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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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온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은 작품 중 한 편이 <13.67>일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홍콩에서 이런 추리물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당연히 이 놀람은 책 구입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늘 그렇듯이 책장 속으로 사라졌다. 언젠가 읽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러다 조금 더 얇은 책이 또 한 권 나왔다. 일본의 시마다 소지 추리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이 소설 말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이 나를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가 다른 수많은 책을 남겨둔 채 읽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엄청난 작품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방에 누워 있는 시체 두 구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 둘은 부부다. 여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살인자는 잔혹하게 여러 번 여자의 배를 찔렀다. 밖으로 드러난 죽음을 둘이지만 뱃속의 아기까지 계산하면 셋이다. 이 현장에 대한 이야기와 약간의 호러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 하나로 문을 연다.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는 형사가 차 안에서 깬다. 그의 머릿속에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스쳐지나간다. 서장에 나온 남편 정위안다와 아내 뤼슈란이 남편의 불륜 상대였던 유부녀의 남편 린젠성에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에 위화감을 느낀다. 이때만 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도입부다. 그런데 이것이 순식간에 변한다. 그것은 쉬유이 형사가 자신의 근무처에 가서 시간을 확인한 그 순간이다. 현재는 2009년 3월 15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연도는 2003년인데.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에는 6년이란 기간이 너무 길다. 이때 한 여자가 나타난다. 쉬유이와 인터뷰하기로 한 시사정보지 <포커스>의 기자 루친이다.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둥청아파트 살인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사건 당시 피해자 가족인 뤼후이메이와 담당형사 쉬유이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둘은 차를 타고 뤼후이메이의 집으로 간다. 피해자의 언니인 그녀는 원래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았고, 이 부부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딸을 현재 자신의 딸로 키우고 있다. 좋은 이모다. 이때만 해도 평범한 진행이다. 작가가 조각을 하나씩 흘리고 있다.

 

이 인터뷰 전에 린젠성의 용의자에서 살인자로 바뀐 사건 하나가 더 소개된다. 그것은 린젠성이 도망가다 차로 사람을 치어 죽인 사건이다. 잔혹한 부부 살인으로도 충분히 대중의 시선을 끌 수 있는데 이 사건이 더해지자 대중의 관심도는 더 높아진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건과 비교되는 하나의 실화가 있는데 그 유명한 인육만두 사건이다. 그냥 보면 너무나도 뻔한 사건인데 여기에 위화감을 느끼는 형사가 있다. 쉬유이다. 사라진 시간에 대한 회상보다 그는 아친이라고 부르게 된 루친이와 함께 사건 당시 관계자를 찾아다닌다. 린젠성의 아내와 사건 당일 만나기로 한 아옌이란 남자다. 쉬유이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아옌이라는 남자가 걸린다.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작가는 짧은 단락을 넣어 단서를 하나씩 제공한다. 이 단락들은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 가끔 작가가 이 단락을 가지고 트릭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은 아니다. 이 단락에 화자는 바뀌지만 주요한 등장인물은 두 명이다. 쉬유이 형사와 아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연 하나가 반전처럼 다루어진다. 읽으면서 범인에 대한 윤곽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가 발견한 몇 가지 패턴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패턴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 풀어놓는 단서와 정밀한 구성의 조화다. 찬호께이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어렵게 글을 쓰지 않아 쉽게 읽히고, 시간과 심리학을 이용해 반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누구는 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측가능한 반전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현실성을 높였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부분을 구성 속에 녹이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만들었다면 훨씬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의 단상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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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던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9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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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에 읽은 <죽은 자의 심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사놓고 묵혀 놓고 있던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어디에 둔 것인지? 그러다 새로운 책이 나왔다. 반가웠다. 낯선 제목이라 다른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해신의 바람 아래서>의 개정판이다. 절판된 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주 반가운 일이다. 두툼한 분량과 요즘 나의 주변 상황을 감안할 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한 번 분위기를 타자 단숨에 그 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새로운 절판본의 개정판 소식까지 알게 되었다.

