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느 별에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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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6년에 처음 나온 후 몇 번의 개정판을 거친 작품이다. 개정을 하면서 열여덟 편의 산문을 추가했다고 한다. 이런 개정증보판을 최근에 그의 시선집이나 산문집에서 자주 보던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전에도 쓴 글이지만 최근에 가장 많이 읽은 시인이자 산문집의 작가가 바로 시인 정호승이다. 개인적으로 그에게 열광하는 편이 아닌데 기회가 많이 닿았다. 오래 전에 산 시집 <서울의 예수>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기억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언제 읽을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읽지 않은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최근에 시인들의 산문집이나 여행에세이에 손이 많이 간다. 아마도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시인의 감수성과 관찰력에 대한 예찬을 들은 후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실제로 읽으면서 몇 번 감탄한 적도 있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의 젊을 때는 에세이집보다 소설과 시집을 더 읽으라고 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 나의 귀는 얼마나 얇은가. 덕분에 소설을 더 열심히 읽었고, 잘 모르는 시집도 사서 이해도 못하면서 읽었었다. 지금도 시는 어렵고 힘들다. 가능하면 하루에 한 편은 꼭 읽으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하루 세 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분의 1로 줄었는데도 말이다.

 

이 산문집은 괜히 비판적으로 읽게 되었다. 사소한 트집 같은 것을 잡는데 그것은 나의 오독이나 보충설명이 곁들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첫 이야기인 ‘나를 먼저 용서합니다’를 읽으면서 베드로와 가롯 유다의 일화의 해석이 과연 용서의 문제인지, 아니면 용서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속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이 생략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그가 세상을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낸 이야기 속에서 나의 뒤틀린 감성과 이성이 약간의 불만이나 트집을 잡는 경우가 있다. 실제 이런 경우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와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보니 이 몇 개가 부각되어 다가오는 모양이다.

 

이런 차이가 부각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은 그의 생각과 통찰이 더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조카의 파혼 소식에서 나온 이야기나 십자고상 등이 대표적이다. 나의 이성이 과학과 철학적 분석으로 그의 글을 나누다보니 그의 감수성과 감정의 깊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생긴 간극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 등은 읽으면서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정채봉 작가와의 일화는 가슴이 먹먹했지만 부러운 마음도 생겼다. 이런 관계라면 누가 부러워하지 않을까 하고.

 

시인에 대한 두 글이 있는데 하나는 탈북 시인 장진성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를 리뷰한 글이고, 다른 한 편은 고 박정만 시인 이야기다. 탈북 시인의 시는 너무 직설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삶을 사는 북한의 실상이 드러났다. 초근목피를 먹는 것으로 알고 쌀밥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나 쌀밥 먹었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선배였던 고 박정만 시인이 필화로 고문을 받고 알코올 중독의 폐인이 되었고, 그 여파로 술로 그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는 글에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얼마나 광범히 하게 퍼져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분단체제 아래 남북의 같은 민족들은 각각의 독재자들에 의해 엄청난 억압과 고통 아래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그리움과 추억과 사랑이다. 옛 추억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사람과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잔잔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감싼 채 고요하게 다가온다. 비판적으로 읽었던 몇 가지 이야기도 있지만 시인의 삶과 철학이 녹아있는 이 책에서 나의 삶도 같이 되돌아보게 된다. 아직 나의 마음에 시인처럼 모든 것을 담을 그릇도 여유도 없어 이 산문집을 비판적으로 읽었는데 아마 나도 시인의 나이가 되면 이 세상과 사람들을 지금과 다르게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맙습니다’는 자주 사용하는데 ‘사랑합니다’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이 좀더 나올 수 있게 나 자신을 만들고 싶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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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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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중 겹치거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글을 가려낸 후 묶은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펼쳤을 때만 해도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착각이었다. 작가의 소설을 딱 한 편 읽었는데 그때도 상당히 힘겹게 읽은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문장이 나의 호흡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쓴 순우리말이 낯설어 몇몇 단어는 사전 검색을 해야만 했다. 나쁘게 말하면 나의 단어 실력이 부족한 것이고, 좋게 말하면 덕분에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한 편의 칼럼이 원고지 4,5매 분량이라 글을 쓴 작가는 힘들지 모르지만 읽는 독자는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 실제 글을 쓰다보면 분량이 적은 글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긴 글을 한 번 풀리면 단숨에 쓸 수 있지만 짧은 글은 핵심을 잘 뽑아내고 분량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을 때는 둘 다 어렵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분량 조절이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한 장의 품의서 안에 핵심만 추려서 넣어야 하는데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이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 회사원인 모양이다.

