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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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헨리 치나스키 3부작 중 첫 장편이다. 이보다 먼저 번역 출간된 <팩토텀>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실 <팩토텀>에 대한 호불호 평을 읽고 주저했다. 왠지 쉽게 읽힐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이 소설을 선택할 때도 있었다.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개성 강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살짝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마자 사라졌다. 평범하고 쉬운 문장과 일상적인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줘 오히려 쉬웠다. 윤리와 도덕에 대한 잣대를 내 속에서 치워버린 순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된 그의 삶들이 가볍게 지나갔다.

제목대로 치나스키가 근무하는 곳은 우체국이다. 이 우체국의 시스템을 보는 순간 의문으로 가득 찼다. 정규직과 임시직의 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처음 그가 배달부 임시직으로 일할 때 우연히 배달간 집 여자와 섹스할 기회를 잡았을 때 이 차이는 너무 쉽게 사라졌다. 물론 이것은 순간의 쾌락에 의한 환상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가 배달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황들 중 일부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와서 배 부근까지 잠기는 물을 뚫고 배달하는 그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보여준 행동과 비교해서 너무 낯설다. 술과 여자에 빠져 사는 그가 이런 책임감을 보여준다는 것에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이질감은 작가의 약력에 나온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마침 해고 직전이었던’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물론 여기에는 술과 여자와 도박이 한몫했다. 그의 삶에 이것을 빼면 뭐가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반복하고 계속된다. 이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가 떨어져 나간 우편물 분류 사무직원에 당당히 붙은 사실은 의외다. 많은 것을 외워야 하고 책임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나온 내용만 가지고 본다면 해고 직전까지 갔던 것은 그가 관리직과 타협하거나 아부하지 않은 탓이 더 큰 것 같다. 이 소설에 숨겨진 일들을 충분하게 감안하지 않을 때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술은 늘 그의 곁에서 매일 몸속으로 이동했고, 여자는 자주 바뀌었다. 이런 일상을 생각하면 근태가 얼마나 엉망이었을까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일에 들어가서 보여준 태도는 그렇게 근태가 엄청 나쁜 것 같지 않다. 해설에도 나오지만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에 의한 기계적인 도입이 만들어낸 폐해가 더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늦게 마치는 것도 잘못이지만 빨리 끝내고 쉬는 것도 잘못이라는 관리직의 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편물 분류 작업 분량을 기계적으로 대입하지만 관심 있는 여직원에게는 관대한 관리직을 볼 때 이중 잣대와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그 시대에 팽배했는지 알게 된다. 

간결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 문장은 그의 행동과 더불어 살짝 부러웠다. 나의 일상에 비교해서 너무 자극적인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12년이라면 다르다. 자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상들이 긴 시간 속에서 가끔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고정된 자리에 앉아 오른팔만 사용해서 살찌고 근육통을 가졌던 사실을 생각하면 실제 우체국에서의 삶은 끔찍함 그 자체다. 뭐 시가를 피우다 우편물을 몇 개 태운 것 같은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또한 다음에 벌어진 대책을 비웃으며 멋진 유머로 마무리한다. 이 같은 블랙유머는 간결하고 반복적인 삶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어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평가가 안티히어로라는 것이다. 안티히어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치나스키의 삶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 중 한 편을 영화로 만든 <술고래>를 지루하게 봤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 이런 주인공의 행동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나의 성장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가 보여준 삶에 어떤 동질감을 찾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작품 속에 다루어진 그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일상은 또 다른 일상의 반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훗날 나의 삶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한다면 얼마나 많은 굴곡이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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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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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두 번째 번역 작품이다. 첫 작품이 시리즈와 상관없는 <헤드헌터>였다. 이 소설은 요 네스뵈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인식시켜주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해리 홀레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작품이다. 아홉 편까지 나온 것 중에서 뒤편이라는 사실이 조금 불만이지만 최고 인기작이라고 한다. 불만은 당연히 순서대로 보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문제다. 특히 해리의 파트너가 죽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시리즈 앞 권을 읽을 때 조그만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나의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제목대로 눈사람이 중요한 장치다. 한국에서 눈사람을 만들거나 보기가 쉽지 않지만 텔레비전 등을 통해 너무나도 낯익은 것이 바로 눈사람이다. 처음 제목과 몇몇 사람들의 서평을 읽으면서 눈사람 속에 시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시체를 숨길 정도로 평범한 연쇄 살인범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눈사람이 나오면 왠지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그것이 비록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긴장감을 불러오게 만드는 설정이 나를 책 속에 몰입하게 만든다. 엄청나게 잔혹한 장면들이 나오지 않는다하여도 말이다. 

