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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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음식은 극히 한정적이다. 최근 중국 현지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면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익숙한 것들은 홍콩이나 화교들이 외국에서 만들어 판 음식들이다.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덧붙여진 요리들은 일단 시선을 확 잡아당긴다. 실제 맛은 알 수 없지만 시각적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이나 홍콩 등을 짧게 여행하면서 그곳 음식을 맛보면 그때의 환상이 깨진다. 향신료 등이 너무 달라 새로운 맛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중국 음식을 중국 역사와 연결시킨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의 맛이란 제목보다 중국 요리의 미궁이란 표현이 더 맞다. 문화 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음식이 많이 퇴보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들이 역사와 실제 상관없는 것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향신료와 광동 요리로 대표되는 음식이다. 사천 요리에 대해서도 매워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고추와 연결시킨 장에서 이 맛이 실제 알려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음식의 많은 부분이 조선 말기나 일제 시대에 개발되고 발전한 것이다. 전통에 기댄 마케팅에 의해 윤색된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문헌에 이름만 나오고 요리법이 적힌 것이 사라진 요리의 경우는 더욱 더.

 

저자는 요리와 중국 현대사를 엮어내었다. 중심에 있는 것은 요리고, 역사 속에서 요리와 음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있지만 북방의 후이족이나 몽골족들이 가져온 요리나 향신료들이 북경 등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할 때 나의 기존 인식이 무너졌다. 몇 가지는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후이족의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요리가 시중에서 산동요리와 섞여 서민과 귀족의 요리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많이 사라졌다. 저자가 실제 경험한 문화혁명 당시 음식 맛은 개성도 맛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통의 식당들조차 문을 닫았고, 재료는 구하기 힘들어진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평생 고향의 음식을 주로 먹었다고 한다. 한때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을 상상하면서 서슬 푸른 문화혁명 당시 중국을 생각하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혁명 후 농민을 우대하고, 음식 맛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를 생각하면 실제 음식의 암흑기였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다시 식당이 문을 열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맛난 요리를 만들었지만 혼란과 과도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전통요리란 것도 나올 정도였다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광대한 중국은 각 지역마다 요리의 특징이 다르다고 배웠다. 세계적인 요리라고 배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명성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만 해도 중국요리라는 것들은 화교나 대만이나 홍콩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맛을 볼 수 없었는데 이 음식들은 기존의 전통 요리와 다르다고 한다. 전설과 과장과 거짓이 뒤섞여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곳만의 특징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요리법을 혼합한 것도 상당하다. 홍콩 요리를 프랑스 요리와 엮어 설명한 부분은 이것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중국 현지는 혁명과 반혁명의 요리로 나누어진 적도 있다 보니 단절된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면 저자처럼 혁명 당시나 이후 멋진 요리를 맛봤다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혁명이 중국 요리의 암흑기라면 청 말기는 부흥기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이때 만들어졌고, 고급요리가 많이 개발된 것도 이때다. 북경에서 만주족과 한족이 뒤섞이기 전보다 후에 더 많은 음식이 대중에게 흘러나왔는데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환관이다. 자금성에 재료를 납품하던 것이 환관들의 연줄로 이루어졌고, 밖의 대규모 레스토랑의 고문이 모두 환관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요리의 역사는 어떤 측면에서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말한다. 한때 한국에서 궁중요리라고 하면서 유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좀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정확한 미각과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저자는 표현이나 경험이 탁월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요리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다시 되살아난다.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역사와 과장된 표현들에 대한 것이고,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되살아난 경제와 더불어 과거의 맛들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가면 늘 먹는 음식이 한정적인데 한 번 정도 맛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 상하이 요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요리는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자주 보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멋진 요리를 하는 것도 그 재료나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문화혁명과 공산당의 맛을 표현한 장에서 느낀 저자의 안타까움과 절망은 당연한 것이다. 만한전석 등이 만주족과 한족을 뒤섞는 통치의 맛이라면 혁명의 맛은 평등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평등의 맛은 맛이 없다. 마오의 죽음 이후 부활하는 맛도 있지만 사라지는 맛도 있다고 하는데 문외한이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홍콩 요리와 화교와 연결해서 풀어내었고, 고추의 매운 맛을 한국인들을 위해 덧붙여 낸 장에서는 앞에서도 잠시 말했던 사천 요리의 환상을 깨부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펼쳤지만 그 내용이나 무게가 무거워 생각보다 어렵게 읽었다. 아직 제대로 소화시키지는 못했는데 중국 요리를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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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를 타고 5주간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2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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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 하면 떠오르는 몇 작품이 있다. 대표작인 <해저 2만리>와 <80일간의 세계일주>와 <15소년 표류기> 등이다. 어릴 때 쥘 베른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그 중 요약본도 있다. 제대로 번역된 책이 몇 권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쥘 베른의 작품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이 내세우는 흔한 완역본이란 것도 다시 몇 권 읽었다. 낡았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펼치면 그 예상은 금방 무너진다. 물론 시대나 과학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경이의 여행’을 출범시킨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릴 때 본 영화 중 한 편이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명화극장 같은 곳에서 봤는데 원작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나중에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이 나가지 않았다. 반면에 <해저 2만리>나 <지구 속 여행> 같은 작품은 어릴 때 요약본을 읽고, 최근에 다시 완역본을 읽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아마도 영화를 먼저 본 것이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당연히 본 적도 없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탓이다. 그렇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기구를 탄 세 명의 영국인들의 모험에 빠져든다.

