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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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소설 속에 다루어지는 제노사이드는 한 가지가 아니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벌어졌던 대학살들과 가상의 종족을 없애려는 미국의 의도가 중첩되어 있다. 과거사와 현대사에 결코 적지 않았던 제노사이드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맞물려 장대한 sf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무대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아프리카, 미국, 일본 등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의지와 현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드러나는 액션과 미스터리와 불안과 공포는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이 책은 작년과 올해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2011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위, 2012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2 <일본 서점 대상> 2위 등과 같은 굵직한 상을 여럿 받았다. 이런 상들이 작품을 물론 보증해주지 않지만 이전부터 보여준 작가의 필력과 문제의식 등을 생각하면 분명히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당연히 몰입했고 정신없이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이전에 알고 있던 아프리카의 대학살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현실은 나의 사고 범위를 넘었고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세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처음은 일본, 다음은 아프리카, 마지막은 미국이다. 이 세 곳이 각각 의미있는 비중을 지닌다. 먼저 아프리카는 액션을, 일본은 스릴러를, 미국은 정치를 다룬다. 액션이 벌어지는 아프리카는 슬프고 가슴 아프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액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 대륙에서 발생한 혹은 발생하고 있는 학살들이 너무나도 우리의 현실 인식과 동떨어져 그렇다. 소년병을 둘러싼 이야기나 한 마을을 대량 학살하는 군벌이나 집단 때문에 더 그렇다. 이미 다른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피그미 족을 둘러싼 소문은 특히 더 심하다.

 

시작은 미 대통령이 인류 멸망 가능성과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 출현이라는 보고서를 받으면서다.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이 출현한 것과 인류 멸망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하이즈먼 리포트>라는 보고서를 통해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미 대통령에게 이것은 당면한 문제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장면은 바뀌어 이라크가 된다. 이곳은 전쟁 후 국지전과 테러가 빈번하다. 전쟁 당시보다 더 많은 미군이 죽어 가고 있는 곳이다. 전쟁대행회사에서 미군을 대신 활약하기도 한다. 이 회사의 소속 용병 중 한 명인 예거가 등장한다. 사실 미 대통령과 미군 출신 예거가 먼저 등장하여 어! 하는 어색함이 먼저 느껴졌다. 무대와 등장인물을 외국인으로 바꾼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아니다. 이어서 일본인 겐토가 나온다.

 

예거는 미국이 기획한 작전에 참여하는 용병 중 한 명이다. 작전은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의 한 지역에 가서 인류가 아닌 한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다. 그 생명체는 보는 즉시 알 수 있는 존재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 무엇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거가 이 작전에 참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란 생소한 병의 의미도. 이 예거가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현재 인류의 가장 추악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도 마찬가지다.

 

겐토는 아버지 장례식을 치룬 후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 후 도착하게 만든 메일이다. 이 메일은 의문이 가득하다. 지시에 따라 간 곳에서 발견한 연구시설은 낯설다. 아직 임상학적 경험이 부족한 그에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다 한국 유학생 정훈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고 이수현 씨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훈이란 인물과 일본의 현대사 묘사 때문에 일본 독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정훈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음을 생각할 때 미국과 한국의 관계 등을 생각할 때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작가는 정직하고 용감했다.

 

미국의 중심인물은 한때 천재였지만 독창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벤스다. 그가 던지는 의문과 계획한 작전은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간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작전의 개요는 과장 포장된 공포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윤리보다 생존이라는 선택의 이면에 깔린 공포의 탈을 쓴 욕망은 그를 둘러싼 현실에서 가장 적나라하다. 가질 수 없으면 파괴하라는 단순한 정의가 그대로 적용된다. 미 정부의 입장과 이에 반대하는 진영의 중간에서 그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던지기도 한다. 물론 새로운 정보와 단서도.

