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
펠릭스 J. 팔마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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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제때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었을 텐데 이번에는 한 쪽의 분량도 적지 않아 예상한 시간보다 더 걸렸다. 며칠 동안은 하루에 겨우 몇 쪽씩만 읽었으니 긴 시간이 소요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읽는 재미는 상당했다. 문체와 시점이 약간 혼란을 가져오고,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의 사실과 다른 전개라 의혹이 생겼지만 말이다. 작가는 3부로 나눈 이야기 속에 각각의 주인공을 다르게 설정하고, 구성도 개별적이면서도 중첩되게 만들어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각각 다른 주인공을 등장시켰지만 모든 이야기 속에 핵심 인물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타임머신>의 작가 H. G. 웰스다. 그는 앞의 두 이야기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고 마지막 3부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이 소설에서 혼란을 가장 먼저 불러온 것은 1부다. 주인공 앤드류는 연인의 죽음으로 산송장처럼 8년을 살다가 자살을 결심한다. 자살을 위해 선택한 곳으로 마차를 타고 간다. 그곳은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웠으면서 가장 아픈 추억이 서린 곳이다. 바로 연인이자 창녀인 마리와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가 잭 더 리퍼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곳이다. 그가 그녀의 죽음을 보고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그가 자살하려는 바로 그 순간 그를 저지하기 위해 사촌인 찰스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그를 구할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 마리를 구하는 것이다. 찰스는 그가 경험한 미래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설득한다. 그 미래 여행은 머레이 시간여행사를 통해 미래인 2000년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찰스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앤드류에게 심어준다. 그런데 이 여행사는 단지 미래의 한 시점으로만 갈 수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타임머신>이라는 소설을 쓴 웰스에게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SF소설의 선구자 중 한 명이자 기발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웰스가 등장한다.

소설은 다중구조와 다양한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매혹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가장 앞에 내세운 것은 사랑이야기다. 1부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연인을 구하려는 것이고, 2부는 미래의 영웅을 사랑하여 그녀 클레어를 만나기 위해 과거로 왔다는 말에 속은 그녀와 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 이 소설의 제목이자 복잡한 시간여행의 문제를 다룬 시간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부는 앞에 나온 이야기와 또 다른 전개와 설정인데 어떻게 보면 전체 구성에 대한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편한 설정이 평행우주란 개념이 있지만 말이다.

1부와 2부의 설정 중 머레이 시간여행사를 통해 보여주는 미래의 풍경과 영웅 데릭 섀클리턴 대장의 과거로의 귀환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란 설정과 섀클리턴 대장의 거짓말이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 속에 패러디나 오마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설정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또 한 편의 영화를 더 꼽는다면 <백투더퓨처>다. 물론 이 영화는 평행우주이론과 방향을 달리한다. 하지만 현재를 바꾸기 위한 과거로의 귀환은 나에게는 자연스런 연상 작용이다.

작가는 앞의 두 부분에서 시간여행이 거짓임을 말한다. 하지만 이 여행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진실이다. 그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조그만 장면이나 설정은 마지막 3부에 가서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고전문학의 거장들을 등장시켜 이들이 이 시대에 살았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웰스의 이력을 전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사실을 거짓과 뒤섞고 그것을 혼란 속에 던져 놓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발하고 놀라운 사기극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여행이 주는 매력이 너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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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제국
외르겐 브레케 지음, 손화수 옮김 / 뿔(웅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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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표지가 먼저 눈길을 끈다. 무엇을 의미할까? 프롤로그에서 나오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어떤 관계를 가질까? 이어서 펼쳐지는 1528년 노르웨이 베르겐 지방 수도사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호기심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2010년 8월의 리치먼드와 9월의 트론헤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암시한다. 작가는 분명하게 지역과 시간을 표기하면서 구분을 하였지만 독자는 이 분명한 차이를 잊기 쉽다. 이 미묘한 작업이 범인을 찾는데 조그만 장애가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 다른 시간대와 완전히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각각 그 지역의 담당 형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미국 리치먼드는 여형사 펠리시어 스톤을, 노르웨이 경찰은 오드 싱사커 경위다. 작가는 이 둘에게 하나씩 장애를 부여했다. 펠리시어 스톤은 여고생 시절 데이트 강간의 트라우마를, 오드 싱사커는 뇌종양 수술과 아내의 불륜을. 이 조그만 문제는 이 두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 때 약간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만든다. 사실 이 부분을 이용한 트릭의 일부분은 중반까지 사건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작가의 미묘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배치는 특히 트론헤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사건으로 인해 빛을 발한다. 리치먼드에서 기묘하고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트론헤임은 도서관 보안 책임자 욘 바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텐의 일상에 새로운 사서 시리 홀름이 등장하고 퇴직하는 군 브리타 달레와의 술 한 잔으로 이어진다. 그는 술에 대해 과민반응을 가지고 있어 한 잔만 마셔도 취한다. 도서관에서 그녀와의 한 잔은 그가 이성을 잊게 만들기 충분한 양이었고, 앞으로 펼쳐질 아주 끔찍한 사건의 시작이기도 하다.

