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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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광활한 우주란 단어를 사용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광활한 이란 단어로 우주를 표현하기엔 너무 작고 우주가 무한대의 크기라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식의 크기를 넘어선 숫자가 나오면 우린 경험의 한계에 부딪힌다. 우주물리학으로 옮겨가면 이런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현실 속에서 억 단위는 너무 흔한 것이지만 실제 억까지 세워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수천 개라니. 아! 여기서 억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가 지구를 포함한 은하다. 태양계가 아니라 은하다. 감이 잡히지 않는 크기다.

 

우주물리학을 가끔 만날 때면 우주의 크기에 대한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맨인블랙>의 한 장면이나 소설 속 장면으로 그 크기를 잠시 측정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늘 그렇듯이 수천억 개 중 하나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의 그 어떤 일부가 우리의 현실에 조금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축소도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더 작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 각각의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풀려나오는 것을 읽을 때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다. 단숨에 읽었다. 전문 분야 깊숙이 다루어진 부분이 많지 않아 비교적 쉽게 읽었다. 용어가 어려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현재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도 있다. 이 책의 기본 구성은 위에서 말한 크기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무한대의 크기를 상상하다가 지구의 시작으로 돌아오고, 그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인류가 발전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돌아보게 된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우주에서 인간으로 다가오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저자들은 어려운 우주물리학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비교적 쉽게 우주물리학에서 시작해 인류도 돌아온다. 이 과정을 거꾸로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이 된다. 이것은 목차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이 목차가 의미하는 바를 알 정도로 나의 지식이 높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은 것은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때문이다. 과학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과 전개는 우주와 인간의 흐름을 하나로 이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보통의 내공으로는 아주 힘든 일이다.

 

이 책은 우주를 다루지만 결국 인간을 말한다. 우주의 탄생 장에서 “우리가 밤하늘에 끌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경탄할 때, 우리는 우리가 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다.”(16쪽)란 문장으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아직 sf처럼 우주를 개척할 능력이 되지 않지만 지구라는 행성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공생보다 파괴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우주가 파괴와 생성이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과 다른 것이다. 이것을 다룬 장들을 읽으면 인류의 발전 과정이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 몇 줄이나 몇 장으로 알 수도 없고 해결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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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시대 - 숲과 나무의 문화사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3
요아힘 라트카우 지음, 서정일 옮김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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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주변에 너무 흔히 있어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와 물과 흙이다. 나무도 그렇다. 도로변에 심어진 은행나무나 학교나 집주변에 나무가 늘 보이다 보니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려고 하면 그 가격에 놀란다. 원목을 이용한 것에는 더욱더. 그냥 흔해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나무가 제품으로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철거된 곳에 가면 나무들이 폐기물과 함께 실리거나 조각나 장작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풍경은 우리가 나무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 역사 속에서 나무가 어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나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했다.

 

이 책은 나무와 관련된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다루지 않는다. 나무란 물질 자체의 영역 내 역사를 다루는 데 무게를 두면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하나는 나무를 가공하고 사용한 기술적 과정, 두 번째는 나무의 예를 통해 환경과 자연자원이 사회사, 경제사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왔는지 밝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목표는 조금 어려웠다. 기술적 과정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사회와 경제 분야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 나무와 숲이 어떤 가치를 가졌고, 관련되었고, 관리되었는지 알려주었다. 사회계층 각각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숲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차이나는지 보여줄 때 단순하게만 가지고 있던 숲과 나무에 대한 인식의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 속에 귀족들의 사냥 애호는 그 당시 농민의 생존권과 충돌한다. 귀족들이 숲을 보호한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사냥하는 재미를 위해서다. 단순한 오락 때문이다. 반면에 농부들에게 숲은 자신들의 삶을 위한 터전이다. 숲이 많아지면 그들이 경작할 농지가 줄거나 숲에서 나온 동물들에 의해 농산물이 훼손당한다. 귀족과 농부의 이해가 충돌한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에 멧돼지가 출몰하면서 농지를 파헤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귀족과의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 즉 제철소와 제염소와 유리공장 등과도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나무의 가격이 오르고 나무 부족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생긴다.