소설 앞부분은 과거의 불륜 장면을 보여준다. 현재 시간 속 라디오 방송에서 바다표범의 짝짓기 습관에 대해 말한다. 부자의 유전적 혈연관계에 대해 노르웨이의 통계 수치를 보여준다. 거의 20% 정도가 실제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수치다. 그래서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그때도 그렇지만 이 통계 수치를 본 후 왜 우리들이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와 닮은 곳을 그렇게 찾으려고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이런 장면들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리즈다보니 해리 홀레라는 주인공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중간 중간 나오는 과거 이력을 보면 완벽한 형사가 아니다. 한때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알코올중독에 걸렸지만 범인을 잡아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던 형사들과 닮은 점이 많다. 물론 할리우드가 보여주는 유머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건에 집중하고 사건들의 연관관계를 추리하고 진실에 한발씩 다가가는 형사다. 그 과정에 당연히 실수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실수다. 그가 초인적인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경찰들은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진짜 범인에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이 그에게 더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놀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에 연쇄살인범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수의 연쇄살인범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다. 그렇다면 앞에 나온 시리즈는 어떤 사건을 다룰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단지 하나의 살인만 저지른 범인을 열심히 쫓는 것일까? 자연스런 의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이 시리즈가 출간되면 확인할 것이니 넘어가자. 하지만 해리 홀레가 FBI에서 연쇄살인범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 책 중간 중간에 계속 나온다. 아마 사람들이 배운 것을 사용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것과 해리가 연쇄살인범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에 대한 장치일 것이다. 단 한 번도 연쇄살인범이 없었던 나라에서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그가 이 주장을 펼쳤을 때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이런 일련의 장치들이 읽고 찾는 재미를 준다.

사실 연쇄살인범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의심한 그가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첫 장면이 보여준 것 때문에 점점 사라졌다. 물론 이것은 나의 운이 작용한 것도 있다.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범인을 쫓는 형사들은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앞에 드러난 증거와 단서만을 가지고 범인을 쫓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이 놈은 아니다’ 같은 추리를 한다. 물론 일본 추리 소설에서 자주 보는 단서와 증거를 뒤섞고 충격적 반전을 펼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면 다른 범인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소설 전체가 보여주는 재미가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캐릭터와 이야기와 관계들이 만들어 내는 재미와 설정이 사라졌을 것이다. 뭐 이 모든 것을 잘 버무린 작가도 가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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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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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한동안 이 상을 수상한 작품을 열심히 읽었다. 읽는 재미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나오키 상이 대중적인 평가로 상을 주듯이 이 상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은 나의 만족도를 충분히 채워줬다. 이 소설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다. 속도감 있게 읽히고 삶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삶이 성공을 향해 나아갈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된다. 연예계 등에서 벼락출세를 하는 신인 등이 가끔 나타나지만 극소수의 사람에게 해당될 뿐이다. 대부분은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성공이 가능하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추락 혹은 실패다. 성공과 달리 실패는 너무나도 빨리 급하게 진행된다. 이 속도는 한 걸음이 아니라 어느 소설 제목처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주인공 임도랑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쳤고, 가장 낮은 곳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

제목대로 그의 직업은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정규직으로 안정된 직장이 아니다. 애견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다. 다섯 마리의 좋은 품종을 데리고 매일 산책하는 일이 고정된 일이라면 그 후의 시간은 새로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컨설턴트로 일했을 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농락당해 고객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도망갔고, 그는 짤렸다. 이런 과거 때문에 새롭게 취직을 할 수 없어 아르바이트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 변화가 생기는데 그것도 바로 개 때문이다.

