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5 : 모험 편 - 아서 고든 핌 이야기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5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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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 장편이 단 한 편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한 편 더 있었다. 흔히 알고 있던 <아서 고든 핌 이야기>가 완결된 장편인 반면 <줄리어스 로드먼의 일기>는 미완인 채로 끝난 장편이다. 두 작품을 묶어 낸 책이 바로 모험 편이다. 개인적으로 모험 편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소설은 <줄리어스 로드먼의 일기>다. 로키산맥을 처음으로 횡단했다는 가상의 인물 ‘줄리어스 로드먼’의 일기를 재구성했다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본격적인 모험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중단되었다. 아쉬웠다. 이전까지 단편들만 읽다가 장편을 읽다보니 약간 호흡이 달라졌다. 약간의 적응기를 거쳤지만 포는 그렇게 쉽게 읽히는 작가는 아니다. 편안하게 읽게 두지 않고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제대로 빠지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구성과 전개다.

 

<아서 고든 핌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아서 고든 핌이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경험한 것을 적은 소설이다. 모험이라고 하기보다는 고난기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그는 큰 고생을 한다. 첫 번째 항해가 실패할 때도, 그 이후 밀항한 두 번째 항해에서도, 마지막에 한 새로운 항해에서도 결코 그는 평화로운 항해를 하지 못한다. 모험에 힘든 일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앞의 두 이야기는 무기력하기만 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밀항한 두 번째 여행은 처음에 읽을 때 이것이 무슨 모험이냐! 라고 외칠 정도로 무기력하다. 친구 어거스터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배 아래에서 굶주려 죽었을 것이다.

 

아서 고든 핌이 바다에서 배로 여행하는 환상을 품게 된 데는 당연히 선장의 아들인 친구 어거스터스의 영향이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처음에는 둘이 출항해서 모험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끝나고 만다. 항해에 대한 지식도 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그들이 살아난 것만도 다행일 정도다. 이 시도 후 두 번째 시도는 어거스터스 아버지의 배 그램퍼스호를 타고 가는 것이다. 방법은 밀항이다. 배 밑에 친구를 숨겨둔 후 큰 바다로 나가면 끄낼 생각이었는데 선상 반란이 일어난다. 이 반란으로 아서가 죽을 뻔 한 것이다. 갈증과 기아로 말이다. 이때만 해도 이런 고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반란자 중 한 명을 설득해 배를 다시 장악했기 때문이다.

 

진짜 고생은 이제 시작한다. 망망대해에서 폭풍으로 배가 기울고 음식도 식수도 없는 상황에서 조난당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배에 물건을 선적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19세기에도 지적한 것을 21세기에는 왜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생긴다.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의 이유 중 하나가 제대로 적재하지 않은 것임을 알려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었지만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 그들은 힘들지만 배 위에서 생활하게 된다. 금방 구조될 것처럼 보였는데 행운의 여신을 그들을 비켜나갔다. 잠수해서 배 속에 있는 식량과 술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지면서 갈증과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이성은 점점 사라지고 광기가 자리 잡는다. 뽑기로 식량이 될 사람을 선택한다. 강한 생존의식이 인육을 먹는다는 거부감을 없앤 모양이다.

 

불행과 행운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결코 이 여행이 좋게 진행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더 높이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의 선택에 의해 또 다른 시련과 고통이 찾아온다. 그러다 갑자기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마무리다. 그리고 다시 작가가 개입하면서 이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가끔 현대소설에서 보게 되는 설정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이 몇 있다. 이 두 장편에 나오는 모험의 과정을 작가는 어떤 식으로 조사를 하고 얼마나 많은 사실을 바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집어 넣었을까 하는 것이다. 위치나 풍경 등의 자세한 설명과 묘사를 읽다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또 모험 편을 읽으면서 쥘 베른의 흔적을 발견했는데 나만의 착각일까? 누군가가 <줄리어스 로드먼의 일기>를 완성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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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4 : 풍자 편 - 사기술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4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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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집은 재미있다. 나의 취향과 잘 맞는다. 이미 다른 작품집으로 그의 글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어떤 단편을 읽을 때는 이것과 과연 19세기에 쓰인 소설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 비슷하게 다가온다. 이 단편집만 놓고 보면 왜 포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잘 이해된다. 내가 알던 미스터리와 공포 작가란 이미지가 퇴색할 정도다. 물론 어떤 작품은 잠시만 집중하지 않으면 그 흐름을 놓치고 재미를 못 느낀다. 약간의 억지 같은 것도 없지 않다.

