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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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강레오에 대한 나의 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일 때 받은 선입견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 속 그의 행동이 고든 램지를 따라했다고 생각했고, 과연 그가 그들을 그렇게 가혹하게 평가할만큼 내공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 방송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유명 요리사 중 한 명 정도로, 혹은 과대평가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것은 그를 TV라는 매체로 짧게 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물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한 것보다 깊은 이야기가 많아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지우게 되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많은 말을 만들고 있다. 최현석 셰프를 비판한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현석의 예능감과 요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좋아하는데 이것이 강레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혹자가 말한 것처럼 영국 유학파의 자존심이 발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의 오독이라면 사과를 먼저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비판과 논쟁이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입장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에서 이것을 부풀려 자신들의 클릭수 올리는데 자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둘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닌 듯하다.

 

요리사 강레오. 사실 그의 몇몇 런던 고생담은 이미 방송을 통해 몇 번이나 나왔다. 솔직히 신선하지 않았고, 가슴 깊이 와 닿지도 않았다. 몰라서 그런데 그가 배웠다는 요리사들이 얼마나 대단하지 모르다보니 살짝 의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의 고생에 약간의 과장이 있다고 해도 몇몇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과 지식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같다. 최근에 본 방송 하나에서 그 이전에 다른 요리사가 보여준 행동이나 표현과 완전히 달랐다. 이것은 단순히 방송을 좀더 많이 한 것 차이가 아닌 요리와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의 차이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얼마나 한식과 재료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보여주는 지식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폭과 깊이는 단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빠르고 가볍게 읽으려고 생각하고 펼쳤다.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나 생각들이 많았다. 그가 힘들게 고생한 것과 이런 저런 경험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삶과 요리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들이 시선을 끌었다. 우리가 흔히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 속에서 그 잘못을 끄집어낼 때는 더 했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집밥’이다. 언제부터인지 ‘집밥’의 환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식당에서 집밥을 찾고, 엄마의 손맛과 비교하는 것이다. 외지에 나와 오래 산 나에게 솔직히 집밥의 기억은 희미하다. 가끔 가서 먹는 밥이 맛있지만 다른 식당에 가서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거의 없다. 강레오의 지적처럼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책 속에는 강레오의 요리와 식당 운영 등에 대한 철학이 잘 나온다. “요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식재료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조리해야 궁극의 맛을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흐트러지지 않는 기본을 갖추는 일이다. 기교나 개성은 그 다음에 스스로 쌓으면 된다.” 그런데 이 기본이 결코 쉽지 않다. 요리 방송을 볼 때 요리관련 전문가나 요리사가 이 부분을 설명해줄 때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기본이었으니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닌 모양이다. 식당과 화장실의 청결문제나 요리사가 자신이 요리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은 약간의 논쟁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요리사란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한 학생이 그에게 스타 셰프가 되는 방법을 물었을 때 해준 대답은 정확했다.

 

강레오는 요리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요리사가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평생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한다. 이 차이가 삶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다. 그가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1만 시간이 충분조건이 아닌 작은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의 삶도 하나씩 흘러나온다. 방송 중 에피소드가 아닌 살면서 수술을 해야 했던 일이나 자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치열한 경쟁 등 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좋았던 것은 역시 그의 열정과 노력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다. 제목처럼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레오의 삶과 철학뿐만 아니라 요리사란 직업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요리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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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5-06-2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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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특이한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먼저 작가가 바르셀로나 과학 형사 수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것만 가지고 특이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에 20세기 초에 실존했던 여자 연쇄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내용이라면 어떨까. 한 가지 더. 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나가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 이 존재는 어떤 때는 사신의 모습이고, 어느 순간에는 이야기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거나 한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이 변화무쌍한 존재가 솔직히 읽으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몰입이 흐트러진 것도 이 화자의 등장 때문인 경우도 많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두 인물이 있다. 한 명은 형사고, 다른 한 명은 연쇄살인마다. 이 시대 형사 이야기에는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청렴한 경찰들이 드물던 시기다. 모이세스 코르보도 뇌물을 받고, 사소한 동료의 협잡을 눈감아준다. 아내가 있지만 창녀와 잠을 잔다. 예전 같으면 거부감을 엄청나게 느낄 주인공이다. 괜히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되어서 말이다. 그는 한 창녀와 섹스를 한 후 괴물 이야기를 듣는다. 이 괴물은 창녀의 아이들만 납치한다. 창녀들은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허점을 노린 유괴 납치다. 그의 아내는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이 괴물 이야기는 그의 신경 한 쪽을 강하게 자극한다.

