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연인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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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은 미스터리였고, 그 후에 주로 읽은 책들도 미스터리물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쓴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을 때 많이 낯설었다. 기대했던 설정과 전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기분을 지워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디에 트릭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후기를 보면 소설을 먼저 쓴 것이 아니다. 소설가가 줄거리를 짜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TV 드라마를 제작하고 동시에 책을 출간하는 방식이다. 방송국 쪽의 여러 희망사항과 제약이 보통의 그의 소설과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드라마도 있으니 한 번 보고 싶다.

 

세 남녀는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살아간다.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는 일은 거의 없다. 상해나 도쿄나 둘만 대부분 등장한다. 일본인 두 명, 야오이와 렌스케와 대만 출신 중국인 슈메이가 주인공이다. 야오이는 파견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의 실수를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사귄 남자 친구의 거짓말에 질려 화려한 여행을 꿈꾸며 떠난다. 하지만 평소 습관이 단숨에 고쳐질 리가 없다. 민박에 머물면서 상해를 여기저기 다닐 뿐이다. 그러다가 케이크 가게에서 렌스케를 만난다. 다시 만났을 때는 렌스케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와준다. 이 도움으로 케이크 먹는 초대를 받지만 자신의 착각과 남자의 무신경함이 문제를 만든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렌스케는 가구 회사 레골리스를 창업한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점을 낼 정도다. 정당하게 인수한 중국 회사의 직원들이 재고용도 뿌리치고 대부분 나간다. 그 직원 중 한 명을 회사 모델로 고용하고 싶어 한다. 광고에 탁월한 눈이 있는 후배이자 직원인 가자미가 추천한 사람이다. 바로 슈메이다. 그녀는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가구 회사에 일하고 있다. 가자미와 렌스케는 그녀를 모델로 쓰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거부한다. 그리고 렌스케의 성격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장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야오이와의 충돌도 그 때문에 생겼다.

 

슈메이는 재고용을 거부한 후 일자리가 없어 힘들게 산다. 친한 친구 밍은 그녀의 호의를 걷어차고 돈까지 훔쳐 달아난다. 미안하다는 쪽지만 남기고. 레골리스의 모델 제의를 거부했는데 밍의 사건은 중국에서의 그녀 삶을 무너트린다. 일본에 살고 있는 아빠 한양을 찾아간다. 27년 전 일본에서 성공을 꿈꾸며 살다 힘든 것을 버티지 못한 엄마와 슈메이는 돌아왔지만 아빠는 그곳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희망이 무너진 곳에서 아빠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녀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레골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 남녀는 일로, 의문으로, 인연 등으로 연결된다. 야오이는 파견직인 것을 숨기고 좋은 직장 여성처럼 술을 마셨다. 야오이를 찾아 상해의 사진을 전달하려는 렌스케는 자신이 사장인 것을 숨긴 채 보통 사람들 옆에 머문다. 단골집 온짱은 이 둘이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 둘이 순간적으로 불타기에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슈메이의 광고는 성공했다. 그녀는 신비한 수수께끼의 여인으로 산다. 모델료는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사용된다. 렌스케와는 일로 만나고 이야기하는 정도다. 이 둘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녀의 미모와 냉철한 렌스케가 왠지 일을 벌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오이의 직장에서 만든 선향불꽃이 이 셋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가독성이 좋아 단번에 읽었다. 세 남녀의 삶과 관계를 약간은 건조하게 풀어낸다. 감정에 끌려가는 모양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엮여간다. 어느 순간은 보호본능에 이끌려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이 지쳐 있을 때 그 만남이 가장 편안한 여유를 전해준다. 팽팽한 긴장감에 시달리는 렌스케의 꿈이 외롭고 힘든 그의 삶을 보여준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두 남녀는 힘들어한다. 가장 빛나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더 여유롭다. 편안하다. 오해가 펼쳐지고,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해결되는 그 과정이 결코 통속적인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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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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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수없이 풀어놓은 책이다.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밑줄을 그은 후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든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혼란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혼란은 모르는 책이 너무 많거나 나와 너무 다른 생각 때문이고, 즐거움은 재밌게 읽은 책이 걸작의 목록에 올라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책들이 모두 걸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책들도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목차를 읽으면 제목에 걸작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은 정의를 나타내주고, 어떤 것은 분류 작업처럼 다가온다. 실제 글을 읽으면 걸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감상을 짧게 혹은 조금 길게 늘어놓은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될 것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자 언젠가 꼭 읽고 싶은 이 책에 대한 저자의 찬사와 찬탄 등은 책 좀 읽었다는 사람이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냐 하고 질타하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 책이 뒤로 가면서 더 좋아진다고 할 때는 정말 당장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실제 눈앞에 책이 있다면 딴 짓을 하겠지만.