 

첫 단편 <사기술>은 현대에도 통용될 듯한 수법이 꽤 있다. 어떤 것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사람의 욕심과 단순한 믿음이 허점을 만든다. 이것과 비슷한 작품이 <비즈니스맨>이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은 읽으면서 의심이 살짝 생겼는데 결말에서 그대로 맞았다. <안경>은 한 청년의 안경 혐오가 우연히 오해와 만나 만들어내는 최악의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결말을 읽고 너무나도 예상을 초월해 그럴 수도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오해를 통해 재미난 결말을 만들어내는 단편들이 이 책 속에는 여러 편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일요일>은 포의 자전적인 부분이 들어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에 이 제목에 대한 해답이 나왔을 때는 살짝 웃게 되었다. 이런 기발한 답이라니, 아니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다니 하고. <소모된 남자>는 끝까지 이들이 말하는 바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끝에 나온 장면으로 단숨에 이해되었다. <싱검 밥 명인의 문학 인생>, <블랙우드식 기사 작성법>, <곤경>, <X투성이 글>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다. 글쓰기에 대한 포 식의 풍자가 잘 드러나는데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X투성이 글>에서 X는 알파벳 X이고 다른 어떤 약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모를 때는 오해하기 딱 좋다.

 

<멜론타 타우타>는 처음에 읽으면서 환상 편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에 나온 <미라와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다. 전작이 현재보다 더 먼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데 과학 기술의 발전이 너무 더디다. 이 단편집들을 읽으면서 포의 과학적 상상력이 그 시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후작은 고대인과의 대화가 너무 수준 낮아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풍자 편에 어울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핑크스>는 사람들의 착시 효과가 어떤 환상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데 그 이면에 깔린 공포를 한 번은 더 생각하게 된다.

 

<봉봉>, <기괴 천사>,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 <오믈렛 공작>는 악마나 천사 등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고 황당한 전개로 이어지면서 악마나 천사가 그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물론 이들이 충동질하는 것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들의 욕망과 허영심이 깔려 있다. <봉봉>에서 인간 영혼의 맛을 표현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함축적인 풍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하나의 장면이 약간 잔혹한 느낌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가 된다. 환상 편에 어울리는 악마 등이지만 내용이 풍자 편에 더 맞는 것 같다.

 

여기에 말해지지 않은 몇 편은 나의 집중력이 깨진 상태에서 읽었거나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단편이다. 전체적으로 환상 편보다 더 집중했고, 더 재미있었고, 현실과 더 맞아떨어졌다. 풍자라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현실 문제를 잘 관찰하고 분석한 후 비틀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우리의 현실에 대입했을 때도 큰 무리가 없는 것도 바로 이런 통찰력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포의 이력에 풍자가 더해져도 전혀 놀랍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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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3 : 환상 편 - 한스 팔의 환상 모험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3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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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으로 포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 여기저기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완역본은 처음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출간된 한 권짜리 두툼한 포의 단편집을 산 적은 있다. 읽지 않았고 사기만 했다. 늘 마음속으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두께에 놀라 시작도 못했다. 이 포 전집도 만약 1권부터 읽어야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1권과 2권이 미스터리와 공포를 소재로 해서 낯익은 제목들이 많았는데 이번 책은 조금 낯선 환상 편을 다루었다. 목차를 읽으면서 단 한 편도 낯익은 제목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포가 환상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약간은 낯설다.