 

4부로 나누어진 글들의 목차를 보면서 아련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랐고, 재밌고 즐겁게 빨리 읽자고 생각했다. 어떤 글은 집중이 잘 되어 빨리 읽었고, 어떤 글은 쉽지 않았다. 작가의 문체는 호흡이 짧지 않다. 이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면 빨리 읽은 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작가의 글 중에서도 나온 느리게 읽기가 필수적이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나보다 어린 작가의 글이 더 웃어른처럼 다가온다. 내가 자라면서 시골 할아버지집에 가서도 제대로 겪지 못한 일들이, 옛날 작가들의 글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과 삶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개발 및 발전 속도가 달라서 그런 것일까? 도시에서 자란 탓인지, 나의 기억이 잘못되어 있는 탓인지 모르지만 언젠가 한 번쯤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가의 글은 솔직하다. 아니 솔직하다고 느낀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참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보일러 수리비 만 원을 청구하는 것을 보면 그의 곤궁함이 느껴지고, 더 적은 돈으로 살아야 하는 환경을 봤을 때는 예전 옥탑방 친구방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었지만 몇 년을 그곳에서 살아야 했던 친구의 힘겨움이 지금에 와서야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을 보면 내가 편하게 산 것 같다. 학창시절 공부하지 않은 것이야 똑같지만 등록금을 아끼기 위해 전학점 F를 요청하고 받아 환불을 요청하는 에피소드는 황당하면서도 가슴 한 곳이 아렸다. 이렇게 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가슴에 쉽게 잘 와 닿았다.

 

시간 순으로 나열한 글이 아니라 글 내용만 가지고 그 시대의 풍경이나 사건을 짐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에 연재한 기간과 글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건도 적지 않다. 이런 글들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시각은 단편적인 모습 너머로 한 발 더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내가 너무 단순하고 쉽게 그 사건을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글을 불편해하고 그 이면에 깔린 제국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주제 사라마구의 글은 그냥 피상적으로 알던 그의 삶을 더 생각해볼 필요를 느꼈다. 그 외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그를 흔들고 깨우고 나아가게 만들었는지 보면서 나의 삶을 아주 잠깐 돌아보게 되었다.

 

단순히 과거의 추억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기 삶을 토로하는데 그쳤지 않고 풍자까지 다루면서 다양한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이때는 더 집중해야 한다. 조금만 집중을 흐려도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의 고마움을 시간이 흐른 뒤 깨닫게 된다는 기본을 몇 번이나 다룰 때는 나도 뜨끔했다. 얼마나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막대했던 순간이 많았던가. 끝으로 사투리를 다룬 글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이것을 둘러싼 양극화는 누구나 한번은 깊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아이들이 지방에 가는 친구들에게 시골에 가냐?. 묻는 것에서 이것은 더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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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사랑하는 방법
헤일리 태너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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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소년의 이름은 바츨라프, 그는 후디니처럼 위대한 마술가가 되길 꿈꾼다.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레나, 그녀는 황금빛 비키니를 입고 마술가의 도우미가 되길 바란다. 이 둘은 모두 러시아 이민자 2세대다. 작가는 차분하게 이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같이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운명 같은 사랑을 한다. 그냥 함께 자랐다고 이어지는 사랑이 아닌 떨어져 있어도 매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사랑을 한다. 비현실적이라 약간의 거부감이 생기지만 그들의 사랑은 보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영원히 함께 하길 바라게 된다.

 

러시아 이민 세대의 삶을 잘 알지 못한다. 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우리의 이민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바츨라프의 엄마와 아빠가 보여주는 일상에서는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미국 사회에 동화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위성방송으로 러시아 방송을 보는 아빠는 말할 것 없고, 레나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교정해주는 엄마조차도 자신의 의식과 생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이민자로서의 삶을 벗어던지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에서 영어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이민1세대들은 언제나 2세대가 미국인으로 살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지 않지만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다르다. 레나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서 세대 간의 갈등이 빚어진다. 미국인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러시아인이길 바라는 부모와 미국인으로만 살기를 바라는 자식 간의 갈등 말이다. 이 사이를 더 벌리는 것은 교육이다. 영어다. 살면서 접하게 되는 문화다. 엄마 라시아가 열 살이나 된 아들이 레나와 단 둘이 방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세대 차이가 혹은 문화 차이가 나타난다. 읽으면서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아들일까 아니면 레나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바츨라프와 레나의 만남은 우연이자 운명이다. 레나는 어떤 할머니와 살다가 그녀가 죽으면서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이모는 술집에서 일하고, 레나를 살갑게도 애정 가득하게 돌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갑자기 불쑥 끼어든 짐으로 생각한다. 레나가 사는 집의 설명을 읽다보면 그것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소설 마지막에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현실의 무거움이 그녀를 바라는 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하지만 이 때문에 레나는 라시아의 손을 잡고 바츨라프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게 된다. 그리고 키 때문에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게 되면서 마술공연을 보게 된다. 바츨라프 평생의 소원인 마술사 되기가 이때 생겼다.

