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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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혈연관계는 분명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여정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왜냐고? 책을 읽으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예만 들어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TV프로그램 <안녕하세요>의 마니아라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쿨하게 말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다음에는 그들도 ‘어떻게 이런 가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와 ‘가족이 아니다’라는 나의 의견에 좀더 귀를 기울일 것이다.
 
펭씨 부부는 극단적인 행위예술가다. 그들이 만들어낸 어떤 장면을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몰래카메라다. 하지만 단지 이런 상황을 보고 기록하는 것에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들과 아이 A와 아이 B 두 아이를 이 행위예술(?)에 참여시키면서 자신들이 예상한 혹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 해프닝은 아주 간단한 것에서 시작하여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이나 인생을 바꾸는 것 같은 것으로까지 발전한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들의 결혼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장에서조차 행위예술은 멈추지 않는다. 정말 대단하다.
 
정상적이지 않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두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마 그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누나 아이 A 애니와 동생 아이 B 버스터가 떠난다. 그녀는 연기를 좋아하고 어느 정도 인정받고 인기 있는 배우다. 하지만 감독과의 충돌로 인해 상의 노출을 하고 이 때문에 하나의 가십거리로 전락한다. 이 전락은 성공한 여배우에서 다시 아이 A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반면에 동생인 버스터는 소설가에 자유기고가다. 소설은 성공하지 못했고 감자총 기사를 쓰기 위해 간 곳에서 감자총에 맞아 얼굴이 박살난다. 돈까지 없다. 마지막 선택으로 집으로 간다. 아이 B가 된다.
 
이 둘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들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 무료 쿠폰을 통해 기대했던 상황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무참하게 실패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자식들에게 위로받는 지경으로 변한다. 이 변화는 소설 구성에도 변화를 준다. 이전까지 두 아이와 가족을 설명하기 위한 펭씨 부부의 작품들이 연도순에서 이야기와의 유기적인 설명으로 바뀐다. 그리고 부모가 실종된다. 그들이 사라진 곳에는 자동차와 피가 남아있다. 지역 경찰이 그들에게 전화했을 때 이 둘이 보인 반응은 사고가 아니라 또 하나의 행위예술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언제 다시 나타나 사람들의 반응을 즐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해진다. 부모를 찾기 위한 남매의 추리가 시작된다.
 
