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
권오단 지음 / 나남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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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어떤 소설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살짝 뒤표지를 보면 홍길동을 다룬 소설임을 알게 된다. 홍길동. 참으로 낯익은 이름이다. 아마 한국 소설사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명하다는 것은 많이 다루어졌다는 것이고,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전작 <전우치전>을 생각할 때 하나의 연작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전작에서 전우치에게 한국 무협의 외피를 씌운 상태임을 생각할 때 홍길동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미리 짐작했다. 이런 짐작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무협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고전 소설 속으로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과 조금 다른 시작이다. 천하의 홍길동이 자살을 시도한다. 이 시도는 후일 자신의 스승이 되는 혜손에 의해 좌절된다. 이 인연은 평범한 홍길동이 천하의 대적(大敵)으로 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大賊과 大敵을 구분한다. 이것은 그가 도적이 아님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의 행적이 지닌 힘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당연히 그의 수련과 그 시대상에 대한 설명들이다. 그것은 왜 홍길동 같은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기도 하다.

 

좋은 스승과 뛰어난 자질과 노력이 합쳐져서 그는 빠르게 성장한다. 그의 스승 혜손이 지닌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능력만 있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시대와 만나야만 그 능력이 힘을 제대로 발휘한다. 바로 홍길동처럼. 작가가 시대를 연산군으로 정한 것은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다. 폭군과 폭정과 빈민이 넘쳐나는 세상에 활빈도를 자칭하는 화적은 의적으로 불리게 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뒤흔드는 대적이 되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고증은 배경으로 깔린다. 비록 세부적인 부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더 힘을 발휘하지만.

 

수련을 하던 홍길동이 어떻게 도적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이후 수많은 부하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폭정과 수탈과 압정 속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인 것이다. 여기에 전형적인 전개가 펼쳐지는 것은 어쩌면 이 소설이 홍길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협의 흔적을 느꼈다. 좀더 색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어쩌면 역시 홍길동이기에 이 방법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그의 활약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홍길동의 의적 활동이다. 그의 활약은 뛰어난 무술에 있지 않고 탁월한 지략에 있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 활약이 너무 도식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아마 익숙한 장면이라 그런 모양이다. 또 같은 작전을 세 번 이상 이어가지 않는 것과 그 지역과 세력과 성격 등을 고려한 세밀한 작전은 진부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결국 그의 탁월한 업적과 실력은 팔도의 화적들이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명실상부한 대적이다. 하지만 이런 위치와 세력과 민중의 신망 때문에 헛된 마음을 품는 사람이 생긴다. 이것은 또 다른 역사의 사실과 이어진다. 바로 반정이다.

 

읽으면서 잘 조사된 듯한 자료들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허구의 기본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홍길동이 거의 역사적 실존인물인 것처럼 다가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이 설정은 더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세상의 악인을 모두 죽인다 해도 우리같이 힘없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일 올까? 하고 물을 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렸다. 작가 권오단이 전우치에 이어 홍길동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설을 내었는데 다음은 누굴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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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페우스의 영역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수현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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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이다. 소설 속에서는 잠을 관장하는 신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콜드 슬립이란 과학 기술에 의해 인공 동면에 빠진 소년 사사키 아쓰시를 가리킨다. 이런 인공 동면은 이미 수없이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졌었다. 하지만 이 소설처럼 법률적 인간적으로 파고 든 작품은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소설로 다룬 미래의 인공 동면에 대한 과학적 법률적 검토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동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두 명이다. 지나가듯이 등장하거나 자고 있는 아쓰시를 제외하면 분량 면에서 특히 그렇다. 물론 지나가듯이 등장한 인물이 2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1부의 중심인물은 미래 의학 탐구 센터 지하 1층에서 근무하는 료코다. 그녀가 하는 일은 인공 동면에 빠진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5년 동안 콜드 슬립에 빠진 모르페우스 아쓰시를 계속해서 지켜본다. 이 과정에 그녀의 과거 일부가 흘러나오고 인공 동면에 관한 법규 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한다.

