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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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늘 음악이 나온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재즈에 대한 것인데 차분히 기억을 되짚어보면 클래식도 상당히 많다. 나에게 클래식이나 재즈나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랫동안 열심히 들어왔다. 그런데 이 음악 듣기가 대부분 다른 일을 할 때 배경음악용이었다. 집중해서 듣는다 해도 낯설고 어려워 길어야 10~15분 정도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몰입하지 못한다. 그 한계는 너무 분명하다. 아직 유명한 몇 곡을 제외하면 그 묘미도, 재미도, 흥분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늘 음악을 글에서 다루던 하루키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작정하고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둘의 대화를 읽다 보면 전문가 못지않은 귀를 가진 하루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소설가들이 소설 속에서 클래식을 들으면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데 과연 이것이 정말 자신들이 향유한 것인지 아니면 인용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최소한 하루키의 경우는 자신의 경험인 것 같다. 지휘자에 따라 바뀌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잘 포착해서 현역 지휘자와 조금도 꿀림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 깊이와 폭은 나 같은 문외한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노거장 오자와 세이지와의 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어떤 글은 대화가 아닌 아카데미를 경험한 후 감상 후기를 적었다. 큰 수술을 하고 연로한 세이지 씨를 위해 간식 등을 먹고 음악을 들으면서 대화를 진행한 곳도 있다. 이때 두 사람이 이 음악이 다른 지휘자의 연주와 어떻게 다른지, 다른 시기에 녹음한 것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오자와 세이지가 다른 시대에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같은 음악들을 두고 그 차이를 짚어낼 때는 이 두 사람의 교감이 상당히 부러웠다.

 

제목대로 음악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하나의 음악만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자와 세이지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내고, 동시대의 지휘자들의 특성이나 특색도 같이 알려준다.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행운이 있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줄 때마다 부러워하면서 감탄한다. 그 치열했던 열정과 노력이 오자와 세이지라는 인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클래식에 무지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오자와 세이지라는 지휘자를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그가 지휘한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지휘자들이 악보를 해석하면서 생긴 차이를 어떻게 평론가 등이 아는가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보여주는 지휘자들의 음을 구분하는 기술은 귀가 어두운 나에게는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리고 악보대로 연주하는데 왜 그 차이가 생길까 하는 것이다. 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삶을 조금 더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지휘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악보, 연주, 지휘, 녹음, 연주홀 등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은 낯선 지휘자와 낯선 음악 대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니 재밌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장한나 편’을 봤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그녀가 지휘자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는지 들었었다. 그런데 이 대담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악보를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을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대담을 읽으면서 상당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연주 일정이 얼마나 꽉 짜여 있는지도.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나 같은 소시민은 생각도 못할 일정이었다. 이런 지휘자의 일상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부 부족을 절실하게 느꼈다. 어릴 때 유명한 곡이라서 CD를 사고, 유명한 지휘자라서 CD를 샀던 기억도 났다. 이제는 거의 듣지 않고 있지만. 언제 시간이 되면 같은 음악이지만 지휘자가 다른 음악을 비교하면서 듣고 그 차이를 느껴보고 싶다.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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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을..선호하지 않는데...음악적 취향은 괜찮다고..
그런대로 맞춰갈만 하다고..혼자 그러는 겁니다.
재즈에서 클래식...아..클래식에서 재즈..

ㅎㅎ듣다보면 알지 않을까요.. 쉽게 예를
들면 앙드레가뇽과 유키구라모토 두 사람이
한 곡을 같이 쳐도 색깔이 분명 달라요..
우린 녹음 버전을 들었을 뿐이어도..
그건 명도 와 채도 를 말하는 것 같아요.
뜬금 없이...죄송한 참견였죠?

지난번에 적어내려가다..말고..
그먕 지나갔어요.
오지랖..이다..하고.
역시...음악이 말을 걸어요..하루키가 아니고..ㅎㅎ 랍니다!
좋은 오후 되시면 좋겠습니다~!
 
거지왕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3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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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검은 수도사>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작은 과거 30년 전쟁 당시의 한 약탈과 학살 장면이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을 보면 분명히 중요한 사건인데 중반까지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퀴슬이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가 살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간다. 평범한 의사보다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기에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을 그를 잡기 위한 함정이다. 성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경비들에게 잡혀 감옥에 며칠 갇히고, 풀려난 후 동생 부부가 살던 목욕탕에서 살해당한 부부를 발견하자마자 들이닥친 경비대에 의해 살인자로 몰린다. 전편에서 가장 위력적이고 매력적이었던 퀴슬이 감방에 갇힌 것이다.