 

2004년 작품이다. <죽은 자의 심판>보다 한참 전에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반가운 인물들이 많다. 형사 아담스베르그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수상 경력이 화려한 작품이다. 뭐 화려한 수상이 책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재밌다. 그리고 아주 흥미롭다. 왜냐고? 이번 작품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어떻게 이런 작가를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읽은 두 작품 사이에 생긴 몇 가지 변화가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해리 홀레 시리즈처럼 한 권씩 꾸준히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출간 순서와 읽은 순서가 달라 비슷한 시작을 비교하기가 그렇다. 영감과 직관의 힘은 이번에도 작용한다. 하지만 이번에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야기와 다르다. 아주 긴 세월을 배경으로 하고, 아담스베르그 개인과 가족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형사가 평생 풀고 싶어 하는 미해결 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바다를 뚫고 올라온 것이다. 그가 모은 자료가 연쇄살인범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용의자가 죽었기에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이론이 다른 형사 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래 전 아담스베르그가 살던 동네에 한 유명한 판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퓔장스다. 아담스베르그가 이 사건에 집착하게 된 것은 그의 동생이 용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증거를 없애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면서 살인자에서 벗어났지만 소문은 잠재우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는 퓔장스 판사를 캐기 시작한다. 증거를 모은다. 판사를 뒤좇는다. 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판사를 기소할 정도는 아니다. 영리한 판사의 작업은 항상 용의자를 사건 현장 주변에 놓아둔다. 대부분 술에 취한 이들은 몇 시간의 기억을 상실한다. 곁에는 살인에 사용된 도구가 놓여 있다. 경찰이 보기에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와 현행범이 없다. 이렇게 늘 사건은 종결된 채 지나간다. 단지 아담스베르그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앞부분이 죽은 판사의 살인 행각을 풀어놓는다면 중반 이후는 아담스베르그가 사건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르탕쿠르와 당글라르가 있다. 이 둘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해서 서장을 돕는다. 개인적으로 르탕쿠르의 능력은 <죽은 자의 심판>에서도 놀라웠지만 이번 작품에서 더욱 놀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담스베르그는 그의 숙적이 쳐놓은 함정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정공법이 아닌 편법을 이렇게 멋지게 사용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 또 새로운 한 인물이 등장한다. 할머니 해커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다. 이들은 도움은 궁지에 몰린 서장을 일으켜 세우고, 가장 큰 장벽이었던 것을 무너트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여기까지 오면 깊은 밤도 책읽기를 막을 수 없다.

 

아담스베르그 시리즈는 보통의 형사물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일단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부터 특이하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같은 당글라르나 뚱뚱하지만 수많은 능력을 가진 르탕쿠르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그의 경찰서에는 그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영감을 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아담스베르그의 놀라운 기억력은 직관에 의한 통찰을 거치면서 조각난 퍼즐을 그대로 조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아담스베르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불안한 심리는 낯설다. 그래서 그에게 더 몰입한다. 가끔은 그를 질타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이 시리즈가 모두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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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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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주로 소설을 읽는 것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친구 집에 가서 동화책을 빌려 읽었던 것도 이야기가 좋아서였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한탄과 아픔과 사랑과 즐거움과 괴로움 등을 듣다 보면 나의 괴로움과 아픔이 잠시 멈추곤 했다. 솔직히 말해 거창한 것으로 아파본 적은 없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누구나 겪은 평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어떤 때는 혼자 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데도. 아니 없기에 한 것인지 모른다. 그때는 그랬다. 작가가 글 첫머리에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하고 묻기에 떠오른 단상이다.

 

언제부터인가 목차를 유심히 본다. 연습에 의한 습관이다. 목차를 본다고 해서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서적이라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처럼 명사로 나열되어 있다면 알기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목차를 보니 중간에 감다, 매듭, 풀다의 장을 빼면 진행의 역순으로 제목의 순서가 나열되어 있다. 이 과정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신으로 넘어가고, <프랑켄슈타인>, <나니아 연대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눈의 여왕>, <북극 모험> 등과 같은 이야기를 거처 다시 어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타래에 감았다가 다시 풀어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첫 인상이 지워질 때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살구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일상에 대한 평범하고 약간 감상적인 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책소개에 나온 책들의 이야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씩 이야기가 진행되고, 인생의 한 전환점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아마 나의 집중력이 높아진 것도 이때부터 일 것이다. 그 전환점은 집을 나와 여행하던 중 그랜드캐니언에서 래프팅을 제안받고 ‘예’라고 대답한 그 순간이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가고자 하던 그 순간이 그녀의 삶을 바꾸었다. 이것은 나중에 아이슬란드 초대가 왔을 때 가겠다는 대답으로 이어진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가 자신을 적대시할 때 그것을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자식보다 자신을 먼저 찾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집에서 간호하고, 병원에도 보내고, 이사도 한다. 그러다 좋은 요양원에 보내지만 이것이 완전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자신의 유방에 문제가 생긴다. 유방암의 징후가 보이는 것이다. 다행이 암으로 판정은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문제와 함께 남자 친구와의 갈등도 생긴다. 나쁜 일은 홀로 오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이 순간은 견디어내었다. 삶의 고비가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고비가 오지만 그 경험은 다음 고비를 지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 책들이 있다. 친구들이 있다.