 

이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엄마 라시아다. 아들과 레나의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레나가 처한 환경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매일 밤 레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잠을 재우고, 방을 청소하고, 보살핀다. 그녀가 레나를 아들에게 데리고 왔을 때 바란 것은 레나 이모와 친구처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나 이모가 바란 것은 자신이 돌 볼 레나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것이었다. 레나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칠 년이란 시간 동안 가슴에 품고 아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도 이 둘의 사이를 알고, 아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배려와 시간도 이 소년 소녀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지만.

 

소녀는 탄생부터 그녀가 입양되기 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라시아의 관심과 보살핌을 제외하면 그녀는 늘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늘 불안과 배고픔에 시달렸다. 바츨라프 집에서 뭔가를 훔치는 것도 불안과 결핍에서 비롯한 것이다. 입양되어 간 집에서 사랑을 받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늘 불안을 품고 산다. 강박증세가 보인다. 화장실에 앉아 불안과 걱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지고 안정적인지 알게 된다. 그녀가 다시 바츨라프를 만나 자신의 부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것을 채워주는 사람이 바로 바츨라프다. 마지막 이야기는 읽으면서 이성과 감성이 끝없이 충돌하게 만들었다. 왜냐고?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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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거탑 - 소설 방송국 기업소설 시리즈 4
이마이 아키라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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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한때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하얀 거탑>이 연상된다. <하얀 거탑>이 대학병원 내부의 권력 다툼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면 이 <유리 거탑>은 일본 최대의 공영방송 NHK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작가는 NHK방송 간판 프로듀서였고, 시청률 20%대인 <프로젝트 X>란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다고 한다. 한국도 요즘은 20%대 방송이 드문데 일본의 경우는 더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 히트작의 경우도 계속해서 20% 이상 유지하는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로 몇 년 간 이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이 대단한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방송국을 나와 쓴 자전적인 글이 바로 이 소설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듀서라면 승승장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조직이 점점 거대화되고 관료화되다보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정상적으로 흘러가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그것의 가장 핵심은 바로 권력을 둘러싼 파벌 전쟁이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등장 때문이다. 여기에 황색저널리즘이 가세하게 되면 사실보다 거짓이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되고, 여론은 순식간에 변하게 된다.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올해의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상황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을 호도하고,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것이다.

 

자전적인 소설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니시의 입장에서 풀려나온다. 작가가 퇴사한 후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료 조사를 한 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했는지 모르겠지만 글 속에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감정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다가 이런 부분이 나오면 과연 그런 일만 가지고 이런 방해가 가능할까? 혹은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세상은 현실이 상상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약간의 반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고 니시를 응원하게 만든다.

 

니시는 거대한 방송국에서 그냥 흔한 지방 출신 PD 중 한 명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PD지만 누구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은 이라크 전쟁이다. 누구도 가길 원하지 않는 출장을 그는 손을 들고 간다. 그가 간 곳은 이라크 군 포로가 된 미군 장교 더든 소령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곳에서 니시는 더든 소령의 부모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일상을 찍는다. 자식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것이다. 이것을 위해 본부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촬영 필름을 들고 와서 멋진 시사를 한다. 그를 미국으로 보냈던 프로듀서는 직감한다. 10년에 한 번 있을 작품이라고. 이제 그는 본사에서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는다. 시간이 흘러 밀레니엄이 되었다.

 

니시는 9시대 방송을 하나 맡는다. 제목은 <챌린저 X>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으로 경기가 하강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자존감은 바닥인 상태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의 일본을 만들게 하는데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다한 일반 사람들을 조명한 프로그램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제품에서 시작하여 자그만 학교의 성공담까지 일반 사람들의 삶을 극적으로 끌어낸 작품이다. 서서히 시청률이 올라가면서 대중들은 이 프로그램에 빠져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방송국의 위상도 올라간다. 하지만 이것을 질투하는 사람이 생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니시를 질투하는 것이다. 능력보다 관료적인 시스템에 의해 승진했던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인 방송국 사장이자 천황으로 불리던 도도의 총애를 받는 그를 질투한다. 조그만 방해공작도 펼친다. 이런 장애 요인을 니시는 천황의 힘을 빌려 무너트린다. 그들과 니시의 골은 더 깊어진다.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도도의 권력도 조그만 사건에서 시작하여 점점 커진다. 한 프로듀서의 비리가 방송국의 사장을 물러나게 만든다. 강력한 방어막이자 버팀목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니시의 적들은 황색저널리즘과 손을 잡고 니시의 주택을 호화주택이라고 왜곡하고 거짓으로 공격한다. 호화주택이란 말에 고 노무현의 집과 요트가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연상작용이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니시는 어떻게 하던지 계속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실수가 일어나고 적들의 공격은 더 강해진다. 관료적인 조직에서 자신들의 자리만 보전된다면 그들은 방송이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다. 분노하게 되지만 현실이다. 바뀐 권력의 힘은 그를 막아줄 생각이 없다. 아니 관심도 없다.