 

아이들을 납치 살해하는 괴물은 엔리케타 마르티다. 처음에는 단순한 납치 살해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납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줄 때 공포가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이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하고. 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이 시대의 부패한 정치 경제 권력자들은 어떻게든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존재가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녀가 쉽게 활동한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한다. 공포의 씨앗이 사람들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심리와 행동이 오그라들게 만든다. 소설 속 한 아이를 죽이는 과정을 짧게 보여주는데 아주 참혹하고 섬뜩했다.

 

언제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사회가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보이길 바란다. 현실에서 창녀들의 아이들이 사라져도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창녀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납치 유괴를 믿지도 않는다. 아니 믿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모이세스다. 결코 좋은 경찰이 아니지만 이런 사건에는 아주 정의로운 인물이다. 경찰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나 의무는 지킨다. 그가 단서를 쫓아갔을 때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은 불편한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들이 어떤 위협에 노출될지, 혹은 어떤 불편을 겪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이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적 모습을 있던 그대로 그려내었다. 실제 이 시대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가 더 잘 이해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알기는 쉽지 않다. 지역이 바르셀로나란 것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소설 속에 강하게 분리주의가 자리잡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등장하는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사연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설정 속에 아직 과학수사가 제대로 태동조차 하지 않는 경찰들이 연쇄살인범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발로 더 뛰고, 범인이 실수하기만 바라야 한다. 실제 이 사건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도 일반 가정의 아이가 납치되면서부터다. 목숨의 값이 다르다. 씁쓸하지만 이것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문의 괴물을 쫓는 모이세스 쪽과 필요한 아이를 납치하려는 엔리케타 쪽이 서로 교차하면서 출연한다. 이 두 진영을 다 알고 있는 독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존재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의 최대 반전이라면 바로 이 존재가 들려주는 마지막 장면들이다. 너무 친절하다. 그런데 이 존재의 개입이 불편하다. 솔직히 지금은 이 방식이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다. 아니면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거나. 하지만 20세기 초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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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힙합 세트 - 전2권 - 닥터드레에서 드레이크까지 아메리칸 힙합
힙합엘이 지음 / 휴먼카인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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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1년으로 기억한다. 이때 내가 처음으로 힙합 앨범을 샀다. 닥터 드레의 앨범이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후배에게 누구 것으로 시작하며 좋으냐고 물었고, 몇 장의 앨범을 소개받았다. 이 방식은 한때 헤비메탈을 알고 싶어 후배에게 묻고 사고 들었던 방식과 똑같다. 솔직히 그때 앨범을 몇 번 들었지만 잘 모르겠고 취향과도 맞지 않았다. 한국 가요에 한참 빠져 그 음악들 듣기도 시간이 빠듯한 시기였다. 이것은 그 후도 마찬가지다. 미국 음악보다 한국 가요를 더 열심히 들었다. 물론 너무 유명한 곳이야 제목을 몰라도 귀에 익숙하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에미넘의 <8마일>을 봤을 때도 영화와 음악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샘플링과 피처링이 좋으면 귀에 감기지만 랩만으로 구성된 음악은 도저히 뭔 소리인지 몰라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한국의 힙합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가사보다 멜로디를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것만 집중적으로 듣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듣다보니 이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를 때도 가사를 음미한 적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많은 노래를 불렀는데도. 이런 음악 듣기 방식의 반대편 끝에 있는 장르가 힙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팟캐스트로 음악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조금이다. 가요보다 외국 음악 중심으로 선곡하는 곳이다. 나의 나쁜 음악 듣기 습관 중 하나는 가사에 집중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제목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지간하게 히트한 곡이 아니면 제목조차 기억 못한다. 앨범이나 히트곡 모음을 MP3로 듣다보니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진다. 이런 나에게 이 팟캐스트의 음악 제목들은 낯설었다. 그런데 듣다보면 아는 곳이 많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음악인데 제목이나 가수를 몰랐던 것이다. 이런 것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렇게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앨범 몇 개를 구해 듣고 싶고, 유튜브로 검색해서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부제에서 ‘닥터 드레에서 드레이크까지’라고 말한다. 닥터 드레는 알아도 솔직히 드레이크는 잘 모른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음악가 중 대부분의 앨범을 듣지 않았다. 이름이 익숙한 음악가도 음악으로 알기보다 다른 매체에 가십 등을 통해 안 사람도 적지 않다. 어쩌면 나의 힙합 듣기는 에미넴, 50센트, 넬리까지인지 모른다. 웨스트니 이스트니 하는 것은 그 당시 전혀 몰랐고, 방송을 통해 듣던 가수를 기억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 후에 가끔 궁금해서 혹은 유명한 힙합 가수가 나오면 찾아보고 듣는 정도다. 뭐 지금도 이것은 변함이 없지만.

