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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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1983년 10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이 연도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연도일까? 이 의문은 소설을 끝까지 읽은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복지정책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 가끔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지닌 채 다가온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열다섯 살 소녀 넬라다. 그녀의 아빠는 마약 등을 팔다가 감옥에 들어갔고, 엄마는 복지수당으로 겨우 살고 있다. 엄마가 해야 할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넬라에게는 로베르트라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눈을 다쳐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보다 그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 때문에 오해를 한다. 넬라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동생 로베르트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에게 문제가 생겨 이 남매가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가는 것이다.

 

스웨덴 팔켄베리 외곽에 있는 자그만 동네 스콕스토르프에 그들은 살고 있다. 이 동네는 최신 영화가 상영되는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대에 뒤쳐져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시선을 끄는 산업은 밍크 공장이다.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밍크코트의 원료가 되는 그 밍크 말이다. 소설 중간에 이 공장의 모습이 잠시 나오는데 끔찍하다. 빠르게 읽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 이미지를 만든다면 참혹한 공간이 펼쳐질 정도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공장이 일자리를 제공하는 좋은 곳이다. 이런 일자리를 거부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의 수당으로 살아야한다. 넬라의 아버지가 잠시 이곳에서 일 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넬라는 학교 문제아들이 고양이를 불태우는 장면을 봤다. 그냥 지나갔는데 그 무리의 짱인 예라르드가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한 일 때문에 학교에서 문제가 되자 넬라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너가 그 사실을 선생에게 고자질한 것이 아니냐 하고. 그리고 동생 로베르트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녀가 뒤쫓는다. 에라르드 일당은 약자인 로베르트를 괴롭히고 넬라를 희롱한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에서 폭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잔혹한 행동이 감정 한 곳을 건드리면서 나도 폭력으로 그를 응징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제3자이자 모든 것을 본 독자의 단순한 감정 이입일 뿐이다. 현실에서 이 일을 당하는 넬라 남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결국 예라르드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둘은 풀려난다. 하지만 그 돈은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남매가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도둑질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라르드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사람들이 그 힘에 굴복하면서 쩔쩔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실제 그는 누가 그를 배신했는지 알고 있다. 알지만 이것을 숨긴 채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덫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크고 강한 덫이 쪼여온다. 그가 보여준 폭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고 잔혹하다. 16살이 되지 않아 법적 처분도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많은 소년 범죄 소설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는데 과연 현실의 스웨덴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녀가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인어 남자다. 동화나 판타지에 등장하는 인어의 남자 버전이다. 토뮈의 형들이 바다에 어업을 나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인어 남자를 낚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괴물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것을 바다에 바로 버리거나 아니면 언론에 노출하여 유명해지는 것인데 이들은 몰래 이 존재를 숨긴다. 그러다 동생에게 들키고 나중에는 넬라에게까지 들킨다. 이 존재는 토뮈 형들에게 당한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인어 남자가 느끼는 아픔에 넬라는 공감한다. 이것이 그와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낯선 세계와 낯선 존재들의 폭력 아래 있던 그에게 감정을 공유하고 자신을 치료해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인어 남자가 등장했다고 현실의 참혹함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교차한다. 현실의 넬라와 인어 남자에게 공감하는 넬라로. 아직 예라르드와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아빠가 온 뒤 생긴 문제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먹을 것이 집에 하나도 없는 날도 생긴다. 배고픔은 동생이 그렇게 싫어하는 학교에 오게 만든다. 예전에 방학이 싫다고 했던 한 초등학생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즐거운 방학이 누군가에는 배고픈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 곳곳에 우리보다 엄청난 복지 정책을 펼치는 스웨덴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읽는 내내 불쾌한 기분과 분노에 사로 잡혔다. 사이코패스 같은 예라르드의 존재와 자신들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행동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도. 나약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넬라의 강인한 생명력과 용기는 잠깐이나마 그것을 잊게 만든다. 비록 그녀가 의도한 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지만 말이다. 가독성은 좋지만 불편한 현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인어 남자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인어 남자는 누굴까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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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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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글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가 진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한 말이다.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강신주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말을 뒤집으면서 그들의 사고가 얼마나 그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말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고,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프레임의 변화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은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프레임을 짜서 활성화시킨다. 이 프레임이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프레임 중 하나가 ‘무상급식’이다. 공짜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국민에서 심어주는데 이 단어를 ‘공공급식’으로 바꾸면 의미가 뒤바뀐다. 우리의 언어인 ‘공공급식’이 되면 일반 대중들의 반감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이미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의 무능과 공부 부족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주의자인데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자 프레임의 중요성을 이미 10년 전 이 책의 초판에서 말했다. 이번 책은 10주년 전면개정판이다. 프레임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던 것은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였다. 사실 이때는 방송을 들어도 잘 몰랐다.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꾸 듣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깨닫게 되었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 부분에서 야당은 여당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익에 비해 좌파의 전략적 사고의 부재는 늘 아쉬운 대목이다. 