 

걸작을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책 속에서 말한 책 목록이 책 뒤에 나와 있다. 그런데 본문을 읽기 전 이 목록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각 장의 내용과 책을 직접 연결해야 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제목을 모르는 책(읽은 책이 아니다)이 너무 많아 한수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취향 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걸작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너무 분명하고,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만을 앞세운 책에 대한 저자의 반감이 나올 때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책들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걸작에 대한 많은 정의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걸작은 우연과 비논리, 무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형식을 더한다.”(86쪽) 이 형식은 저자가 걸작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새로운 형식은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모두가 제임스 조이스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율리시스>보다 <피네건의 경야>가 더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린다. 읽을 수 없는 걸작이란 제목 속에 이 책들이 들어 있으니 정말 큰맘을 먹기 전에는 쉽지 않다. 다행히 <율리시스>는 학창시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힐끗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있지만 실제는 모르겠다.

 

걸작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주제를 찾고 인생의 교훈을 배우려는 책 중 과연 몇 권이나 걸작이라고 불릴까? 걸작을 쓴 작가조차 인생을 모른다고 했을 때 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점에서 권장도서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듣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도 읽지 않았기에 넣은 책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괜히 궁금하다. 빤한 말이지만 걸작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걸작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쓸려고 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간된 후 독자와 비평가와 학자 등에 의해 걸작이 평가되지만 역시 가장 잘 아는 것은 작가다. 그런데 문제는 책 내용에 대해 잘 아는 것과 걸작을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솔직히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힐까? 나에게도 걸작이 보일까? 가끔 펼쳐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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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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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훌륭한 데뷔작을 쓴 작가라 항상 첫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자주 보게 되는 문구 중 하나가 <고백>이 아닌 새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고백>의 벽을 넘지 못했다. 솔직히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른 소설들도 재미있고 잘 쓴 소설들이지만 그 강렬함을 넘기는 정말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작가의 숙명인지 모른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거장들도 대부분 한 편의 작품으로 묶여 기억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평생 대표작이 하나 없는 작가에 비하면 엄청난 축복인데도 말이다.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 세 명은 꽃, 눈, 달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꽃은 리카(梨花), 눈은 미유키(美雪), 달은 사쓰키(紗月)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 장에서 하나씩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각각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매향당이다. 그곳의 별미인 긴쓰바와 가사이 미치오의 그림이 맛과 기억을 함께 공유한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의 뼈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뭐 조금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리카는 영어학원 강사였는데 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까지 병에 걸렸다. 수술비 등이 필요하다. 자신의 부모들이 죽었을 때 매년 집으로 꽃을 보내주던 K라는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는데 이제 K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 문제는 K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리카는 K의 정체를 밝히고, 왜 매년 집에 꽃을 보냈는지 알려고 한다. 이 의문은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다. 그 이유를 밝혀주는 이야기가 하나씩 이어서 나온다.