 

제목대로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동쪽 잔지바르 섬을 출발해서 아프리카 중앙을 가로질러 서쪽의 세네갈 강에 도착하는 여행이다. 이 여행을 두고 호사가들이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구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새뮤얼 퍼거슨 박사는 철저한 준비와 계산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쥘 베른의 이전 소설(먼저 읽은 책들)처럼 그 성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모험을 펼칠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아프리카를 횡단할 기구에는 세 명의 영국인들이 탄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새뮤얼 퍼거슨 박사다. 그리고 절친이자 뛰어난 사냥꾼 딕 케네디와 박사의 하인 조가 바로 탑승객이자 동반자들이다. 처음에 딕은 퍼거슨 박사의 계획을 듣고 말리려고 왔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행한 인물이다. 훌륭한 하인 조는 주인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인물이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박사가 정밀하게 계산하고 설계한 기구를 타고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아프리카 횡단 여행에 참여한다. 그 시작은 아름다운 풍경과 빠른 기류 덕분에 멋진 여행이다. 하지만 변수는 어디에서나 생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표지에 나오는 코끼리와 기구의 모습은 사실 소설 속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5주라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많은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야 하기에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아프리카 나라와 부족들이 등장하고, 그 지역을 탐험한 모험가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나일 강의 발원지를 찾아가고, 거대한 산을 넘고, 사막을 위태롭게 지나간다. 새들의 공격을 받고, 도중에 위험에 빠진 선교사를 구하기도 한다. 지도를 옆에 두고 하나씩 지리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날면서 땅과 호수와 산을 내려다보고, 그들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 소설의 기본에 깔린 시각은 오리엔탈리즘이다. 아프리카를 미개한 나라로 보고, 식인풍습이 일반적인 것으로 소개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19세기 유럽인들이 가진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종과 문명과 문화에 대한 차별의식이 너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시대의 한계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의식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세 명의 영국인들이 서로 잘 하는 바를 잘 조화해서 이 위험한 여행을 성공하는 과정은 재미로 가득하다. 이 첫 장편에서 그 뒤에 나올 많은 소설들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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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몰락 - 이재용(JY) 시대를 생각한다
심정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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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삼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삼성이 보여주는 행동들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잠시 나온 하청업체의 이익을 낮춰 자신들의 이익을 만든 것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과 제대로 된 세금을 내지 않고 편법 상속을 한 것 등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제 삼성은 한국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성장했다. 주가나 이익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그리고 이 경제 효과를 바탕으로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여론 조작을 끊임없이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건희 이후의 삼성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이건희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이병철의 후광으로 성공했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다. 나도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재벌의 2세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이병철의 유산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엄청난 판단 착오에 대한 사례도 많다. 그 중 하나가 퀄컴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자동차다. 휴대폰 시장을 생각하면 퀄컴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최대의 실수다. 경영학과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럼 삼성자동차는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의견을 펼친다. 삼성에 대해 상당히 냉정하고 비판적인 글을 써다가도 삼성자동차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흥분할까? 그것은 저자가 삼성자동차에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열심히 일했던 적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포기를 정권의 압력도 아니고 처음부터 잘못 기획된 사업 경쟁력 저화와 이학수 그룹 비서실장의 협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고 삼성전자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을 인정하지만 대만 폭스콘 이야기에서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유지해왔다면 오늘날 전자와 자동차가 결합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21쪽)란 주장을 펼친다. 