얼마 전 읽은 우석훈의 글에서 당직자에 대한 분석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던가. 전략적 사고 부재는 쟁점별 사고로 이어지고, 최소한의 변화로 다른 쟁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 늘 기존의 쟁점은 새롭고 더 큰 쟁점에 의해 너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미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의 프레임에 어떻게 당했는지 예를 들어 보여줄 때 결코 남의 나라 사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양당을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님으로 나누었다. 엄격한 아버지는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고, 자상한 부모님은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것은 ‘국가는 가정’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쪽으로 쏠린 사람들에게 이 개념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는 어떤 프레임으로 상황들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긴다. 실제 내용과 다른 용어로 프레임을 짜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하는데 제대로 된 반박도 프레임도 짜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빈번하다. 선거가 1%만 더 많으면 이기는 게임임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의존한다.’ 우린 이 기본적인 생각을 늘 잊고 있다. SKT나 KT의 인터넷기본망을 누가 깔아두었으며 공공자산을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무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들이 사용료로 내는 비용으로 과연 사회적 공공망을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가능한지 되물으면 그 답이 금방 나온다. 이것은 수서발 KTX 민영화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이런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금인데 자본가들은 세금 폭탄이니 세금 구제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게 만드는 프레임 싸움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패배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분노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보수주의자들이 싸울 때 그들의 분쟁이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의 착각이다. 그들의 분쟁 지점은 도덕적 이론이 아닌 관심 영역이다. 큰 전략에서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가능하다. 쟁점을 프레임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은 이 프레임의 핵심을 잘 드러내준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개념’에 관한 문제다. 방송 연설을 비롯한 언론에서 만들어낸 인상적인 어구가 조금이라도 의미 전달 효과를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뇌에 개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아직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현실에서 이 책은 내가 보수주의자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현실 정치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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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놈들 전성시대 - 우석훈의 대한민국 정치유산 답사기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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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우석훈의 정치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은 글이다. 이전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녹색당 창당을 위해 뛰어다녔던 그가 보수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들어갔다. 이 자리는 정말 한직이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자리라고 한다. 돈을 많이 주지 않지만 정무직이라고 하는데 하는 일이 없다. 부원장이란 직함은 있지만 예산권도 인사권도 없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이다. 이런 자리에 그가 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서 실제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은 현실 정치의 실체 중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왜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 경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경제 정책은 교묘한 언론 작업으로 그 실체를 왜곡시키고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얼마 전 있었던 연말정산 파동도 월급쟁이 기자들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많이 언론에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어용경제학자들은 자유화를 외치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화일 뿐이고, 부의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란 주장은 자본의 거대한 탐욕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건들을 두고 벌어지는 언론의 보도 형태는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해서 기레기라는 단어에 딱 맞는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분노하게 된다. 순간적인 분노와 미움이 자꾸 쌓여 정치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할 것들,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 등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미움의 에너지를 모은 ‘잡놈들’을 몰아내자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심한 박근혜에 집중된 미움과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을 없애자고 한다. 실제 생활에서 그 이름을 듣고 무덤덤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이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다는 경상도 보수 어른의 그것과 닮아 있는 감정이다. 실생활 속에서 이 감정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몰아내려고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국시대 형가와 관련이 있다. 형가의 노래가 곳곳에 인용되고 그의 의지와 삶이 이 글의 중요한 요소이다. 실패한 자객이자 협객인 형가를 결혼 전 그렇게 많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삼국지> 속의 강유와 육손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다. 이문열의 <삼국지>에는 강유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어릴 때 읽은 일본판 <삼국지>에는 강유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이야기 속에 아주 잘 나온다. 저자가 프랑스 명재상 콜베르나 강유 등을 인용한 것은 한국에 이런 인물이 없고 나타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인물이 되겠다는 야심이 그에게는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당직자에 대한 글이다. 새누리당의 당직자는 당내 선거에 개입하는 즉시 제명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가만히 있는 당직자는 선거 후 곧바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조직의 힘과 결집으로 대변된다. 법에서 인정되는 당직자는 99명인데 새누리당은 이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들을 자신들의 세력 아래 두면서 그 힘을 분산시킨다. 좋은 자원을 불안한 일자리 등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정책을 만들고 틀을 짜서 국민들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는데 새누리당에 비해 절대적인 약세다. 제대로 된 시스템 부재는 늘 안타깝고 아쉽다. 그것이 제1야당이라는 사실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당원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당비 천 원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된 당이라면 일정수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조는 당원이 없어도, 아니 없어야 더 좋은 모양이다. “당원이 없으니 공천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걸 둘러싸고 친소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외부에 계파 문제로 알려진 문제의 원인으로 정상적인 당원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있는 당원들도 이미 중장년을 넘었다고 한다. 새로운 피가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를 보면서 늘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은 느낌이다.