 

막달레나와 지몬은 여전히 밀애를 즐기면서 산다. 신분 차이 때문에 둘의 결혼이 힘들다. 숀가우를 떠나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곳으로 가기 전까지 이 둘의 결혼은 쉽지 않다. 이때 제빵업자 베르히톨트가 막달레나를 찾는다. 하녀 레즐의 임신 때문이다. 임산부의 피부와 증상을 보고 지몬에게 뭔가 떠오르는 게 있다. 맥각 중독이다. 임신 중절을 위해 소량의 맥각을 먹으면 효력이 있지만 많이 먹을 경우 환각과 함께 죽게 된다. 그런데 이 맥각을 준 인물이 바로 지몬의 아버지다. 제대로 된 용법에 대한 설명도 없이. 임산부는 죽고, 베르히톨트는 자신이 임신시켰다는 비밀을 지키려고 거래와 협박을 시도한다. 막달레나는 이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 거부는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가 숀가우를 떠나게 만드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막달레나의 고모가 살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둘은 도망친다. 배가 도착했는데 막달레나의 가방을 도둑이 들고 달아난다. 둘이 쫓는다. 도둑을 잡는데 뗏목 마스터가 도와준다. 이 인연으로 고래라는 술집을 알려준다. 돈이 많지 않은 둘이 머물기 나쁘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베니스 대사 실비오 콘타리니를 처음 만난다. 그가 관심을 둔 사람은 당연히 막달레나지만.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모부 내외가 죽었다는 것과 아버지가 살인자로 잡혔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은 아버지 구출하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연줄도 돈도 제대로 된 정보는 없는 이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소동을 일으켜 감옥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동안 지몬은 광장에서 백내장 수술에 성공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그것은 거지왕으로 이어진다.

 

감옥에서는 레겐스부르크의 사형집행인과 퀴슬이 이어지고, 밖에서는 막달레나와 지몬이 베니스 대사와 거지왕과 연결된다. 퀴슬에 대한 온갖 소문이 떠돌고, 몇 명의 창녀들이 사라지고 죽는다. 성안의 소문은 더 흉흉해진다. 그 사이사이를 음모의 그림자가 살금살금 파고든다. 단순한 살인사건처럼 보였던 것이 레겐스부르크의 정치를 둘러싼 투쟁으로 발전한다. 범인과 음모자의 그림자가 희미한 가운데 누굴까 하는 추측이 난무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막달레나와 지몬은 위험해지고 음모는 더 굳건해진다. 분명 과거 사건에서 비롯한 것인데 퀴슬마저도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잊고 싶은 기억이자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니 말이다.

 

복수의 그림자가 음모를 짜고, 소문은 퀴슬을 괴물로 만든다. 퀴슬을 둘러싼 음모의 답은 과거 속에 있고, 창녀들의 실종과 죽음은 또 다른 사건의 전조다. 목숨을 걸고 단서를 찾지만 적의 그림자는 뒤로 빠짝 다가온다. 밤을 지배하는 거지왕이 도움을 주지만 어느 순간 그도 믿을 수 없다. 막달레나와 실비오의 관계를 질투하는 지몬의 행동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만든다. 질투와 오해는 순간적이지만 이 순간이 어떨 때는 영원으로 바뀔 수도 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누군가를 믿어야할지 모르는 의심의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퀴슬을 잡았다는 안도와 복수의 마음은 오히려 퀴슬 쪽에 기회가 된다. 시간은 언제나 주인공 편이니까. 17세기 독일을 무대로 그 풍경과 상황 등을 이렇게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긴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이 그렇게 흔하지 않다. 재밌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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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First Go 첫 여행 길잡이
정해경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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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도쿄를 한 번 다녀왔다. 처음 가는 일본이지만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보던 곳을 실제 발로 걸었지만 큰 감동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느낌과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어의 장벽이 조금 있지만 짧은 한자와 무대포 정신으로 별 무리 없이 돌아다녔다. 상대적 좋은 날씨 탓인지 걷기도 참 많이 걸었다. 음식은 늘 먹던 것이라 맛있었다. 아니 돈까스는 최고였다.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을 높여주는데 일본이 딱 그랬다. 그런데 도쿄보다 더 맛있는 동네가 있다고 한다. 오사카다.