이 당시 만약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삼성이 망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얼마 전 삼성자동차 관련 소송에서 이건희와 삼성의 패소(6000억 배상)가 최종 결정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삼성을 굉장히 우호적으로 본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삼성 홍보팀의 시각이 이 책 곳곳에 나온다. 성균관대학과 함께 엮어 공기업적 마인드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업 이미지 쇄신과 절세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물론 성대가 삼성을 재단으로 두면서 위상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나 70년대 성대 땅을 팔아먹은 후 퇴출당한 적이 있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결코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 또 재단의 힘으로 학자들을 언론 이미지 작업에 동원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이것은 저자도 삼성이 여론 조성 작업의 사전적 조치로는 논리 개발이 필수적이고, 교수들을 용역이나 세미나와 초청 강사로 초대해 필진으로 활용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제목에서도 알려주듯이 가장 냉철하고 비판적인 부분은 역시 이재용의 후계 승계를 둘러싼 분석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나오는 수많은 기사 인용과 저자의 분석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의 이전 사업들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건희 회장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재산 증여 과정에서 비롯한 편법 및 불법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이부진의 사업 성공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삼성SDS 상장을 분석한 글은 이재용의 삼성그룹 지배를 위한 하나의 포석이란 것을 잘 설명한다. 또 이건희 회장이 식물인간일 경우라고 하면서 이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가정하는데 이 상황이 오래되어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올해 중 정식 사망 보도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삼성자동차 관련 글만 제외하면 이 책에 실린 분석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가끔 최태원 SK회장의 딸이 해군장교 입대한 것을 두고 “딸을 보아 최 회장 그만 풀어주라”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황당한 글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그가 어떤 입장에서 이 글을 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여론 조성 작업(정확하게 표현하면 여론 조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글을 보면서 분명한 한계도 느꼈다. 그렇지만 삼성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공했는지, 그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알려줄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 몰랐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망하길 바라지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노키아가 힘을 잃은 필란드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보았을 때 결코 한국 경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이번에 가졌다. 왜냐고? 삼성의 수많은 인재들이 보여준 저력이 다른 업체나 다른 인재들에 의해 다시 발휘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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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콘크리트
마치다 요우 글.그림 / 조은세상(북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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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표제작은 <밤과 콘크리트>인데 제17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부분 신인상 수상작은 <여름방학의 마을>이다.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발포주>다. 가장 긴 분량에 쉽게 몰입하지 못한 작품은 <푸른 사이다>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 이 단편집에 실려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거나 반전처럼 마무리된다.

 

<밤과 콘크리트>는 어! 하는 순간 끝났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축가가 술 취한 동료를 데리고 온 남자를 자신의 집에 재우면서 생긴 일을 간략하게 그렸다. 디테일을 생략한 그림은 간결한 대화로 이어지고, 짧고 우발적 만남으로 인한 대화는 평범한 세계를 비일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과 새벽의 시간과 숙면을 조용히 연결하는데 그 고요함에 나 자신도 그냥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건물이 말을 하고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은 늦은 밤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소리들로 생각이 이어진다.

 

<여름방학의 마을>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간 세 남녀가 2차 대전 당시 비행기와 늙은 조종사를 발견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단순히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순간적인 감상에 빠질 텐데 sf적인 물건이나 설정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우정과 바람을 다루는데 그 사이에 사랑이 살짝 자리 잡고 있다. 풋풋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데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현실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채우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여름방학의 마을이었나?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나의 방학을 기억 속에서 뒤지고 있었다.