 

국민행복시대가 국민‘항복’시대로 바뀌었다는 말은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지지만 좀더 나은 인물을 뽑기보다는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로 물타기를 하면서 새누리당이나 기존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상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앞서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언론이 보여주는 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정치를 잘 한다고 말한다. 아마 나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미움과 증오는 그들처럼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서면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이것을 제대로 헤치고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정치의 한 면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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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진의 종횡무진 미술 오디세이 - 만화로 들려주는 진짜 미술 이야기
장우진 글.그림 / 궁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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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미술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책들을 읽을 때면 뭔가 알 듯하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는다. 학창 시절 교양 과목으로 한 번 수업을 들었지만 역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에게 미술은 늘 이런 식이었다. 아마 이 책도 그런 책 중 한 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 바로 만화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활자에 의한 강박은 사라졌다. 많은 자료 사진과 이것을 패러디한 그림과 만화가 상대적으로 더 쉽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재미난 만화나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모두 다섯 장으로 쓰여 있다. 미술의 정의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묻는다. 미술의 정의가 과연 가능한가? 라고.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다. 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미술을 정의하기 위한 수많은 방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의 좁은 개념을 넘어 현재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미술이론으로 그 폭을 넓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포스터모더니즘까지 말이다. 그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혹은 본 미술이론과 미술품들이 나온다. 일반적인 미술 서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그 개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해 부족 때문인지 명확한 실체가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술과 건축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낸 대목은 흥미로웠다. 멋진 건축물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많은 현실에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만화로 가볍게 풀어낸 미술 이야기라는 한계 속에서 간단하고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논쟁거리를 깊게 다루지 않고 스쳐지나가듯 다룬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한계지만 이런 분야까지 미술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충분히 확장시킨 것이다. 행위 예술이나 설치 미술 등에만 머무르고 있던 예술의 한계가 더 커졌다. 거시적인 미술의 범위 확장은 곧바로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시적으로는 선, 면, 명암, 색, 구성, 착시 등을 다룬다. 각 소재의 설명은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가거나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던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가능한 것이 실제 건축물에서 불가능한 것도 있는데 이런 그림은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다. 좀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 해석이 끼어들 경우 하나의 그림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해석에 매달리면 그림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마음이 사라진 곳에는 이성만 남는다. 미술 감상이 이제 기호의 해석으로 바뀐다. 나무는 보지만 숲을 놓칠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자연의 모방에서 시작한 미술은 이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미술이 어떤 모습일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함께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미술 서적이 나와 고대부터 현재까지 미술이론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갇힌 미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액자도 마찬가지다. 미술이, 예술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미술을 더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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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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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만 난해한 소설집이다. 열아홉 편의 단편들이 각각 다른 분량과 분위기를 지녔는데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의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많고, 어떤 것은 너무 짧아 어! 하는 순간 끝나기도 한다. 가끔은 그 결말이 명확한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 그 불친절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지만 왠지 이야기를 중간에서 뚝 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다른 단편에서 앞의 결말을 보고 연작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책 끝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일부분 담겨 있다.

 

읽으면서 짝이 되는 연작이 아닐까 생각한 작품들이 몇 편 있다. 첫 작품 <변심>과 <오해>가 약간의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면 <충고>와 <협력>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변심>에서 치밀한 설정이 뭔가를 보여줄 듯하다가 끝나 ‘뭐지?’ 하는 황당함을 느꼈다면 <충고>는 어떤 결말일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협력>에서 반전의 재미를 만끽했다. 반면에 <오해>는 <변심>이 보여준 치밀함과 장치들을 결코 넘지 못했다. <타이베이 소야곡>과 <화성의 운하>도 짝을 이루는데 영화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던 시절에 너무나도 유명했던 에드워드 양을 모델로 썼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그의 작품 목록을 검색해봤다. 그 유명한 <고령가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잘 모르고, 본 영화는 더 없다.

 

짝을 이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SF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들도 눈에 들어온다. <주사위 7의 눈>이나 <소녀계 만다라>나 <도쿄의 일기> 등이다. 무의미한 토론을 뒤집는 <주사위 7의 눈>의 주장이 흥미로웠고, <소녀계 만다라>에서 만물이 조금씩 움직이는 세계에 사는 학생들의 모습과 일상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봤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욕이 나왔다. 이 불친절함이란... 미래의 일본을 상상하면서 쓴 글이 섬뜩하면서도 재미있었던 <도쿄의 일기>는 얼마나 지금 일본의 현실을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둘이서 차를>이나 <나와 춤을> 같은 작품은 모델이 되는 인물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답은 작가의 글 속에 있다. 음악과 춤이 짝을 이룬다는 점과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애정이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변명>과 <극장에서 나와>는 이야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변화가 순간적으로 가슴 깊이 와 닿지 않았다. <성스러운 범람>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와 <꼭두서니 빛 비치는>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취향과 맞지 않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유>의 황당한 이야기가 가볍게 읽혔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양한 설정과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지만 그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열정은 같다. 분량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쓴 듯한 느낌이다.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볼 때는 노스탤지어의 작가라는 명성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 인간과 동물이 정보를 나누고, 교감을 하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긴다. 이렇게 열아홉 편은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열여덟 편이다. 나머지 한 편은 표지에 있는데 조금 읽기 불편하다. 다른 단편집과 이어지는 작품들도 있는데 저질 기억력과 아직 읽지 못한 단편들로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를 잘 표현해주는 작품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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