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참 오랜만에 이제하의 소설을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영화나 소설도 모두 봤다는 기억만 있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만은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엄청난 걸작이라서? 아니다. 특이한 제목이라서? 역시 아니다. 그럼 왜? 사실 이유를 모른다. 이름과 제목은 학창시절 소크라테스와 ‘너 자신을 알라’를 같이 외우고 기억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란 부제가 보인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집이란 설명글도. 특히 하성란의 허를 찔리고 말았다는 표현은 첫 작품이자 표제작 <코>를 읽을 때 그대로 느꼈다. 이 느낌이 좋아 다음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솔직히 말해 첫 작품과 같은 재미를 누린 이야기는 많지 않다. 콩트집에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하나의 이야기 분량이 달라서 호흡을 놓친 것도 적지 않다. 뭔 말이냐면 여기서 반전이나 이야기가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지고 읽는데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흐름과 재미를 놓치는 것 말이다. 거기에 좋지 못한 몸 상태에서 읽다보니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분량과 예상이 다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첫 작품 같은 소설들이 나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재미를 준 경우도 많다. 황당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곰을 길들여 생활한다거나 기차에서 만난 마술사의 엄청난 마술까지. 어떤 이야기는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충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도 있다. 문장이 나의 호흡과 어긋나면서 헤맨 이야기도 있다.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개인 역량 부족으로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서른아홉 편이 분량이 제각각이듯이 다루는 소재나 설정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다양함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끔 이런 종류의 소설집을 읽을 때면 겪게 되는 내 개인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내공 부족이 만든 장애다. 만약 이 장애를 넘어가게 되면 다양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때는 아주 큰 장점이다. 작가의 평가 중 ‘경계 없음의 미악’을 지녔다는 평은 아마도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는데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콩트집으로 불릴 정도의 분량을 넘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의 소설이 몇 편 있다. 개인적으로 이 때문에 호흡이 깨진 것도 적지 않다. 문체가 바뀌고 묘사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그려 넣은 작가의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작가의 이력을 잘 모르고 봤어도 그랬었겠지만 이력을 읽고 난 후는 더 자세하게 쳐다본다. 어떤 것은 장난같고 어떤 것은 그 단순한 선이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아마도 각각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일독을 한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서 가끔 이 책을 들쳐보면서 짧은 이야기를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행동이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짧은 글일수록 더 강하게 이런 느낌이 다가온다. 일상의 뒤틀림과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조금 다른 감성을 발견할 때 아! 하고 감탄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내공을 쌓은 뒤 읽으면 더 풍성한 재미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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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이윤정 옮김 / 포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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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본다. 번역된 책이 단 한 권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소설집은 연작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면서 동시에 이어진다. sf소설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다.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아 제5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sf팬클럽회의가 주관하는 그해 최고의 sf에 주어지는 세이운상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다. 언제나처럼 이런 내역은 시선을 끈다. 추천글이나 작품해설은 읽기 전 어떤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 좋지 못한 나에게 살짝 독으로 작용했다.

 

아홉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정보를 먼저 내놓는다. 단편에서 이 정보를 제대로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 신화를 이용한 오스트레일리아 크기의 거대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는 기존 sf소설이나 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과연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거대한 박물관 행성이 엄청난 동식물, 미술품, 음악, 무대예술을 모두 모아 두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이런 배경이 작가의 상상력을 증대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작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연작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 다카히로를 등장시킨다. 그는 뇌수술을 받은 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학예원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각 분야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곤란한 일을 의뢰받는다. 그것은 한 음악가가 그린 음악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도 졸작인 그림이 독설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에게 천상의 음악이 들린다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병원의 환자들이 열광한다. 왜 일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또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은 노부부의 황당한 의뢰를 다룬 <이 아이는 누구?>다. 이 아이는 바로 인형이다. 인형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다. 이름을 찾는 과정과 왜 이름을 찾고자 하는지 알려줄 때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은 가슴이 아리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범인이 누군지 금방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군지가 아니다. 왜?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연주자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수많은 기모노와 문화는 사실 너무 낯설어 몰입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춤으로 신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 <꿈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한 무용가의 삶을 통해 본질이 왜곡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포옹>은 이 소설에서 문제유발자 매튜가 처음 등장한다. 사실 매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뒤편부터고 학예원들이 뇌수술로 심어놓은 기계의 프로그램 버전을 처음으로 다룬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작품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장애가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매튜에게서 더 심하게 일어나지만.