 

하나의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이것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 나무 가격 상승은 원목과 톱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그 조각들을 이용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나무의 특성을 이용해 합판, 파티클보드, 건축용 섬유판 등의 새로운 목재를 만들어내었다. 수백 년 전 나무 두께를 1밀리 단위로 잘랐다는 글에서 괜히 그 두께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펄프를 통해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는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무를 베기 위한 기술의 발전도 함께 다룬다. 그 나무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의 발전도 같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발전하면서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손실이 줄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 강도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계속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은 좀더 유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 분야의 역사를 다룰 때면 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책 속에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활엽수, 침엽수 논쟁이나 특정 품종에 대한 호불호나 비판도 시대의 변화와 과학 발전 등으로 변한다. 이것을 보면서 과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전문가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생겼다. 뭐 이런 전문가가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말이다. 목재산업과 임업, 나무의 활용도 등을 경제와 환경과 각 분야의 이익과 결합시킬 때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전문가가 만들어낸 패악을 말하라면 4대강이나 교육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나올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숲과 나무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의 나무와 숲이다. 마지막 장에서 아시아의 나무를 다룬다. 그렇지만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더 충실하다. 간략하게 다루고 지나가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앞에 길고 깊게 나온 정보보다 더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마 인접국가고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제대로 소화를 못시킨 책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만 머릿속에 맴돈다. 마지막으로 숲 관리에 대한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숲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 유익함을 얻은 경우는 당대에 나타나는 역사적 상황, 즉 새로운 기회의 상황에 눈을 돌려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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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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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프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나의 눈물은 왕따로 죽은 슌스케 때문이 아니다. 그의 자살 이후 삶이 바뀐 사람들 때문이다. 갑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부모와 동생, 유서에 절친이란 말이 남겨진 사나다 유,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나카가와 사유리 등이다. 유서에는 그를 괴롭혔던 두 명의 같은 반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이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왜 그가 자살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나다를 비롯한 사유리와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동안 이어진다.

 

왕따와 자살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뉴스가 나오면 ‘또’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정은 ‘불쌍하다’, ‘얼마나 심했으면’, ‘나쁜 놈들’ 등과 같은 것들이다. 너무 자주 많이 일어나면서 둔감해진 것이다. 이 문제를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해봐야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이 사건은 불쌍하고 안된 일일 뿐이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그들은 평생 가슴에 이 사건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럼 절친과 짝사랑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그들은 어떨까? 이 소설은 바로 절친으로 낙인찍힌 유의 기록이다.

 

초등학교에서 유짱으로 불렸고 함께 놀았지만 중학교 올라간 후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사나다에게 유서에 쓰인 절친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 단어가 슌스케 가족에게는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엄마에게는 고마운 친구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에게는 절친이면서 그렇게 되도록 뭘 했는가 하는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낙인찍기라는 단어를 앞에서 사용했다. 절친으로 알려진 그는 방관자였고 용기 없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가 이런 괴로움과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답을 찾아간다.

 

