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길 위의 철학자들
가시와다 데쓰오 지음, 최윤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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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Meet The World Backpackers'다. 저자가 인도 여행 중에 만난 배낭여행자들과의 대화를 자신의 직업과 연결시킨 사진으로 풀어낸 책이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가 풍경 사진을 넣고, 그 속에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면 이 책은 거의 대부분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인물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사진과 적은 글들은 읽는 속도를 올려주고, 그가 하고자 하는 바나 느낀 점을 명확하게 드러나게 한다. 자극적이거나 재미있는 내용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그가 인도의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배낭여행자들의 생각을 나열한다. 이 나열 속에서 그들이 가진 삶의 철학이 흘러나온다. 단순히 언어 수사일 수도 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들이다.

 

스물네 살. 저자는 포토그래퍼로 일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한때 배낭여행의 환상을 한참 키울 때 그곳을 여행하는 것은 나의 꿈이었다. 시간이 많은 직원에게 추천할 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그 힘겨움을 이야기 듣고 주춤하고 있다. 불편함과 싸울 열의가 사라진 것이다. 배낭여행을 한다고 해도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처럼 편안한 곳에서 하고 싶다. 실제 배낭을 싸고 떠나면 또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지만 이 인도에서 힘겨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점점 갈 마음이 사라진다. 깔끔한 성격도 아닌데 말이다. 수많은 삐끼들과 싸우고, 거리의 더러움과 같이 뒹굴거릴 마음이 없다. 어쩌면 이런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마음과 싸우기 위해 인도 배낭여행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배낭여행자가 가시와다에게 해주는 말들은 그들이 살면서 여행하면서 느낌 점을 요약해서 잘 알려준다. 그 대화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한다. 그가 살아온 삶은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우리가 늘 경험하고 있는 일상 그대로다. 하고 싶은 하는 것보다 해야만 하는 것이 더 많은 일상들 말이다.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면 최고 좋은 일이 되겠지만 현실은 늘 해야만 하는 것이 더 많다. 아니 더 많이 요구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그것을 끊고 나가려면 미래와 불안을 말하면서 말린다. 어쩌면 불안한 것은 말리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누리면서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들의 말은 여유와 자유와 확신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저자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말할 때 딘은 “우리는 우리들 마음대로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야. 인도인은 모두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고!”라고 말한다. 이 대화를 읽을 때 내가 얼마나 나의 기준에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쉽게 고쳐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내가 누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때, 누리지 못하는 것만을 생각할 때 이 간극은 더 벌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또 문화적 경제적 우월감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 더 행복한 것은 그들일 수도 있는데.

 

여행 일정을 보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누구처럼 1년 동안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처럼 며칠만에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는 것도 아니다.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자를 정해놓고 인도를 돌아다녔다. 하나의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갔다 온 여행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책에 부록처럼 나오는 설문지 내용이다. 각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나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그들의 철학을 들은 것을 적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양하다. 이 다양함은 그가 이전 인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녀온 호주 어학연수가 일정 부분 도움을 주었다. 설문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준비도 상당히 잘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이 여행과 만남을 통해 “인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내 인생에 나만의 이야기는 얼마나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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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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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이 시를 썼고, 박항률의 그림이 같이 호흡을 맞춘 시선집이다. 얼마 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정호승 시선집을 한 권 읽었는데 또 나왔다. 최근에 가장 자주 만난 시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집을 그렇게 즐겨 읽지 않는 나의 취향을 생각하면 상당히 많이 읽은 편에 들어간다. 그의 시집보다 시선집이 먼저인 것도 참 재미난 부분이다. 박항률 화가를 잘 모르지만 검색하니 다른 작품들과 이력이 간단하게 나온다. 시집도 낸 적이 있다. 그림 색의 톤이 독특하고, 인물의 표정도 심상찮다. 구성도 특이한 부분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와 잘 어우러지는 그림들이 많아 가끔은 시를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지, 혹은 그림을 본 후 시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시선집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온 감정은 사랑과 그리움과 아쉬움이다. 사랑은 그리움과 아쉬움의 감정을 진하게 남긴 채 가슴속으로 조용히 파고든다. 어느 순간은 그 감정이 너무 아프고 잔혹해 보인다. ‘나를 찔러 죽이고 강가에 버렸던 피묻은 칼 한 자루/강물에 씻어 다시 그대의 손아귀에 쥐어 드리리’<모두 드리리>라고 할 때 이 격하고 강렬한 감정은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 가십시오’<내 마음속의 마음이>에서 다시 반복되면서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습니다’<끝끝내> 라고 했을 때 이 두 감정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의 사랑은 어쩌면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에 조용히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중략/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에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중략/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슬픔으로 남아 ‘슬픔 이외에는 아무것도/증명할 수 없어서/증명사진에 내 얼굴이/나오지 않았다’<증명사진>고 표현한다. 어쩌면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처럼 홀로 그 사랑의 감정을 기다림과 외로움으로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그리움으로 외로움으로 진한 아픔으로 가슴속에 강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좀더 성숙해지고 삶을 정면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되면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이제 창문을 연다/당신을 향해 창문을 열고 별을 바라본다/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당신의 모습이 보인다’<창문> 열린 마음속으로 숱한 감정들이 밀려들어온다. 어떤 순간은 상처가 되고, 가시가 박히고, 고통스럽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스테인드글라스가/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이제 알겠다/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이제 알겠다’<스테인드글라스>처럼 한 명의 성숙한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사랑이 점점 자라는 순간이다. ‘이제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새벽기도>라고 할 정도다.

