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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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1990년 4월 고분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도쿄(워터프런트) 살인 만경>이었고, 1994년 10월 문고로 나오면서 <도쿄 시타마치 살인 만경>으로 개제되었다. 지금 같은 제목은 2011년 9월에 바뀌어졌다. 한 권의 책 제목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가끔 번역본이 이렇게 여러 번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단행본이 세 번씩이 바뀐 것은 처음 본다. 더 찾아보면 적지 않을 수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를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물론 이 책이 나올 당시 그녀의 지명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장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하지만.

 

구성이 그렇게 복잡한 소설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사건을 복잡하게 꼬거나 비틀지 않는다. 제목처럼 형사의 아들 준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만약 준이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면 소년 명탐정류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약간 어린 티가 나지만 준과 신고의 등장은 무거울 수 있는 연쇄살인사건에 조금은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소재 중 가장 중요한 도고 씨의 <화염>을 통해 2차 대전 끝 무렵에 있었던 참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아이와 함께 사타마치 강을 구경하던 한 엄마가 토막 시체 일부를 발견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혼한 아버지 야키사와 미치오와 함께 도쿄 서민 동네 사타마치로 이사 온 준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아주 좋은 가정부 할머니 하나와 만난다. 이 조용한 동네에 나쁜 소문 하나가 돈다. 어느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젊은 아가씨가 살해됐다는 소문이다. 그 대상은 고급 2층집이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화가인 도고 씨의 집이자 아틀리에다. 준과 신고는 도고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은 도고의 집에 들어가 진짜 <화염>을 본다. 엄청난 작품이다. 이 작품에 엮인 사연을 듣게 된다.

 

준의 아버지 미치오는 형사다. 토막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탐문 수사 결과를 가지고 단서를 하나씩 모은다. 형사의 감이 발동한 탓인지 토막 시체의 일부를 발견한다. 아직 시체의 정체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범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사체의 다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한 명인줄 알았던 시체가 두 구가 된다. 사체가 더 나오고, 단서가 더 모이지만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사건 탓에 언론도 난리였지만 이제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아직도 계속 중이다.

 

토막 살인사건이란 소재를 다루고, 2차 대전 끝 무렵의 무시무시한 폭격도 하나의 중요한 소재지만 전체적으로 그렇게 무겁지 않다.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간략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형사의 아들 준이 보여준 직관과 관찰은 아버지의 영향인지 또래에 비해 탁월하다. 하지만 가장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인물은 역시 미치오다. 수사의 진행 방향을 따라가면서도 다른 방향을 돌아본다. 여기에 하나 할머니도 멋진 역할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미스 마플의 향기가 살짝 풍긴다. 준과 하나 할머니 콤비로 시리즈가 나왔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토막 살인사건에 가려져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사회적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바로 미성년자들의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폭력과 살인의 강도 문제다. 미치오가 하나의 사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살인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끔찍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미성년자 살인과 폭력이다. 한때는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갔는데 이제는 피해자 가족의 시선을 더 많이 비춰준다. 물론 이 소설은 이 시선과는 상관없다. 하지만 그 한 면을 잘 보여준다. 준이 살고 있는 마을이 무대인 작품은 많은 듯한데 준이 다시 등장하는 소설은 없는 것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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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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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작이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다니 제목부터 특이하다. 낯익은 작가 이름인데 한때 판타지 소설 쪽에서 유명했던 그가 맞다. 고등학교 때 쓴 <바람의 마도사>란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 후 몇 편의 판타지 소설을 쓴 경력이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을 읽은 것은 <피리새>다. 다른 초기작을 사놓고 어딘가에 쌓아두고 있기는 하다. 이름으로 검색하니 깜빡 잊고 있던 작품들도 나온다. 제대로 그의 작품들을 읽은 적이 없어 쉽게 판타지 소설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첫 작품과 너무 다른 이야기 방식이라 놀랐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학상까지 받았다. 이 변화가 놀랍다.