 

1부를 읽다 보면 가이도 다케루의 이전 소설과 다른 전개와 진행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과 정체된 듯한 시간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지만 인공 동면법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고찰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게임이론의 제왕 소네자키 교수와의 대결은 분명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약하다. 오히려 사신 이미지로 등장한 니시노가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실제 니시노는 뒤로 가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순간까지는 나에게 착각을 심어주기도 했다.

 

인공 동면은 현재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5년간의 완전한 잠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5살에 병에 걸려 9살에 콜드 슬립한 소년에게 료코의 감정이 이입된 것은 지하의 외로운 공간과 과거의 기억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이 소년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진행이 기존 작가의 작품과 완전히 다르다. 문제의식이 더 강하게 부각되면서 오락적인 부분이 많이 퇴색했다. 캐릭터의 힘도 약해졌다. 사실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에서 기대한 것이 대부분 사라졌다.

 

사실 sf소설 등을 읽을 때 인공 동면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시간을 초월했다는 것과 현재 치료 불가능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등을 비롯해서 다양한 것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런 것은 외형적인 것들이다. 실제 진행하게 되면 부딪히게 될 현실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 바로 이 문제를 작가는 다룬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의료계나 관료 조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부분은 작가의 장기다. 그리고 작가는 가장 쉽게 잊고 있던 문제를 말한다. 그것은 5년 뒤 인공 동면에서 깨어났는데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인공 동면이 완치를 보증해주지 못한다. 이런 경우 다시 인공 동면에 빠져야 할까 하는 기초적이 질문을 던진다.

 

2부 각성은 콜드 슬립에서 깨어난 아쓰시를 중심으로 흐른다. 1부보다 활동적이다. 잠과 각성을 대비시킨 의도적인 장치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바뀐 환경에서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준다. 너무나도 탁월한 학습 능력도 같이. 하지만 소년의 가족은 산산조각 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어 그를 돌봐준다. 병에 걸린 것과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이것은 앞에서 요코가 다룬 의문 등과 함께 엮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약간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가볍게 빠르게 읽을 것을 기대했다. 이 기대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깊은 사색 거리가 자리 잡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콜드 슬립에 빠진 현재의 소년뿐만 아니라 깨어난 소년의 삶이란 거대한 현실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이 부분도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 역시 생각보다 쉽게 해결된다. 비리로부터의 해결이다. 이 장면은 현실의 다른 이면을 보여주는 장치지만 그래도 평범한 결말 진행은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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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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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모던 팥쥐전>이 나왔을 때 전래 동화를 조선희가 각색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일도 많았고 다른 책 읽는다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 재수 좋게 손에 들어온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족과 아쉬움 사이다. 먼저 만족한 것은 전래 동화를 이렇게 변주하고 결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이고, 아쉬운 것은 원작의 느낌이 왠지 모르게 흐릿하게 느껴진 것이다. 어쩌면 강한 장점일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아랑전설을 현대 소설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이미 있다. 김영하의 <아랑은 왜>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소설은 아랑전설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장편 속에 녹여낸 아랑전설이 기존의 것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기억 속에 이 소설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새롭게 해석된 전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희의 전래 동화 새롭게 해석하기 시리즈인 이번 작품은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상징과 숨겨진 진실 등은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로 풀려나올 것이다.

 

책 속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있다. 중심이 되는 전래 동화나 전설은 아랑전설, 금도끼 은도끼, 심청전, 토끼전, 할미꽃 이야기, 북두칠성 등이다. 솔직히 이 여섯 이야기 중에서 기억 속에서 많이 사라진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와 전래 동화가 약간 어긋나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여기에 원작을 새롭게 해석해서 현대 속에 풀어낸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엮일 때 더욱더 나의 한계를 느꼈다. 아마 이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무서움이 더 강하게 다가온 경우도 적지 않다.