 

사실 오사카보다 교토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음식 때문에 살짝 방향이 바뀌었다. 오사카에서 한 시간이면 교토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전직장 동료가 오사카를 추천한다. 그래 한 번 가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 비행기표는 어떻게 구하면 되는데 크리스마스 전후로 숙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정을 조정하니 방이 한두 개 나오는데 이번에는 비행기표가 너무 올랐다. 일정 조정이 쉽지 않은 일과 숙소가 교통수단까지 이어지고, 추위도 살짝 한 자리 차지하면서 이렇게 나의 첫 오사카 여행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관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준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도 루트를 짜고 교통패스를 사는 것이 어려워 그냥 교통 카드 충전해서 다녔다. 덕분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돈은 조금 더 들었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교통패스가 상당히 어렵다. 개인적으로 오사카 주유패스가 가장 효율적인데 사용 불가능한 노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도쿄에서 환승이 되지 않아 한두 구역을 비싼 교통비를 지급하고 옮긴 적이 있다보니 괜히 걱정이 된다. 2일권만 나와 있는데 일정을 잘 짜지 않으면 효율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2박 3일 일정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기본적인 숙소를 난바로 정한다면 더 쉬울 것이다. 사실 난바 지역은 동료가 추천한 숙소 지역이기도 하다.

 

여행을 가면 가장 필요한 것이 지도와 맛집 정보다. 긴 일정이라면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사람이라면 지도는 필수다. 동선을 제대로 짜지 않으면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물론 이것이 추억이자 재미로 변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적지 않다. 경험한 것에 따라 변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길찾기 사진은 초보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 배낭을 메고 여행 갔을 때 이 사진들이 불안감 속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사진이 작은 것은 단점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블로그의 큰 사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더욱.

 

간결한 지도와 맛집 표시는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관심없는 지역도 나오지만 맛집들은 입맛을 자극하면서 이 짧은 일정 속에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한다. 어떻게 시간을 맞춰 줄서는 시간을 줄일까하는 생각도 이어진다. 한국에 들어온 제과를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정보에 눈이 번쩍 떠지고,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는 언제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행복한 고민이다. 솔직히 쇼핑은 나는 별관심이 없다. 집사람은 다르겠지만.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 판단하면 됴쿄나 홍콩이나 한국의 쇼핑몰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색이 강한 악세사리나 물건을 좋아한다면 다르겠지만.

 

이 책은 정말 짧은 일정으로 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에게 딱 맞는 것 같다. 핵심만 짚어져 비교적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긴 시간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다른 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야 할 것이다. 또 자신만의 일정표도 만들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관광지와 맛집이 나와 열심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할 듯하다. 이전에 이런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힘들었지만 아직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 올해 가게 된다면 이 일정표를 상당히 참조할 것 같다. 읽다보면 아쉬운 점도 곳곳에 눈에 들어오지만 좋았던 것만 모아 일정을 짠다면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빨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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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섬 - 악마를 잡기위해 지옥의 섬으로 들어가다
나혁진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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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한민국은 부채 폭발로 경제 위기에 빠진다. 이로 인해 사회는 무법천지가 된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정부는 흉악 범죄자들을 격리시키는 법을 제정한다. 영구추방법이다. 그리고 필리핀의 한 섬을 빌려 범죄자들을 격리시킨다. 교도섬 카베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섬은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도 나갈 수 없다. 몇 가지 물건을 준 후 섬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쳐두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해류의 흐름 때문에 뗏목으로 벗어날 수 없다. 죄수들을 관리하기 위한 간수들은 입도할 때만 만날 수 있다. 이 설정을 보면서 무협에서 흔히 다루던 마인들의 유형지가 떠올랐다.

 

전직 경찰 간부 장은준이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마를 죽이기 위해 이 섬에 들어온다. 연쇄살인마라는 정보 조작을 통해서. 그런데 이 장은준이 연쇄살인마라는 악명을 뒤집어 쓴 채 복수를 위해 들어왔다고 보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악마로 설정한 살인자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결심을 한 사람답지 않게 나약하고 연약하다. 경찰이었던 이력 때문인지 사람을 쉽게 믿고 허술한 행동을 곳곳에서 한다. 행운이 이어지지 않았다면 섬에 들어오자마자 죽었을 것이다. 그의 최고 행운은 바로 꼽추를 돕기 위해 한 행동 때문에 최고의 암살자 추응을 만난 것이다. 이후 추응은 그의 좋은 보호막이 된다.