각각 다른 두 지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사람의 피부를 벗겨낸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현재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1528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이때 벌어진 이야기를 두 사건의 사이에 삽입하여 진행하면서 연관성을 보여준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현재 벌어진 사건의 원인이자 시발점이다. 여기에 살짝 끼워넣은 에드거 앨런 포는 양념 같은 존재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요하네스 수도사이고, 그가 남긴 필사본이다. ‘우주의 중심은 전역에 걸쳐 있고, 그 주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사본의 철학은 의미심장하고, 그것보다 이 필사본의 재질이 더 충격적이다. 그것은 초반부터 예상한 사람가죽이다.

과거에서 펼쳐지는 해부학과 현재에 벌어진 사람 가죽을 벗긴 기이하고 끔찍한 살인사건은 분명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과거라면 다른 두 지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어떤 연관성도 가지지 못했겠지만 인터넷 시대는 검색을 통해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풍부한 상상력과 직관과 추리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약간의 개인 감정이 담긴 수사를 통해 펠리시어 스톤이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런 힘들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드 싱사커도 직관과 의문에 대한 수사로 범인상에 한발 다가간다. 하지만 작가는 싱사커를 통해 범인상을 살짝 다른 방향으로 유도한다. 

과거 해부학과 사람 가죽으로 만든 필사본, 현재 발생한 연쇄살인사건과 벗겨진 사람 가죽 등은 충분히 자극적이다. 여기에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닌 형사들을 등장시킨 것과 미묘한 시간 배열을 통한 트릭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오면서 벌어지는 로맨스와 거침없는 살인은 왠지 모르게 과잉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요하네스 필사본의 철학은 머릿속을 맴돌고, 싱사커가 말한 알리바이에 대한 의견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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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 우석훈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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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월가 점령 운동이다. 그들의 운동을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점령하라(occupy)'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단어를 들으면 먼저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총칼이 오가고 군인들이 등장하는 그런 전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운동도 전쟁이 맞다. 월가 점령 운동이 1%에 대항하기 위한 99%의 운동이자 투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이 보여주는 운동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제인 세계를 뒤흔든 용기의 외침이다.

월가 점령 운동을 다루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여기게 저자 이름 중 등장하는 슬라보예 지젝은 이 운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다룰 것이란 기대를 심어준다. 하지만 아니다. 해설은 쓴 우석훈의 말처럼 중구난방의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젝의 글도 있다.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말 것’이란 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2011년 10월 9일 주코티 공원에서 읽은 연설문이다. 이 연설이 큰 공감을 불러온 것은 한 문장 때문이다. “그때 멋졌지.”(109쪽) 

왜 이 문장에 큰 공감을 했냐고?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 때문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선배들이 그들이 얻어낸 조그만 성과를 끝없이 회상하고 추억하고 자랑하면서 내뱉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룬 성과를 폄하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까지 오면서 보여준 삶의 모습을 보면 그들 자신이 또 다른 기득권으로 변해 더 심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것을 좀더 과거를 옮겨가면 4.19세대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 미완성이자 철저하지 못했거나 분명한 한계를 지녔던 그 시대의 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월가 점령 운동에 대한 글이지만 경제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월가의 횡포를 지적한 글이 없다. 있다면 이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과 문제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감상이자 진행 사항이다. 운동 내부의 문제점이나 이 운동이 거대해지고 힘을 지니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충돌들을 다룬다. 현실적인 문제가 많은데 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드럼 서클의 소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이 운동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어준다. 이후 나오는 흑인 시위 문제, 노숙인 문제, 차이나타운과 점령 운동, 공동의 빨래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도 바로 이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끝없는 토론과 전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인내를 보여준다.

