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라에게 장미를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노원 지음 / 청어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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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노원의 소설을 읽었다. 90년대 중반에 읽고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사이 소설이 계속 나온 모양인데 한국 추리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최근 사정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이라면 요즘 한국 추리소설을 조금 더 읽으면서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이 신뢰에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세계적인 걸작이나 수작보다 떨어지는 것은 둘째로 하고라도 며칠 전에 읽은 <블랙>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늘 말하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적 의견이다.

 

한국형 여형사 최선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이전 작품을 읽지 않아 최선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작 부분에 그녀의 사랑과 삶의 일정이 간략하게 나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20대에 강력계 팀장이란 놀라운 실적을 쌓은 것에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나중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면 서장이 일계급 특진을 말하는 부분에 도달하면 더 심해진다. 작가가 나보다 더 많은 연구와 조사를 했을 테니 물론 가능할 것이다. 아니 소설이니 더 가능하다.

 

소설은 팔레스타인의 가장 전투적인 과격집단 ‘국제 이슬람 해방 전선’이 5개국의 공항을 테러하는 뉴스를 보도하면서다. 이중에서 파리 드골 공항의 격전은 프랑스 대테러기관 DST의 압승으로 끝난다. 대부분 테러리스트가 죽지만 라니아 살레라는 여성 테러리스트는 생포한다. 그런데 이 테러집단의 공격 대상 중 한 곳이 한국 인천공항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행히 대상이 아니다. 이 공격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프랑스의 두 여자 수장이 등장한다. 이 둘은 이제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에 돌입한다. 이런 상황에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이자 DTS의 수장 시몬느 비올레가 한국을 방문한다.

 

국제 이슬람 해방 전선을 이끄는 인물은 여자인 사미라다. 그녀는 드골 공항에서 벌어진 DST의 참혹한 학살에 대한 보복을 맹세한 상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시몬느다. 이런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 대통령과 시몬느는 한국으로 여행을 온 것이다. 일정을 보면 거의 신혼여행 수준이다. 방한한 시몬느의 이력에는 문학적 성공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종로에 있는 한 여대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미 사미라가 죽음을 선고한 상태라 한국 경찰의 경호가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시몬느가 일정을 변경한다. 다행스럽게 처음 예정인 곳과 멀지 않다. 평온한 환경 속에 그녀를 보기 위해 간 곳에서 시몬느를 향해 총탄이 날아온다. 첫 발은 다행히 실패다. 그 다음 총알은 그녀를 구하려고 한 최 형사의 몸에 박힌다. 다행히 방탄 조끼 때문에 생명을 구한다.

 

이 소설은 시몬느를 죽이려는 사미라의 계속된 시도를 다룬다. 이 시도를 막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최선실이다. 한 나라의 영부인이 죽을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종로 경찰서 내부의 알력과 질투는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고 유치함의 극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문 암살자를 상대하는 긴장감이 종로경찰서를 휘감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농담과 여유가 너무 넘쳐 장르를 의심하게 만든다. 누군가 먼저 지적한 오타는 읽으면서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대화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끌고 온 설명이나 상황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돈다.

 

형사에 대한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최선실이란 여자가 보여주는 감정의 깊이는 너무 얕다.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고 용의자를 대범하게 지적하는 것은 좋은데 모두 실패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그녀가 보여주는 놀라운 추리력과 분석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전개가 아니다. 전작에서 그녀가 보여준 활약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테러리스트가 보여준 인간적 관계나 정보 등은 너무 과하거나 가볍다. 설정을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이 하나씩 풀려나간다는 느낌보다 답을 내놓고 거기에 맞춘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너무 간단하고 쉽게 다룬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추리작가들의 이 작품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왜 한국 추리소설이 독자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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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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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단어가 알려진 뒤에 우리는 왜 경제부처와 관련 공기업 등에 회전문 인사가 그렇게 자주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나온 다른 책에서 회전문 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과 힘을 몰랐었다. 이번에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모피아란 용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소설을 내놓았다. 그가 방송하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서 소설을 쓴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런 제목과 내용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소설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이 생겼다.

 

완성도는 사실 떨어진다. 그가 전문소설가도 아니고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영화 시나리오였던 것을 소설로 내었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있다. 단순하기에 더 그렇다. 물론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과장된 사실이기는 하다. 과장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면 극단으로 몰고 간 설정이 더 맞을 것이다. 모피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의문은 뒤로 하고, 과연 이런 작전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기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모피아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지만.