 

거의 700 여쪽에 가까운 장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 왜냐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있기만 한 것이냐고?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작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우리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각각 다른 위치와 입장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들이 그들을 정당하게 대변해주는 것인지도 물어야 한다. 물론 나라면 이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도. 읽으면서 정말 방대한 정보를 다루었다는 생각했는데 6년 만의 장편이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인류의 가능성을 두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해본다. 생존과 공존. 아니면 생존과 학살. 단순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전자이지만 그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다면 과연 어떨까? 우리의 이성과 행동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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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남자 진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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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는 여자 친구 해미의 부탁으로 한 남자의 불륜 증거를 찾는다. 그 남자는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증권회사 상사 민서다. 해미에게 이 일을 부탁한 사람은 민서의 아내 성희다. 어느 날 진구는 집이 비어 있다는 정보를 믿고 몰래 들어간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이 보인다. 방으로 들어간다. 그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민서의 시체다. 단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좀 만지려고 했던 진구에게 이 일은 잘못하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짧은 시작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 진구의 과거 이력과 이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알려준다.

 

잘 짜인 미스터리다. 한국적 특색도 강하다. 진구라는 주인공의 캐릭터도 잘 잡혔다. 일반적인 감성과 윤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다. 심부름센터에서 배운 기술 등으로 가벼운 변장이나 불법적인 일도 할 수 있다. 이런 기술과 재능은 그 앞에 놓인 시체를 두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힘을 발휘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냥 지문과 흔적을 지우고 사라졌겠지만 그의 행적을 아는 의뢰인을 염두에 두고 사건 현장을 비틀어놓는다. 순간적인 재치와 순발력과 대담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시작은 민서가 저지른 불륜의 증거를 찾는 것이지만 시체가 발견된 후 진구가 누명을 벗고 오히려 진범을 찾는다. 그런데 진구가 일하는 증권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서는 올바른 사람이다. 너무 고지식하고 정석적이라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민서가 가는 곳 중 이상한 곳이 한 곳 있다. 정신병원이다. 너무나도 올바른 생활을 하는 그이기에 특히 눈에 들어온다. 혹시 정신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그를 미행하고 흔적을 쫓지만 어디에도 불륜의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 복사를 통해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시체가 발견된 후 용의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성희가 진구에게 부탁한 일과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경찰에 말했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그를 압박한다. 하지만 이미 진구는 현장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꿔놓았다.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형사가 아니다. 새로운 증거를 찾고 조사를 계속하니 용의자가 한 명씩 늘어난다. 성희의 아버지이자 전직 형사 문기동과 민서의 불륜 대상 방수연 교수다. 이들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좀더 복잡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사실 중반 정도에서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도 아니었으면 했는데 맞았다. 이것은 정확한 추리나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관과 구성 때문에 맞춘 것이다. 좀더 꼼꼼하게 읽었다면 작가가 중간중간 깔아놓은 단서와 이상한 어긋남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읽을 여유가 사실 없다. 그래서 모두 읽고 범인을 확인한 후 그 단서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아쉬운 부분이자 나의 한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은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느꼈을 법한 사건이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진구가 이 모든 사건을 파헤치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용의자에서 벗어나야만 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압박하는 형사와 처한 상황이 만든 압박감은 발로 뛰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증거의 나열들이 민서의 정직함을 보여줄 때 약간의 어색함과 이상함이 느껴진다. 이 느낌이 반전에 의해 확인될 때 놀란다. 새로운 추악한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진구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추리소설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멋진 캐릭터다. 진구가 법대를 다니다 중퇴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작가의 이력과 엮이면서 혹시 작가의 어둠 속 분신 중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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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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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명 더스트랜드 3부작 중 1권이다. 3부작 중 1권이라는 말에서 2권과 3권이 나온 것 같지만 아직 2부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거장 리들리 스콧이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샀다. 그것도 출간도 되기 전에 말이다. 어떤 소설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겼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두 작품, 코맥 매카시의 <로드> 혹은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에 비견한다는 엄청난 평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평가는 나의 손이 이 책으로 가는 것을 더욱 재촉했다.