 

<영혼을 보는 형사 : 아랑 전설>은 제목만 보고 아랑의 원혼을 풀어줄 형사 이야기로 착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보다 뛰어나다. 영혼을 보는 형사는 영화 제목이고, 실제 이야기는 이 형사 역을 하는 배우다. 저주와 전설이 만나는 곳에서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샘솟는다. 그리고 요즘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아랑 사또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스미스의 바다를 헤맨 남자 : 금도끼 은도끼>는 읽고 난 후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전래 동화의 아이템이 소재로 이용되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놓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버들고리에 담긴 소원 : 심청전>은 섬뜩하다. 호러물에 가장 맞는 단편이다. 심청이 바랐던 소원이 소녀들의 것으로 변하고 현실을 넘어설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 오면서 공포가 극대화되는데 조금은 도식적인 느낌이 든다. <오소리 공주와의 하룻밤 : 토끼전>도 소재만 빌린 소설이다. 아버지의 간을 낫게 하려던 효자의 실종을 둘러싼 이야기는 과거 속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그 사이에 담긴 진실한 효심은 안타깝다.

 

<오래된 전화 : 할미꽃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다. 아마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텐데 낯설다. 하지만 원작을 새롭게 현대화한 이 소설은 우리를 잘 드러낸다. 마음과 몸이 따로 놀고, 감정과 이성이 충돌하고, 생과 사가 교차한다. 반복된 장면들은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29년 후에 만나요 : 북두칠성>은 sf적이다. 지구가 조각났다는 것과 단절된 정보는 역사와 전설은 혼란스럽게 만든다. 원작을 가볍게 넣어서 새롭게 풀어낸 삶 이야기는 반전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왠지 작가와 완전히 호흡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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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과 교수대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2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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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파이바닥의 달콤함>이 미스터리 팬들에게 엄청난 호평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 이 말은 내가 읽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 나이로 겨우 열두 살 정도인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이 어린 소녀가 살인사건을 제대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평을 읽었을 때 그 어디에도 나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현이 더 많았다.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먼저 생겼지만 언제나처럼 읽고 있던, 읽어야 하는 다른 책들에게 밀려 기억 속에만 남아있었다. 그러다 1권보다 먼저 2권이 먼저 손에 들어왔다.

 

조금 황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제 시작인데 플라비아의 장례식이 펼쳐진다. 뭐지? 하는 의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것은 한 소녀의 상상이다. 그녀가 죽음을 상상한 묘지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15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키의 그녀는 니알라다. 그녀는 BBC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마법왕국’의 <말끄미 다람쥐>라는 인형극의 인형술사 루퍼트 포손의 조수다. 그녀가 이 사실을 말하지만 불행하게도 플라비아의 집에는 TV가 없다. 1950년도를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묘지에 있는 것은 루퍼트의 차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이때 리처드슨 목사가 나타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교회에서 루퍼트의 꼭두각시 인형극을 공연하자는 것이다. 차 수리할 시간도 벌고 그 사이에 돈도 벌자는 의도다. 서로 합의하고 교회에서 두 차례 공연을 펼치기로 한다. 공연극은 <잭과 콩나물>이다. 이 공연을 통해 머리가 심하게 큰 땅딸막한 남자 루퍼트의 능력과 매력이 발산된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쫓게 만든 그 매력 말이다.

 

괴팍한 소녀 플라비아가 볼 때도 인형극은 멋지고 재미있다. 마지막에 잭을 쫓아 내려온 거인 갈리간투스의 추락은 놀라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난 설정은 잭의 얼굴이 목을 매어 자살한 로빈 잉글비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첫 공연의 성공은 두 번째 공연도 마찬가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리간투스 대신 루퍼트가 추락한다. 감전사다. 공연을 보고 있던 형사 등이 현장을 통제한다. 소녀 탐정 플라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전작에서 형사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을 생각하며 사건에 개입하려고 하지만 어른들에게 그녀는 아직 어린애다.

 

플라비아는 뛰어난 지능을 가진 화학광이다. 문학이 그녀를 매혹시킨다면 아마 그 속에 독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또한 그녀의 관심사인데 첫 장면이 그녀의 장례식을 상상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소녀라는 사실을 사건 조사에 잘 활용한다. 어른들이 아이라는 사실에 너무 쉽게 감정을 내놓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만으로 누구나 쉽게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을 과거의 사건과 연결시키고, 관찰력 있는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 특별한 능력과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시 놀라운 것은 그녀의 나이다. 뭐 중간중간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소녀지만.