이 운동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효율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은 길고 끝없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전체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른 시위나 운동에 대한 인정이자 공생이다. 그냥 보아도 분명히 효율적인 진행 방법이 있을 텐데 그들은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다. 하지만 바로 이 과정을 중시하는 행동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개인과 전체의 조화와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대변되는 이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다수결의 폭력으로 혹은 소수 권력 집중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말이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현실과 연결시키게 된다. “파산한 은행을 세금으로 구제해주면서도 쥐꼬리만 한 세금 인상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나라다.”(24쪽) 이 문장은 우리의 부자 감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최근에 알게 된 한국 재벌의 문제도 같이 연결된다. 자신들만은 규제를 받지 않으려는 자본과 1% 기득권층을 대변하려는 정부 등을 생각할 때 이 운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 수 있다. 김어준이 ‘세계사적 비명’이라고 한 것도 99%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도 이 점령 운동은 진행되고 있다. 누구는 이 운동이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운동이 보여주는 과정과 결과물은 분명 승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승리한 것은 아니다. 대자본과의 투쟁은 길고 지루한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008년 우리의 촛불 시위가 그 뜨거웠던 열기에 반해 이룬 성과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물론 그때 뿌리를 내린 씨앗들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 열매는 맺어지지 않았다. 

이 운동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찾게 될 것이다.”(306쪽) 같은 빨래 처리를 두고 가지는 한 저자의 의지다.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그들이 이룩해 나가는 성과물들은 순간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좀더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 무엇보다 효율적이고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사라진 이 운동에 대한 글들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뒤흔들고 미래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게 만든다. 앞으로 더 관심 있게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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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안녕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8
구보데라 다케히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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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참 우울한 제목이다.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제목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순간은 마지막 장에 와서다. 각 장의 제목도 상당히 특이하다. 사람 숫자로 시작한다. 처음은 107명이고, 마지막은 당연히 0명이다. 마지막으로 오는 과정에서도 ‘107명-4명=103명’이라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4명’이 각 장에서 누계 숫자로 표기된다. 그리고 각 장마다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떠나는 이유와 방식이 각각 다르고, 매년 떠나는 사람 숫자도 바뀐다. 