 

사랑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자신만의 감정이고, 그 감정은 홀로 외롭고 아플 뿐이다.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는 사랑의 감정이 들어올 수도 없다. 문을 열었다고 사랑이 바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감정이 격렬하고 깊을수록 그 잔향은 오래간다.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산산조각난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서 함께 하는 순간 하지 못한 아쉬움들을 다음에는 사라지게 만든다. 시인이 여행하는 곳이 ‘사람의 마음뿐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결국 사람의 마음뿐이다. 읽는 동안 나의 사랑이 산산조각났던 그 순간들이 그리움과 따스함으로 조용히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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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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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단편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가장 최근이 아마도 <아이, 로봇>일 것이다. 그 이전은 <골드>로 기억한다. 엄청난 다작을 쓴 작가임에도 번역된 책들이 많지 않다. 그 유명한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최근에 재간되어 나온 것을 제외하면 다른 시리즈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나온 것도 절판이 대부분이다. 한참 SF소설을 모을 때 눈에 띄면 샀던 작가 중 한 명이 아시모프다. 그가 쓴 과학책도 한두 권 정도 집에 굴러다닐 것이다. 정말 광범위한 작품을 내놓았다. 거의 20년 전 SF소설이 쏟아져 나왔던 그 시절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절판본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이 무지 반갑다.

 

이 단편집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머리말에 나온다.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다. 아자젤이 등장하는 몇 편의 단편이 더 있는데 다른 단편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책에도 있으니 언제 시간이 되면 찾아 읽어야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 단편집에 실린 열여덟 편의 단편들이 충분히 매력 있다. 특별하거나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반전으로 가끔은 안타까움을 주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전 혹은 예정된 결말로 나를 유쾌하게 만든다. 작가와 조지 사이에 벌어지는 조그마한 말다툼과 밥값과 팁을 둘러싼 해프닝은 매번 되는 반복 속에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각 단편의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작가와 조지가 만나고, 조지가 작가를 경멸이나 다른 감정을 담아 이야기한다. 조지가 이 이야기와 관련된 한 인물을 말한다. 이때 조지가 한 말이 단편 속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 속에는 항상 아자젤이라는 2센티미터의 작은 악마가 등장한다. 아자젤은 조지가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는데 문제는 이 소원이 너무 기계적이고 단순하다. 처음 조지와 그의 지인들이 바라는 바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 단편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보면 빤한 것인데 상당히 유쾌하고 즐겁다.

 

조지가 아자젤을 소환할 때 아자젤은 여러 가지 불만을 말한다. 이 단편의 단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는 도입부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조지가 요청하는 소원의 종류도 너무 다양하다. 농구 선수는 최고의 골잡이가 되길 바라고, 여성 성악가는 최고의 노래를 부르게 만들고, 사랑하는 남편이 가진 최고의 표정을 사진으로 가지고, 모든 여성을 매혹시키는 향기를 내품는다. 반중력의 능력을 갖는 인물도 생기고,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실로 만드는 여성도 있다. 술에 약한 여자를 강한 술에도 끄떡없게 만들고, 제 눈의 안경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외모를 바꾸는 여자가 있고, 싸움에서지지 않기 위해 상대방에게 붙잡히지 않는 능력을 가지는 대학생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능력이나 변신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조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은 왠지 공감대가 많이 생긴다. 바로 <글 쓸 시간>에 나오는 모르데카이다. 조지가 술과 밥을 얻어먹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작가이기도 하다. 늘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린다. 불만을 말한다. 조지가 아자젤을 불러 그가 기다렸던 시간을 없애버린다. 원하기만 하면 웨이트도, 택시도, 버스도 바로 도착한다. 글 쓸 시간이 늘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글쓰기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할 시간을 빼앗긴 것이다. 대기 시간이 사라지면서 생각할 시간도 같이 사라지면서 글 쓸 아이디어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시간들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다. 뭐 작가가 이것을 노리고 쓴 소설은 아니겠지만 짜투리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겹쳐 더 강하게 다가왔다.