 

첫 이야기 <한스 팔의 환상 모험>을 읽으면서 괜히 과학적 사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에 트집을 잡고 싶었다. 현대 과학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사실을 비튼다. 앞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화가 났던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천일야화의 천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말도 되지 않고 시대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뒤섞이는데 그 마무리가 놀랍다. 주석이 없었다면 은유적인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어느 부분에서는 놀라운 표현력과 상상력으로 즐겁게 만들었다. 많은 주석과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꼼꼼하게 읽고 충분히 그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면 그 재미를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길이가 다르고 시대도 뒤섞이고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읽기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다.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다. 19세기의 과학을 기본으로 상상력을 가미했는데 환상소설보다는 오히려 SF에 더 가까운 작품도 보인다. 판타지의 설정을 끌고 와 이야기를 엮고, 악마를 등장시켜 포 작품의 분류를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풍부한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주석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상당하다. 마무리가 급하게 이루어져 앞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면 그 결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물론 나의 집중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장르적 특징인지 아니면 포만의 특징인지 알 수 없지만 상황이나 장면이나 풍경에 대한 설명이 엄청 자세하다. 이 표현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가 묘사한 장면에 등장한 꽃이나 나무나 건축물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몰입도는 금방 흐트러진다. 여기에 구성이나 진행 방식도 다양하다. 어떤 작품은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한 편의 간단한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 이야기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연작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는데 이 시대에 단편이 이렇게도 발표되는구나 하고 놀란다. 솔직히 이번 단편은 그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다. 읽는 법과 그가 표현한 글이 맞지 않은 것도 있고, 나의 이성이 상황이나 설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탓도 있다. 이 단편집도 다음에 다시 천천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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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장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3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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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시리즈 세 번째 편이다. 이전 시리즈는 읽지 않았다. 이 작가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몇 권 읽었는데 민속적 호러를 미스터리와 연결해서 풀어내는 능력이 아주 좋았다. 이번 작품도 약간 그런 종류다. 이전의 작가 시리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 <사관장>은 도조 겐야 시리즈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보면 호러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화자가 다섯 살 때와 성인이 된 후 겪었던 기이하고 괴상한 경험은 갑자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성어와 화자의 심리 묘사를 적절하게 섞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공포를 조성하는 동시에 ‘왜?’ 와 ‘어떻게?’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관장(蛇棺葬). 처음에는 집 이름으로 착각했다. 장례할 때 사용하는 장(葬)을 장원할 때 장(莊)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한자를 대충 본 것이다. 뱀 사(蛇)자의 강렬함과 백사당이란 다음 책 제목 때문에 집으로 그냥 넘겨짚은 것이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언제 사관장이 나올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기 진행되어도 그 장소는 나오지 않았다. 백사당에서 일어난 기묘하고 기이한 사건만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햐쿠미 가의 장례를 중심에 두고 어린이와 성인의 각각 다른 경험을 어스스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성인되어 30년 만에 찾아온 화자가 어릴 때 느낀 공포와 의문을 다시 재현하면서 다른 위치 때문에 생긴 다른 경험을 들려준다.

 

화자 ‘나’는 다섯 살 때 처음 햐쿠미 가로 들어온다. 본처가 있는 아버지가 밖에서 ‘나’를 낳은 것이다. 어머니가 죽자 어쩔 수 없이 햐쿠미 가로 돌아왔는데 누구도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새엄마의 시선은 냉혹하고, 할머니는 정신이 있을 때나 없었을 때 모두 소년을 괴롭혔다. 얼마나 차가웠으면 그 나이에 그것을 알았을까. 이런 와중에도 그의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다미 할멈이다. 아버지와 고모와 삼촌의 유모였던 다미 할멈이다. 유폐된 듯한 작은 방에서 결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사는데 ‘나’가 나타나면서 이 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년이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성인이 된 화자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야기는 둘로 나누어져 있다. 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와 30년이 지난 후 이야기다. 무대는 동일하게 햐쿠미 가다. 소년의 이야기가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감정을, 느낌을, 공포를 글로 표현했다면 성인이 된 나의 이야기는 자신의 직접 경험이 공포와 어우러진다. 읽으면서 소년의 글이 너무 성숙해 진짜 소년의 경험이자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 생겼다. 반면에 30년 만에 돌아온 후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역시 백사당 안에서 새어머니 시체를 염한 것이다. 이때 잘 만들어진 시설물에 감탄하지만 초가 꺼지면서 과거의 경험이 현실 속에서 재현된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의문을 품은 대목이다. 과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