 

‘멀고도 가까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다.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처음에는 이 제목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에 더 눈길이 갔다. 아마도 나의 관심이 그쪽에 더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책을 더 읽으면서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공감하면서 이 평범한 표현이 가슴 한곳으로 파고들었다. 나의 지나간 시간과 현재를 잠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작가는 철학이나 사상을 말하기보다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견디고 생각한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감아서 묶었던 것을 풀어내는 것도 역시 이야기다. 그래서 다른 에세이에 비해 더 쉽게 집중하고 재미있게 읽었는지 모른다. 다 읽은 후 다시 읽은 첫쪽의 문장은 아주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처음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낀 것은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졌던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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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 성룡 자서전
성룡.주묵 지음, 허유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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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룡을 만난지도 수십 년이 된 것 같다. <취권>의 성공이 먼저 알려졌지만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홍금보, 원표 등과 함께 찍은 현대물들이다. 그 당시 이 사형제들의 영화를 보고 얼마나 웃고 즐거워했던가. 그리고 한때는 성룡의 영화가 늘 추석 때가 되면 극장에 걸리곤 했다. 서울의 낙원상가의 <할리우드 극장>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면 아주 반가웠다. 내 인생에서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것도 역시 성룡의 영화다. <용형호제>를 친구와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가 끝난 후 항상 올라왔던 NG 필름은 또 다른 재미이자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성룡을 떠올리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넘실거린다. 이 성룡의 자서전은 그 추억을 일깨워주고, 성룡에 대해 잘 몰랐던 그의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성룡의 전성기는 <폴리스 스토리>까지다. 최근에 나온 것 말고 3편까지 말이다. 그 뒤에 나온 영화들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할리우드 진출 이후 작품은 성룡의 색채가 많이 퇴색되었다, 물론 영화의 성공이 그에게 전세계적인 인기와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전성기의 화려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아마 이때부터가 조금씩 성룡의 영화에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극장에 걸리는 것도 미국에서 만든 영화 몇 편을 제외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성룡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면 눈길이 가고, 익숙하고 즐거운 액션으로 가득한 그의 영화를 본다. 이런 나에게 그의 자서전이 나왔다는 사실은 아주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이 자서전은 그의 팬에게는 아주 반갑고 즐거운 책이지만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공격의 대상이 될 부분으로 가득하다. 그가 지닌 약점이나 저지른 잘못도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고생과 성공을 아주 멋지게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캔들에 대해서도 아주 조그만 부분만 다루고 있어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빠져 있다. 특히 혼외정사로 나은 딸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부분도 없다. 기존 가정을 지키기 위한 의도는 알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이외에도 그는 수많은 스캔들이 있었다. 역시 이 부분도 말하지 않고 너무나도 잘 알려진 부분만 이야기하고 지나간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다루지 않은 것인지 현재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 생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평전이 나온다면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성룡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안 것이 있다. 뭐 이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홍금보와 원표 등이 그의 사형제였다는 사실이다. 홍금보가 사형이라 맞았고, 그에게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는 이야기와 축구를 할 때 발은 빨랐지만 골 결정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사연은 슬프고 웃기다. 그가 희극학교에 들어가게 된 사연과 그곳에서 어떤 성장 과정을 겪었는지 들려준다. 이때 그의 가슴 속 한 곳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조각들은 그곳에 대해 여러 번 다루게 만든다. 여섯 살 아이가 십 년 동안 홀로 학교에서 지내면서 무술을 연마하는 장면은 그도 살짝 흘렸듯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경험이 그가 세계적인 액션 스타가 되는데 아주 큰 공헌을 한다.