 

파괴자의 시대가 지난 후 미래를 다룬 소설이다. 파괴자의 시대는 그냥 추측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핵전쟁이 아닐까 하고. 문명이 사라지고 문자도 없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사용하는 무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활과 칼이다.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말이 가장 기본이다. 주인공 사바를 콜로세움으로 끌고 들어간 사기꾼 부부의 이동선과 타이어 등이 시간적 배경이 미래임을 알려준다. 지금까지는 사실 이 시간적 배경이 큰 매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바는 쌍둥이 오빠 루와 여동생 에미와 아빠와 함께 고립된 황야에서 살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루는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탄 검은 망토의 남자들이 온다. 그들이 온 이유는 단 하나 동짓날 태어난 루를 잡아가기 위해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판타지 소설로 생각했다. 루의 탄생에 엄청난 비밀이 있고, 실제 비밀의 주인공은 사바였다는 식의 판타지 말이다. 살짝은 마법도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기대를 저버렸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모험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루와 사바의 관계는 쌍둥이라는 것 외의 것이 존재한다. 루가 태양이라면 사바가 달이라는 식으로 둘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유대감은 형제라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사바가 사막을 건너고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루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족을 구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집념과 열정과 투기는 그것을 초월한 듯하다. 너무나도 강력한 욕망이 있기에 그녀는 그 열기에 몸을 맡기면 무적의 전사가 된다. 이 때문에 콜로세움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게 된다.

 

미래를 다룬 수많은 소설처럼 이 소설도 황량하고 건조하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영원히 유지시키기 위해 사술에 빠진다. 루가 납치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사바가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헤쳐나가는가가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 잭과의 운명적인 로맨스가 펼쳐지고 사바의 여전사 이미지가 확고하게 굳어진다. 여자라는 한계를 어느 정도 설정해뒀지만 시뻘건 열기가 몸을 지배하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사로 바뀐다. 이 열기는 현재 조절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나 필요할 때 드러난다. 이 순간 그녀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 편의 미래 서부극이라고 할 수 있다. 황량한 풍경은 그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든다. 사용하는 무기가 총이 아니라 활이라는 점에서 조금 엇나가지만 어릴 때 본 서부극의 이미지가 살짝 겹쳐보인다. 복잡한 구성이나 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 탓일까? 아니다. 이 소설이 지닌 이미지가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사바와 잭을 잘 캐스팅하면 매력적인 캐릭터에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영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진다. 올해 후반에 2권이 미국에서 출간된다니 아미 내년 초에나 번역본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대된다. 그리고 이 책 홍보에 사용된 두 권, <로드>와 <헝거 게임>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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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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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김중혁의 작품집이다. 집에 찾아보면 소설 한 권 정도는 어딘가에 있는 작가다. 다른 수많은 작가들처럼 그의 작품도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 기회가 되었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기발하다, 예리하다, 독특하다’ 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유리의 도시>는 몇 쪽을 읽기 전 어딘가에서 먼저 읽은 기억이 있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실려 있었다. 그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박민규가 연상되었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작품집에 관심이 간다는 글도 있는데 이번에 그것이 실현되었다.

 

제목부터 난감한 <C1+y=:[8]:>는 마지막에 작가의 해설을 보고 겨우 이해했다. 앞에 있는 수식이 city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글이 나온다. 스케이트보드가 나온다. 가공의 논문까지 나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시의 골목을 달리면서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과 그것이 정글 이미지로 다가온 것이다. 정글의 두려움은 느낀 화자가 도시의 모습에서 미로 같은 공간을 꿈꾸는 모습은 안전이 기본으로 깔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놀이가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냇가로 나와>는 한 전설적인 학생 이야기다. 하마까. 별명이 참 특이하다. 이 학생에 대한 전설로 시작해서 실제 이야기로 넘어가고 현재가 나오는 구성이다. 그런데 이 진행이 딱 구분되어 나오지 않는다. 갑자기 변한다. 소위 말해 말빨 좋은 친구의 이야기에서 사실로, 그리고 추억 속 이야기와 변한 고향의 풍경으로 빠르게 변한다. 이 과정에서 풀어내는 이야기 방식은 성석제의 입담을 떠올려주었다. 전개와 주변 환경의 변화가 묘한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바질>은 공포소설로도 읽힌다. ‘2009 세계단추박람회’가 열린 암스테르담에서 비싸게 산 바질 씨앗이 만들어내는 공포다. 그런데 구청직원이 이 공포를 반감시킨다. 가상의 현실에 지극히 현실적인 공무원을 등장시켜 균형을 이루고 있다.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는 sf영화 <인 타임>을 연상시킨다. 물론 시간을 사고 파는 영화와 다른 전개고 이야기다. 상상력이 이렇게 발휘될 때 어떤 sf가 될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블랙홀체험관은 한 번 가보고 싶다.