실종으로 인한 과거 추적은 펭씨 가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작품을 해왔고 얼마나 그 예술이 위험한지도 같이 보여준다. 정말 못 말릴 부부다. 예술을 위해서라면 총까지 쏠 정도니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정말 대단한 것은 몇 년을 준비한 대작이다. 과연 이것이 예술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이런 엄마 아빠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사실 불가능하다. 그들이 상처받고 그 집을 떠난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가족들의 협업으로 인한 유대감과 행복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엽기적이란 단어를 사용할 정도의 가족이야기이다 보니 가독성이 좋다. 재미있다. 하지만 이 재미는 예술이란 이름 아래 두 아이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이것은 몰래카메라를 보면서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반사적으로 웃게 되지만 그 때문에 남게 되는 불편함과 비슷하다. 또 이 소설은 두 아이의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부모의 그늘에서 실제 벗어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진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이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얼마나 어렵고 난해하고 기이한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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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잉잉 1
황준호 지음, 수연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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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에 대한 유쾌한 만화다. 시작은 27살 3학년 복학생이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똥을 싸면서부터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엄청난 부끄러움과 놀림과 시선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업을 포기하면 책 속에 나오는 대사처럼 어떻게 취직하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뭐 이런 고민은 나중 문제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건으로 주인공 황준호가 학교에 갈 마음이 없고 이 때문에 똥싼 팬티를 빨다가 괴상한 일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눈물, 콧물, 침, 똥물 등이 어우러지고 간절한 소망이 엮이면서 신들을 소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들 별 능력이 없다. 바로 여기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만화는 곳곳에 패러디가 넘쳐난다. 소환이란 의식을 통해 현세에 나온 신들의 모습부터 패러디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전혀 신 같지 않다. 이름부터 평범하거나 패러디고 자신들을 인간성의 신이라고 부른다. 신의 권능이라 마법을 부려 주인공을 멋지게 도와주기는커녕 민폐만 끼친다. 물론 이 과정에도 곳곳에 패러디는 배치된다. 이런 신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최소한 그들은 친구도 없이 학교를 다니고 바지에 똥 쌀 정도로 무력한 그의 곁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나아간다. 가끔은 혹은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그를 인도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도 많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 그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나의 시선이 다른 사람을 통해 되돌아오면서 이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좋은 친구라도 있다면 고민을 상담하고 무게를 나누겠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조차도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가 개인의 것으로 축소되고 변질된다. 뭐 이 만화가 거기까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이 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과 함께 잉여의 의미도 품고 있다. 주인공의 삶이 실제 이런데 혹시 작가 이름과 같은 것처럼 그의 삶도 이랬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생긴다. 책 속에 아니라고 하지만 한 번 생긴 의심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만화는 엽기와 로맨스가 결합되어 있다. 똥과 인간성의 신들이란 존재가 만들어내는 상황극과 진행은 엽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지연에 대한 마음과 행동은 로맨스의 그것이다. 그녀가 준호에게 보여주는 착한 행동은 오해를 사기 딱 좋고 이 때문에 라이벌도 생긴다. 전형적인 로맨스의 삼각관계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몇몇 반전이나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돌출행동이 뻔한 결말을 살짝 비틀지만 그 기본 흐름은 뻔하다. 그 과정을 어떻게 꾸미고 재미나게 이어가느냐 하는 것인데 이 틈을 채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패러디다. 정확하게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는 것은 몇 없지만 그 장면들을 만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뻔한 대사지만 그 뻔함이 뻔한 설정과 어우러져 이어질 때 재미있었다. 제목처럼 마음먹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더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잉여인간의 활약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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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걸작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최종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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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걸작선이다. 모두 세 편이다. 낯선 이름이다. 두 편은 단편이고, 한 편은 장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장편을 읽을 때 고생했다. 어려운 러시아 이름과 많은 등장인물과 긴 문장이 그렇게 만들었다. 아마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소네치카>에서 받은 느낌이 사라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의 집중력이 흩어져서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들 멋지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좀더 세밀하게 집중하면서 읽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표제작 <소네치카>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소네치카 이야기다. 혁명과 전쟁의 와중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남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그녀의 삶이 바뀌는 순간은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의해서다. 책만으로 살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가족을 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 남편의 재능이 알려지고, 또 다른 인격체가 된 딸이 자란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은 그들로 옮겨간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그녀가 있다. 어떻게 보면 삶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과 딸이 지닌 재능이 꽃피우는데 그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그녀의 재능이 어떻게 사그라들었는지. 이 걸작선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거의 장편인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은 앞에도 말했듯이 쉽게 읽지 못했다. 발레리 부토노프가 등장하면서 집중했다. 그의 특이한 이력과 메데야의 아이들이 엮이고, 그녀들의 삶이 그려지면서 빠져들었다. 단순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열정적인 니카, 어릴 때 기억으로 침착하고 차분한 미샤가 그녀들이다. 한 남자를 두고 공유하는 그들과 이들을 통해서 그 시대 삶의 다른 면을 보는 즐거움은 놀랍고 흥미로웠다. 이것이 다시 메데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사실과 연결될 때 이제 익숙해진 문장의 호흡을 조금은 제대로 따라가면서 그 재미를 즐겼다. 그들의 삶은 며칠 전 읽었던 러시아의 참혹감과 거리를 두고 삶은 어디에서도 이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르쳐준다.