사나다가 슌스케와 친구였다면 사유리는 단순히 짝사랑의 대상이다. 그녀는 같은 반도 아니다. 하지만 자살한 날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죄의식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유서에 남겨진 이름은 그녀도 낙인찍기의 대상으로 만든다. 처음 그녀가 슌스케의 집으로 찾아다닌 것은 이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이다. 나중에 그녀가 이 사실을 말했을 때 동생 겐스케가 형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원망했을 때 그녀가 그때까지 품고 있던 고통과 고뇌와 아픔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한 소년의 자실이 그녀도 가해자로 만들고 동시에 엄청난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자식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다. 평생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경험을 한다. 그 엄마가 충격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과거 속에서 좋았던 추억만 찾아다니는 것이나 자살한 아들을 처음 발견한 아버지가 결코 반 친구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들의 반성문마저 언론에 흘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이런 충격의 여파 중 일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짱과 사유리마저 조금씩 그 일을 잊고 있을 때 그들은 매일 불단을 보면서 아들의 부재를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우리는 흔히 너무나도 쉽게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겐스케가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말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한지 알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사회에서 잘못을 바로 잡을 힘이 있을까 의문이다. 물론 용서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너무 쉽게 진솔한 참회나 반성 없이 용서를 내뱉고 바라는 것에 감정이 욱해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감정과 행동은 솔직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다 표출하지 않지만 절제된 상태에서 그 감정이 강하게 전달된다.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친하지도 않는데 유서에 절친이란 단어를 왜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의문은 사나다의 아들이 쓴 노트에서 나온다. 아내가 말해준다. 그가 모르는 친구이자 절친이라 불린 친구가 사실은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 순간 사나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통곡한다. 슌스케에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 깨달은 것이다. 20년을 이어져온 미스터리가 풀린 것이다. 그리고 슌스케가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의 의미를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이자 가장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부모는 자식을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장 모르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자식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만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하는 행동으로 습관이나 좋아하는 것 등을 알 수 있지만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것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아마 슌스케가 왕따 당하고 있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했다면 그의 자살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는데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은 사실 무의미하다. 가장 솔직한 표현은 유가 다시 방문한 중학교에서 선생이 된 친구가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한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믿고 싶은 것을 깨트리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에 대해 사나다 유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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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 빠진 훈제청어의 맛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3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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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시리즈 3권이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플라비아는 귀엽고 깜찍한 소녀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그녀 외 다른 언니들에게도 눈길이 점점 많이 간다. 그녀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언니들이지만 각각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능이 플라비아의 사건 해결을 도와줄 때 빛을 발하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만든다.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가 여전히 잘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럽게 이어진다. 비록 전작에 비해 재미나 플라비아의 능력이 조금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첫 장면에서 그녀에게 점을 봐주는 집시다. 그녀는 플라비아 엄마에 대해 말한다. 당연히 이것은 언니들의 장난이다. 하지만 어리고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플라비아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놀라 허둥대다 양초를 쓰러트린다. 집시 텐트가 불탄다. 이 인연은 둘을 엮어준다. 미안함이 플라비아를 그녀 곁에 머물게 만든 것이다. 거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곁들여졌다. 집시를 가문의 영지에 머물게 한다. 예전에 아버지가 절대 금지했던 일이다.

 

전작에서도 외부에서 온 사람에게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집시가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빠르게 의사에게 연락해 그녀를 치료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늦은 밤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온 브루키다. 마을의 말썽쟁이다. 물론 플라비아도 평범하고 착한 소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녀가 그를 용의자로 꼽고 조사를 하는데 그가 그녀의 집 분수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새로운 시체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사건은 두 개가 되고 플라비아는 더욱 열심히 이 사건들을 수사한다.

 

이 귀여운(?) 소녀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논리적이지만 명탐정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과 다른 취향과 행동을 보여준다. 덕분에 우린 그녀의 활약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재밌게 읽지만 부모라면 결코 반길 수 없는 아이다. 어떤 부모가 독약과 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밤늦게 돌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런 점들이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탁월한 직관과 관찰력과 분석력은 경험이란 한계 속에서 충분히 성숙해지지 못했지만 그렇게 복잡하지 않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다. 가끔 주변에서 그녀에게 단서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더.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탁월한 인물로 꼽고 싶은 사람은 도거다. 전쟁 트라우마로 명확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왠지 그에게서는 은거고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플라비아에게 던져준 몇 마디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그녀가 조사한 정보들은 이것과 결합하여 사실에 한 발 더 다가간다. 열한 살 소녀의 한계 속에 그 나이를 뛰어넘는 지성은 분명 균형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과 사건과 사람들은 이 불균형을 넘어 재미를 준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가 되고 의문은 그것이 풀릴 때 다시 처음으로 연결된다. 이 고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풀리는데 이때 든 생각 중 하나는 경찰들은 왜 이 사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뭐 좀더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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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머니 1 밀리언셀러 클럽 130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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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복지국가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나라 스웨덴. 작가는 그 나라의 이면을 아주 신랄하게 파헤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코카인과 욕망에 자신을 내던진 세 명의 남자다. 이야기는 그들을 따라가면서 서로 교차하고 엇갈리고 서로 다른 욕망을 풀어낸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으로 다룬다. 살인과 폭력은 최대한 절제되고 돈에 대한 욕망은 거침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복지국가 이면에 있는 거대한 신분 격차와 타락은 그곳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현직 형사 전문 변호사가 보여주는 암흑세계는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거부감이 생길 정도다.