비교적 고정적인 일인 개 산책시키는 일이 개들의 교미로 인해 날아가고, 싼 고시원은 옆방 사람과의 오해로 쫓겨난다. 새롭게 구한 일자리가 고기집 불판 닦는 일인데 이 일에 그는 몰입한다. 그런데 이 일은 밤에 잠시 할 뿐 낮에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구한 일이 역할 대행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다양한 군상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삶들이 나온다. 이 과정에 고기집 직원 미향과의 만남은 새로운 삶을 생각하게 만들고, 개를 산책시켰던 일에서 비롯된 새로운 개 산책은 잊고 있던 성공의 냄새를 맡게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엮이고 풀리는 이야기는 한 지리멸렬한 인생의 심리와 행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지만 그가 추락한 후 그녀를 그리워하는 일이나 다시 일어날 것을 대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에는 특히 그렇다. 단순한 일에 몰입해서 최상의 효율을 찾는 일을 보면서 그가 느낀 그 희열감이 느껴졌고, 조그만 성공에 취해 현재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때는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에 드러나는 또 다른 삶의 단면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했다. 가능성보다 약간은 도식적인 진행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할 대행 회사의 사장 삼손의 존재감은 소설 전반에 걸쳐 무게감을 전해준다. 나중에 드러나는 과거는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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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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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호평이 이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여주인공 카루에 대한 애정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천사와 키메라의 대결이란 간단한 정보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가지 정보는 변함없이 금방 사라지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잘 생긴 남녀의 등장과 사랑에 대한 감정들은 예상과 다른 시작이었다. 이런 시작도 카루의 마법과 더불어 변했다. 잊고 있던 이 소설의 정체를 되살려준 것이다. 그리고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는 배경들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카루. 그녀는 열일곱 살 소녀다. 얼마 전 멋진 남자 카지미르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했지만 지금은 그 남자의 정체를 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빠진 그는 그녀를 스토킹할 정도다. 약간은 평범한 진행이다. 하지만 카지미르가 그녀가 다니는 미술학교 모델로 등장하면서 평범해 보였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마법으로 조그만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냥 평범한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의 대상이 실재한다고 말해도. 그리고 곧바로 그녀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악마의 모습을 가진 존재들이 그녀와 너무나도 평화롭게 대화를 나눈다. 너무 평범해보여서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녹아든다.

그녀가 자랄 때 곁에서 지켜보고 돌봐준 것은 바로 악마로 대변되는 키메라들이다. 그중 소원을 다루는 마법사 브림스톤은 아버지 같은 존재다. 동시에 비정한 고용주다. 그것은 그가 필요한 이빨을 구하기 위해 포털이라는 공간이동을 통해 전 세계의 이빨을 가져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위험한 일이 몇 차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사람이나 동물들의 이빨을 받고 소원을 들어주는 동전 등을 준다. 카루가 심부름의 대가로 소원 동전들을 받았다. 그녀는 이것을 개인의 사소한 욕망 충족을 위해 소비한다. 그 때문에 사소한 재미가 펼쳐지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천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들은 키메라들이 세계를 오고가는 포텔에 손도장을 남긴다. 왜 그럴까? 이런 의문과 함께 카루와 천사가 충돌한다. 인간이 천사와 싸운다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녀 손에 새겨진 문신이 예상하지 못한 마력을 발휘한다. 물론 여기에는 천사 아키바의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대결 이후 카루와 아키바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은 로맨스의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 그 예상은 멋지게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숨겨져 있는 거대한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임을 알린다.