 

이 소설에서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딱 하나 있다. 바로 오리에게 잡아먹힌 고양이 호순이다. 호순이의 복수를 하려는 노인도, 이 일을 돕는 두 명의 남녀도, 그의 아들이나 손자도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이 익명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단지 마지막에 서로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불린 적은 없다. 우리가 너무 쉽게 통성명을 나누는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관계가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이름을 알려준다고 해도 그것을 가슴 속에 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를 뿐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런 관계였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말이다.

 

등장인물이 몇 명 없고, 이야기 구성도 간단하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이 등장인물 전부다. 아! 한 명 더 있다. 엑스트라처럼 오리만 열심히 찍고 있는 그들을 보고 호기심 때문에 그들의 직업을 물어본 할머니 한 분 있다. 물론 불광천 주변을 오가는 사람이나 여기저기에서 부딪히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들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어쩌면 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불광천에 서식하는 오리들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실제 할아버지의 의뢰에 의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기 위해 매일 일당 5만 원에 오리 사진을 찍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말도 되지 않는 의뢰를 다룬다.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사전 단계로 할아버지는 불광천에 서식하는 오리들의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자신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첫 생각은 일당 5만 원은 좋지만 과연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은 돈 때문에 이 일을 하지만 정상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이 일을 시킨다. 전직 장르소설 작가인 화자도 이 일을 고민하지만 꾸준히 한다. 이 일이 이어지면서 이 일에 동참한 사람들의 사연이 짧게 나오고, 이런 저런 사건도 생긴다. 이 과정을 작가는 큰 과장없이 현실적으로 다룬다. 비현실적인 것으로 꼽으라면 너무 쉽게 이 일에 대한 회의와 미안함을 가지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었다. 실제로 작가가 판타지 소설가였다. 얼마나 그 경험이 현실적으로 담겨 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장르 소설가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졌다. 최소한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가에서 일반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작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이 발전과 성공은 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전 경력이 그의 문학에 상상력을 더해주면서 일반 작가와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황당한 설정으로 더 강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김근우 작가의 세계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고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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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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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을 읽었다. 가독성이 좋은 작가였는데 이번 작품은 솔직히 조금 힘들게 읽었다. 왜냐고?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삶을 조금씩 파괴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읽는 동안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그렇게 깊게 몰입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이들의 파국을 알고 있기에 그랬는지 모른다. 1억 엔을 횡령한 리카의 삶이 어디로 갈지 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쇼핑중독에 빠져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사는 아키의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1억을 횡령한 리카가 치앙마이에서 사는 모습이 나온다. 도망자의 삶이다. 그녀의 현재가 먼저 나오고, 이후 그녀의 과거와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리카의 사연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다. 다른 지인들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 소설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리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결코 리카를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리카와 다른 모습이라 놀라고 궁금해 할 뿐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사람들의 습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설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이야기는 왜, 어떻게 리카가 1억 엔을 횡령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녀가 1억을 횡령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한 번에 1억을 횡령한 것도 아니다. 조그만 돈이 점점 쌓여 1억이 된 것이다. 횡령의 시작은 좋은 의도에서 비롯했고 그 돈을 채워 넣으려는 마음도 강했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더 쉬워진다.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돈으로 누리는 행복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대안으로 도망을 선택했고, 불안한 도주 생활을 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리카의 무미건조하고 애정없는 삶을 잘 보여준다. 부부 사이에 성관계는 사라지고, 당연히 애도 생기지 않는다.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남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관계다. 아내가 은행에서 시간제로 일해 돈을 벌어 밥을 살 때 보여준 남편의 저급한 반응은 리카가 왜 고타에게 빠졌는지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리카도 돈으로 고타의 애정을 샀다는 것이다. 고타가 애인이 생겼을 때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라고 말한 것은 돈으로 얻게 되는 향락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는 의미다. 자신이 누린 사치와 향락과 삶이 자신이 바란 것이 아닌 리카의 강요와 자신의 묵인 아래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리카가 고타에게 빠져 1억을 횡령하면서 사치를 누릴 때 또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순간적인 욕망을 자제하지 못해 돈의 노예로 전락한다. 아키가 백화점에서 점원이 칭찬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산하거나 마키코가 어린 시절의 부유함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과도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소비의 노예라면 유코는 과도하게 절약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도둑질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유코의 비중이 더 많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과 대비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도한 소비나 절약이 모두 돈의 노예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키가 자신의 딸이 보여준 모습에 놀라거나 야마다 가즈키가 아내와 애인의 과도한 지출에 놀라는 장면은 이 두 사람에게 일단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음을 알려준다.