 

힘든 와중에 빠져든 것은 바로 삶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삶을 산 그녀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녀들을 욕할 수도 있지만 그 욕이 남자에게도 다시 돌아온다. 상대가 없이 어떻게 불륜이나 사랑이 이루어지겠는가. 그 남녀들을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현재를 듣다보면 조금씩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게 이어진다고 해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 선 메데야의 삶에 조용히 눈길을 준다. 멋지다, 대단하다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그곳에 있고 그녀를 통해 삶이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그 많은 아이들과 사연은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무르와 안나 표도르브나의 이야기다. 이 둘은 모녀다. 처음에는 부부인가, 부녀 사이인가 고민했다. 이름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목은 푸시킨의 소설과 같다. 내용은 읽지 않아 정확하게 모르지만 주석을 보면 어느 정도 오마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은 모두 90과 60으로 적지 않는 나이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모녀 사이의 벽이 있다. 새벽 4시에 무르가 딸에게 초콜릿 한 잔을 요구할 때 안나가 보여주는 반응과 행동은 그 동안 삶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3대가 모두 여자만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과부 삼대는 아니지만. 모녀 관계가 중심에 놓여 있고 변화의 바람이 부는데 그 결말이 씁쓸하다. 아리다. 삶은 어쩌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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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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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혹은 자주 황당한 표지를 가진 좋은 작품을 만난다. 이번 소설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표지만 보면 질 낮은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에 다가 간다면 대부분 선택하지 않을 책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소설의 소개글이다. 2012 배리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디파트먼트 Q'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란 구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다 읽은 후 띠지를 보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것도 보인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비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표지를 가졌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먼저 이런 아쉬움을 쓴 것은 표지 때문에 이 매력적인 작품을 놓칠 뻔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의 아성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이제 많은 북유럽 소설들에 늘 사용되는 문구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조금 부족해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별로란 것은 아니다. 재밌다. 다만 예상한 것과 좀 다른 설정과 전개로 조금 혼란스러웠고 여자가 보여준 놀라운 생존력과 자존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면서 <올드보이>가 연상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수사관 칼 뫼르크와 시리아 출신 조수 아사드 콤비의 탄생부터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기존의 추리소설과 좀 다르다. 칼 뫼르크는 얼마 전에 있은 살인사건에서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고 다른 한 명은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있다. 그 당시 자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약간 비겁한 행동으로 그 상황을 풀어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서 내부에서도 그는 좋은 동료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 미결사건을 다룰 특별수사반 Q로 발령난다. 이 발령은 그를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 부서로 인한 예산 확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총격 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그에게 이 부서는 딱이었다. 5년 전 사라진 메레테 륑고르 사건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놀려고 온 부서지만 예산이 얼마나 배정되는지 알게 되면서 그는 조수를 요구한다. 이때 온 사람이 시리아 출신 아사드다. 그는 오자마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파일을 제대로 배열한다. 몇 개는 꺼내어 읽어본다. 그러다 선택된 사건이 바로 메레테 륑고르 사건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던 동생를 데리고 독일로 가는 배 위에서 실종된 것이다. 정치계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잊혀졌다. 그 실종이 자발적이지 않다면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소설의 중심에서 칼 뫼르크가 움직인다면 또 다른 축으로 메레테 륑고르가 과거부터 현재로 넘어온다. 이 두 사람과 시간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이 교차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한 그녀의 현재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설정 안에서 경찰질에 의욕을 잃은 칼 뫼르크가 조금씩 자신의 일에 다시 열정을 불태운다. 뭐 알고보면 실제 발로 뛰면서 중요한 단서를 물어오는 것은 아사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되고 단련된 형사의 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실 이 두 콤비가 제대로 된 협력을 하는 것은 거의 뒤에 와서다. 그전에 의욕을 잃은 형사는 대충 사건을 둘러보고, 아사드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해 가볍게만 보인다. 이런 두 사람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뫼르크는 그 당시 사건 기록을 훑어보면서 부족하고 부실한 자료를 발견하고 사건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드러나는 의문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단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단서에 의해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지만.