 

무명시절의 성룡에 대해 예전에 여러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세하지 않았다. 정보도 정확하지 않았다. <취권>과 다른 영화의 성공이 그를 겉멋 들고 방탕하게 만들었지만 할리우드의 실패가 그로 하여금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 이에 불구하고 따거로 불리는 그가 겪은 수많은 사기와 실패도 그를 흔들어놓지 못했다. 이 자서전을 보면서 가장 이해되지 않고, 놀라운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어떤 부분은 톨스토이의 단편 한 편과 아주 닮은 모습이다. 이런 사기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공은 이어진다. 액션을 찍기 위해 그가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알려줄 때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몰랐던 큰 부상 소식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음에도 안타깝고 두렵다.

 

언젠가 성룡의 평전이 나오면 이 자서전과 다른 부분이 꽤 많이 나올 것이다. 성룡 자신이 글을 쓸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과거의 기억이 잠시 떠올랐고, 이 때문에 거액의 현금을 지금도 가지고 다닌다고 할 때 또 놀란다. 따거로 불리는 그가 늘 주변에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식사를 했다는 부분은 그의 아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여기에 결혼 사실이 알려진 것도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따거는 재미난 기록도 몇 개 있다. 같은 장면을 엄청나게 많이 반복해서 찍었다는 기록과 상처와 스턴트에 대한 기록 등이다. 우리가 편하게 재미있게 보는 장면 뒤에 어떤 고생들이 있는지 알게 된 것도 이 책의 소득 중 하나다. 만약 성룡을 알고 그를 좋아하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면 이 자서전은 예상보다 훨씬 반갑고 즐겁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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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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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처럼 일상에서 시작하여 잔혹한 파국으로 이어진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캐롤>을 생각하면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1950년대 미국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일상의 비일상을 담고 있고,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드러낸다. 어떻게 보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게 느껴지지만 그 감정과 심리를 차분하게 따라가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일상의 균열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빅터.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으로 조그만 출판사를 운영한다. 그런데 이 출판사가 내는 책들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 유산으로 이 손실을 메꾼다. 그는 결혼했다. 아내와 딸이 있다. 이렇게 적고 보면 단란한 가족이 떠오르지만 실제 이 가족은 찢어져 있다. 그 분열은 아내 멜린다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연인으로 두고 있다. 남편도 알고 있지만 이것을 은연중에 묵인한다. 이 묵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고, 그 애인들도 거침없이 그의 집으로 찾아오게 만든다. 그렇다고 빅터가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빅터의 심리를 하나씩 표현하면서 그에게 동조하게 만든다.

 

뉴욕 근교의 작은 마을은 이웃들과 사이가 좋다. 작은 파티에 이웃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새로운 이웃이 나타나면 그들을 공동체로 초대한다. 밖에서 본다면 이 이웃들은 화목하고 즐겁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작 중 하나는 빅터가 아내의 애인에게 뉴욕의 한 살인 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것이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냥 무심코 보기에는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 상대방은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마을에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조용한 마을에 작은 파문을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실제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람피는 아내를 둔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혼이다. 그런데 빅터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나중에 아내에게 이혼을 요청하는데 이때 꽤 많은 위자료를 주는 것으로 제안한다. 그냥 생각할 때 위자료 없이도 이혼이 가능할 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가 바란 것이 아내와의 재결합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 다른 방법은 뭘까? 아내를 깊은 절망으로 빠트리는 것이다. 그가 겪은 고민과 고뇌와 상실감 등을 단번에 회복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하기에는 치밀한 준비정신이 없다. 그가 보여준 침착함과 관대함(?)은 이 가능성도 지워버린다. 그러다 우발적인 하나의 죽음이 차가운 이성의 바닥 밑에 있던 분노와 폭력성을 일깨운다.

 

하나의 죽음 이후 빅터를 둘러싼 이웃들의 반응은 제각각이고, 실제 감정과 다르게 표현된다. 그들은 빅터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를 살인자라고 말한다. 이것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딸과의 대화 속이다. 실제 그를 의심하지만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웃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빅터와 멜린다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멜린다처럼 그를 살인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저지른 것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탐정을 고용하기도 한다. 빅터가 금방 알아채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부부의 틈은 더 벌어지고, 자신들의 감정을 속인 채 부부의 외양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불안하다. 빅터의 차가운 이성이 흩트리질 때면 더욱 더. 평온하고 고용한 일상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거짓 평화 속에 숨겨진 감정들은 아주 큰 태풍을 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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