 

표제작 <영원의 숲>은 매튜가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표절과 사랑을 다루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든다면 가슴 뭉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리사의 거짓말>은 인어를 찾는 소년과 다리를 잃은 조형가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엔딩에 놀란다. 그리고 인어전설을 작품에도 인용한 것은 재미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는 황금비율과 짝사랑을 다룬다. 외계에서 날아온 씨앗과 오각형 채색조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마지막 작품 <러브 송>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왔던 97건반의 흑천사와 다카히로의 아내 미와코가 중심에 선다. 여기에 외계 씨앗에서 핀 연꽃이 연결된다. 일에 치인 사람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볍게 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용어와 설정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무시하고 읽어야 하는데 주석에 눈길이 자꾸 간다. 덕분에 흐름이 깨어졌다. 여기에 좋지 못한 몸상태까지. 하지만 예술을 소재로 sf적 배경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선하다. 읽으면서 왜 다카히로가 상위버전으로 바꾸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기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한계와 순수함이 재미있다. 이것을 세대차이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그 재미를 누리지는 흥미로운 작품집이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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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6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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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 권에서 사실 기대한 것은 두 귀신 키쿠치와 소이치로의 싸움이었다. 미리 이 물음에 답을 말하면 없었다. 대신 다이자부로와 키쿠치의 싸움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싸움이 이번 이야기의 중심이다. 개성 있는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주던 다이자부로. 무사로써 전장을 누비고 싶지만 현실의 평온함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그. 긴 창을 들고 무술을 연마하던 그. 이전까지는 그가 얼마나 작고 못생기고 문제아였던지 몰랐다. 그리고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했고 왜 그 옆에 예쁘게 생긴 겐지가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동시에 그가 누린 가장 행복한 순간도.

 

앞부분은 겐지가 키쿠치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그 누구도 단서를 주지 않는데 국수를 파는 노점상이 빨간눈에 대해 말해준다. 이 빨간눈도 정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주인 다이자부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수 있는 인물이다. 결국 그를 통해 다이자부로는 키쿠치를 만난다. 에도를 떠돌며 자신을 잡아가두는데 도움을 준 인물들을 하나씩 베고 다니던 그를. 그리고 황당한 일을 의뢰한다. 바로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이다. 돈까지 걸리니 살인귀 키쿠치가 움직인다. 대결이 벌어지고 예상한 결과가 나온다. 그렇지만 그 장면과 그 결과까지 이르는 과정은 예전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알게 만든다.

 

두 귀신이 다음 권에서 벌어질 것이란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그림이 눈에 더 들어왔다. 가늘고 개성 강한 그림체야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피카소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앞권에서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강하게 다가왔다. 아마 이야기를 편안하게 보면서 혹은 오랜만에 이 시리즈를 읽게 되면서 색다른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변함없이 화면 구석구석과 지나가는 듯한 그림을 배치해서 시선을 끌고 웃게 만든다. 원작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을 끊고 잇는 장면 분할이 세심한 읽기를 요구하고 그 간격에 여운을 느낀다. 다시 자신의 칼을 든 소이치로의 모습은 긴장과 기대감을 불러오고 책 끝에 나온 ‘기다리오. 기다리오’란 두 단어가 나의 솔직함 감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 권씩 읽는 즐거움도 적지 않지만 역시 단숨에 읽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갑갑함에 아쉬움이 더 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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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트로폴리스
존 스칼지 외 지음, 홍인수 옮김 / 책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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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존 스칼지 때문이다. 이 선집에 나오는 작가 중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이자 그가 최근에 본 sf소설 중 최고의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장 뜨거운 작가 4인의 상상력이 탄생시켰다는 책 소개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뜨거운 작가라고 하지만 신작 sf소설이 잘 번역되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뭐 원서능력자고 sf소설 마니아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존 스칼지다. 편집자 서문에서 그는 이 선집에 대한 놀라운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제를 던져주고 각자 집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세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세계를 가지고 각자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세계를 건설할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세계와 개념을 떠올려주었다. 비록 정확한 시대 구분이 없어 우선순위에 대한 확신이 없고 이 세계가 그려내는 중요한 몇 가지를 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각 이야기 앞에 편집자의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첫 작품은 제이 레이크의 <밤의 숲속에서>다. 사실 이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 캐스케디아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충분한 이미지를 그려내지 못했다. 소설은 이 도시와 이 도시를 방문한 한 남자 타이거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이다. 도시 이미지를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경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더 빠졌다. 그리고 왠지 생략된 듯한 이야기는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 아닌 다음 이야기를 위한 안내서처럼 다가왔다. 이것이 다른 작품에 충분한 안내서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작품은 존 스칼지의 <꿀꿀대는 소리 말고는 버릴 것이 없다>다. 이 소설은 화자의 결혼식 사진에 돼지가 왜 있는지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 보여주는 신세인트루이스는 나도 모르게 기존에 나온 sf영화를 재빠르게 뇌리 속에서 훑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영화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프닝과 사건은 결코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 그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비어스 버켈의 <확률 도시>는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조금 어둡게 만들어지겠지만 기존 장르소설이 갖춘 장치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바의 기도인 주인공 스트래턴이 해병대 출신이라거나 디트로이트를 관리하는 사설경비단체 에지워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득의 대부분을 교통비로 지출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나 이 세계를 바꾸려는 집단의 노력 등이 그것이다. 시위대를 이끌고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에지워터에 대항하는 스트래턴의 활약은 약간 긴장감이 부족하지만 재미있다.