 

사실 누가 범인인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제목대로 자비를 구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그녀다. 기압 조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데 한 번은 빛으로 가득하고 어떤 기간은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겨우 먹을 음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한 통 둘 만이 그녀와 함께 한다. 그 방 밖에는 그녀에게 음식 등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이때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녀의 시간 속에서 과연 그녀가 살아남을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읽으면서 손에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형사들이라면 이런 실수도 하고 이렇게 범인에 다가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부 알력과 비난에 찬 시선을 생각할 때 더욱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가 느낀 죽음의 공포와 동료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은 책 전체에 깔려 있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그리고 아사드의 존재는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사건과 그의 과거 등으로 인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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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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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참 많이도 참았다!’ 이 문장을 읽고 즉시 떠오른 그분이 있다. 바로 각하다. 이 노골적인 광구 문구를 생각하고 읽은 연작소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풍자와 sf가 결합하면 어떤 식으로 풀려나오는지 알려준다. 배명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격하게 공감한 것이 처음 아닐까 생각한다. 웃음과 아! 상황을 이렇게 비틀어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었다. 물론 몇 편은 나의 부족한 지력으로 그 재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모두 10편이다. 첫 작품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에서 시작해 <chanrge!>로 끝난다. 이 순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바이센테니얼 챈슬러>가 동면 과학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charge!>는 중세 판타지 설정을 통해 진행된다. 미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과거로 역행하는 듯한 구성인데 혹 과한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온 5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살짝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멋대로 상상해본다. <charge!>는 바로 앞의 두 편 <초록연필>과 <내년>과 더불어 총통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예언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초록연필>은 악에 대한 신선한 반전이 펼쳐지고, <내년>은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매번 반복되는 2012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세 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charge!>다.

 

한때 진심으로 각하가 당선되면 다른 나라로 이민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소설 속 천재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의 도움으로 동면을 선택한다. 그런데 각하의 임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런 끔찍한 상황을 풍자와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 바로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다. <새벽의 습격>은 읽으면서 뭐지? 하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전쟁터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전쟁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이 낙하산 부대의 정체가 드러난다. 상상력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풍자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총통의 말에는 요지가 없었다.’(45쪽)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에서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등 뒤에 두는 거구나.’(81쪽)하고 말할 때 이 땅의 군경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강하게 다시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평범한 사실이 상황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발자국>은 실제 하지 않는 것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세력의 존재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이해력이 이 단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은 단편은 <혁명이 끝났다고?>다. 주인공의 감정과 추억이 겹치고 현실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을 때 특히 그랬다. 이제는 486세대가 된 그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위대한 수습>은 좀더 노골적이다. 대운하를 중심에 놓고 있는데 말장난으로 시작한다. 절대권력 앞에 충심을 담은 직언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든다. 파라면 파야지 하는 상황은 군대의 그것과 닮아 있고, 아무런 효용도 효율도 없는 작업은 좀더 노골적으로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냉방노조 진압작전>은 은유와 풍자로 가득하다. 토론을 통해 얼음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설정은 전횡과 획일과 독재로 진행되는 현실의 수많은 일들을 비틀고 있다. 토론이 가치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논쟁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효능을 보여주는지 알려줄 때 이때까지 놓치고 있던 재미가 살짝 다가온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풍자와 은유는 아는 만큼 보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지 못해 그 재미를 완전하게 누리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상황을 비틀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것을 재해석했을 때 감탄하고 큰 재미를 누린다. 이제 그 5년이 끝나가고 새로운 5년이 한 달 뒤면 시작한다.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금 이런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실용과 문화를 말할 때 가슴 한 곳이 뜨끔했지만 지난 5년이 이런 실용조차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픈 현실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5년 덕분에 이 책이 탄생했다는 것은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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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11-2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