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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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호승 시인의 책을 읽었다. 시집으로 기억하는 것은 <서울의 예수>다. 아마 제목 때문에 이 시집을 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안도현의 <연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어른을 위한 동화 <항아리> 등으로 만났다. 각각 다른 장르의 두 책을 읽은 시간차는 상당하다. 그런데 이번 산문집은 그것보다 더 크다. 그리고 작가 이름 그 이상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온 이 산문집이 가슴 한 곳에 울림과 반발감을 심어줬다. 그것은 요즘 내가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여러 번 썼지만 산문집을 읽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정도다. 그 이전에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었다. 철학자의 에세이를 제외하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최근 10년 동안도 그렇게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여행에세이를 제외하면 이 비중은 더 줄어든다. 이렇게 에세이 종류를 읽지 않은 것은 학창시절 선생의 말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에세이는 나이가 많이 먹은 후 읽으면 좋다는 종류의 말이다. 이것은 워낙 소설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 신변잡기 성격을 주로 다루는 에세이가 너무 심심해서 더욱 그랬다. 이후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모두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우주의 크기와 상처 많은 나무와 길이란 단어를 담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첫 이야기가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다. 우주에 비해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가에 대한 인식에서 마음의 크기로 이어지는데 가끔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이 이어져 오리혀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만 봐도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경험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삶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존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되풀이할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보다 문제의 초점을 나로 축소시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실패다. 잘못이다. 그래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반성은 잘못과 실패를 되짚어 보게 만든다. 이것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손해 보는 것이 이익이다’라는 말이다. 조금만 손해를 보면 서로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데 그 조그만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대립하면서 벌어지는 수많은 손해는 지난 후에야 절실히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희망에 대해 말할 때 왜 사람들이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사회 구조적인 관점이 아닌 개인으로 축소한 것에서는 아쉬움을 느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실적을 높게 잡아놓아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것을 달성한다. 분명 말이 되지 않는다고 시작부터 말하는데도 달성되는 실적을 보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만들어내는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걱정은 돌 하나도 옮길 수 없다’라고 말할 때 잘못을 보면서 그 잘못을 먼저 탓하고 시작하려는 나와 이것을 벗어던지고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사람과의 차이가 다시 느껴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적’이라고 주장할 때는 그의 종교가 이런 인식으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인식이 이것에 미치지 못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일상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내고자하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데 배울 점이 많다.

 

작가는 천주교인이다. 절에 가면 부처에 절도 한다. 편협한 종교인이 아니다. 천주교를 믿게 된 과정도 전도가 아닌 책에서 시작했다. 대단하다. 하지만 종교인들이 가진 인식의 틀은 그대로다. 많은 부분에서 삶을 평온하게 만들고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유익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이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부족하다. 그의 인식이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가치가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니 말이다. 그럼 사회 구조를 바꾸게 되면 어떨까? 하드웨어가 바뀌면서 소프트웨어 변화 속도까지 올라가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이 산문집에 인용된 작가의 시들은 책 내용 때문인지 모르지만 비교적 쉽게 이해되고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시집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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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맨 - 기계가 된 남자의 사랑
맥스 배리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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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애니메이션의 영원한 고전 <은하철도 999>가 생각난다. 이 애니 속에서 돈 많은 부자들은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병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너무 오래전이라 희미한 이미지만 남았지만 그 당시 기계인간이 된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계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 인간들에게 끌리는 것을 경험했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어버린 후 첨단 기술로 이것을 대체하고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에 환호했다. 똑같은 기계인데 그들의 행동에 따라 나의 호불호가 갈라진 것이다. 이런 감정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계속되었다.

 

주인공 찰리는 뛰어난 과학자다. 하지만 그의 사회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 번도 여자와 제대로 연애한 적이 없다. 이런 과거 이력은 그가 당한 사고 후 만난 롤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당한 사고는 모두 핸드폰에서 비롯되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집 어디에도 없다. 미친 듯이 찾는다. 차에도, 침실에도, 소파에도 없다. 결국 회사 책상에 두었을 것이란 추측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도 없다. 순간적인 강박증이 이어진다. 그러다 실험 중인 방에서 핸드폰을 발견한다. 그러다 그 방에서 기계에 끼여 다리 하나를 잃게 된다. 이것이 의족을 가져온 롤라와 만나게 되는 경위다.