 

리카가 횡령으로 파국을 맞이했을 때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수많은 ‘만약에’을 찾게 된다. 이 ‘만약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후회를 담고 있다. 긴 세월 동안 고타와 누린 사치와 향락이 남편의 멀어진 손길과 애정의 대신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돈을 횡령하고, 이 돈을 채우고 위해 벌였던 수많은 작업과 거짓말들은 이제 멈출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의 삶을 삼킨다. 그녀의 내면 속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공포는 순간적으로 향락으로 잠시 사라지지만 젊은 연인을 붙잡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악순환만을 강요할 뿐이다. 그녀가 고타와 함께 있을 때 행복이 느껴지기보다 애잔하고 안쓰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상의 평온이 사라진 곳은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해도 결코 그 비워진 공간을 메울 수 없다. 영화도 있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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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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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가볍게 읽을 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펼치면 새벽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휙~ 하고 지나갈 뿐이다. 함축적인 문장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문장이 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넘어와서 곱씹어 읽은 적도 많다. 물론 그냥 스쳐지나간 문장은 더 많을 것이다. 새벽에 대한 단상을 담은 조금은 가벼운 책 정도로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나의 오판이 읽는 내내 혼란을 가져왔다. 아무 곳이나 가볍게 펼쳐 읽은 대목은 분명 쉬운데 연속으로 읽으니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에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아무 곳이나 펼치니 새롭게 다가온다.

 

새벽.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많지 않다. 작년 말 해돋이 보기 위해 동해에서 일어난 것이 새벽을 맞이한 가장 최근의 일이다. 지난 설에 제사 때문에 조금 일찍 일어났지만 이때는 새벽을 감상할 시간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졸린 눈으로 제대로 펴지지 않은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생활 방식이 점점 야행성으로 바뀌면서 새벽은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듯하다. 오래전 해뜨기 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두고 있는 나의 기억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겨울이라 더 일어나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분량 중 봄이 가장 많은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새벽을 사계절로 나눠 이야기한다. 봄이 가장 긴 분량이고, 그 다음이 여름이다. 다른 계절은 비슷한 분량이다. 봄이 가장 긴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이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다. 위에 쓴 이상한 이유가 아닌 진짜 이유를 알고 싶지만 이에 대한 글은 없다. 아마 작가의 경험과 사유가 봄의 새벽과 가장 많이 맞아떨어진 것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하나의 소제목에 달린 분량도 여기가 가장 길다. ‘두루미들을 애도함’이란 장을 읽으면서는 이 책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다 영어 원제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장소다. 봄은 플로리다 팜비치, 여름은 뉴욕 이서커, 가을과 겨울은 특별히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장소들은 작가가 새벽을 맞이하고,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가 관찰한 동물이나 식물 등이 바로 지역, 날씨 등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이런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세심한 관찰과 관련 분야 연구와 깊은 성찰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 두루미, 개미, 벌, 달팽이, 거미, 딱따구리, 찌르레기 등에 대한 글들을 보면 작가의 성찰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생각난다. 모네, 호쿠사이, 세이 쇼나곤 등이다. 조금 더 많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이 단어들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들이다. 모네에 대한 글은 호쿠사이가 유럽 화풍에 끼친 영향을 떠올려주고, 모네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새벽은 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세이 쇼나곤은 그녀가 느꼈던 새벽의 풍경과 감각을 작가가 크게 공감하면서 몇 번 인용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가 곳곳에 나오는데 심미적인 문화가 작가의 성찰 등과 잘 맞는 모양이다. 서양의 일본 문화 찬미가 이 책 속에서도 가끔 보인다.