 

엘리자베스 베어의 <하늘의 붉은 것은 우리의 피>는 마피아의 손에서 벗어난 한 여성의 고군분투기다. 주인공 캐디는 어느 날 사람들의 팔에 걸려 있는 인식표를 발견한다.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일상은 이런 호기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 보호시설에 자신의 양딸 피루자 맡겨두고 가끔 찾아간다. 그런데 한 남자 호머가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낯선 자의 말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이용한 탈출 경로다. 그리고 이들의 삶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약간 평온한 듯한 분위기 속에 사건이 발생한다.

 

마지막 작품 칼 슈뢰더의 <머나먼 실레니아에서>는 가상 세계를 다룬다. 이 세계가 낯설다. 존 스칼지를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 철학적 사유로 유명한 작가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가 그려내는 세계가 어렵다. 현실과 가상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유능한 방사능 사냥꾼 겐나니의 활약이 가상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보니 단편으로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가상 세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서 다루는 도시와 대상과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일상 생활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전복시킨다. 지적 재산권 대신 오픈소스를,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극복을, 자본의 변함없이 지속되는 욕심에 대한 반발을, 도시 환경 변화를 위한 조금은 과격한 프로젝트를, 실용적 공동체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런 전복은 이 미래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데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제목처럼 저 너머의 도시는 이 작가들의 펜 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고 현재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그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의 얕은 지식이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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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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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첫 작품 <경마장 가는 길>이 생각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로도 보았지만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잘 읽혔고 그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한 문장과 구성 때문에 신선했다. 아마 잘 읽힌 것 때문에 그의 다른 소설도 읽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한동안 한국소설을 멀리하던 그때 장정일의 <독서일기> 속에서 <진술>에 대한 극찬을 보았다. 그 당시 <독서일기> 속 소설들을 사고 읽고 하던 시기(대부분은 읽지도 사지도 못했지만)였는데 많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을 읽고 이전까지 몰랐던 하일지를 발견했다. 그 후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경마장 가는 길>을 제치고 최고의 소설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을 안고 읽었다. 이전처럼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처음 손님이 하원에 나타났을 때를 묘사한다. 간결하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본 허도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허도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면서 고욤나무 밑 지렁이를 캐서 먹는 인물이다. 그가 지렁이를 먹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가족이 없느냐 하면 아니다. 허표와 허순이라는 형과 누나가 있다. 단지 그들이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손님과 허도의 만남은 소설의 시작이란 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손님 슈가 하원에 오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 누나 허순의 무용반 팬이기 때문이다. 허순은 학교에서 춤을 가르치는데 서울 무용대회에서 손님을 만났다. 그 당시 손님은 허순과 무용반에게 크게 한 턱 쏘았는데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가 허도에게 허순의 집을 묻고, 허도는 그를 누나의 집으로 안내한다. 이때부터 허도는 손님과 동행하게 되고 손님을 둘러싼 가족과 학생들의 한판 낯간지럽고 부끄럽고 추악한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손님이 왜 참고 웃으면서 넘어가는지 의문을 품는다. 물론 이것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이 모든 장면들을 이해하게 된다.

 

허약한 허도가 관찰자로 자신의 감정을 토해낸다면 허순과 다른 사람들은 행동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허순의 동거남 석태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손님을 벗겨 먹을까 생각하고 허순은 어느 순간 노골적으로 그를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손님과 학생들을 데리고 간 개고기집에서 보여준 장면은 시작일 뿐이고 손님이 머물 호텔 앞 호수로 가기 위해 마트를 들렀을 때 보여준 행동은 ‘아! 사람이 이렇게까지 염치없고 비루해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더 심해진 원인 중 하나가 슈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이고 시작은 개고기집에서 돈을 계산한 후부터다.

 

허순과 석태의 끝없는 작은 욕심들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적반하장으로까지 번진다. 그 와중에 손님이 허도를 계속 데리고 가고 싶어한다. 덕분에 허도는 관찰자로 이 염치없는 장면들을 보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만의 환상을 투여한다. 아마 허도를 제외하면 이 소설 속 그 누구도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의 행동과 예측만 있을 뿐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저녁 무렵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다. 그런데 이 시간 속에 담고 있는 인간의 욕망은 다양하다. 거대한 욕망이 아니라 소시민의 자그만 욕심이지만 가슴 속에서 읽는 내내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왜? 그는 이것을 웃으면서 참고 넘어갈까 의문을 품는다.

 

여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지나가듯이 욕망 한 자락을 내비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사실 들러리이기 때문이다. 허순의 염치없는 행동을 보면서 인상을 쓰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누릴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순간을 즐길 뿐이다. 재미난 것은 유일하게 이 상황에 위화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물이 허도란 것이다. 그리고 허도에게만 손님이 한국말을 하는데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그것을 살짝 잊었다. 자연스런 장면의 이동과 상황 전개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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