 

처음 그가 다리를 잃은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사람과 다른 차이가 없었다. 상실감이 그를 지배하고 불구자란 생각에 삶의 의욕마저 떨어졌다. 회사는 소송 문제로 발전할까 고민한다. 이때 다가온 의료보조기 기사 롤라는 여신처럼 그에게 다가온다. 그녀가 가져온 수많은 의족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의족을 한 그에게 그녀가 보여주는 반응은 그를 사로잡는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발에 맞는 기계 다리를 만들게 된다. 이 다리에 그녀는 엄청난 반응을 보여주고 이때부터 그는 기이한 열기에 휩싸인다. 남은 다리 하나를 자른 후 멋진 기계 다리로 바꿀 생각이다. 여기부터 예상한 전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기계에 매혹된 남자 찰리와 자신의 심장을 기계로 대체한 롤라. 이 둘은 강한 연대감을 보여준다. 찰리의 기계 다리에서 사업성을 발견한 기업은 새로운 사업 분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분야가 새로운 연구와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것이 있을까.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과학을 이용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연구하고 발전시킨다. 이때부터 그들은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간다. 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로 찰리를 착각하고 존경한 그들이 이제 자신들을 대상으로 실험한다. 인간의 신체가 기계와 결합하거나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이런 시도의 끝은 <은하철도 999>의 귀족들이 아닐까?

 

강인함과 효율성에 빠진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다리의 무게는 거의 1톤이다. 제대로 걷기만 하면 되는데 그들은 불필요한 장치까지 한 것이다. 처음 이 무게를 읽었을 때 이런 다리를 하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실제 그가 걷게 되면 타일이 깨진다. 좋은 점이라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하고 엄청 빠르게 달리고 힘이 무척 세다는 것 정도다. 물론 버그에 의한 부작용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팔 다리를 가진 군대를 생각하면 달라진다. 현대 무기가 이것을 당해낼 수 없다. 전투의 방식이 바뀌게 된다. 이 팔 다리를 가진 찰리가 보여주는 활약 몇 번은 갑자기 엄청난 힘을 얻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설프고 황당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와 미래를 보여준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누군가가 상상했던 세계를 현실화시킨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것이 현실 속에 구현되고 있는 지금을 생각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이것은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위험과 한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다시 효용과 효율을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 설정은 극단으로 몰고 간 부분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재미난 부분은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살짝 삐딱하게 본다면 집착일 수도 있다. 필요를 넘어 광기에 휩싸인 후 기계로 변한 한 남자의 사랑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또 다른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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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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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를 읽은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기억 한 곳에 그 소설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크>란 소설로 다시 작가를 만났다. 정크. 사전을 찾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쓰레기다. 소설 속 주인공 성재가 가끔 내뱉는 단어다. 쓰레기. 나도 가끔 이 단어를 누군가로 향해 내뱉는다. 그 때 그 단어는 나의 분노를 그 대상에게 쏟아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럼 성재에게 이 단어는 무엇일까? 자신을 한없이 낮출 수밖에 없는 그이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때문일까?

 

성재는 어머니와 같은 성을 쓴다. 아버지가 없냐고? 있다. 소설 첫 문장이 “성재는?”이라고 묻는 아버지의 말이다. 이유는 첩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돈을 놓아두고 가는 것 정도의 거리만 남은 아버지다. 아버지의 성을 쓸 수 없기에 엄마의 성을 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성이 없다. 민수 형, 주아, 은주 등이 모두 이름으로 불린다. 아버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성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 이것은 아버지가 와서 성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것과 또 연결된다. 이 부자의 일상은 이렇게 서로 어긋난다. 이것은 또 엄마와 성재의 엇갈림으로 나타난다. 서로 마주하기를 싫어해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정하는 그의 일상이 바로 그 증거다.

 

두 번째 장 첫 문장은 “민수 형은, 결혼한 사람이었다.”(15쪽)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그 의미를 몰랐다. 성재는 게이다. 그의 어린 시절 회상 한 자락으로 모든 것을 짐작하기에는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그에게 민수 형은 애인이었다. 미국 유학 떠나면서 헤어졌다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났다. 그는 유학 시절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있다. 양성애자인 것일까? 민수 형에게도 성재는 애증의 대상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고 가장 안정적인 섹스의 대상이다. 하지만 결혼한 민수 형은 다시 엇갈리는 아버지와 같은 관계로 변한다.