 

이 책은 나같은 사람에게 굉장히 불친절하다. 시대 순으로 잘 정리된 것도 아니고, 가수의 관계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설명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수의 이름을 들은 적 있지만 얼굴과 연결되지 않고, 앨범 목록도 가수도 색인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책을 읽다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하고 찾으려면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힙합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이 분야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들을 나같은 문외한이 음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려면 이런 작업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검색의 일상화를 외치면서 ‘니들이 알아서 찾아 들어’라고 외치면 할 말이 없지만.

 

한 번 휙 읽고 지나간 탓인지 아직 아메리칸 힙합의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동부니 서부니 남부니 하는 구분이 될 리도 없고, 읽을 때마다 극찬한 앨범을 들으면서 그 느낌을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뒤늦게 들은 후 다시 그 글을 읽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앨범의 소개가 많다는 부분에서는 한동안 즐거움을 줄 것 같다. 이전에 사놓은 앨범을 찾아서 듣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직 듣지 못한 앨범은 구글링을 통해 듣는다면 힙합에 대한 작은 감이나마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주로 2000년 이후 힙합을 다룬다고 하지만 수많은 음악가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게 많은 분량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그 음악가들이 한국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미국 힙합에 대한 글을 읽다가 한국 힙합에 대해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의 홍보를 위해 나온 타블로나 최자 등의 글이 가슴 깊이 와 닿지는 않지만 선택할 때는 도움을 줄 것 같다. 나도 솔깃한 사람이다. 온라인에 쓴 글을 오프라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충분히 공을 들이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힙합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몇 개의 앨범을 듣고 난 후 나의 힙합 이해가 얼마나 깊어질지 알 수 없지만 관심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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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기행 - 깨달음이 있는 여행은 행복하다
정찬주 지음, 유동영.아일선 사진 / 작가정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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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의 마음으로 쓴 기행문이다. 제목대로 불교의 흔적으로 좇아 그곳에서 느낀 불교의 깨달음과 감상을 적은 글이다. 저자는 한 번에 이 나라를 모두 돈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다섯 나라는 각각 다른 시기에 돌았고, 불국이란 주제 아래 하나로 묶여 책으로 나왔다. 혹시 이 책에서 일상적인 여행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결코 추천할 수 없다. 어떻게 여행지를 가고, 이동하는 방법이나 관광지나 여행지의 풍경과 감상을 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란 하나의 목적에 따라 움직인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목적을 알고 그것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아주 유익한 책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부탄에서 시작하여 중국 오대산으로 끝나는 여행기다. 비록 불국이란 목적으로 여행을 갔다고 해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빛과 그림자가 잘 조화를 이루고, 색감이 뛰어나다. 유동영 작가의 노력과 실력이 한껏 드러난 것 같다. 표지의 사진이 책을 봤을 때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는데 개인적으로 책 속에 실린 사진이 더 강렬하고 멋지다. 원본이 어느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멋진 풍경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유적과 유물을 찍은 사진은 글보다 더 강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진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지면 더 좋다.

 

첫 불국인 부탄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인지 뒤로 가면서 이야기의 힘이 조금 달린다. 첫눈이 오면 쉬고, 가난하지만 복지가 잘 되어 행복지수가 높은 그 나라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과 너무 비교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관광객을 더 많이 받아 수입을 올리기보다 환경을 더 중시하는 나라, 왕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인 부탄은 언젠가 한 번 가서 꼭 둘러보고 싶다. 이어서 나온 네팔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다녀왔다. 얼마 전 예능에 나온 네팔과 비교하면 보여주는 장소와 사람들이 다른데 여행의 목적에 따라 그 시선이 머물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힌두교와 불교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지만 부와 계급에 따라 화장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에는 불국이란 이름이 약간 무색하다. 뭐 한국도 마찬가지니 특별히 트집 잡을 것은 없지만.