처음에 107명이라고 했을 때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숫자는 주인공 와타라이 사토루가 졸업한 후로쿠 초등학교 졸업생 숫자다. 이들 모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결국 0명이 된다는 것은 동창생들이 모두 아파트 단지를 떠난다는 의미다. 그럼 왜 사토루는 끝까지 남았을까? 처음에 사토루가 중학교 담임이 와서 등교하라고 요청했다. 사토루는 이 단지 속에서도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토루가 자기 방에만 머무르는 은둔형 외토리가 아니기에 어떤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약간 괴팍하고 특이한 소년이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중반부에 밝혀지는 사실은 왜 그가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반전처럼 펼쳐졌다.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지만 언제나 옛사람은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토루가 이 좁은 단지도 충분한 미래가 있다고 말할 때부터 현실적인 문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사토루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잊었다. 또 너무나도 규칙적이고 열정적인 체력단련을 보면서 먼저 감탄부터 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최배달(일본명 오야마 마스다쓰)이었을 때는 어릴 때 본 최배달 만화가 먼저 떠올랐다. 그에 대한 수많은 전설과 과장된 표현들이 이 소년에게는 우상 그 자체였다. 단순히 그의 강함을 숭배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도 숨겨진 과거가 있다.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도 있고, 상가도 있어서 사토루가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부족한 것은 엄마인 히나 씨에게 부탁해서 밖에서 사오면 되기 때문이다. 또 사토루의 일상은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지만 규칙적인 순찰과 단련으로 이어져 있고, 세상과 단절되어 있지 않아 어떤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밝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가 점점 자라고 사랑하고 친구들이 떠나가면서 평온해보였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이 모든 삶의 원인이 밝혀지는데 이 아파트 단지가 그에게는 은둔형 외톨이의 집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한없이 어둡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소재다. 친했던 친구들이 한명 씩 떠나가는 삶에서 자신은 한 자리에 매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점점 노후화되어가는 아파트 단지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야 하는 친구들을 생각할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단 하루라도 친구들의 집을 순찰 돌지 못하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그를 보면서 왜 그런 강박관념에 잡혀 사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과거의 한 사건으로 모든 것이 풀리게 되었다. 비록 이 의문이 풀렸다고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사토루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생기지만 그가 사키와 사랑할 때는 미래와 상관없이 괜히 기분이 좋다. 그 감정이 주는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중간중간 심어놓은 상황과 복선과 의문 등은 읽는 동안 하나씩 해결된다. 이때마다 그래서 그렇구나! 라는 감탄사를 터트린다. 하지만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그가 겪게 될 고독과 아픔과 갇힌 미래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토루가 이런 외형적인 삶의 조건에 굴복하거나 어둠 속으로 빠지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었던 제목 <모두, 안녕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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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스 필립 K. 딕 걸작선 6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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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 걸작선 여섯 번째 작품이다. 출간된 목록과 출간될 목록을 둘러보면 읽은 책이 몇 권 보인다. 읽지 않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도 있다. 왠지 모르게 걸작선이란 이름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호기를 부른다. 이 출판사 출간작으로 다 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모두 읽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발리스>의 난해함이다. 이 소설 쉽지 않다. 삼부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출간될 소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힘겹게 읽었다. 물론 충분히 집중해서 읽지 않고 여유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역자 후기에 어슐러 르 귄의 평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약간의 위안도 받는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자기를 분열시킨 호스러버 팻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소설을 생각하고 읽게 되면 사실 큰 낭패를 본다. 이것은 내 경험담에서 나온 평가다. 물론 역자 후기에 나온 말에 따르면 필립 K. 딕 매니아 중 일부는 이 시리즈를 작가의 최고로 꼽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론은 역시 르 귄을 참조하면 된다. 현재까지 개인적인 평은 르 귄에 더 가깝다. 뭐 더 가깝다는 평가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리스가 무얼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생겼다. 그런데 책 중간에야 겨우 나온다. 그것은 거대 활성 생체 지능 시스템(Vast Active Living Intelligence System)의 약자다. 이 단어만 가지고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인공위성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는데 단순한 인공위성이 아니다. 이 단어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 등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한 재미를 누릴지도 모르겠다.

호스러버 팻이 신학과 철학 속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눈에 맞으면서부터다. 이 광선을 통해 그는 막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의 난치병 원인을 직관적으로 안다. 엄청난 정보는 그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이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중반 이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앞보다 쉽게 읽었지만 그래도 역시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그가 쓴 주해서에 오게 되면 더 심해진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조물주를 초월한 또 다른 존재를 등장시키거나 도덕경의 경구가 인용되고 혼용되면서 하나의 흐름과 개념을 잡는데 실패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짧지만 깊은 사색에 빠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이다.

짧게 내가 이해한 이 책의 한 흐름을 이야기하면 기독교의 구세주에 대한 변주다. 기존 신학을 파괴하는 듯하지만 그 그릇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르게 해석할 뿐이다. 또 시간에 대한 개념은 공간과 함께 기존의 인식을 떠올려준다. “두 가지 시공간 연속체에 살고 있었다”(201쪽)는 표현과 합쳐졌다는 뒤이은 말은 쿰란의 경서 발견과 연결되면서 ‘깨달음’의 새로운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 연관성을 충분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진짜와 가짜, 기억과 실재의 차이 등을 다룬 소설들로 인식이 이어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인식의 바탕에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와 단편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와 ‘흑철감옥’은 이 소설 앞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진정한 시간이 C.E. 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고, 그 사이 기간이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는 주장은 위에서 말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다. DNA의 이중나선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것과 제국의 바이러스로의 인식 등은 또 다른 사유로 이어가기 충분한 소재다. 좋게 보면 다양한 해석과 결말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나쁘게 보면 혼란스러운 구성과 전개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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