 

각 단편들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어 그렇게 지겹지 않다. 작가 자신이 조지를 통해 자신의 감상을 그대로 토해내는 듯한 부분도 많아 재미있었다. 작은 악마 아자젤이 조지의 소환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이를 무마하는 조지의 말솜씨는 또 다른 재미다. 이야기가 끝난 후 조지와 작가가 보여주는 약간은 신경전은 어느 순간 하나의 예식처럼 다가온다.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아자젤이 조지가 원하는 것을 시키는 그대로 적용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웃기고 섬뜩하고 유쾌하고 안타깝고 재미있다. 이 다양한 감정들이 이 단편들에 녹아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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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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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를 유혹했던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인간의 관점, 새의 관점.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란 물음에 이전까지는 인간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의 관점에서 그 감각을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새의 감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전히 인간의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자각과 정서를 덧붙였다. 이처럼 새의 감각을 이해하는 도구는 여전히 인간의 감각인 것이다. 한 종이 다른 종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 기준이 각 종의 감각과 관점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무수한 노력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새의 관점으로 다가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하나의 계기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은퇴한 감각생물학자들이 연구할 당시 아무도 관심이 없거나 믿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조류 감각생물학자는 저자의 이런 연구와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지 못하자 자료를 불태웠다고 하면서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시대별로 각광받는 생물학 분야가 다르니 감각생물학에도 볕들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단순한 수사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감각생물학자가 아니고 조류를 연구하는 행동생태학자라고 소개한다.

 

행동생태학은 앞선 세대의 생물학자들에게 미스터리였던 것을 이해하는데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물론 한계도 있음을 같이 말한다. 하지만 행동생태학자들이 관점을 바꾸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그 발전은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과학사를 읽을 때면 늘 마주하는 것이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세밀한 연구와 조사와 실험 등을 통해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점이 바뀌는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을 불러오는 것도 역시 아이디어다.

 

새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깊은 곳까지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을 것이란 것은 몰랐다. 새의 감각을 연구한다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는데 이 연구가 실생활에 응용되어 활용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인간의 생활과의 접점이 더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점점 많아진다. 단순히 학문적인 호기심을 넘어선 것이다. 과학과 학문이 교차하고 융합하면서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효과나 효능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가끔 보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부분이 잘 나온다. 사실 이 책은 그런 접점들을 중심으로 다루는 책은 아니다.

 

새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보이는 대로 기록한다고 해도 그 사이에 인간의 관점이 끼어들고 인간의 감각이 지닌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도 과학사에 비일비재한 일이다. 시각과 청각과 촉각 등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미각과 후각은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이 분야의 연구가 아직도 다른 감각에 비해 상당히 뒤쳐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류의 행동을 관찰하고, 새의 사체를 해부하거나 fMRI 등의 기구를 촬영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이런 관찰과 조사와 실험을 통해 조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 깊고 넓게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이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자각이다. 지구의 자기장을 보고 날아다닌다니 신기했다. 눈 뒤에 자철석이 있다는 부분에서 SF적인 상상력이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서를 다룬 장은 좀 더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속설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지만 없었다. 기존의 서술 방식대로 하나의 감각을 하나의 학설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발견으로 인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잘 모르는 인물과 새들의 이름만 잔뜩 읽고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스쳐지나왔다. 비전문가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다. 이것은 어쩌면 저자의 마지막 문장과 아주 조금은 이어질지 모른다. “현재 우리는 새의 감각을 (적어도 일부는) 기초적으로는 훌륭히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해야 할 것이 많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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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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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리코를 위해>란 작품의 속편 격이란 말이 있어 살짝 주저했다. 작가의 비극 시리즈 3부작 중 이미 <1의 비극>을 읽었고, 그때 이 시리즈의 연속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그런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린 것은 <요리코를 위해>의 영향력이 책 끝까지 미친다는 점이고, 맞는 것은 전작을 읽지 않았다 해도 이 소설의 재미를 누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두 사건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전작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강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린타로의 심리가 이어질 뿐이다.