 

남인도에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은 신라의 석탈해와 6촌장이다. 이곳으로 가는 도중에 영국 식민지 시절의 유산인 차밭이 나와 아픈 역사를 떠올려주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신라 역사의 한 자락을 바로 여기 남인도에서 찾고 연결하려는 노력이 문외한의 눈에는 약간 억지처럼 보인다. 물론 한 역사가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물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앎이 그곳까지 아직 닿지 않았다는 의미다. 아소카 왕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역사 시간에 배운 이름이 나와 반가웠다. 그러나 그가 실제 인도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계속해서 보여줄 때 이 이름이 지닌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했다. 그의 영향력은 한국까지 와 닿았고, 다음 불국인 스리랑카에까지 미친다.

 

스리랑카에서 한국 불교가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요즘 시내 곳곳에 불당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 절은 산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절은 여행을 가서 둘러보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 시내에 있는 조계사와 봉은사를 생각하면 오해지만 많은 절들이 산에 있다. 대표적인 절들이 어디 있는지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저자는 불교가 더 교세를 떨쳐야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에 비해 선교활동이 적은 불교를 생각하면 맞는 말이지만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들까지 가세하면 조용한 삶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생긴다. 아닌가?

 

개인적으로 오대산과 사원의 풍경은 멋지고 친숙하지만 글 내용은 그렇게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앞에서부터 이어져온 불교의 유적과 유물과 신앙이 가슴 한 곳에 계속 쌓이다보니 약간 반감이 생긴 모양이다. 유적과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좋지만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닌 그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삶과 과거와 현실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순례와 답사 성격이 짙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부제인 ‘깨달음이 있는 여행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 깨달음이 나에게 잘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래서 더 깊이 몰입하지 못하고 뒤로 가면서 지루해졌는지 모른다. 저자가 너무 많은 역사와 사실들을 넣어서 설명하려고 한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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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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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소녀 밀리 버드는 어느 날 갑자기 쇼핑센터에 버려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던 그곳에 머문다. 그녀는 하나의 기록장을 가지고 있다. 죽은 것들의 기록장이다. 어린 소녀에게 죽음은 낯설고 신기한 것이다. 기록장에 죽은 것을 하나씩 기록한다. 처음은 집에서 키우던 개였고, 밀리의 아빠는 스물여덟 번째다. 그녀가 쇼핑센터에 버려진 것도 아빠의 죽음 이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며칠 동안이나. 정상적인 아이라면 울고 엄마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녀는 기다리라고 한 그곳에 숨고, 쇼핑센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터치 타이피스트 칼이다.

 

칼은 여든일곱 살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비를 잃고 슬픔에 빠져 산다. 터치 타이피스트라는 말처럼 그는 말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친다. 한 번 말을 순화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내 에비는 삶의 한 축이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손가락이 다친 것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강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 그를 보고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낸다. 요양원을 벗어난 그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밀리 버드다. 밀리가 온 것은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노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재를 이보다 더 무섭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애거서 팬서는 밀리의 길 건너편에 산다. 여든두 살이다. 남편이 죽은 후 집안에서만 살고 외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하나의 강박증세가 있다. 하루의 일과를 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자신의 노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밀리가 죽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나 칼이 타이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는 세상과 문을 닫았는데 창밖으로 몰래 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 집을 가꿀 생각도 없다. 몇 년을 이렇게 보내다 한 소녀의 등장으로 인해 집밖으로 나온다. 바로 밀리다. 세상으로 나온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외치고 소리치면서 말하고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밀리를 중심으로 모인다.

 

쇼핑센터에 머물면서 밀리가 쓴 문장이 하나 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표지에 수없이 반복되는 그 문장이다. 이 문장은 밀리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표시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쇼핑센터에서도 밀리는 오랫동안 머물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감시카메라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곳에서 만난 칼은 쇼핑센터 사람들이 아동성애자로 오해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는 마네킹은 다른 사람들에게 섹스용품으로 오해받는다. 조용하고 약간 여성적인 칼은 밀리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신 속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이것은 애거서도 마찬가지다. 셋이 모여 다니면서 좌중우돌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감정들이 밖으로 터저 나오면서 생긴 일일 뿐이다.

 

흔히 노인들을 지혜로운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칼이나 애거서는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기대어 삶을 살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제했다. 그들을 보면 괴팍하고 낯설어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밀리도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낯설다. 이 낯섦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읽으면서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달면서 다른 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억제된 욕망이 표출되고, 잊고자 했던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하나로 뭉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들이 느낀 상실과 아픔이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한두 개 중요한 이야기를 놓친 것이 더 심화시켰는지 모른다. 나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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