 

홀어머니에 게이인 성재는 이 사회에서 가장 소수 지위를 가졌다. 학벌도 좋지 않다. 아르바이트로 생활하지만 경제적 안정감이 없다. 흔히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돈 잘 버는 게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어릴 때 엄마의 화장대에서 그를 매혹시켰던 화장 등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란 직업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경력도 거의 없고 나이도 적지 않고 거기에 흔하지 않은 남성이다. 뭐 요즘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소수다. 이런 조건과 환경은 그에게서 삶의 의지를 빼앗는다.

 

3개월에 한 번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에이즈 검사를 받는다. 이 장면에서 그의 속내가 드러난다. “내가 도망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그것은 죽음도, 에이즈도, 사람들의 시선도 아니었다.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또 무서워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삶이었다. 죽도록 도망치고 싶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이 현실, 내가 서 있는 이곳, 나, 라는 인간, 나, 라는 인간의 더럽고 구질구질한 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렸다. (중략)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고, 당장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순간만 자꾸 이어졌는데 그런데, 그런데, 나는 또 자꾸만 살고 있었다. 살아 있었고, 살아가고 있었다.”(175쪽)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삶은 계속된다. 욕망에 몸을 맡겨 섹스를 나누지만 단순한 배출이다. 그가 바라는 사람은 민수 형이다. 하지만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자신의 삶의 벽을 쌓아간다. 벽은 결코 낮지 않다. 감정은 쉽게 제어되지 않고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이 파국의 끝에서 그는 다시 생존의 힘을 발견한다. 아버지를 인정한다. 이 부분은 성장 소설로 봐도 될 것 같다. 민수 형과의 애증은 연애소설이고, 그가 흡입하고 마시는 마약은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의 삶의 고뇌와 자기비하와 현실의 높은 벽이 가장 소수자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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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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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작품 <고백> 이후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만족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다. 단순하게 말하면 예상했던 범인과 결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인자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배척당하고 자기 부모 얼굴도 모르는데 부모의 죄를 사죄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문화와 정서 차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많지 않은 분량에 늘 그렇듯이 빠르게 쉽게 잘 읽히는 것은 변함없다.

 

소설의 구성은 간단하다. 료코와 하루미의 독백이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느낌도 있다. 개인적으로 바라지 않던 결말을 예상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이렇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닫힌 재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반전을 예상했는데 그 반전이 예상한 대로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 많지 않은 분량이 두 여인의 감정을 충분히 녹여내기에 부족하다. 감정의 사슬이 너무 비약한 것 같다.

 

하루미는 고아다. 고아원에서 자랐다. 료코도 고아다. 료코는 어릴 때 입양되었다. 둘은 시작은 비슷했지만 자란 환경은 다르다. 하지만 이 둘은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 공통성은 둘을 하나로 이어준다. 그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여기에 파란 리본은 이 둘을 묶어 놓고 가족임을 알려주는 매개가 된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에 소질이 있던 료코가 하루미의 이야기를 각색해 그림책으로 낸 것은 하루미의 엄마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료코도 그것을 바랐다.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 이 둘의 갈등이 중심 내용인 줄 알았다. 하지만 료코는 이 그림책에 공동 저자를 제안할 정도로 욕심이 없다. 혹시 하루미의 성격을 알고 그런 척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생각은 사라졌다.

 

그림책과 두 여인의 비슷하지만 다른 처지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고개를 끄덕인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요코의 아들 유타가 납치되면서부터다. 범인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다. 진실이다. 진실을 밝히길 원하는데 단서가 부족하다. 혹시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요코 남편 마사키의 부정헌금 문제일까? 너무 쉽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지만 납치범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단서가 팩스로 온다. 모미노키 마을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35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시댁의 문제일까? 이 단서가 왔을 때 시댁과 남편 사무실 분위기는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반응이다.

 