 

소설은 그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들을 곳곳에 녹여내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주인공 오지환을 한국은행 직원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그의 입을 통해 한국은행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이다. 법을 찾아보니 제1조(목적)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 소설 덕분에 내가 한국은행법을 찾아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는 이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좌천된다. 좌천된 그가 잠시 다녀오는 곳이 그 유명한 케이맨 제도다. 이 조세회피처에서 모피아의 수장과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수장은 아마 현실의 이헌재를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한 여자는 미국 펜타곤과 관련 있는 김수진이다. 오지환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설정 중 하나가 바로 정권교체가 된 후 모피아와의 전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을 때는 아직 선거 전이었다. 돈과 마음의 전쟁이란 부제처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는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경제민주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아마 그 때문에 이 글이 좀더 늦어졌는지 모르겠다. 다시 5년 뒤로 밀린 가능성을 되살려야 한다. 그 사이에 얼마나 시대 역행할지 걱정이 되지만 말이다. 이 설정을 따르면 모피아와 새로운 정부는 싸울 수밖에 없다. 이미 모피아의 존재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고, 경제주권이나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그 옛날 군의 ‘하나회’가 사라졌듯이 모피아도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기득권은 자신의 권리를 쉽게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 강화하기 위해 모피아들이 선택한 방법은 국공채 등이다. 이 회사채가 시장에 급속하게 풀릴 경우 한국경제는 위험 속으로 빠질 수 있다. 이 사실 때문에 정치와 경제의 수장이 나누어진다. 정치 부분은 새 대통령이 가지지만 경제는 모피아들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좀 극단적이고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 일본 대장성 관료가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치면서 일본 경제를 휘둘렀나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 위협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모피아가 청와대로 파견된 오지환이란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대통령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는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모피아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이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소설 곳곳에 이미 팟캐스트를 통해 말한 내용들이 깔려 있다. 상황이나 설정이나 전쟁 준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제처럼 마음이다. 약간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마지막 전쟁의 피날레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의 마음과 현재 우리들의 바람이 뒤섞이면서 마음을 울린다. 요즘 더욱더 느끼는 것이지만 한 사람이 바뀐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더욱 악화된다. 앞에서 각각 말한 한 사람은 다른 의미다. 지금 이 순간 앞으로 5년이 깜깜하다. 암흑 10년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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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 아이들의 도전 - 이중언어 세대를 위한 언어교육 지침서
바바라 A. 바우어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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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를 필요성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어를 할 경우 얻게 되는 수많은 장점에 대해 말한다. 변했다면 변한 것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필요한 환경이 내 주변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가 짧아도 해외 여행하는데 지장이 없고, 일상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다만 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영어를 잘 했다면 아마도 나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길이 열렸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영어의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고 인터넷 정보 대부분이 영어인 것을 생각하면 내가 자랄 때보다 그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과연 영어 조기 교육이 좋은가와 언제 영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다. 아마 영어를 포함한 제2언어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뒀거나 둬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액의 영어 유치원 등을 배척하자는 주의다. 비용 대비 효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와 모국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외국 선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교육에 대한 나의 반감도 어느 정도 합쳐졌다. 그렇다면 실제 그럴까?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했는지 모른다.

 

책은 중요한 기본 전제 조건을 깔고 있다. 2개국 이상을 말하는 아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자. 연구 과정에 연구자 아이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았음을 감안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그것은 부모가 각각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을 대부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 조건을 말한 후 연령별 효과를 연구하고 분석했는데 결론만 말하면 3세 이하가 가장 좋다고 한다. 아마 조기 교육을 찬성하는 부모라면 이 결과에 박수를 치면서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앞에 나온 전제 조건을 대부분 부모들은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정한다. 이 격차를 조금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두 개의 언어를 집 안팎에서 사용하고 이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나이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라면 이것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지만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부부라면 어떨까? 분명 쉽지 않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영어 유치원이지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한계 나이로 다루고 있는 6세 이하는 나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든다. 우리 나이로 말하면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이나 1학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가면 조기 교육의 실패도 말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캐나다의 몰입교육이다. 이 몰입교육 방식은 전체 혹은 일부 과목을 외국어로 수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두 대상이 된다. 이 교육 방식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영어 교육을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봐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것이 예산이나 상황 등의 문제로 쉽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특별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외국에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이다.

 

이제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용어를 넘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기본처럼 변해가고 있다. 물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주변 환경이 영어 등을 기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국어가 중요하고 미래의 비즈니스 시장에선 분명 영어 외의 언어와 문화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앞서갈 것이라고. 그리고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키거나 초등학생을 영어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라면 나이가 아니라 환경과 지속성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를 덧붙이자면 우리가 어떻게 한국어를 배웠는지 되돌아보면 수많은 연습과 노력과 가족 등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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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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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었다. 초기 번역을 제외하면 한동안 읽지 못했다.(사실 이 소설은 재번역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지만 그녀의 감성이 나와 잘 맞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부분이 있다. 두 모녀를 통해 두 개의 삶을 보여주는데 왠지 엄마 요코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녀가 경험한 사랑이 얼마나 견고하고 아름답고 지속적인지 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말이다. 그녀의 사랑 때문에 그녀의 딸 소우코가 겪어야 했던 힘든 삶도 역시.