 

미유키는 외삼촌 회사에서 일하다 자신이 좋아한 남자와 선을 본 후 결혼한다. 남자의 이름은 가즈야다. 그의 꿈은 건축설계다. 영업에 재능을 보여 외삼촌 회사에서 영업을 했는데 외사촌 오빠 요스케가 회사를 차리면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사람 좋은 그는 독립한 회사에서도 좋은 역할을 한다. 요스케는 귀하게 자란 탓인지 남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다 가사이 미치오 미술관 설계 공모전이 열리고 여기에 가즈야가 공모하려고 한다. 재능과 열정과 사랑이 어울려 멋진 설계도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사쓰키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대학 등산 동호회에 친구의 요청 때문에 가입했다. 이 동호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라타 선배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아빠와 딸 사이로 낙인찍히고 이 둘은 친해진다. 고이치 선배와도 역시. 친구 기미코는 이것을 질투한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다 구라타 선배가 백혈병으로 죽는다. 어느 날 고이치 선배도 같은 병에 걸린다. 그런데 고이치와 사쓰키의 백혈구 형태가 일치한다. 몇 년이 지난 후 기미코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같은 백혈구 형태 때문이다. 그냥 골수 이식을 해주면 될 텐데 이 속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리카, 미유키, 사쓰키로 이어지는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앞에서 말한 매향당과 긴쓰바와 코스모스 꽃과 가사이 미치오의 그림 등이 끝임없이 등장한다. 개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슬로 이어진 것 같다. 조그만 서술 트릭을 사용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드러낼 이야기가 강한 충격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사실 조금 약하다. 예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외하고 각각 다른 세 명의 여자 이야기로 읽는다면 결코 나쁘지 않다.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의도적으로 뒤섞어 놓아 중간에 그 순서가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 이것도 마지막에 오면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작은 분명히 <고백>이지만 다른 작품처럼 이 작품도 역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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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븐스 섀도우
데이비드 S. 고이어.마이클 캐섯 지음, 김혜연 옮김 / 청조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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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극장에 자주 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몇 편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다. 그 몇 편의 영화의 원작자가 쓴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니 관심이 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거기에 SF 장르라고 하니 더 좋다. 이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는 솔직히 너무 과했다.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속으로 빨아 당기는 힘이 약했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본 이미지나 다른 SF 소설에서 읽은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공저자가 역할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NASA와 키아누라는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나 과학 지식들이 상당히 정교하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미국과 러시아, 인도, 중국 연합의 대결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조금은 의외다. 특히 이 연합의 우주센터가 인도에 있다는 설정은 이쪽 분야의 문외한인 나에게는 의외의 설정이다.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발전한 중국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현실에서 우주선이나 우주공학이나 지식에서 가장 앞선 것은 역시 NASA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이들의 비중이 약하게 나오는 것은 조금 아쉽다.

 

일명 키아누는 태양계 밖에서 날아온 지구 근접 천체(NEO)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어 NASA와 연합에서 이 천체에 각각 우주선을 보낸다. NASA는 데스티니 7호고, 연합은 브라마 호다. 두 세력 사이에 경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우주선의 선장들은 모두 NASA에서 교육을 받았다. 데스티니 7호의 선장 잭은 이전에 발사된 우주선의 선장으로 뽑혔다가 아내의 죽음으로 몇 년간 기회가 없었고, 브라마 호의 선장은 여러 번 대기권을 다녀온 우주인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지원이나 특별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NASA가 월등히 뛰어나다. 이것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구 근접 천제로의 착륙을 먼저 과학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천체에서 수증기를 품어내는 베수비오 분출구 때문에 생기는 사고와 이 분출구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사고가 중요한 것은 사고를 당한 인물이 선장 몰래 가져온 물건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 분출구를 통해 들어간 내부의 환경과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현상들이다.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내부에서 만난 죽은 자들의 재생이다. 잭의 경우는 아내 메건이고, 브라마 호의 우주인 루카TM의 경우는 조카 카밀라다. 나탈리아의 경우 자신을 겁탈하고 괴롭혔던 인물이 재생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죽여버린다. 이 재생을 보고 들은 백악관의 판단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즉 파괴다.

 

이 재생인들을 NASA에서는 레버넌트라고 부른다. 불어로 보이는 유령, 살아 있는 시체란 의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인 레버넌트는 자신이 죽은 시점과 그 이후 일정 부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외모는 똑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이 소설이 3부작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야기에서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부에 같이 들어온 포고가 보초처럼 보이는 물체에 의해 살해당한 후 재생되어 벌이는 사건은 조금 더 철학적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잭의 아내인 메건의 행동과 너무 대조되기 때문이다.