읽으면서 분노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가 자신들과 상관없는 단서를 고아원 출신 며느리에게 전가하는 부분이다.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 그렇게 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요코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다. 여기서 살인자의 피와 가족이란 굴레를 씌우는데 현재 우리도 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왜 유타를 납치해서 요코의 진실을 강요하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당사자들이 죽고 병들고 그 흔적만 겨우 남은 상태에서 말이다. 복수의 감정이 남았다고 하지만 그 대상은 이미 사라졌다. 그 후손에게 복수를 이어가는 것이 예전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이 소설의 흐름 속에서는 왠지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빠른 전개가 이어지다 보니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 자신이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 세상의 일이 모두 나의 이해 범주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개도 가능하다. 어쩌면 더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서라면 감정을 좀더 강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요코의 감정 흐름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지만 언제나처럼 이번 작품도 우리에게 큰 물음을 던진다. 복수다. 가족이다. 작가가 형식의 틀을 깨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낸다면 어떨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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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리어 - 뼈와 돌의 전쟁 본 트릴로지 Bone Trilogy 1
피아더르 오 길린 지음, 이원경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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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트릴로지 첫 권이다. 기괴한 설정과 전개는 처음 소개글을 읽었을 때보다 더 하다. 끝까지 읽을 때조차 이 소설 속 세계에 대해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단서라면 역자가 소설 속 설정으로 사용된 단어를 해석해줄 때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쉽지 않은 설정이다. 아마도 마지막 3부를 읽게 되면 좀더 쉽게 이해되겠지만 아직은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 소설을 광고하는 문구 중 “어제 어머니를 짐승에게 팔아넘겼다. 그리고 오늘은 내 아들을 먹었다.”란 글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실제 이 소설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 원시 세계가 설정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종족들이 나오고 이들과 전투가 벌어지고 고기를 얻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죽이거나 인간들 중 효용성이 떨어진 사람들을 다른 짐승들과 교환할 때 이 판타지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이 잔인함은 생존을 위해서다. 인정한다. 생존을 위해서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풀려갈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심해졌다. 마지막에 가서야 단서 중 하나가 흘러나왔지만 말이다.

 

주인공 스톱마우스는 말을 더듬어서 생긴 이름이다. 그의 형 월브레이커는 종족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형제는 사냥 나갔다가 아머백이란 종족에게 쫓긴다. 용감한 형은 공포에 질린다. 이 형을 구한 것은 동생이다. 하지만 형은 동생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혼자서 도망간다.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죽기 바로 직전에 거대하고 눈부신 물체가 떨어지면서 생긴 현상 때문에 스톱마우스는 도망친다. 이 사건은 두 형제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능력있다고 알려진 형이 비겁한 도망자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는 그이기에 둘의 틈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몇 개의 종족들이 뭉쳐서 살고 있고 다른 종족을 죽여 그 고기로 삶을 유지한다. 어떻게 보면 인육을 먹는다고도 할 수 있다. 육식이 생존의 기본인 세상에 농사란 존재할 수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른 종족이 그들을 사냥한다. 고기가 부족하면 자기 종족을 먹기보다는 다른 종족과 서로 교환해서 먹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복날에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를 다른 집 개와 바꿔서 먹는다고 누군가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이 설정은 뒤로 가면 하나의 갈등 요소가 된다.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인류에게 힘없고 병든 존재는 교환가치로만 남기 때문이다.

 

이 기괴한 세계에 새로운 인간이 등장한다. 인드라니다. 그녀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즉 비행체가 추락한 것이다. 그녀의 존재는 이 세계에서 이질적이다. 무술을 보여주고 스톱마우스 등과 다른 피부를 가졌기 때문이다. 스톱마우스는 그녀에게 끌린다. 하지만 그녀는 사냥에서 능력을 보여준 형의 둘째 부인이 된다. 비겁한 형이 머리를 사용해서 고기를 구해왔기 때문이다. 이 사냥에서 스톱마우스가 능력을 발휘했지만 순진한 그이기에 전혀 이것을 대비하지 못했다. 또 그는 형의 비겁한 과거를 알고 있다. 한 여자를 둘러싼 형제의 대립은 영원한 소재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스톱마우스가 종족 속에서 함께 사냥하는 것과 병에 걸린 인드라니를 데리고 종족을 떠나 여행을 가는 것이다. 이 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 썰매에 식량을 실어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녀는 병으로 약해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누구도 그들이 살던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녀가 가야만 한다고 한 장소는 분명 이 소설 속 세계의 핵심일 텐데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단서를 흘리는데 과연 이 3부작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문명과 원시의 충돌이란 단순한 설정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잔혹하고 지극히 본능적이면서 투쟁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이 설정이 다른 의미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스톱마우스의 대활약은 영웅적이라기보다 처절하다. 그의 성장이 조금씩 드러나지만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세계의 실체를 밝힐지는 알 수 없다. 최첨단 기술과 폭력이 난무하는 판타지가 결합했다.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더 잔혹할 수 있다. 이 3부작의 마지막 권을 읽고 나면 과연 현재 우리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 섣부른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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