 

요코가 선택한 삶은 사랑이다. 현재의 사랑이 아닌 과거의 사랑이다. 이 사랑을 위해 그녀는 평온할 수 있는 삶을 벗어던진다.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는 상태였던 그녀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은 것이다. 채무 때문에 그녀를 떠나야했던 남자가 남긴 ‘꼭 돌아올게. 반드시 요코를 찾아낼 거야. 어디에 있든.’이란 한 마디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하게 만들었다. 그와 그녀의 딸 소우코도. 이 때문에 그녀와 딸은 방랑자처럼 떠돌면서 산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길게 1~2년 정도 살다 이사한다. 대단하다.

 

소우코가 말한다. 엄마는 미래를 보면서 산다고. 한 곳에 정착하면서 살지 않고 과거의 인연과 가볍게 이별하는 그녀를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거의 사랑에 그녀는 매여 있다. 이것을 단순한 과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 남자와의 만남을 확신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사랑은 과거의 한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과거라고 말하기 힘들다. 왠지 현실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일상의 변화가 생기는 것은 오히려 소우코 쪽이 더 많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 고등학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엄마의 의견에 따라 늘 전학한다. 전학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시기는 감수성이 민감할 때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의 의견을 잘 따랐다.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보다는 엄마의 과거 사랑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을 산 것은 아직 어렸고 순수했기 때문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본다는 것이다. 이 성장은 엄마의 삶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 결말은 어쩌면 시작부터 정해졌는지 모른다.

 

작가의 감성적인 문체와 사랑은 간결한 문장 속에 잘 녹아 있다. 이 강력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이 오히려 담백한 문장으로 표현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일상을 간결하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 강렬했던 사랑을 살짝 집어넣어 그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복되는 단어의 사용은 이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한 장소 익숙해진다는 것이 안주한다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요코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 만날 것이란 기대는 안주로 인한 사랑의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두 모녀의 삶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리게 만든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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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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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처럼 슬라보예 지젝이 서울을 방문한 후 가졌던 인터뷰와 강의와 대화 등을 엮은 책이다. 지젝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십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실제 글로 만난 것은 최근이다. 하지만 진짜 지젝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지젝이라고 했지만 그의 책이 아니라 인터뷰 등을 통해서 만났다. 잘 된 인터뷰의 경우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홍세화의 인터뷰가 그렇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리스 사태와 이집트 민주화의 실상을 좀더 알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그의 철학 한 자락을 배웠다.

 

그리스 선거에 내가 주목한 것은 유럽 경제 위기의 한 축이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 사태는 우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왜곡된 채로 이용되었다. 본질보다는 피상적인 것에 더 집중하면서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이런 호도에 대해 그가 바로잡아준 몇 가지 사실은 놀랍다. 한국의 진보정당 정도의 지지율을 가진 시리자가 정권을 잡을 뻔했다는 것과 시리자의 정책 등을 어떤 왜곡으로 변질시켰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실험장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접어들었다고 할 때 고민이 시작된다.

 

이슬람 형제단이 집권한 이집트로 가면 우리의 87년 민주화와 08년 촛불집회를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수백만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것이 핵심이죠. 이 지점에서 좌파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43쪽) 이 문장은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좌파에 실용주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이 땅의 진보가 과연 이런 비전을 보여줬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상술과 양심의 허접한 결합을 말할 때 순간 뜨끔했다. 없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그들에게 마케팅의 수단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예를 들었는데 사실 커피 한 잔 사먹는 돈을 직접 보낸다면 나 한 사람이 스타벅스 구매자 백 명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현재 새누리당이 종북을 외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을 그만두자고 하는 현실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우리 경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깊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을 때 그가 겪은 참혹했던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한 단면은 자유와 파시즘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파시즘이 규율의 억압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잘못된 자유의 측면이 있다는 사실”(111쪽)을 직시하면서 놀라운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에 대한 지젝의 평가는 지금 김지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일정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아니 그가 보여준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고 변명할 수 있지만.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이미 민족주의 혹은 이기주의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국민 사이에 일어난 대학살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 나라의 백인 지주 등이 죽었을 때 흥분하고 여론이 들끓어 오르는 현실을 지적할 때 더욱 분명하다. 사람의 목숨이 모두 똑같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가치로 나누는 현실을 말할 때 폭력은 왜곡된 채로 남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유럽과 반대현상이 보이는데 그것은 대기업의 이익을 반영할 때다. 이것은 그가 ‘간디가 히틀러보다 더 폭력적이었다’(153쪽)고 말한 것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선택이 아닌 단순한 기호다. 문제 자체가 다르다. 역설적이란 말처럼 선택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진짜 선택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지젝이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든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여론 조사 과정에 선택을 가장한 여론 조작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단 한 권의 지젝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렵다는 그의 철학책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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