 

키아누에서 지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구의 NASA는 이 상황과 이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 때문에 공포에 질린다. 이 공포는 쉽게 전염되고, 만약을 위해 준비한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번진다. 그리고 몇 초 차이로 전해지는 소식과 정보 때문에 가족 및 관계자들의 희비가 교차한다. 작가들은 이것을 잭의 딸 레이철과 메건과 같이 사고가 난 할리를 통해 보여주는데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지구와 키아누 사이에 비슷한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이야기에 몰입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한 느낌이다.

 

태양계 밖에서 새로운 우주선이 온다는 것과 그 우주선을 탐색하는 설정은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와 닮은 꼴이다. 지구인의 기억 등을 이용해 사람을 재생해 내는 것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잭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펼쳐지는데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수면 밑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 소개에 나온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이야기는 다음 권부터 나올 듯하다. 그때가 되면 이런 설정이나 마무리가 조금은 더 이해가 되고,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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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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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목만 보면 불교에 관련된 에세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 에세이란 작은 글이 보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글이란 설명이 책 뒤에 나온다. 그렇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기존 역사 학회의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역사 이야기다. 현재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맛보게 한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좀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너무 일부 학설을 과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사의 이면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내용은 분명히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순우리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나의 부족한 우리말 실력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몇몇 단어들은 충분히 알거나 짐작할 수 있지만 어떤 단어는 너무 낯설어서 사전 검색을 해야 했다. 저자의 의도적인 표현이 나처럼 일반 독자에게 오히려 힘든 책읽기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자신만의 고집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장에서 충분히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늘어지면서 우리글의 매력을 갉아먹는 부분도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지한 순우리말에 대한 열등감을 내가 이전에 얕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조금 트집 잡는 것일 수도 있다.

 

첫 이야기로 선택한 것은 해방 후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독립운동자의 후손들이 배곯고 힘든 생활로 삶을 겨우 유지하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의 엄청난 부를 현재까지도 그대로 누리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순간 잘못된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혹은 우리 자신들에게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도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친일파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 떵떵거리며 살면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민초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을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사실을 숨기면서 호도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목차를 읽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많이 나온다. 대부분 역사시간에 결코 좋은 평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다. 묘청 정도가 신채호 선생에 의해 다른 평가를 얻었을 뿐이다. 신돈에 대한 평가가 최근에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출간도서의 이름을 통해 본 적이 있지만 미륵 사상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라 말기와 고려 중후기의 엄청난 부패와 부의 불균형에 대한 설명은 왜 그 시대에 궁예와 신돈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들만으로 세상이 바뀌기는 무리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민중들이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편가르기에 당해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 당시는 이들을 뒤엎을 무력이 부족했다.

 

전봉준에 가려진 김개남 이야기는 동학운동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고,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동학 운동이 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김백선 장군처럼 항일투쟁운동을 펼쳤지만 계급의식에 매몰된 무리에 의해 잊혀지고 왜곡된 인물도 등장한다. 저자가 이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기위해 인용한 글들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때 기록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지배계급의 변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의 기원을 항일투쟁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이 연속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에 많은 동의를 하는 반면 고대사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그 시대의 국경과 지역을 둘러싼 주장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백제의 후손을 화교와 연결하는 부분이나 <환단고기>를 그대로 믿는 것은 무리가 있거나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가지 용어나 표현이나 상황만 가지고 확대해석하기에는 아직 자료가 부족하다. 물론 왜곡된 역사나 친일실증사학의 현재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고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을 가끔 읽으면 기분은 좋지만 너무 허술한 이론과 허황된 주장이 많아 그 사실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 또 하나 더 불만을 말하면 한자를 진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자학자들이 한글을 낮춰보기 위해 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순우리글을 이렇게 많이 쓴 에세이에 쓸 단어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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