서도 자주 만나지만.

읽으면서 참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새롭게 하루키를 보게 되었다. 그가 벌써 소설가가 된지 삼십년이 되었다는 사실에서는 나도 그만큼 나이 먹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실 최근 몇 작품은 왠지 옛날 같은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긴 작품일 때 특히 그렇다. 오히려 짧은 글이 더 좋은데 이것은 예전과 정반대다. 많은 소설을 읽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오래전에 누군가가 하루키의 진짜 재미와 매력은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에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요즘 특히 그렇다. 이 책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다. 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분명하다. 덕분에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강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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