 

<푸른 사이다>는 보면서 계속 하나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옥상에 앉아 있던 남자와 아이의 관계가 중심에 있다. 너무 다른 판타지에서 결론을 끌고 온 모양이다.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옥상의 남자는 항상 옥상에서 밖을 본다. 소녀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빠져 어른이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거부한다. 그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세계는 시마 씨다. 마지막으로 가면 이 비밀이 밝혀지는데 솔직히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깨닫지 못했다.

 

몇 쪽 되지 않는 만화가 <발포주>다. 열아홉 살에 감동받았던 그 말, ‘음악을 만드는 건 내 전부야’가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난 친구의 ‘그런 것도 했었지...’로 바뀐다. 이 변화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때는 서로가 진심이었다. 삶 속에 파묻힌 청춘의 열정과 패기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공원에서 다시 그 친구와 한 잔의 술을 먹는 장면은 몇 쪽 되지 않는 만화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아마 나의 삶도 이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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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 몽테뉴와 함께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
앙투안 콩파뇽 지음, 장소미 옮김 / 책세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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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몽테뉴와 함께 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만약 이 부제가 없었다면 소설로 착각했을 것이다. 몽테뉴하면 자동적으로 <수상록>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이 둘을 같이 암기한 덕분이다. 그리고 대학 때 이 책을 한 번 읽었다. 정말, 단지 읽었을 뿐이다. 그 당시 왜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흔한 번역 탓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매번 5분 정도 분량으로 라디오 방송한 것을 책으로 내었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다. 혹시 그때 몰랐던 <수상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마흔 개의 소재를 다루었다. 중복되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몽테뉴의 글을 인용하고 그것을 풀어서 설명해준다. 단순히 해석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글에 관련된 배경 지식도 같이 알려준다. 그래서 각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분량이 아니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내가 몽테뉴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수상록>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게 만든다. 고향집 어딘가에 있을 옛날의 그 책 말이다. 아니면 다시 한 권을 사던가.

 

첫 글이 ‘참여’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재 속에 은둔한 한가한 사람으로 묘사했던 그를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 속에서 그가 정치와 종교 등에서 어떤 생각을 가졌고,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시작점이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조금 평이한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대목도 곳곳에서 보인다.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은 개인적으로 나의 철학이나 생각과도 비슷하다. 비록 나 자신이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몽테뉴의 아버지가 라틴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떤 교육을 했는지 보여줄 때 환경의 중요성을 배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불어로 글을 쓴 것이 그 당시에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 지식인들 대부분이 라틴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에 비추어서 더욱 더.

 

종교 부분에서 그의 종교관이 나오지만 그의 종교에 대한 명확한 글은 없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교황청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비추면 놀랄 일이다. 여행을 찬미했는데 침대에서 죽기보다 말 위에서 죽고 싶어했다는 글을 읽을 때는 몽고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둘은 다른 의미다. 개인적으로 여행에 대한 그의 단상들은 현대에서도 유효하다. 의사를 불신한 그의 신념은 신장결석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어지고, 불과 20세기 초까지 방혈로 병을 고치려고 한 의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왜 그가 의사를 믿지 않았는지 이해되었다. 저자도 이 글에 수긍하면서 현대 의학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살짝 삐딱해진 마음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일부에서 마케팅과 결합한 의학이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곱씹으면서 몰입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전에 읽을 때는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사실 저자의 해석이 없었다면 놓쳤을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몽테뉴의 자유발랄하고 틀이 고정되지 않는 사상과 글을 감안할 때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몽테뉴 자체의 모순도 저자는 곳곳에서 집어낸다. 우정, 사랑보다 책을 더 높게 여긴 것은 역시 노년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가 20~30대에 이 글을 썼다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상록>은 한 번만 쓴 글이 아니다. 몇 차례의 내용 확장과 수정이 있었다. 판본의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뒷이야기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방대한 몽테뉴의 사유를 단번에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는 아직 나의 내공도 노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조그만 시작은 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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