 

약간 허술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읽힌다. 그 이유는 바로 추응 때문이다. 추응은 조용하면서도 아주 파괴적인 인물이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상대를 단숨에 제압한다. 장은준이 이 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바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악마의 살인을 의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추응은 10년 전 저지른 실수 때문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인을 자제하면서 살고 있다. 꼽추로 변신해서 추응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살았다. 은준이 보여준 한 번의 선의가 그의 정체를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 둘은 어느 순간 좋은 친구가 된다. 흉악범들로 가득한 이 섬에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극히 일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복수극이 이 소설에는 없다. 복수 의지에 사로잡힌 인물의 치밀하고 파괴적인 활동도 없고, 그 의지를 끊임없이 되새겨 줄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다. 시원한 콜라 한 병에 흔들리고, 닭싸움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긴다. 신경삼을 보았을 때 분노가 폭발하고 이성을 잃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답답하다. 무술 영화처럼 복수를 위해 추응에게 무술을 배운다거나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거나 하는 행동도 없다. 그 대신 경찰이었던 전력을 살려 밀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거나 과거의 의문을 풀어내면서 친구들을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이 때문에 생사를 같이 할 두 친구를 얻게 되지만 비장하고 비정한 장면들이 없다.

 

치밀한 설정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섬에 전기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성제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 흉악범들이 장은준의 존재를 너무 모르거나 무시한다거나 하는 등. 물론 이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생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은준이 생각한 악마의 이미지가 이 섬에서 바뀐 것이나 그의 의지가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몰입을 약하게 만든다. 저자가 좋아하는 다양한 장르를 소설 속에 넣고 비벼 버무려놓았지만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아쉽다. 조금 더 절제를 하고 설정에 공을 들였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 세 사람의 조합이 재밌고 흥미로워 시리즈로 발전시켜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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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 재미있는 영어 인문학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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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언어를 연결시켜 재밌게 쓴 책이다. 실제 저자는 <교양영어사전 1,2>을 출간한 이력이 있다. 본 적은 없는데 분량이 상당하다고 서문에 적고 있다. 각 권이 800쪽이 넘는다고 하니 어지간히 영어를 좋아하거나 저자의 엄청난 팬인 독자가 아니면 쉽게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분량을 대폭 줄이고 새로운 글쓰기 형식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어원에 대한 연구가 많은데 이것이 영어 단어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그 시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어떻게 의미가 바뀌었는지 알려준다. 가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면 잠시 영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솟구치지만 일시적 현상이다. 또 이 책 상당 부분은 저자의 독서 노트이기도 하다. 저자의 방대한 저서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만든다.

 

모두 열 장으로 나눴다. 음식문화에서 시작하여 민족과 인종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각 장은 열 단어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단어를 먼저 내세우고, 이 단어의 어원과 의미를 풀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 자신의 의견이 바로 나오는 부분보다 신문 기사나 다른 책들의 인용으로 채워진 부분이 더 많게 다가온다. 물론 이것을 편집하고 인용과 인용 사이를 이어주고 해석을 곁들이는 것은 저자의 노력이자 의도다. 그리고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번역과 저자의 번역을 비교해보게 된다. 물론 나의 번역은 대부분 직역이고, 더 많은 부분은 제대로 해석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소소한 재미를 누렸다.

 

언어와 인문학. 사실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언어가 없다면 인문학도 존재할 수 없다. 단순히 말만 의미한다면 굉장히 축소된 개념이겠지만 이 속에는 문자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것은 김용규의 <생각의 시대>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인간이 철학적 사고를 배우고, 하게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 속에서도 하나의 언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지 알려준다. 이때 우리의 인식 한계나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아주 많았다. 특히 관용어나 숙어가 왜 그런 의미가 되었는지 알려줄 때 학창시절 무심코 외웠던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나의 영어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낯선 이야기지만 알고 있던 것도 몇 개 있다. 이럴 때 괜히 반가웠다. 자주 나오는 영어 해석을 둘러싼 반론 중 하나가 어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번역을 엉터리로 했다는 것인데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능력이 부족해 직역을 겨우 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이런 번역자들의 수준 높은 번역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어 단어를 인간관계를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으로 확대하면서 인문학적으로 풀어낼 때 다시금 이 책이 단순한 영어 어원을 다룬 책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단어들이 왜 선택되었는지 각 장의 범주 속에서, 각 단어를 다룬 제목 속에서 조금씩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재미있었는데 영어를 못하거나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지루할 것 같다. 적지 않은 영어가 나오는데 모르는 단어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쉬운 문장도 많지만 신경 써 번역에 집중해야 하는 문장도 적지 않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어원을 즐기면서 어원과 용법에 따른 인문학적 정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사람은 이 책도 강준만 식 글쓰기란 것을 쉽게 알 것이다. 익숙한 글쓰기라 반갑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다만 나의 경우 영어가 조금 장애 요소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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