 

단지 몇 년 정도의 시간만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크게 두 프로그램이 중심이지만 그 시간은 거의 20년의 기간이다. 니시를 방송국의 프로듀서를 끌어당긴 것이 더든 소령의 방송이었다면 대중의 엄청난 관심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챌린저 X>다. 여기에 또 재미난 일본의 모습이 있는데 바로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이다. 한국의 경우 공용방송 시청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걷어가지만 일본은 아닌 모양이다. 시청료 납부 거부자가 늘어나면서 천황이라고 불렸던 도도 회장이 물러날 정도니 말이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일본이 굉장히 부러웠다. 왜냐고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화려한 재미나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긴박감은 없지만 한 인간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관료화된 조직 내부의 파벌 권력 투쟁이 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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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 Civil War 프로즈 노블 - 그래픽노블 <시빌 워> 소설판 마블 프로즈 노블
스튜어트 무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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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래픽노블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마블 코믹스의 영화 <어벤저스> 1,2편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마블의 영웅 중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캐릭터는 스파이더 맨이다. 최근에는 아이언 맨이 영화 성공으로 더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는 당연히 스파이더 맨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도 상당히 많고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미국의 경계를 벗어난 곳에서 그 인기는 별로였던 것으로 안다. 물론 이 인기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말한다. 방대한 마블 코믹스의 인기인들은 솔직히 자주 접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이런 캐릭터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는커녕 대부분 번역조차 되지 않은 캐릭터라 아주 낯설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약점을 안고 읽을 수밖에 없다.

 

어린 초인들이 방송을 하던 중 악당이 자폭하면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죽게 된다. 우리가 아는 영웅들은 언제나 이런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막지만 어린 초인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바로 스탬포드 사건이라 불리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만 가지고 보면 솔직히 아이언 맨이 정부의 편에서 초인등록법이란 것을 강제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책소개를 보면 <시크릿 워>에서 이미 헐크의 폭주가 있었다. 그 당시는 아이언 맨도 반대했지만 이 스탬포드 사건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공을 들이는 초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이다.

 

마블이나 영화 속에서 초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숨긴 채 악당들을 체포하고 시민들을 위험에서 구한다. 자신만의 코스튬을 입고 말이다. 그런데 이 초인등록법은 그 익명을 제거하고 자신의 능력을 모두 등록해야만 한다. 훈련기관에서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초인들은 악당을 제거하거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초인을 경찰처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등록을 거부하면 그들은 이 법을 따르는 초인들에 의해 잡혀 프로젝트 42라고 불리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은 ‘1940년대 독일’과 비교한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만들어졌던 시기의 유대인 등록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초인등록법을 두고 초인들은 두 패로 갈라진다. 하나는 아이언 맨 편이고, 다른 한 쪽은 캡틴 아메리카 진영이다. 정부와 실드의 지원까지 얻은 아이언 맨은 이 법을 거부하는 초인들을 압박하고 거부하는 자들을 수용소에 가둔다. 그들이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 법을 위해 방대한 감시 체계를 구축한다. 효율적인 시스템일지 모르지만 개인의 자유는 엄청난 퇴보를 가져온다. 이것을 위한 하나의 이유는 초인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탬포드 사건의 희생자 엄마를 등장시킨다. 이 법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어 순간적으로 아이언 맨에 대한 반감이 깊어진다.

 

소설은 이 초인등록법이란 법을 강제하기 위한 쪽과 반대편의 대결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두 진영의 리더가 느끼는 고뇌가 잠시 나오지만 액션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원래 그래픽 노블이 있는 작품을 소설로 만들면서 섬세한 감정이나 심리묘사가 더 많아졌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초인등록법에 대한 부분은 그대로 둔 듯하다. 많은 초인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역할과 활약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에서도 그것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에 두 초인 진영이 싸우는 장면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깨달음의 순간으로 표현한 것조차 깊은 공감을 끄집어내기는 무리다. 어쩌면 지극히 미국적인 초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래픽 노블이다 보니 한계가 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이성적인 부분에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초인들 일부가 초인등록법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더 ‘1940년대 독일’과 겹쳐진다. 실제 영화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한 편으로 시빌 워가 나온다고 하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언젠가 이 시리즈를 다 읽거나 보게 되면 마블 코믹스가 생각하는 초인등록법의 분명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충분한 재미를 즐기지 못하지만 영화나 다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다만 이 시리즈를 계속 볼 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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