 

모든 이야기는 세 남자 중심이다. 마약상인 호르헤. 그는 구 유고 연방의 세르비아 출신 갱들에 의해 감옥에 간다. 감옥은 범죄자에게 좋은 학교다. 그곳에서 그는 코카인 등에 대해 전문가가 된다. 그리고 기발한 생각으로 탈옥한다. 그의 탈옥을 보면서 화려한 복수를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액션과 폭력으로 가득한 복수 대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언제 다시 경찰에 잡혀 감옥으로 들어갈 줄 모른다는 공포다. 그렇다고 그의 증오심이 사그라지거나 복수가 멈추지는 않는다. 한 번의 실패는 있지만 그 다음 번 준비는 더 철저하다. 그가 어떻게 복수를 준비하고 실천하는지 보는 것은 많은 재미 중 하나다.

 

JW. 그는 대학생이다. 상류층 학생들과 어울린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구들의 생활수준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상류 사회에 대한 그의 열망은 대단하다. 그들과 보내는 하룻밤을 위해 엄청난 절약을 한다. 그러나 돈은 늘 부족하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온다. 코카인 판매상인 압둘카림이다. 상류 사회 시장을 개척하려는 압둘카림과 늘 돈 부족에 시달린 JW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언제나 마약은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많은 돈을 벌수록 JW의 돈에 대한 욕망은 거대해진다. 중고와 가짜의 자리를 신상품이 차지하고 점점 거대해진 욕망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므라도. 세르비아 출신 갱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폭력과 휴대품 보관소 사업이다. 휴대품 보관소는 현금이 오가고 세금 신고도 없는 알짜배기 사업 중 하나다. 이 사업은 세리비아 갱단의 두목 라도반의 휘하에 있다. 라도반은 그와 함께 유고 내전을 경험한 동료이자 욕소비치라는 거물 갱의 부하였다. 하지만 상황이 그를 라도반의 부하로 만든다. 쉽게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의 활약을 보면 단순히 폭력만 휘두르는 갱이 아니다. 탈옥한 호르헤가 그를 협박했을 때 보여준 행동이나 경찰의 폭력조직 진압 작전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탁월한 전술가의 모습이 보인다. 세 명 중 유일하게 폭력적이고 진짜 암흑세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한 여자의 납치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녀가 JW의 실종된 누나라는 것도,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도. JW가 카밀라 누나를 찾는다.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끊어진다. 첫 부분에 누나가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본 독자들은 그녀의 현재를 두렵게 바라본다. 여기에 또 한 명이 누나를 그리워한다. 호르헤다. 그에게 가족 특히 누나는 중요한 존재다. 탈옥한 그를 쫓아온 므라도가 누나에게 보여준 폭력의 흔적은 그를 분노하게 만든다. 재미난 것은 므라도가 딸 양육권 때문에 전처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강렬한 폭력배도 피붙이 앞에서는 약해지는 모양이다.

 

세 남자는 돈에 대한 욕망과 가족에 대한 애정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호르헤와 JW는 누나, 므라도는 딸. 각각 다른 길을 가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서서히 겹쳐지는 부분이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이 강렬해야 하는데 조금 약하다. 전체적으로 스웨덴 암흑가의 풍경을 잘 설명해준 것에 비해 오락적인 강렬함이 약한 것이다. 복지국가 이면에 숨겨진 인종차별과 돈을 둘러싼 폭력과 살인 등은 스웨덴에 대한 환상을 깨기 충분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화려한 밤문화가 일부고 JW의 부모 같은 분들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폭력배의 세계가 마약 등으로 일반 사회로 점점 침입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특별한 활약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경찰조직이 중간중간에 힘을 발휘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조금 건조한 듯한 이야기지만 읽을 때보다 다 읽은 지금 더 많은 느낌과 생각이 가슴으로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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