 

참 다양한 소재를 새벽과 연결시켰다. 문학, 예술, 종교, 역사, 언어학, 기상학, 생물학 등이 모두 나온다. 사계절과 엮이면서 더 풍성해진다. 덕분에 정신을 빠짝 챙기지 않으면 그냥 흘러갈 뿐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잊고 있던 새벽의 아름다움과 의미다. 일회성으로 그친 일출 보기가 아닌 삶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습관은 아니지만 조금 더 빨리 일어나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밤과 새벽이 교차하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야 문득 왜 새벽의 인문학이란 제목이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희미한 머릿속이 조금은 새벽빛이 들어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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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 팔레스타인 시인이 쓴 귀향의 기록 후마니타스의 문학
무리드 바르구티 지음, 구정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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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 대한 첫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뉴스에 나온 것들이 대부분 테러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보여준 테러는 이 단체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릴 때 뉴스를 그냥 받아들이던 시절이라 화면 너머에 어떤 삶이, 사실이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적은 군사로 아랍 연합군을 무찔렀다는 사실을 선생들이 알려주었을 때 나는 감탄사를 터트리고 이스라엘 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의 수준이 그랬다. 물론 선생들의 수준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사실 쉽지 않다. 단순하게 보면 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유대인들이 구약을 앞세워 좇아낸 것이다. 착하거나 멍청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수였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편파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 지역과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으로 아주 복잡하게 엮여 있다. 이 문제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 나에게는 없다. 그렇다고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다. 단지 파편적으로 정보를 얻고 지식을 쌓을 뿐이다. 이 책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시인이자 작가인 무리드는 이집트 유학 중에 67년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다. 아랍 연합군이 패배하면서 그는 갈 곳을 잃었다. 그의 여권은 나라 없는 사람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나지힌, 즉 추방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 나지힌들은 팔레스타인 귀국을 꿈꾼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수백 명의 노인들에게는 귀국을 허가했지만 수십만 명의 젊은 사람들은 들여보내지 않았다. 시인도 30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팔레스타인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바로 그 귀국을 통해 바라본 팔레스타인과 귀국을 바라며 사는 동안 그가 겪었고 아파했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은 이것을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속에는 조용히 분노가 흐르고 있다.

 

나라 없는 사람의 서러움은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측에 붙었을 때 그는 이집트인 아내와 헤어져야 했다. 추방당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추방은 항상 다층적이다. 추방은 당신 주변을 에워싼 뒤 원을 닫아버린다. 아무리 달려 봐도 원은 당신을 에워싸고 있다.” 현재 우리가 너무 쉽게 넘나드는 국경을 그는 아주 힘겹게 넘어야 한다. 입국 허가가 떨어지기 전에는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시인으로써의 그의 인지도가 높아져도 이것은 변함없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전전하고, 자신의 물건을 가질 수도 없다. 어렵게 키운 화분조차 가지고 다닐 수 없는 삶이 항상 그를 기다리고 있다.

 

라말라. 처음에는 어떤 곳인지 몰랐다. 검색하니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행정수도라고 나온다. 자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조차 금지된 나지힌의 삶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아직 이것을 표현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가 본 라말라의 모습은 3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발전이나 변화라고는 없는 도시가 된 것이다. 신문은 고사하고 서점조차 없을 정도로 이곳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책을 갈망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가 누리는 풍족함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정치적인 문제가 곳곳에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정치를 빼고 팔레스타인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주석을 보면 암살당한 사람들이 엄청나다. 예전에 스파이영화를 보고 통쾌하게 생각했던 인물들 중 몇 명이나 이 속에 포함되어 있을까? 격리, 파괴, 학살이란 단어들이 피와 함께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단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뿐이지 사건이나 사람들에게서 그 흔적과 역사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경우는 주석이 그 역할을 맡았지만.

 

이 책은 팔레스타인을 다룬 다른 소설과 접근법을 달리한다. 감상적이거나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고 나지힌의 귀향에서 받은 감상과 느낌에 충실하다. 귀향의 기록이란 표현이 딱 맞다. 중동 문제를 읽을 때면 점점 이스라엘의 반대 편에 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데 개인적으로 작가가 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정과 달랐으면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를 동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와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패자를 바라보는 승자의 연민이다.” 그리고 시인은 솔직하게 말한다. 그들이 힘에서 밀렸다고. 낯선 아랍 이름들 때문에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생각할 거리도 배운 것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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