 

단순히 괴팍하고 영리한 플라비아란 캐릭터에만 기댄 작품은 아니다. 다른 재미난 캐릭터도 물론 많다. 하지만 단서를 하나씩 깔아놓고 그녀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들은 이 소설의 구성이 잘 짜인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란 배경은 이 소녀의 재능이 꽃피우는데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로 간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풀겠지만. 또 시대적 배경도 상당히 매력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겨우 5년이 지났다는 것을 통해 그 참혹한 전쟁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고 이것이 하나의 장치자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집사 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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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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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바 가즈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한 집안 여성 3대를 다룬 <아카쿠치바 전설>이다. 개인적으로 그해 나온 미스터리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사쿠라바 가즈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몇 작품을 읽어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가 많은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당연히 전작 작가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몇 작품 읽지 못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길을 끌게 된 것은 작가 이름과 함께 ‘대출 광고’라는 단어 때문이다.

 

지금도 케이블에는 대출 광고가 넘쳐난다. 몇 년 전 유명 탤런트가 대부업 광고에 나왔다가 혼 줄이 난 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저축은행이나 비슷한 금융권을 통한 광고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리로 착취하는데 그 빚의 고리를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대부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2-3년 안에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출하게 되지만 실제 원금은 그대로인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한때 카드 돌리기 신공을 발휘해서 카드 값을 막았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대부업을 통해 대출한 사람들은 대출을 통해 돌려막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원금이 사라질 수가 없다. 한 번에 몫돈이 생기기 전에는.

 

작가는 대출광고에 넘어가 다중채무자가 된 두 사람을 중심에 내놓는다. 사바쿠와 사토루다. 다루고 있는 시간은 2009년 팔월부터 2020년 유월까진데 실제 중심이 되는 시간은 2009년 십이월까지다. 불과 사개월 정도다. 하지만 이 시간은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각 장의 제목으로 나오는 단어도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데 읽다보면 크게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뒤로 가면서 하나의 큰 틀이 되어 이야기에 맞물려 돌아간다. 단어와 인물이 연결되면 더 분명해진다.

 

사실 읽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적지 않게 사용된 쉼표가 몰입을 방해했다. 단순한 호흡만 흐트려 놓은 것이 아니라 앞뒤 문장의 의미를 되짚게 만들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장치가 너무 쉽게 읽으면서 이 상황들을 지나가지 않게 하면서 좀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장치는 외국어 차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모두 ‘사’로 시작하는 이름으로 각 장을 꾸민 것과 묘하게 연결된다. 그냥 빠르게 읽다 보면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고 지나가는데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면 금방 이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시 목차로 돌아온다. 과연 작가의 의도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프롤로그 두 번째 장은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제목처럼 토막난다. 왜 살인을 했을까 의문을 품자마자 이야기는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만났고 어떤 만만을 이어왔는지 각자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각 화자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피해자가 되는 사바쿠도 살인자가 되는 사토루도, 사토루의 대학 동기인 사토코나 헌책방 주인인 사토도. 각 화자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을 말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의문이 생기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시대가 만들어낸 환상이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다.

 

사바쿠도 사토루도 다중채무자다. 사바쿠는 프리터로 겨우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는 반면에 사토루는 대학을 다니면서 진 빚으로 고생하고 있다. 빚의 성격은 다르지만 둘은 이 때문에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사토루의 경우는 사실 자신의 부유한 아내에게 말하면 쉽게 갚을 수 있는 금액인데 왠지 모르게 그는 이 빚을 청산하지 않고 있다. 대학교수와 번역가라는 직함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실 그가 사바쿠를 죽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인데 그녀의 빚도 그와 같은 3백만 정도다. 이 금액은 사토루 집 애완견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면서 들어간 금액과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이 돈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부유한 사람에게는 자기 위안을 위한 조그만 지출일 뿐이다. 양극화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이다.

 

이 둘 외에도 등장하는 화자들은 돈이나 다른 것에 대한 빚이 있다. 삶이 지닌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는데 삶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얼마 전 한국영화로도 제작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신용카드로 인한 한 인간의 파멸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대출로 인한 비극이다. 실제 주변에서 ‘아차’하는 순간 이런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기에 더 공감이 간다. 일본과의 경제적 차이와 두 나라의 시간 차이를 생각할 때 지금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다.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생각할 때 결코 멀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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