 

하타나카 유리나를 증오하는 누군가의 편지가 먼저 나온다. 이 편지를 받은 누군가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협박을 당한다. 어둠 속의 배후자는 아이돌 가수 유리나가 연예계에서 추방되길 강하게 바란다. 십칠 년 전 그녀의 어머니가 한 일을 강조하면서. 사실 이 간단한 편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유리나를 파멸시키려는 누군가와 십칠 년 전 어머니가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의 숨겨진 비밀 등이 함축적으로 담긴 편지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설정이 스쳐지나간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파편들이다.

 

유리나는 신곡을 발표한 후 라디오도쿄의 <새터데이 나이트 키즈>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다. 방송은 잘 되었고, 그녀와 같이 방송한 DJ가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면서 연기를 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소속사의 뒷받침이 약한 것을 아쉬워한다. 매니저와 함께 돌아가려는데 방송사 직원이라며 한 남자가 다가온다. 매니저에게 기획사 대표가 전화가 왔다면서. 그리고 그 직원은 유리나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놀란다. 창고로 사용하는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칼을 꺼내 협박한다. 몸싸움이 일어난다. 어딘가 찔린 느낌이다. 정신을 잃는다. 머릿속으로 협박 편지가 지나간다.

 

유리나의 소속사인 마큐리기획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다. 그녀의 잠재력이나 능력에 비해 회사의 역량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 가사이의 열정과 눈은 정확하다. 이 날도 가사이의 이전 회사인 델타의 동료가 유리나와 함께 회사로 돌아오길 권유한다. 겉으로만 보면 좋은 스카우트 제의지만 속내는 다른 것이다. 델타의 혼다 부장이 가사이의 파멸을 바라고 있기에 때문이다. 가사이는 이것을 알고 있다. 이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니나는 영화계의 거장 모리야마 감독의 신작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형 기획사의 혼다 부장은 이미 내부 정보를 얻어 이것도 방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리나를 둘러싼 외적인 방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의 비극>과 달리 린타로의 출연이 많다. 유리나보다 먼저 등장하여 요리코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뇌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의식은 엘러리 퀸의 소설 속 한 문장에 매달려 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란 퀸의 고뇌가 담긴 문장이다. 작가가 소위 말하는 퀸 매니아였던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소설 속에서 퀸의 작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고뇌는 명탐정으로 불렸던 명성을 어느 순간 지나간 과거로 만들고, 본업인 요리코에 대한 소설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늦은 밤 아버지 노리즈키 경시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바로 유리나다. 이전 게쓰쇼쿠소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물론 린타로도 이 사건에 개입했고, 그녀를 알고 있다. 이제 반 년 동안 요리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칩거하던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으로의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유리나가 노리즈키 경시에게 전화를 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창고에서 벌어진 격투와 그 직원이 말한 살인자의 딸이란 말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린타로를 만나 어떤 예감 때문에 라디오도쿄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칼에 찔린 남자가 있다. 유리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녀가 찌른 것이 아닐까 하고.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린타로와 노리즈키 경시가 집에서 만나 그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입고 있던 옷을 챙겨 검사한다. 칼에 찔린 남자의 혈액이 맞다. 단순한 증거들이 범인으로 그녀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고 엇나가는 뭔가가 있다.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 모드로 조금씩 돌아간다.

 

유리나의 파멸을 바라는 편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내적 외적 상황들이 빠르게 변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쌍둥이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에 늘 심리적 억압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유리나였기에 창고의 격투는 그녀의 심리 깊은 곳을 건드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노리즈키 부자가 명확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녀의 심리 상태는 불안하다. 그리고 가사이를 파멸시키려는 델타의 작업은 점점 치밀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유리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외적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다. 방송과 아이돌 관계에 대한 글도 길게 실을 정도다. 재미있고 반가운 이름도 많이 보인다.

 

작가는 유리나가 느끼는 살인자의 피에 대한 공포와 린타로의 자책감을 연결시킨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과거에서 찾는다. 유리나는 십칠 년 전 사건에서, 린타로는 퀸의 글에서. 단지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명탐정 린타로의 회색 뇌세포를 자극하여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단지 그는 논리의 파탄과 관계자들의 사실적인 설명으로 추리할 수밖에 없다. 그 추리가 현실화되는 것은 범인의 자백도 있지만 실제로는 경찰들의 탐문수사와 과학수사 등이다. 처음 예상한 전개와 다른 반전이 펼쳐지고, 깔끔하고 명확한 탐정의 모습보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더 많다. 지금의 린타로를 이해하기 위해 <요리코를 위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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