천사와 악마 키메라의 대결 구도 속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사의 이미지를 인간 속으로 내려놓으면서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었다. 사랑을 나누고, 변심하고, 배반하고, 질투하고, 죽고 죽이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흡사한 모습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해 천사와 키메라의 미적 기준을 인간의 시각으로 모두 바꾼 것은 사실 읽으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카루가 양의 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름다움은 인간에 그 바탕을 둔 것처럼 지극히 인간의 미적 감각이 소설 전반에 흐른다. 키메라조차도 그렇게 변한 것은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시리즈의 첫 권이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번 편이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다음을 전제로 하다보니 중반 이후 남은 분량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1권만 읽고 이 부분을 평가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그래도 중반 이후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일방적인 흐름으로 변해 의아함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시리즈라는 사전 지식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고 읽는 독자라면 조금은 황당할 것 같다. 그리고 카루 캐릭터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언더월드>나 <레지던트 이블>의 여주인공들이 이미 강인하고 개성 강한 역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예상되는 몇몇 반전들을 생각하면 다음 권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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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왕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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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라인 게임을 하지 않는다. 한때 누구나 했던 스타크래프트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른다. 나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사실 초등학교 시절 오락실에서 끝났다. 있는 용돈을 다 집어넣고 중독에 의해 부모님 돈까지 손을 된 그때가 끝이다. 물론 그 이후 오락실이나 인터넷 게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친구 등과 함께 가끔 갔다. 하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순간은 즐기지만 그 시간을 지속적으로 끌고 갈 열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친구 등이 밤새 PC방에 앉아 게임만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어릴 때 경험에 비춰 알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태식은 낯설다. 그리고 낯익다. 낯선 것은 나의 기억 속에 일진이란 존재를 찾기 쉽지 않고, 태식처럼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 남자밖에 없다보니 연예인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외부 환경이 다르다면 그가 느끼는 불안과 불만과 짝사랑의 순수함은 낯익다. 피 끓는 청춘에게 짝사랑은 언제 어떻게 갑자기 찾아올지 모른다. 두려워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반항의 외침도 마찬가지다. 좋아서라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그 모습 또한 비슷하다. 작가는 이렇게 안팎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MMRPG란 것을 모른다. 얻어 들은 것은 있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안다.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레벨이니 랩이니 하는 말을 할 때 나에게 그것은 외계어와 다름없다. 문맥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한다. 그러니 이 소설 속 판타지온라인이란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이 부분은 포기했다. 당연히 집중하게 되는 것은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다. 처음에는 태식이 어떻게 왜 드래곤을 죽였는지 궁금했고, 그 다음은 그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폴룩스 엔터테인먼트 사장 중경의 몰락 과정이다. 여기에 길드장과 아이템 거래를 둘러싼 현실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보여준다.

태식은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학교짱에게 놀림을 받고 잔심부름을 한다. 현실에서 그가 영웅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가 온라인으로 옮겨 영웅이 되고자 한 것도 단지 같은 학교 동기이자 판타지온라인 메인 모델인 지은이 때문이다. 뭐 남자가 여자 때문에 사고치는 것이 어제오늘만의 일이겠냐 만은 이 선택은 판타지온라인을 둘러싼 세상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다. 이 혼란과 중경, 인투더레인 등의 현실이 뒤섞이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바닥을 하나씩 보여준다. 게임 속 현실과 실재 현실의 경계가 어느 순간 무너지고 인생마저도 게임의 법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분명한 승자독식사회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한상운은 무협소설 작가다. 처음 등장부터 그는 남과 달랐다. 개성 강하고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비열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상적인 협객행보다 이익이 더 중요한 삶의 현실을 무협 속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것은 그가 현대판 형사물로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살짝 이 부분은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그가 만들어내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활약이 변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이 소설 속 세 명의 주인공들도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학을 멋지게 한다. 마지막 태식의 선택에 약간 불만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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