 

표제작 <1F/B1>은 재밌다. 주 무대는 고평시 네오타운이다. 이름에서 왠지 고양시가 연상되는 것은 나뿐일까? 네오타운의 풍경은 이제는 새롭게 개발된 도시의 밀집 빌딩 지역이 연상된다.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고 이 타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빌딩 관리자들이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1F와 B1 사이에 있는 /(슬러쉬)다. 작가는 이 표시를 끼어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왠지 좀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과장된 이야기 속에 담긴 재개발업자와 SM(SLASH MANAGER)의 대결은 실제는 큰 일이 아니지만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크랴샤>는 마술 이야기다. 재생 이야기다. 마술 속에서는 찢어진 것, 사라진 것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찢어진 것은 찢어진 것이고 부서진 것은 부서진 것이다. 힘겹게 중년을 보내고 있는 아마추어 마술사를 통해 보여주는 마술 이야기는 현실과 연결될 때 현실의 무거움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크랴샤의 영어 단어가 뭔지 밝혀질 때 이 단편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원 플러스 원 고난을 말할 때 재치와 힘겨운 현실이 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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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 실패하다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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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유령 비행기> 작가의 작품이다. 그때는 단편집이었는데 이번에는 장편이다. 그 당시 쓴 서평을 찾아보니 흥미롭게 읽은 단편들이 꽤 많았던 반면에 문체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년탐정 빌리가 풀어내는 미스터리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전체적인 문장의 리듬 등은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단문이 아니고 문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덕분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평소보다 더 걸렸다.

 

H.L.멘켄의 “천재성은 유년기를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인용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목도 소년탐정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빌리가 열 살 생일 선물로 ‘트루라이프 주니어용 탐정도구 세트’를 받으면서부터다. 이 세트를 통해 빌리 아고의 천재성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생 캐롤라인과 친구 펜튼이 탐정단을 꾸리고 어른들이 풀지 못하던 미스터리를 푼다. 당연히 이 소년탐정단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들의 실적이 오를수록 더 심해진다. 대단한 업적을 쌓은 후 빌리는 범죄학을 연구하러 대학에 들어가고 동생과 친구는 평범하게 성장한다. 그러다 캐롤라인이 자살한다. 이 자살은 빌리를 흔들고 켄튼을 원망하고 그 자신마저 자살하게 만들 정도다.

 

이 자살 소동으로 그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병원에서 나온다. 우울증 약을 달고 산다. 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그이기에 더 그렇다. 그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놀랍게도 그의 숙적들이 살고 있다. 그가 나이든 만큼 늙은 적수지만. 그리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나온다. 그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건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이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 중 하나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범죄단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 범죄단을 깨부수는 빌리를 생각했다. 약간 비정상적인 삶을 살지만 그의 이력을 생각할 때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정작 빌리가 알고 싶어 하면서도 두려워 풀지 않았던 캐롤라인의 자살 원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것은 빌리가 실패한 탐정 활동과도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소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숨고 피하는 것이다. 심리치료사가 캐롤라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빌리가 보여주는 행동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을 시작한 것이 2001년 9월 11일 사건이 있고 몇 달 후였다고 한다. 이 테러 사건의 본질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풀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 벌어지는 악당들의 행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심리적 분석도 전혀 없다. 그냥 일어난다. 고담으로 불리는 뉴욕에서 사라지는 빌딩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을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면서 일상에 대한 풍경을 보여준다. 놀랍고 기이한 장면들인데 이를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무덤덤하다. 어쩌면 프로그램화된 기계같다고 해야 할까.

 

희망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소년에서 성인으로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고 모험도 미스터리도 비밀도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빌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미스터리를 모두 푼 후 탐정을 그만두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미스터리를 푼 후 그의 상상력이 어쩌면 고갈되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아직 소년탐정으로 불릴 때 그와 함께 활약한 소년탐정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삶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년기를 연장시키지 못한 빌리에게서 천재성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빌리 남매와 같은 에피와 거스 멤포드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자연스레 비교된다.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놓는다. 이 남매가 사건 하나를 해결하는 장면은 열정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들의 활약을 보면 빌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나의 상상력을 떠올려본다. 너무나도 메말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있다. 시작하는 장이 1장이 아니라 31장이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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