 

각각 다른 연령대의 주인공을 내세워 비슷한 전개와 구성으로 문을 열지만 모든 의문은 하나의 장례 속에 담겨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사라진 것과 새엄마의 장례식에서 새엄마의 시체가 사라진 것이 대칭을 이룬다. 과거엔 이야기였던 것이 이제는 자신에 닥친 현실이 된다. 햐쿠미 가의 장손은 어머니의 시체를 백사당 안에서 홀로 밤새워 염을 해야 장례 예법이 있다. 이 예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놀랍게도 다미 할멈이다. 이때가 유일하게 집안사람들이 다미 할멈을 찾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수많은 기담과 괴담을 들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화자의 현재 직업이 민속관련 출판사 편집자인 것도 햐쿠미 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적지 않은 분량에 대칭적인 구성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난다. <백사당>을 읽지 않으면 <사관장>에서 받은 공포와 의문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짝 펼쳐 본 <백사당>은 이번 소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민속 호러를 해결하던 부분만 살짝 분리한 듯한 느낌이랄까. 책 속의 책이란 구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이 <사관장>이 미스터리한 문제를 제출한 듯한 느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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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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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 100엔이란 금액으로 물건을 맡기는 것이 그렇게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다. 전철역에 있는 코인로커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한 금액임을 감안하면 더욱. 물론 부피가 큰 물건의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간단한 서류라면 어떨까? 책이라면? 이런 간단한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아시타 마치 곤페이토 상점가의 보관가게 사토를 만났다. 실제 주인이 지은 가게 이름은 ‘기리시마’지만 가게에 걸린 포렴에 쓰인 글자 ‘사토’ 때문에 사토로 불리는 그곳 말이다.

 

사토의 주인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설정이 아니라 이곳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들이 그 물건에 엮여 있는 사연을 말하는 설정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설정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물건을 맡긴 사람들의 모든 것을 껴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100엔에 버릴 것을 맡기고, 누군가는 50년 동안의 장기 보관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곳은 그 물건을 맡긴 사람들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한다. 쓰레기장이 되거나 슬픔이나 아픔 등을 덜어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떤 것을 보관할까?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 편을 제외하면 모두 사물이거나 동물이다. 의인화된 이 사물과 동물들은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하나씩 풀어낸다. 첫 이야기는 포렴이 하고, 두 번째는 자전거가, 세 번째는 유리장식장이, 네 번째는 이혼하려는 여자가, 마지막은 고양이가 한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관찰자이면서 화자 역할을 한다. 이들은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오래된 사물에 귀신이 깃든다는 일본의 이야기가 무섭지 않고 따스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토의 주인 도오루가 있다.

 

도오루는 어릴 때 시력을 잃었다. 글을 읽을 수도 색깔을 구분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관한 물건을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감정 등으로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것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17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이적인 기억력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기억력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번 그가 짝사랑했던 에피소드에서 나올 뿐이다.

 

감상적인 이야기다. 따스함이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보면 영리한 선택일 수도 있는 구성이자 전개인데 의인화된 물건들이 이것을 재미나게 살렸다. 직접적으로 사연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찰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사연을 말하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단지 몇 개월이 아닌 17년이란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나오는데 갑작스런 시간의 비약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의견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당사자들이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지 모른다. 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혹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다면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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